食口 2.0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더라도,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수저를 들면 식구 아닌가. 혈연이라는 필연 대신 취향과 실천이라는 기준을 택한 이들이 있다. 지금 서울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식구를 정의하고 있는 여섯 팀을 만났다. 이들에게 식구란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관계다.
Snake Chicken Soup 스네이크치킨수프
최소 2인 이상, 확실한 역할 분담, 하나의 이름. 밴드만큼 명확한 ‘식구’의 형태가 또 있을까. 하지만 세상을 둘러봐도 수명이 긴 팀은 손에 꼽는다. 각자의 사정이 생기고, 때론 세상이 변해서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이 순리다. 그렇다면 규칙과 속박 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무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2022년 결성된 ‘스네이크치킨수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 웨터의 최원빈(보컬), 이디오테잎의 DR(드럼), 텔레파시 등의 프란츠(베이스 기타). 각자의 판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뭉친 이유는 의외로 사뿐하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일순 정적에 잠겼을 때, 이 적막을 깰 ‘시끄러운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뿐이었다. 맥락 없는 가사 위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하드한 사운드. 거친 음악의 밀도와 달리, 이들을 지탱하는 건 아주 느슨하고 건조한 결속이다. 억지로 맞추지 않기에 부러질 일도 없다. 이 이상한 농담 같은 사이가 바로 스네이크치킨수프다.

<W Korea>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진 ‘결정적 순간’이 있었나?
DR 20년 지기 프란츠와는 옛날부터 친했다. 함께 밴드를 결성한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 19였다. 세상이 너무 조용한 게 싫어 프란츠에게 던졌다. “우리 좀 시끄러운 거 하자.” 시작은 그랬는데 한동안 놀기만 했다. 그러다 프란츠가 최원빈의 작업물을 보내주기에 인스타그램을 대충 훑고는 독설을 뱉었다. “얘는 웬 밴드 웨터 짝퉁이냐?” 그런데 그날 어쩌다 우연히 만나게 된 원빈이가 그러더라. “형, 제가 웨터예요.” 깜짝 놀랐다.
최원빈 형들은 아마 내 외모를 보고 끌렸을 거다(웃음). 형들과 처음 합주한 날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웨터 때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형들과 합주하니 오히려 생각이 아예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아, 이렇게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서로 지키는 룰이 있나? 명시된 것이든 암묵적인 것이든.
DR 아예 없다. 이렇게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놈들이 규칙 정하고 사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프란츠 ‘별 생각 없이 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밴드를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저마다 생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바뀌는 때가 온다. 그때가 해체 신호다. 우린 서로에게 요구하는 게 없다. 즐기면서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이다. 니체도 말하지 않았나. 가지려 하는 자, 가질 수 없다고.

식구는 본래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함께 나눈 가장 핵심적인 ‘양분’은 무엇이었나?
프란츠 어릴 적 꿈꾸던 상상 속 록 밴드의 실현. 2022년 데뷔 싱글 ‘비켜ㅕㅕㅕ’를 냈을 때 이미 모든 로망이 해소됐다. 어디서든 기세 좋게 자랑할 만한 결과물이 만들어졌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앞으로 그저 이 순수한 결과물을 더럽히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최원빈 형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펑크 록을 만들 수 있었을까 싶다. 또 함께 무대를 할 때 어느 밴드에서도 느끼지 못한 상쾌함이 있다. 형들과 있으면 머릿속이 비워진다. 연주가 워낙 안정적이라 나는 그 위에서 뛰어노는 원숭이가 되는 기분이다.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무엇을 ‘식구’라 부를 수 있을까?
최원빈 예전엔 노력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계가 식구라 믿었다. 지금은 다르다. 굳이 노력해서라도 끊어지기 싫은 사이. 그게 식구다.
식구라도 영원할 순 없다. 우리가 해산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최원빈 재미없어지면 안 할 거다. 그거면 끝이지 뭐.
