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ME?
한 해 동안 제작되는 드라마와 영화 편 수가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눈길 가는 새로운 얼굴은 늘 곳곳에 존재한다. 2025년, 당신은 어느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 배우들을 보았을 것이다. 2026년이 더욱 기대되는 그들을 <더블유> 카메라 앞에서 만났다. 다분한 재능과 매력을 바탕으로 성장 서사를 써 나아갈 아홉 명의 이름. 좋은 배우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시작하는 청춘의 흥미로운 면면이 여기에 있다.
김주미

2002년생
@juu._.me
MBC <바니와 오빠들>(2025),
U+ TV 오리지널 <미래의 미래>(2025)
김주미가 촬영장에 들어서고 난 뒤, 첫눈을 맞은 세상은 순식간에 희고 고요해졌다. 소복하게 쌓인 새하얀 눈 위로 발자국을 찍듯, 데뷔 9개월 차 김주미도 천천히 조금씩 발자취를 새기는 중이다. 올해 출연한 두 작품은 김주미라는 새 얼굴이 청춘을 얼마나 다각도로 비출 수 있는지 증명한 셈이었다. 특유의 말간 얼굴이 고스란히 담긴 데뷔작 <바니와 오빠들>에서는 사랑 앞에서 당찬 대학생 ‘오유리’를 연기했다. 그런가 하면 11월 공개된 <미래의 미래>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갑’의 위치에 있던 ‘최세연’으로 분해, 청춘의 양극단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처럼 밝고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아직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 얼굴을 꺼내기 위해, 다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나_ 어릴 적부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일곱 살 때로 기억하는데, 부모님과 TV를 볼 때면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따라 했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건 <내 딸, 금사월>. 그 드라마에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저를 보고 엄마, 아빠가 웃으시는 모습이 큰 행복이었어요.
대구에서 서울로_ 연기하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건 스물한 살 때였어요. 고향인 대구에서 상경하려면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니, 대학교 합격증으로 제 의지를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죠. 1년 동안 바짝 입시를 준비하고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에 입학했어요. 사실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라, 처음에 연기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릴 때도 “뭐든 해봐라”라며 믿어주셨지만요.
전화번호 ’02-0000-0000’_ 첫 오디션은 사극이었어요. 그 순간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간절함’. 처음이다 보니 너무 떨렸고, 비교할 만한 기준이 없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오디션 합격 전화인가?’ 하고 다 받은 기억이 나요. 첫 합격 전화가 <바니와 오빠들>이었죠. 현장에서 감독님이 정말 유쾌하셔서 덕분에 제가 긴장감을 덜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오디션을 즐기면서 보고 나왔는데, 감독님이 ‘또 봐요’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요.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조급해하던 때라, 그 말이 무엇보다 더 큰 위로로 와닿았어요.
<바니와 오빠들>과 <미래의 미래>_ <바니와 오빠들>에서 맡은 유리를 떠올리며 중심으로 가져간 생각은 ‘나답게 하자’예요.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만 향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 한켠에서 질투가 싹트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제 시선을 출발점으로 두었어요. 정작 저는 고백해본 적도 없고, 혼자 몰래 좋아하거나 두근대는 스타일이긴 하지만요. <미래의 미래>의 세연이는 접근법이 조금 달랐어요.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인물이라, 가까워질 수 있는 접점이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그러기 위해 세연이의 욕심이 무엇인지부터 파고들었죠. 결핍이나 욕심, 꼭 이루어야만 하는 이유나 상황을 들여다보려고 했어요.


신승훈의 ‘She Was’_ 신승훈 선배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문소리 선배님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어요. 뮤비는 대사 없이 한 장면을 꾸려내잖아요. 그래서 어떤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할 때 무슨 생각을 하고, 그때 눈빛은 어떤지 많이 고민해보고 현장에 갔어요. 촬영할 때 신승훈 선배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는데요. <바니와 오빠들>을 보고 저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고 다정한 말씀을 남겨주셨어요. 저는 지금 촬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전화까지 해주시니 더 잘하고 싶었죠! 콘서트에도 초대해주셔서 엄마랑 데이트도 하고 왔어요.
반려견 ‘단추’_ 하얀 얼굴에 눈, 코, 입이 단추처럼 콕콕 박혀서 지은 이름이에요. 성격은 정말 순둥해요. 처음 만난 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배를 홀라당 까고 잘 정도였으니까요. 공부해보니 아기 때 스킨십이 잦으면 분리불안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천사 같은 단추를 앞에 두고 참느라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음악 듣는 법_ 그날 듣는 음악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결정돼요. 앱은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을 사용하고요. ‘기분 좋을 때 듣는 음악’, ‘슬플 때 듣는 음악’ 이렇게 무드를 검색해서 듣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플레이리스트 아래 적힌 댓글 읽는 것도 좋아해요. 최근에 감성적인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더니, 이별 경험 같은 사연들이 적혀 있더라고요.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이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런 글을 썼나’ 감탄하면서 본 기억이 나요.

