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현대 사이를 오가는 발렌티노의 2026 F/W

이예지

간섭자

 고전과 현대 사이 간극에서 간섭자를 자처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로마에서 열린 발렌티노 2026 F/W ‘인터페렌체(Interference)’ 쇼를 통해 보여준 것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하우스의 지휘봉을 잡은 지 약 2년. 그는 이번 쇼를 위해 브랜드의 발상지이자 자신의 고향인 로마를 선택했다. 이는 파리를 대신하는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메종 발렌티노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로마적 정체성’을 21세기의 언어로 재번역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미켈레는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구축한 미학적 세계에 자신은 ‘방해물’과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발렌티노는 그 체계를 완벽하게 만들었지만, 저는 항상 삐뚤어져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컬렉션의 이름이 이탈리아어로 ‘간섭(Interference)’인 이유이며, 미켈레는 연상적이든, 시각적이든, 감정적이든 간에 발렌티노라는 견고한 성에 어긋남과 긴장감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것, 고전적 우아함과 미켈레가 가진 맥시멀리즘, 퀴어 미학. 이런 반대의 것들을 서로 교차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새로운 미학과 미묘한 파동, 긴장감을 유발한 것이다.

이번 쇼의 무대가 된 팔라초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는 17세기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건축물이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같은 거장들의 손길이 닿은 이 궁전은 권위와 예술성이 결합된 상징적 장소로 미켈레는 이 엄숙한 공간의 바닥을 잔디로 덮어버리는 파격을 감행했다. 천장의 화려한 프레스코화 ‘신의 섭리의 승리’를 올려다보는 것은 초현실적 경험이었다. 인공물(건축)과 자연(잔디), 과거(박물관)와 현재(런웨이)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섞이는 ‘긍정적 간섭’이 시각화되어 관객들은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쇼의 시작을 기다렸다. 프런트로에는 한국의 고현 정부터 귀네스 팰트로, 타일라, 릴리 앨런 등 전 세계에서 날아온 셀러브리티가 자리했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 캐릭터들이 오가며 교차하는 모습 또한 간섭자가 만들어낸 장면 같았다. 

강렬했던 피날레부터 언급하자면, 이 쇼는 어깨에서 엉덩뼈까지 이어지는 V자형 컷아웃이 있는 긴 빨간 드레스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고인이 된 창립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고된 운동 후의 한숨과도 같았다. 미켈레는 쇼 직후 인터뷰에서 “빨간색은 너무나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빨간색은 다루기 매우 어려운 색이죠. 발렌티노를 향한 소름 돋는 표지판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변칙적이고 다채로운 취향이 얼마나 강박적이고 빈번하게 드러나는지는 마지막 의상 이전의 디자인에서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볼륨감 있고 둥근 어깨선은 1980년대 후반의 과도함을 연상시켰고, 미켈레는 그 어깨선에 자신이 창조한 발렌티노 여인상을 여러 개 매달았으며, 때로는 나비 모양 장식으로 포인트를 주어 그가 탐구하던 변태를 암시했다.

리본 벨트는 어깨 부분이 넓게 퍼지는 긴 모피 코트나 크롭트 가죽 랩코트를 강조했다. 새틴 새시 벨트로 컬러 블록 주름 튜닉을 가로지르거나, 레이스 밑단 데님 팬츠에 록스터드 펌프스를 매치했다. 양면 태피터 소재의 휘핑 트위스트는 깊은 브이넥 아래로 엉덩이에서 소용돌이치듯 흘러내렸는데, 이번에는 앞쪽에 브이넥이 레이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검은색 테두리가 있는 핑크와 아이보리 색상의 그래픽적인 지그재그 패턴이 돋보이는 스팽글 장식의 긴소매 재킷에서는 미켈레가 추구하는 강렬한 인상이 엿보였다.

남성복은 여성복만큼 다양한 스타일이 섞여 있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은 여전했다. 다섯 번째 룩의 더블브레스트 회색 재킷은 앞에서 보면 거의 평범해 보였지만, 뒤에서 보면 조화를 깨뜨리는 듯한 드레이핑이 마치 프로펠러를 통과하는 물처럼 소용돌이쳤다. 미켈레는 “저는 항상 두 발을 서로 다른 곳에 딛고 서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붙잡아야 할 때도 있고, 놓아줘야 할 때도 있죠.” 통 넓은 바지는 의도적으로 뒤죽박죽으로 주름을 잡아 형태를 갖췄는데, 그 모호함이 핵심인 듯했다. 마치 성직자복을 연상시키는 풍성한 드레이프와 주름은 바르베리니 궁전 천장에 그려진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의복을 떠올리게 했다.

로마 신화의 여신에서 이름을 딴 판테아 백은 클래식한 프레임 백 구조에 미켈레 특유의 화려한 버클 장식이 더해졌다. 매끈한 가죽부터 이그조틱 가죽까지 다양한 소재로 변주되며 쇼의 핵심 아이템으로 거듭났다. 한때 발렌티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락스터드 또한 미켈레의 손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전보다 작고 정교해진 스터드들은 슈즈의 힐이나 핸드백의 모서리가 아닌, 의상의 칼라 부분이나 장갑의 손목 부분에 세밀하게 박혀 은은한 반짝임을 선사했다.

미켈레는(그는 화려한 의복만큼이나 수사적인 표현을 즐기는데) 자신의 노트 중 하나에서 이번 컬렉션이 “질서를 찬양하는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이는 고전적인 흥망성쇠를 의미한다. 수많은 예술적, 건축적 역사에 둘러싸여, 도시 패션 역사의 거장 발렌티노의 뒤를 잇는 책임을 맡은 미켈레는 발렌티노를 과거에도, 현재에도 영원히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류를 찾아내고 이질적으로 개입한 특유의 작업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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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N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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