때로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공유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
최원빈 형들과 공연할 때마다 매번 최고의 순간이 갱신된다. 무대 위에서 느끼는 그 감정은 진짜 가족이라도 절대 알 수 없다. 거기서 오는 끈끈함이 있다.
DR 오히려 가족이라 더 불편한 경우가 많지 않나. 서로 솔직할 수 없거나, 솔직해지면 안 되는 상황들. 우린 그렇지 않다. 숨길 게 없으니 이게 진짜 가족 같다고 느낀다.

이 무심하고 거침없는 결속의 바탕에는 소위 말하는 ‘펑크’의 정서가 흐르는 듯하다. 오늘날 펑크 정신은 멸종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들에게 이 단어는 여전히 유효한가?
최원빈 펑크는 일종의 마법 같은 단어다. 차 사고가 나거나 주식으로 돈을 날려도 친구가 “야, 이거 완전 펑크네”라고 한마디 던지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멸종했다기보다 형태가 바뀐 것뿐이다. 자기 방식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게 펑크라면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DR 예전에 펑크와 무정부주의를 외치던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 주민등록증 없어?” 그랬더니 있단다. 군대도 다녀왔고, 예술인 복지재단 지원금도 받으면서 펑크를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장르적으로 펑크로 구분될 순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그 ‘정신’ 같은 건 우리에게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셋 다 술 한 방울 안 마시는 건전한 친구들이다(웃음).
5년 혹은 10년 뒤,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최원빈 지금과 같은 형태겠지. 농도는 더 진해질 테고. 가끔 적당한 타이밍에 육수만 잘 부어주면 꽤 건강한 ‘뱀닭죽’이 되어 있지 않을까?
eobchae 업체
각자의 방황이 교차하던 대학 시절, 서로에게 그리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세 친구가 뭉쳤다. 막연한 창작의 욕구로 만든 첫 작업이 뜻밖에도 여러 전시를 순회하며, 이들은 ‘업체(eobchae)’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컬렉티브로 거듭났다. 2017년 결성 이후 10년을 향해 가는 이들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스스로를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이라 정의하는 실무 집단. 오천석의 텍스트가 씨앗이 되면, 김나희가 기술적 리서치로 이를 구현하고, 황휘가 사운드와 영상을 입혀 최종 결과물을 만든다.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지 어느덧 10년, 이들은 견고한 팀인 동시에 철저히 각자도생한다. 황휘는 뮤지션 ‘HWI’로, 김나희와 오천석 역시 개인 작가로 활동한다. 이 느슨한 연대는 필요에 따라 ‘헤쳐 모여’의 형태로 존속하지만, 미술계에선 이미 독보적 존재감을 지닌다. 지난해 두산연강예술상을 거머쥐며 그 저력을 다시금 증명했다. ‘따로 또 같이’라는 비정형의 보법으로, 오늘도 이들은 유쾌한 공명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면?
김나희 대외적으로는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이라 소개한다. 화면이나 스피커로 송출되는 미디어를 만드는데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 작가들이 모이면 흔히 쓰는 ‘컬렉티브’라는 단어는 좀 오그라들더라. 미술 작가로 비치기보다 정말 일종의 ‘업체’처럼 보이고 싶어 ‘프로덕션’이라는 명칭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건 대외용일 뿐이다. 이 일을 지속하는 진짜 이유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싶어서다. 우리를 정의하는 문장은 결국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핑계’ 아닐까?
우리가 만들어진 결정적 순간은 언제였나?
오천석 대학 시절 축제를 기획하는 동아리에서 만났다. 황휘가 만든 포스터를 보고 내가 ‘경성제국대 스타일 같다’며 혹평을 던졌을 만큼 서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웃음). 그러다 10년 전, 셋이 모여 막연하게 창작 활동을 시작하며 만든 가상의 웹페이지 ‘I.WILL.SEOUL.YOU’가 분기점이 됐다. 이 작업이 뜻하지 않게 여러 전시에 초대받으면서 팀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본래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함께 나누는 핵심적인 ‘양분’은 무엇인가?