알고 보니 여행 러버_ <바니와 오빠들>을 끝내고 일본 후쿠오카를, <미래의 미래> 촬영을 마치고는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어요. 이전에 다녀온 여행들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지 않아서, 저는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자유롭게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큰 힐링이 됐어요. 베트남은 스튜어디스인 친구가 다낭에 오래 머문다고 해서 다녀왔고요. 거기는 일본이랑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정겨운 시끌벅적함이 좋고, 다들 정이 많고, 무엇보다 과일이 다 맛있었어요.
닮고 싶은 배우, 구교환_ 사실 저는 겁도 많고 저에 대해서 완전히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저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에 놓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색이 분명한 구교환 선배님을 본받고 싶어요. 그간 선배님이 보여주신 것들에서는 늘 강한 확신이 느껴지더라고요.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기록하고 비워내기_ 유독 일기를 열심히 쓴 한 해였어요. 혼자 있으면 자꾸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머릿속에 떠다니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기록하고 나면 후련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효과가 있더라고요. 2025년에 다져온 생각을 2026년에는 많이 표출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쓰고 잘 챙겨야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김지오

2001년생
@_ziokim
영화 <퍼스트 라이드>(2025),
웹드라마 <하트 스테인>(2025)
화보 촬영 중 김지오가 긴 앞머리를 내려뜨리고 흩날리는 비눗방울 사이로 두 눈을 슬며시 뜰 때, 여기저기서 스태들프의 탄성이 쏟아졌다. 187cm라는 장신, 눈 밑의 점이 인상적인 그는 2025년 갓 데뷔한 신예다. 퀴어 드라마 <하트 스테인>에서 담임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내성적인 소년을 연기하며 풋풋하고 애틋한 첫사랑의 설렘을 안겼고, 10월 29일 개봉한 영화 <퍼스트 라이드>에서는 강하늘, 김영광, 차은우 등 선배 남자 배우들과 팽팽히 대치하는 역할을 해내며 짧지만 강렬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웨스 앤더슨과 윤가은 감독을 좋아하는 섬세한 취향과, 자신을 아껴주는 이들에게 직접 구운 화덕 피자를 대접하고 싶다는 따끈따끈한 마음을 가진 청년. 배우 김지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눈 밑의 점_ 제 신체에서 네 번째로 좋아하는 부분이에요(웃음). 회사 대표님께서도 이 점만 제외하고는 다 빼도 좋다고 하셨죠. 눈물이 많진 않냐고요? 어릴 때는 그랬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어깨인데,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았는데도 뼈대가 있어요. 키는 지금보다 좀 더 커도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이만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INFP_ 데뷔작인 <하트 스테인>은 아주 뜻깊은 작품이에요. 제가 오디션장에 들어선 순간, 감독님이 저를 보고 ‘우현이다’ 싶었다고 해요. 담임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우현’의 설정이 키가 크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절 발견하고 무척 기쁘셨대요. 인물과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 우현을 많이 들여다봤는데, 정말 저와 닮은 점이 많더라고요. 일단 상당한 내향인이라는 점에서 그랬죠. 전 전형적인 INFP거든요(웃음). 그래도 여러 동년배 배우들과 함께한 작품이었고, 고흥에서 2주간 합숙 촬영을 하는 동안 배우끼리 많이 친해졌어요. 지금도 서로 안부를 묻곤 합니다.
어린 시절_ 지금은 187cm에 조금 강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좀 소심하고 줏대 없는 아이였달까요(웃음). 중학생 때 키가 확 자랐고, 그 후에는 예고에 진학해 강단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가려고 애쓴 기억이 납니다.
가평에서의 우연_ 스무 살 때부터 연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엔 확신이 없었어요. 스물두 살에 군대에 가게 되었고, 입대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가평 여행을 떠났죠.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곽시양 배우님을 만난 거예요. 술 한 잔 나누면서 저와 대화해보더니, 절 좋게 보셨는지 연기해보면 좋겠다고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께 바로 전화를 거셨어요. 대표님께서 군대 다녀오고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제대 후 정말 미팅을 했고, 바로 이렇게 됐습니다(웃음).