황휘 개소리의 배설?(웃음) 만나면 수시로 골 때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아무 말들이 무한 반사되며 끊임없이 공명하다가 결국 작업이 된다. 우리는 이걸 ‘야핑(Yapping)’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강아지들이 시끄럽게 짖듯 아무 말이나 던져보는 거다. 요즘은 웬만하면 레퍼런스가 있고 소위 말하는 ‘보법’이 다 읽히는 시대 아닌가. 그런 뻔한 기대를 배반하고 튀어나오는, 일상에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지독한 대화들이 우리의 진짜 양분이다.
무엇을 ‘식구’라 부를 수 있을까?
김나희 식사 한 끼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집단. 실제 가족만 봐도 그렇다. 각자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 저녁식사 자리를 만드는 건 결국 의지의 문제다. 서로의 식성을 살피고, 함께 앉기 위해 기꺼이 ‘돌봄 노동’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그런 마음이 정기적으로 발현되는 관계를 식구라 부르고 싶다.
식구라도 영원할 순 없다. 우리가 해산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황휘 더 이상 ‘골 때리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때. 할 말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 그 해방감이 사라지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이 느슨하고도 단단한 연대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확장됐다고 느끼나?
오천석 스스로를 예술가로 정체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종의 각성이 시작된 셈인데, 업체라는 판이 깔려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다.
황휘 개인 활동으로 혼자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시야가 지독하게 좁아진다. 앨범을 내고 MV를 만드는 식의 정형화된 틀에 갇히기 쉽다. 반면 우리가 함께하는 작업은 모든 것이 열려 있다. 우리 손에 모든 권한이 달려 있다는 감각이 ‘이래도 되지’라는 확신을 준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가능성이 훨씬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주로 스크린에 송출되는 작업을 해오다 최근 문예지를 펴내며 종이 매체로 영토를 넓혔다. 셋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보인다.
황휘 우리가 영상 작가처럼 보여도 작업의 본질은 늘 텍스트에 있었다. 둘이 쓴 대본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그 글 자체로 이미 완결된 재미를 느낄 때가 많았다. ‘이걸 굳이 영상으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언젠가는 작업이 책의 형태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는 그 시점이 되어 세상에 나온 물건이다.
오천석 곧 결성 10년 차다. 그동안 ‘업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셋을 갈아 넣거나, 수많은 스태프의 노력을 하나의 결과물로 집약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제는 그 총합 이전에 황휘, 김나희, 오천석이라는 개별자의 정체성을 드러낼 전환점이 필요하다 느꼈다. 업체라는 지반 위에서 각자가 독립적인 작업자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진(Zine)의 형태를 떠올렸다. 시각 예술가를 넘어 문학가로서의 작업 세계를 영유하고 싶다는 사적인 욕심과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맞물린 결과 같다.
새로운 식구원을 모집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오천석 인성, 중요하다(웃음). 지금 함께하는 식구들의 공통점도 지나칠 정도로 선하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무해하면서도 자기 일에는 지독하게 진지한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들은 이해 못할 이상한 구석이 꼭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Tacostand 타코스탠드
‘진짜 멕시코 타코는 어떤 맛일까?’ 이 질문 하나로 멕시코행 티켓을 끊었다. 정처 없이 여러 도시를 유랑했고, 귀국 후엔 트럭 하나로 전국 바닥을 훑었다. 그리고 2022년 10월, 해방촌에 닻을 내린 ‘타코스탠드’는 이제 주말이면 긴 웨이팅을 감수해야 할 타코 성지가 됐다. 이곳을 단순한 식당으로 정의하는 건 게으른 발상이다. 정식 공고 대신 인연을 타고 모인 이들은 결부터 다르다. 다 같이 멕시코로 트립을 떠나고, 매해 트럭을 끌고 뮤직 페스티벌의 중심부로 향한다. 슈프림의 방학 문화를 보며 ‘졸라 멋있다’고 감탄하고 그 정서를 주저 없이 이식한다. 고루한 요식업 문화를 총대 메고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사명감 대신, 미친 척하고 판을 벌였을 뿐이다. 일터보다 놀이터가 체질인 이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인 셈이다. 내향인은 입구에서부터 기함할 ENFP 집단, 대표 차규헌을 필두로 김유지, 이종민 등이 뭉친 이 흥미로운 결속 안에서, 타코는 함께 놀고 먹기 위해 선택한 가장 확실한 핑계다.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
차규헌 ‘스트리트’다. 말 그대로 길바닥에서 시작했으니까. 타코라는 음식 자체가 길 위에서 태어났고, 우리 멤버 개개인의 기질도 비슷하다. 어디에 내놔도 금세 현장에 스며드는 유연함과 생존력을 가졌달까. 결국 우리의 정체성은 그 투박하고도 거침없는 길바닥의 바이브에 있다.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진 ‘결정적 순간’이 있었나?
차규헌 그런 게 없다. 정식 공고를 내서 모인 팀이 아니다. 10년지기 동료부터 타코 트럭을 운영하던 시절 손님으로 왔다 일하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낸 친구, 멀쩡한 직장 관두고 편지 한 통 써서 찾아온 형님까지. 어쩌다 보니 주방에 모여 같이 타코를 굽고 있더라.
김유지 같이 갈지 말지 고민할 때 슬쩍 ‘좋아하는 음악 5곡’을 묻는다. 결국 중요한 건 비슷한 결이니까. 우리가 보는 건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빛이다. 처음봐도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눈 녹듯 스며드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모인 식구들이 딱 그렇다.
무엇을 ‘식구’라 부를 수 있을까?
이종민 내가 욕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하는 꼴은 못 보는 사이. 차라리 내 손으로 까고 말지, 남이 건드리는 건 용서가 안 된다. 내가 욕하고, 내가 용서하고, 내가 용서받는 게 속 편하다.
김유지 다 같이 배고파야 하는 사이. 어느 정도의 절실함이 공유되어야 마음 모으기가 쉽다.

명절이나 제사처럼, 결속을 다지기 위해 주기적으로 챙기는 이벤트가 있나?
차규헌 원래는 복날에 문 닫고 다 같이 계곡 가서 닭 한마리에 술 한잔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 3년 동안은 매해 뮤직 페스티벌 ‘더 그레이트풀 캠프’에 출석했다. 우리끼리는 이때를 명절이라 부른다. 타코 트럭 끌고 다같이 떠나는데, 사실 일하러 간다기보다 놀러 간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친구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실컷 놀고, 돈도 벌고, 동기부여까지 챙겨 오는 거다. 일종의 요란한 재충전이다.
식구라도 영원할 순 없다. 우리가 해산한다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김유지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거나, 다 같이 양로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때? 그전엔 해산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차규헌 유일하게 딱 하나 있다. 내가 만일 바람을 피운다면. 그럴 경우 와이프가 가게를 없애버리고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고 선포한 적이 있다(웃음).
이 느슨하고도 단단한 연대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확장됐다고 느끼나?
차규헌 모험심이 한층 강해졌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내 안의 그릇이 조금 더 넓고 깊어진 기분이다. 처음엔 음식점이 그저 ‘멋있고 맛있으면 장땡’인 줄 알았다. 하지만 멋은 찰나고 맛은 영원해야 할 기본값일 뿐이다. 지금은 이 일을 일종의 ‘종합 엔터테인먼트’라고 정의한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사람들의 오감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고도의 집합체다. 더 많은 것을 흡수하고 기꺼이 나눠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단순히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을 만드는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멕시칸 푸드 중 우리를 가장 닮은 음식이 있다면?
이종민 당연히 타코다. 정해진 룰도 없고, 넣고 싶은 걸 마음대로 넣어 먹을 수 있으니까. 타코라는 음식 자체가 워낙 다채로운 색을 품고 있다. 우리처럼.