첫 영화_ <퍼스트 라이드>는 워낙 멋진 선배들과 함께하는 현장이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게다가 선배님들과 맞붙는 센 역할이다 보니, 눈에 힘 딱 주고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죠. 그런데 촬영 현장에 들어가니 막상 분위기가 너무 재미있고 다들 많이 도와주셔서 무리 없이 촬영했습니다. 선배님들이 떨어져 있는 소품도 이용하면서 열정적으로 연기하시는데, 많이 배웠어요. 촬영 후에는 ‘고생했다’고 한분 한분 제 손을 잡아주셔서 기분 좋게 마무리했죠. 남대중 감독님이 액션이 아주 좋았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문라이즈 킹덤>_ 웨스 앤더슨 감독을 좋아해요. 그의 작품들은 미장센으로 눈을 홀리고, 서사로는 마음을 울리죠. 문제아와 외톨이가 만나 그들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는 이 동화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저 또한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따듯하게 다독여주는 듯한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윤가은 감독_ 영화 <우리들>, <우리집>을 재미있게 봐서 <세계의 주인> 역시 기대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연기를 보면서 저도 배워요. 상업, 독립 가리지 않고 어떤 작품이든 도전하고 싶고, 윤가은 감독님과는 꼭 한 번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피자와 파스타_ 요리를 좋아해요.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자취하는데,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해 먹는 편이에요. 이탈리아 음식을 워낙 좋아해서 군대 가기 전 이탈리안 피자 만드는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죠. 그 학원이 강원도에 있었는데 서울에서 오가며 배울 정도로 진심이었어요. 집에는 화덕이 없어서 좀 아쉽지만요. 제일 좋아하는 건 마르게리타 피자. 파스타 중에서는 알리오 올리오를 좋아해요. 뭐든 기본이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회사 분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저녁을 꼭 대접하고 싶네요.
잘하고 싶은 것_ 제가 심한 몸치라, 요가나 현대무용을 배워보고 싶어요. 자기 몸을 잘 알고 잘 써야 배우로서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신년에 여유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탐나는 배역_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변요한 선배님이 연기하신 ‘김희성’ 같은 인물이 멋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착한 놈, 혹은 나쁜 놈이라고 단정 짓기엔 애매한 복합적인 인물. 그렇게 심도 있고 입체감 있어서 스스로 분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사이코패스 역할도 도전해보고 싶고요. 최애 영화는 <문라이즈 킹덤>이지만, <쓰리 빌보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하드보일드한 장르물도 좋아하거든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은 인물처럼 무시무시한 악역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배우로서 정말 영광일 것 같습니다.
차기작_ 2025년에 정말 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하지만 두드렸더니 열린 작품도 있었죠. 아직 밝힐 순 없지만, 2026년 상반기에 두 작품에 들어갑니다.
새해 소망_ 신년엔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가 되길 소망해요. 연기는 참 어려운 것이거든요. 계속해서 넘어야 할 벽이 있고, 부침이 있죠.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래도 제가 더 치열하게 열심히 하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피어오르더라고요. 그것을 꼭 붙잡고 있어요. 나 자신을 믿어야죠.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갈 거예요.
남기고 싶은 첫인상_ “처음 보는 배우인데, 연기가 나쁘지 않네?”
문유강

1996년생
@moonyoukang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2025),
TV조선 <다음생은 없으니까>(2025),
영화 <로비>(2025) 등
2025년의 문유강은 유독 현실과 밀착한 인물을 그려내는 데 강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보여준 ‘부오성’이 대표적이다. 가족을 떠받치느라 자기 삶을 미루는 엄마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아들, 정신 못 차리는 동생에게 패악스럽게 고함치면서도 그 뒤편에서 피로와 책임 느끼는 오빠. 생활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의 연기는T V조선 <다음 생은 없으니까>에서도 이어졌다. 잘나가는 여자친구의 삶에 몸을 기대듯 얹혀 있는 연하남 ‘엄종도’는 분명 어디선가 스쳐 봤을 법한 인물이었다. 2019년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데뷔해 여러 무대에서 잔뼈를 다져온 문유강은 요즘 시대 ‘본질’에 닿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드문 젊은 배우다. 사람마다 가진 고유성을 연기의 재료로 삼고, 잘 듣고 잘 말하는 기본이 연기의 근육이라 믿으며, 연기가 사람에게 남기는 실체를 ‘위로’라 말한다.