5년 혹은 10년 뒤,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차규헌 솔직히 먼 미래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떠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 지금 머릿속에 있는 10년 뒤의 풍경은 딱 하나다. 크루들 월급 더 많이 주고, 관계의 농도는 더 짙어지는 것. 술자리에서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야, 우리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하자.” 그냥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편하고 멋있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놀이’를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그게 전부다.
Mirae Building 미래 빌딩
근사한 붉은 벽돌의 집, 한 지붕 아래 세 식구. 1960년대 국무총리 관저로 쓰이며 정치의 중심에 있던 장충동의 이 저택은,
산업화를 거치며 50여 개 업체가 밀집한 쪽방 사무실촌으로 변했다. 영광과 쇠락이 겹겹이 남은 이 공간이, 서울에서 가장 기민한 창작자들의 거점 ‘미래빌딩’으로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때는 2023년이다. 패션 브랜드 ‘로우클래식’, 프레이그런스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수집미학’, 레스토랑 ‘와일드덕 칸틴’까지. 서로 다른 필드의 세 팀이 한 지붕을 공유한다. 각자의 정체성은 분명하지만, ‘미래빌딩’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 순간 작동 방식은 달라진다. 단일 브랜드로서는 정밀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함께일 때는 기꺼이 실험을 택하는 식이다. 수시로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시끌벅적한 협업까지, 미래빌딩은 그렇게 움직인다. 로우클래식의 대표 이명신과 이사 박진선은 이를 두고 실험적인 공동 거주라 말한다.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명신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여기 모인 로우클래식, 수집미학, 와일드덕 칸틴 구성원들은 ‘회사원’이라기보다 욕망과 재미에 반응하는 쪽에 가깝다. 잠을 줄여가며 일에 빠지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빌딩 자체가 뜨겁다. 사실 미래빌딩은 서울 한복판의 사적인 ‘커뮤니티 센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칠아웃’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잠깐 머물다 가는 동네 광장 같은 곳. 최근 1층 라운지를 다시 비운 것도 그 때문이다. 구인 공고나 동네 사람을 찾는 보드를 세워두고, 어린이날엔 스티커와 크레파스를 내놓는다. 동네 어르신들까지 섞여 대화하는 풍경을 보며, 누군가는 장충동 대감집 마님 같다고 하더라(웃음).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의 ‘결’ 이 있다면?
박진선 핸드크래프트 정신. 다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공산품의 매끈함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로우클래식의 옷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텍스처, 수집미학이 추구하는 오래 수집되고 보강되는 제품의 가치, 그리고 와일드덕 칸틴의 사람 냄새 나는 공간감이 그 증거다. 시간과 손을 거치며 천천히 축적되는 멋을 믿는다.

식구라도 영원할 순 없다. 우리가 해산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명신 ‘억지로’라는 기분이 드는 순간. 다음엔 또 뭘 해야 하느냐고 서로를 독촉하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끝낼 것 같다. 지금은 다들 1년 치 계획을 벌써 다 산 것처럼 아이디어를 쏟아내느라 서로를 진정시키기 바쁘지만, 누군가 상대에게 ‘이거 네 일 아니냐’며 책임을 묻는다면 그게 신호다. 그때가 오면 미련 없이 말할 거다. 우리 충분히 찬란하고 재미있었으니 여기까지만 하자고.
이 느슨하고도 단단한 연대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확장됐다고 느끼나?
이명신 예전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일 외의 세계에는 거의 닫혀 있었다. 출장지에서 전시 몇 개 보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서울 안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계속 추적한다. 공간을 자주 바꾸면서 다양한 창작자들과 협업했고, 그 과정에서 얻는 자극이 꽤 직접적이다. 일이라는 트랙 바깥에서, 가장 기민한 취향들이 내 세계에 계속 들어온다.

새로운 식구원을 모집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박진선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결국 ‘사적인 결’이 맞느냐를 본다. 여기서 사적이라는 건 단순히 친목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처음 만나도 취향이 맞물리는 사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개인의 영역이 바로 연결되는 사람. 결국 같은 밀도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느냐가 기준이다.
때로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공유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
이명신 이미 식구 이상이다. 누군가는 왜 둘째를 가지지 않느냐고 묻지만, 나는 여기서 이미 또 다른 식구를 만난 기분이다.
Seoul Reading Room 서울리딩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도서관’과 개인의 내밀한 취향이 스며든 ‘사적인 서재’ 사이, 그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 기묘한 중간 지대. 2016년 ‘서울리딩룸’은 그 틈 위에 세워졌다. 독립 큐레이터 박재용이 설립하고 이하연, 박세진, 승윤주, 서새롬 등이 운영하는 이곳의 외피는 ‘예술 이론 서가’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은 ‘커뮤니티’에 가깝다. 배우고, 모이고, 기록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이곳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예술 서적을 싣고 공간을 옮겨 다니며 독서 경험을 제안하는 ‘모바일 라이브러리’, 누구나 참여 가능한 ‘온라인 독서실’은 이들의 주요한 실천이다. 신촌에 오피스를 두고 격주로 모이지만, 때로는 온라인이라는 비물리적 공간에서 더 기민하고 유연하게 작동한다. 또한 출판사 ‘버드콜’, 교육 플랫폼 ‘큐레이팅 스쿨 서울’과 연대하며 상황에 따라 조직의 밀도를 조정하기도 한다. 서울리딩룸을 축으로 확장된 이 관계망은 서로를 경유하며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기능적 식구의 형태다. 서로를 가르치지 않는 방식으로, 이들은 함께 배운다.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면?
이하연 공공 도서관과 사적인 서재 사이의 빈틈을 채우는 자리. 책과 사람, 그리고 연결이 필요한 모두를 환영하는 곳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빈틈’이 되기를 지향한다.
박재용 계속해서 확장 중인 개념. 서울리딩룸, 버드콜, 큐레이팅 서울 스쿨은 구성원과 역할이 수시로 교차하며 마치 확장 가족처럼 움직인다. 물리적 거점에 묶이지 않는 ‘모바일 라이브러리’도 전개하기에, 이제는 특정한 공간의 개념에 한치도 한정되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만들어진 결정적 순간은 언제였나?
이하연 재미있는 일을 알음알음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동료가 되어 있었다. 돌이키면, 서로의 인생 타임라인이 엮이며 ‘밥 친구, 커피 친구’가 되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점이 시작이었다.

본래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함께 나누는 핵심적인 ‘양분’은 무엇인가?
박재용 넓은 곳을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은근한 연대감.
이하연 서로의 선택을 통해 배우는 삶의 감각이다. 동료들의 선택을 지켜보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매번 곱씹는다. 동료를 거울삼아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그 과정 자체가 양분 같다.
서로 지키는 룰이 있나? 명시된 것이든 암묵적인 것이든.
박재용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려면 이보다 중요한 규칙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하연 특별히 없다. 굳이 꼽자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정도다. 우리는 모두 자기 영역이 단단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쓴 문장을 읽었는데, 우리를 완벽히 설명하는 구절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영역을 명확히 정했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었고, 자신에 대한 환상은 더욱 없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시대다. 우리의 결속 방식이 지금 같은 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하나?
이하연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박재용 저렇게 살아도 재미나게 잘 굴러가는구나!

매해 프리즈 서울 기간이면 서울리딩룸의 서가를 활짝 열어 행사를 개최된다. 이른바 ‘Who Wants to Hang Out in Seoul?’ 술과 디제이로 시끌벅적하고, 초대장과 입장료가 필요한 보통의 배타적 파티와 달리, 누구나 자유롭게 모여 조용히 책을 읽는 자리다. 이 대안적인 행사는 서울리딩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하연 아트위크 기간, 누군가는 파티보다 고요히 책장을 넘기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이들을 위해 빠져있던 선택지 하나를 채워 넣은 것에 가깝다.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느슨한 초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올해 역시 열릴지도?