그때 그 시절_ 고등학생 시절엔 연극부 활동에 거의 모든 시간을 바쳤어요. 모교인 영동고의 연극부 ‘끼’는 현빈 선배님이 몸담은 극단으로도 유명해요. 청소년 연극제를 앞두고 있을 때면 음악실에서 다 같이 부대끼면서 자정까지 연습하곤 했어요. 원래 정해진 하교 시간이 아니면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는데, 연극부에게만 특별 허가가 주어졌죠. 열심히밖에 몰랐던 그 시절이 참 좋았어요. 하루하루가 소동극에 가까웠지만 우리끼리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에너지로 충만했거든요.
무대가 만든 근육_ 2019년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데뷔한 뒤 여러 뮤지컬 무대에 섰어요. 뮤지컬은 3개월 동안의 약속과도 같아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무대를 올려야 하니, 게으름이 허용되지 않죠. 같은 무대, 같은 인물을 반복적으로 다루니 자연히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고요. 그 과정이 꼭 헬스장에서 근육 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져요. 연극과 뮤지컬을 경험하면서 제 안에서 연기하는 근육, 긴 시간을 버티는 근육이 서서히 키워진 것 같아요. 오랫동안 무대 연기를 해온 경험이 지금의 매체 연기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느껴요.
위로를 주는 존재_ ‘너는 연기를 왜 해?’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늘 한결같았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좋아서.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니 연기를 훨씬 학구적으로 접근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 사이에서 제가 말하는 ‘좋아서’라는 이유는 어딘가 엔진이 약한 동기처럼 여겨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궁금했어요. 나는 연기를 왜 하는 걸까.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중이에요. 지금은 그 이유를 ‘위로’에서 찾아요. ‘당신 괜찮아요’라며 직접적으로 전하는 위로에서 나아가, 설령 제가 작품 안에서 나쁜 역할을 맡아 시청자가 ‘저 인물 진짜 얄밉네’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것 또한 어떤 방식의 위로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보며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을 경험하고, 본방송을 기다리며 한 주를 설레며 보내는 것 모두가 넓은 의미의 위로죠. 결국 누군가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연기자로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부오성’이 남긴 것_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오디션 당시가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처음 준비한 배역은 ‘부오성’이 아니었어요.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본 김원석 감독님께서 그 자리에서 ‘부오성’을 제안하셨죠. 어딘가 주먹 좀 쓸 것 같은 ‘필링’이 있다면서요(웃음). 인물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그림은 ‘동네에서 볼 법한 형’이었어요. 세 번밖에 현장에 나가지 않았지만 배운 게 많아요. 영화보다 드라마 현장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인데, 감독님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디테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셨어요. 인물이 내뱉는 짜증의 농도, 소품의 위치가 타당한지, 동선에 오류가 없는지까지 긴 리허설을 통해 배우에게 납득을 주는 방식이었죠. 한 신을 위해 모두가 끝까지 밀어붙이는 현장은 앞으로도 쉽게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책으로 배우기_ 책을 좋아하고 책에서 많이 배워요. 군 부대에서 4만2195쪽을 읽는 ‘독서 마라톤’ 대회에도 참여했을 정도예요(웃음). 특히 소설을 좋아해요. 어쩌면 제가 하는 일은 대본을 보고 그려지는 것, 혹은 그 이상을 표현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소설은 큰 도움이 돼요. 단순히 텍스트를 보는 능력을 길러줄 뿐 아니라, 저는 알고 있는 단어의 폭만큼 사람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고 믿거든요. 슬픔을 표현해야 할 때도 씁쓸함, 속상함, 허탈함, 서운함 같은 감정을 아울러 세분화할 수 있고요. 소설은 일상을 넘어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감정과 상황까지 다루기 때문에 결국 배우가 가진 상상의 반경을 넓혀준다고 생각해요.
추구하는 연기_ 예전에는 연기에 있어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교육적으로 학습된 방식에 매몰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요즘엔 마냥 독특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배우가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담아낼 때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마다 가진 재료가 다르잖아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살아오면서 체득한 것,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쌓아온 것들처럼요. 그래서 자기만의 재료를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인물을 이해한 후 자연스럽게 내뱉는 연기를 추구하게 된 것 같아요.

나를 설명하는 단어 세 가지_ 무던, 농담, 침착함. 얼핏 함께 놓기 어려운 단어들일 수 있지만 정말 제 모습이에요. 그래서 저도 가끔은 저를 잘 모르겠다고 느껴요(웃음). 장난과 농담을 유난히 좋아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무던하고 침착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많거든요.
훗날의 나_ 위로가 되었던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위로라는 건 일상에서 정말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때로는 제가 하는 일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스크린에서뿐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존재로 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박서경

2009년생
@sky_oungi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2025),
MBN <퍼스트레이디>(2025),
KBS <드라마 스페셜 – 폭염주의보>(2023) 등
서로를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는 동시에, 질투하고 미워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은중과 상연>. 그중 어린 ‘천상연’은 박서경으로부터 피어났다. 뾰족하게 날이 서 있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얼굴로 저마다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박서경은 어느덧 데뷔 8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신인 아닌 신인 배우다. 2020년 JTBC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박민영, 영화 <조제> 속 한지민, KBS <은수 좋은 날>의 이영애까지,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만큼 많은 선배 배우의 아역을 맡은 소녀는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현지유’라는 명찰을 단 <퍼스트레이디>나, 단막극 <폭염주의보>의 발랄한 중학생 ‘한여름’처럼 말이다. 한 작품을 온전히 완성해가는 게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겠다며 해사하게 웃던 열일곱 소녀는 지금 연기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언젠가 크레딧 맨 앞에 이름이 등장할 그 순간이 기대되는 이유다.

첫 화보를 앞두고_ 최근 전라남도 구례로 지방 촬영을 많이 다녔어요. 어제가 오랜만에 찾아온 쉬는 날이었죠. 우선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어요. 많이 자고 일어난 뒤에 <더블유> 인스타그램이랑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화보를 찾아봤어요(웃음). 표정 위주로요. 사실 오늘 써먹을 정신이 없긴 했는데, 그래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열일곱 고등학생_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추상적인 것보다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는 게 좋아서 이과 과목이 재밌어요. 예체능 과목 중에서는 체육을 고를래요. 친구들이랑 농구 하는 게 취미입니다. MBTI요? 저 INTJ예요.
연기와의 첫 만남_ 아홉 살 때, 롯데월드에 놀러 간 날이었어요.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학원의 권유로 체험처럼 연기를 접하게 됐어요.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성격이라 경험 삼아 시작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학원에서 기초를 배우고, 오디션을 보면서 점점 작품에 합류하게 됐죠. 그러던 와중에, 배우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폭염 주의보>를 촬영하던 열다섯 살 때였어요.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을 배경으로 사춘기 소녀 ‘여름’을 연기했죠. 단막극이지만 주연 배우로서 기승전결을 따라 온전한 극을 만드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해준 작품이에요.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지만, 결과물을 볼 때 뿌듯함과 애정이 더 샘솟는 것 같더라고요. 덕분에 ‘앞으로 나도 하나의 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럼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죠.
<은중과 상연>이 남긴 것_ 작품에서 박지현 선배님이 연기한 ‘천상연’의 10대 시절을 맡았어요. 초등학교 장면을 먼저 찍고, 6개월 뒤에 중학교 시절을 촬영했죠. 개인적으로 중학생 상연이가 유독 마음에 많이 남아요. 그 시기에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많았거든요. 학업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배우 일에 더 전념해야 할지 선택이 쉽지 않았고, 여느 또래들처럼 부모님과 갈등이 생길 때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도 고민이었죠. 상연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려가면서, 저 또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도 상연이처럼 지금 커가는 과정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했고요.
내가 연기하는 법_ 저는 제가 맡은 인물을 그 자체로 바라보려고 해요. 캐릭터에 이입하거나 공감하려고 하다 보면, 자꾸만 ‘나였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인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다가가는 거죠. 그래서 감독님이 ‘이 부분은 이렇게 바꿔줬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해주실 때도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 같아요. 저는 현장에서 제가 아닌 그 배역으로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감독님의 피드백은 꼭꼭 씹어서 제 것으로 구체화하는 편이에요.
선배님을 보면서_ 모든 선배님들로부터 언제나 배울 점을 찾게 돼요. 촬영장에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해석한 것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와닿아요. 모범 답안보다 가끔은 틀을 부수는 연기가 정답이 될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휴일 생활계획표_ 어디 놀러 나가는 것보다는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밥 먹고, 반려견 ‘호두’와 산책을 나가요. 아, 호두라는 이름은 저한테 되게 의미 있는 이름이에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이 ‘호두’였거든요. 나중에 강아지를 키우면 이름을 꼭 호두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흔한 이름일 줄 몰랐어요(웃음). 그리고 또 제가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가끔 기타나 피아노도 치면서 휴일을 보내요.
최애 영화_ 저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진짜 좋아해요. 최근에 <주토피아 2>도 정말 재밌게 봤고요. 가장 좋아하는 건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에요.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인데요. 소재도 신선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엉뚱한 장면들이 재밌어서 여전히 생각나요.
선택과 집중_ 중학생 때까지는 성적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촬영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공부하려고 하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결석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규정이 바뀌어서 출석 일수가 큰 문제가 될 것 같더라고요. 여러 방안을 생각해봤는데 결론적으로 학교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서 다녔던 거라, 자퇴를 결정했어요. 홈스쿨링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같이 준비하려고 해요. 물론 연기 전공으로요.
새해 연하장을 보낸다면_ 음, 저는 엄마에게 보내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 엄마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엄마는 뭐가 잘 안 풀리고 어려울 때마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세요. 그게 심적으로 큰 힘이 됐어요. 항상 저를 온전히 지지해주시고요. 엄마가 제 뒤를 든든히 지켜주신 것만큼, 2026년에는 연기자로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적고 싶어요.
박연우

1990년생
@yvvoopark
SBS <우주메리미>(2025),
KBS <은수 좋은 날>(2025),
ENA <얼어죽을 연애따위>(2022),
영화 <창애: 짐승 잡는 덫>(2021) 등
박연우는 화보 촬영장의 카메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포즈를 취할 줄 안다. 신장도 몸의 비율도 모델과 별다를 바 없는, 거기에 끼와 자유로움마저 갖춘 인물이라면 카메라로 얼마든지 파고들고 싶은 대상이다. 그러나 최우식과 정소민 배우를 주축으로 화제성을 잡았던 로맨틱 코미디, <우주메리미> 속 박연우는 참 미웠다. 친구 아닌 친구인 ‘백상무’를 머슴처럼 부리던 ‘보떼 백화점 이성우 대표’. 이보다 조금 앞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은수 좋은 날>에서 박연우는 불량하고 불길한 기운의 클럽 엠디 ‘김민우’였다. 무수한 단역의 날을 거친 이 배우는 현재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볼 수 있는 <창애: 짐승 잡는 덫>이라는 영화로 깊은 상처를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를 소화한 바 있다. 박연우가 학창 시절 활약한 개그 동아리의 DNA를 여전히 품고 있다는 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파고들 것이 많은 그에 관한 정보 중 지극히 일부이다.