박재용 예술과 텍스트를 사랑하는 이들이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법이다. 실제 화려한 오프닝과 파티장을 벗어나 먼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진지하게 미술 서적을 읽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5년 혹은 10년 뒤,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박재용 어쩌면 지금보다 더 느슨하고 넓게 이어져 있을거다. 그때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9ood 8ellow 굿펠로우
좋은 친구들, 이름하여 ‘굿펠로우’는 1998년생 동갑내기 모델 조정흠, 신혁, 고병민이 결성한 러닝 크루다. 접점 없던 이들을 묶은 건 한남동 카페 ‘33아파트먼트’의 커피, 그리고 러닝이라는 공통분모다. 일상과 운동의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 세 남자의 가뿐한 보폭은 작년 6월부터 시작됐다.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결성 직후 뉴발란스와 제주 러닝 트립을 떠났고, 매든과 협업해 러닝 어패럴 라인을 선보였다. 기록 단축보다 ‘느린 달리기’에 집중하는 이들은 경의선 숲길을 따라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세션을 열며 그들만의 슬로 라이프를 공유하기도 한다. 오합지졸로 뛰다가도 어느새 군대 제식처럼 발이 맞춰질 때, 이들은 동갑내기 특유의 격 없는 유대감을 확인한다. 친구와 함께하면 끝이 안 좋다는 우려는 이들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 서로의 거리감을 지워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나란히 뛰는 것이라고, 이 식구들은 믿는다.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진 ‘결정적 순간’이 있었나?
조정흠 모델 활동 시기엔 접점이 없었다. 시작은 한남동의 카페 ‘33아파트먼트’였다. 바리스타였던 신혁과 단골인 내가 우연히 친구가 됐고, 대화 끝에 러닝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았다. ‘커피만 마실 게 아니라, 같이 뛰어볼까?’ 그렇게 몇 번 같이 뛰다 보니 크루가 되어 있더라. 대단한 결심은 없었다. 지금도 우리의 러닝 루트는 종착지인 카페가 어디냐에 따라 결정된다.
신혁 친구끼리 뭘 하면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안 그럴 자신이 있었다. ‘안 할 이유가 없다.’ 이게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식적, 비공식적 역할 모두.
조정흠 업무적인 구분은 없다. 기획은 늘 셋이서 한다. 다만 비공식적인 ‘비주얼 롤’은 확실하다. 혁은 ‘에겐’, 병민은 ‘테토’, 나는 그 중간 비주얼이다(웃음). 그래서 혁은 채도가 높은 옷을 담당하고, 싱글렛은 병민이 입는다. 우리 중 팔이 가장 두껍다!
새로운 식구원을 모집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조정흠 1998년생 동갑내기일 것. 한때 북 토크 모임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공감대 없는 관계를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게 얼마나 피로한지 그때 알았다. 동갑이라는 키워드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단숨에 지워준다.

이 느슨하고도 단단한 연대 안에서,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확장됐다고 느끼나?
신혁 홀로 모델 활동을 할 땐 철저히 결과 중심이었다. 촬영하고, 결과물을 내고, 돈을 받는 식의 성취가 전부였다는 소리다. 지금은 다르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따내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결과물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혼자일 땐 몰랐던 즐거움이다.
무엇을 ‘식구’라 부를 수 있을까?
고병민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전제. 살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갈등도 빚겠지만, 결국 흩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식구의 조건 아닐까?
5년 혹은 10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조정흠 우리의 베이스캠프였던 한남동 ‘33아파트먼트’ 자리를 다시 얻는 것. 지금은 공간이 이전했지만, 나중에 크루로든 개인으로든 성공해서 그 공간을 다시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근사할 것 같다. 시작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니까.
- 포토그래퍼
- 박현경, 임유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