개그 동아리, ‘태평양 핵잠수함’_ 순천고 재학 시절 ‘태평양 핵잠수함’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10명 정도의 함원이 있었죠. 콩트 공연을 했어요. 쫄쫄이 의상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닌 적도 있고. 축제 때 20분짜리 공연을 올렸는데 인근 여고에서 반응이 좋아 공연 초청도 받고 그랬어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아, 나는 연극을 해야겠다.’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하정우 선배님이나 지상렬 선배님의 언어유희, 주성치 영화에 애정이 있어요. 다들 삶의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하지만 코미디를 보는 순간만큼은 웃고 즐기게 되죠.
배우가 되기까지_ 개그 동아리로 콩트와 연기를 알게 되었지만, 원래 전공은 미술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연극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커졌죠. 진정 사랑할 수 있는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니 뿌리부터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스물여덟에 연기로 입시에 도전하겠다 할 때, 주변에서 반대했어요. 아버지도 ‘그냥 순천으로 내려와라’ 하셨죠. 딱 1년만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고도 잘 안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결국 국민대학교에 편입했어요. 입학하자마자 지금의 소속사 오디션에도 합격했고요.
<우주메리미>와 <은수 좋은 날>_ 두 드라마 모두 송현욱 감독님 작품이에요. 감독님과 연달아 작업을 하다보니, <우주메리미>를 할 때는 마음이 무척 편안했어요. 덕분에 현장에서 더 놀 듯이 연기할 수 있었고요. 또래 배우가 많았던 점에서도 편안했어요. 극 중 백상현 상무(배나라 배우)하고는 앙숙 같은 관계였지만, 실제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예요. 촬영을 앞두고 서로 통화도 자주 하고 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눴죠. <은수 좋은 날>의 경우 마약을 다룬다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처럼 보여야 하니까요. 민우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왜 그렇게 변하는지 등등을 나름 많이 연구하면서 구축해갔어요. 마약 퇴치 본부에도 연락해보면서요.

게임보다 재밌는 것_ 어릴 때 여러 게임을 가리지 않고 두루 했어요. 세상에 게임보다 재밌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연기가 제일 재밌어요. 연기할 때나 영화를 볼 때, 그냥 너무 행복해요.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저께 본 <국보>네요. 그 작품의 여운 때문에 아직까지 행복에 젖어 있어요. 어제 하루 동안 친구들에게 ‘너무 좋은 영화니까 꼭 봐라’ 했어요. 꼭 배우로서가 아니어도, 한 예술가의 인생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연기 혹은 영화가 주는 예술적인 힘이라는 게 분명 있다는 걸 제가 연기하면서 느껴요.
선과 악_ 제 얼굴에서 박해일 선배님의 얼굴이 좀 보인다고요? 제 입으로는 차마 먼저 꺼낼 수 없는 얘기였는데…(웃음) 네, 사실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에요. ‘얼굴에 선악이 다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겠구나’ 싶죠.
연기, 결국 ‘사람’_ 연기와 인문학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공감해야 연기로 표현이 가능해질 거예요. 그러려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연기할 때는 나로서 인물에 다가가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인물은 나와 다른 존재잖아요. 먼저 나 스스로를 알고, 또 내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을 알고 구분 지을 줄 아는 것. 구분 지으면서 그 인물에 공감하는 것.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해요.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질문하면서 그 인물에 나를 비춰보는 거죠. 상처나 결핍이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그 모습에 제가 많이 투영되는 것도 느껴요. ‘내게도 이런 면이 있었지’ 싶으면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죠. <창애: 짐승 잡는 덫>이라는 영화를 할 때도 그랬어요.
장발과 삭발_ <은수 좋은 날>에서는 장발로 등장했죠. 그냥 한번 길러봤는데, 마침 장발이 필요한 역할을 맡아서 행운이었어요. 잘 어울렸다니, 감사합니다. 사실 입시 때는 삭발 머리를 했어요. 당시엔 이상한 ‘예술병’이 있었는지 머리를 밀어버리고 말았습니다(웃음).

청소_ 집안일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식물도 키우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꼭 청소로 하루를 시작해요. 우선 ‘환기’부터 해야죠. 그리고 정리를 하면서 청소해요. 흐트러지는 게 싫거든요. 수납을 잘 해놓으면 마음이 좀 편해져요.
임영웅의 ‘보금자리’_ 최근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어요. 보통 축가는 신랑 신부가 부탁해서 부르잖아요. 저는 제가 부르겠다고 자처했어요(웃음). ‘친구야, 너를 위해서 내가 흥이나 좀 돋워볼게’ 같은 느낌이었죠. 임영웅의 ‘보금자리’를 불렀는데, 제 공연을 보고 어르신들이 다들 좋아하시면서 ‘저 친구 누구냐’고 하셨대요. 네, 제 선택은 무조건 임영웅, 그리고 ‘보금자리’입니다. 송창식, 김광석, 이문세, 김동률 선배님의 노래들도 좋아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요즘 노래’보다 예전 음악을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예전 음악의 시적인 가사가 와닿을 때도 많고요.
목표 아닌 목표_ 예전에는 ‘어떻게 살아야겠다’ 같은 거대한 목표를 세우곤 했어요. 이젠 그런 게 없습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자’는 태도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2026년에도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예요.
유선호

2002년생
@official_yooseonho
영화 <교생실습>(2026),
MBC <노무사 노무진>(2025),
MBC <열녀박씨 계약결혼뎐>(2023~2024) 등
2017년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명랑한 10대 소년으로 먼저 인사한 유선호는 이후 연기 영역에서도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특유의 하얀 캔버스처럼 정돈된 얼굴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결을 입힐 수 있는 재료가 됐다. JTBC <언더커버>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승구’를 연기하며 따뜻한 서사의 중심에 섰고, tvN <슈룹>에서는 시대극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성소수자 캐릭터 ‘계성대군’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가녀린 인상을 지닌 얼굴 뒤로, 그는 2026년 개봉을 앞둔 영화 <교생실습>에서 고등학생들의 영혼을 먹으며 젊음을 유지하는 귀신 ‘이다이나시’로 또 한 번 결을 바꿀 예정이다. 배경과 설정, 톤의 스펙트럼이 크게 달라지는 역할을 오가면서도 매번 균형을 잃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점이 유선호의 현재다.

연기의 재미_ 좋은 기회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출연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데뷔할 수 있었어요. 가수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라는 고민이 늘 있었고요. 그러다 만난 작품이 KBS 특집 드라마 <거북이 채널>이에요. 경계성 지적장애를 가진 ‘상두’를 연기했는데, 인물의 아픔을 이해하고 분석해 표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왜 이렇게 재미있지?’라는 의문이 어느 순간 ‘이거 계속 해보고 싶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캐릭터에 접근할 때_ 아무리 100을 준비해 현장에 가도, 막상 1도 펼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요. 그럴 때면 집으로 가는 길에 매니저님께 꼭 말해요. “오늘은 좀 아쉬웠죠.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저는 재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생각해요. 준비를 많이 해야 마음이 놓여요. 성격상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요. 캐릭터를 받으면 그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먼저 분석해요. 이 과정에서 영상 자료가 특히 도움이 돼요. MBC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을 준비할 때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찾아봤어요. ‘태민’이라는 인물의 결핍이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느꼈거든요. tvN <슈룹>의 ‘계성대군’을 연기할 때는 성소수자 관련 다큐멘터리부터 논문까지 찾아봤고요. 영화 <대니쉬 걸>은 7번쯤 본 것 같아요. 에디 레드메인의 말투와 제스처, 표정을 분석하려고 슬로모션으로 장면을 돌려보기도 했어요.
말하는 눈_ “눈이 참 좋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눈이야.” 현장에서 이런 말을 종종 들어요. 돌아보면 제가 맡아온 인물도 대부분 크든 작든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었어요. JTBC <언더커버>의 ‘승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였고, 최근 출연한 MBC <노무사 노무진>의 ‘윤재’ 역시 사회에 막 발을 디딘 청춘으로 뭐든 열심히 하지만 어딘가 짠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었죠. 안쓰러워서 한 번 더 보게 되거나, 부당한 일을 겪고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유독 제게 많이 돌아온 것 같아요. 아마도 제 눈이 그런 마음들을 대신 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미스터리한 변신_ 영화 <교생실습>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한 고등학교의 흑마술 동아리를 둘러싼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로, 유쾌하면서도 설정이 꽤 신선한 학원물이에요. 저는 극 중 ‘이다이나시’를 연기했어요. 400년 넘게 살아온 일본 사무라이 귀신으로, 학생들에게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을 주는 대신 그들의 영혼을 먹고 젊음을 유지하는 존재죠. 비인간적 존재인 데다 설정이 워낙 특수한 캐릭터라, 오히려 접근은 단순하게 하려고 했어요. ‘이다이나시’는 자신의 행동을 정말 나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저 오래 살고 싶을 뿐인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며 인물의 행동 이유를 정리해나갔어요. 이 부분은 비교적 수월했는데, 진짜 어려웠던 건 대사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인 데다 일상적인 말투가 아니라 부담이 컸거든요. 선생님께 녹음본을 받아 발음을 하나하나 교정하고, 대사를 완전히 몸에 익히는 데 집중했어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라 저도 기대가 커요.
반대편에 서는 즐거움_ 어찌 보면 <교생실습>의 ‘이다이나시’는 작품 속 최고 빌런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격상 악한 마음을 잘 품지 못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저와 정반대 인물을 연기로 마주할 때 큰 재미를 느껴요. 현실에서는 해보지 못할 선택을 대신해본다는 느낌도 들고요.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 호아킨 피닉스인데, 그의 대표작 <조커>는 특히 애정하는 영화예요. 아마 다섯 번은 넘게 본 것 같아요. 한때 제 방에 엄청나게 커다란 <조커> 포스터도 있었을 정도예요. 그런 연기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런 얼굴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돼요.

성실함이라는 무기_ 저의 유일한 재능이라면 ‘성실함’ 같아요. 일적인 재능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 떠오르는 게 없는데, 제 평소 생활을 돌아보니 성실함만큼은 확실한 편이더라고요. 일상이 꽤 루틴화돼 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나나나 누룽지로 가볍게 식사하고 운동을 가요.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해서 러닝, 농구, 야구 다 해요.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가장 보통의 시간이 저에겐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져요. 직업인으로서 지키려는 철칙도 분명해요.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쉬는 날에도 최악의 컨디션을 만들어놓지 않아요.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편인데, 유일하게 기분이 안 좋아질 때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예요. 그래서 집 안 습도는 늘 60으로 맞춰두고,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챙겨 먹는 게 저에게는 기본이에요.
2026년을 맞으며_ 공개를 앞둔 작품이 여럿 있어요. 영화 <교생실습>을 시작으로, 1998년 IMF 시기의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메이드 인 이태원>, 웹툰 원작의 학원 판타지 드라마 <꿈에서 자유로> 등이 기다리고 있어요.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웃고, 슬퍼하고, 화내며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느껴요. 내년에 공개될 작품들 역시 누군가의 일상에 가볍게 스며들어, 잠시라도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요.
이명로

1994년생
@maengno
넷플릭스 시리즈 <약한영웅 Classs 2>(2025),
SBS <모범택시 3>(2025),
JTBC <옥씨부인전>(2024) 등
이명로가 화면에 등장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정된다. 큰 이목구비의 마스크는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명확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빌런 역할이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2>에서 주인공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넣던 문제아 ‘백동하’, 영화 <썬더버드>에서 노름으로 돈도 삶도 저당 잡힌 ‘태민J’, TBC <시지프스: the myth>에서 비릿한 기운을 풍기던 부하 직원 ‘엄선재’까지. 이명로를 두고 ‘차세대 빌런 계보를 잇는 주자’라는 수식을 꺼내 드는 것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스스로를 ‘계속 변화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는 그는 2026년 배우로서 조금 더 가속 페달을 밟아볼 참이다. 계산된 브레이크 없이 진짜를 향한 과속이 몰고 갈 그의 앞날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지금이 바로 지켜볼 때다.

시간에서 길어오는 연기_ 스물여섯에 배우가 됐어요. 남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찍 시작했으면 오히려 독이 되었을 것 같아요. 지나온 경험 하나하나가 제 자산이 됐거든요. 모델 일을 하면서는 카메라 앞에서 겁내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언제 연기가 가장 늘었지?’ 하고 돌아보면, 오히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가 떠올라요. 술에 취해 짓궂게 구는 손님도 상대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어요. 겪은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연기할 때 그 시간들을 하나씩 꺼내 쓰는 것 같아요.
연기이자 치유_ 처음 연기 수업을 받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수업을 마치고 나왔는데, 갑자기 하늘이 유난히 넓어 보이더라고요. 제 한계만큼 기뻐하고, 화내고, 울어보고 나니 묵은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거의 심리 상담을 받은 듯한 기분이랄까요. 그 건물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해봐야겠다.’ 그 순간 이후로는 한 번도 그만둘 생각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아요.
<대부>로 꾼 꿈_ 어렸을 때 어머니 속을 꽤 썩였어요. ‘이렇게까지 밝을 수 있다고?’ 싶을 정도로 해맑았거든요. 세상에 슬픈 일이 하나도 없었고, 울어본 기억도 거의 없어요. 생일이면 마트에서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저 오늘 생일입니다. 그러니 바나나 하나 사주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대요(웃음). 성인이 되면서는 이런 성향을 조금 가라앉혀보고자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그중 하나가 고전 영화를 보는 일이었어요. 특히 <대부> 시리즈는 여러 번 돌려본 작품이에요. 저는 무슨 일이 닥치면 불같이 화내거나 불같이 기뻐하는 편인 데 반해, <대부> 속 주인공들은 항상 평정을 유지하고 무게감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특히 동경했고, 다양한 고전 영화를 찾아보며 배우의 꿈을 막연히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백동하’가 가르쳐준 것_ 처음에는 서른 살에 고등학생 역할을 맡는다는 부담이 정말 컸어요. 앳됨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안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 크게 꺾이고 나니까 그제야 인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동하’는 분명 주인공에게 긴장감과 공포를 주는 인물이지만, 자기 무리를 아끼고 그 안에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친구이기도 하거든요. 이 지점을 깨닫는 순간, 저와 ‘동하’ 사이의 거리가 확 줄어든 느낌이었어요. 물론 너무 제 색으로만 칠한 것 같아 다시 지워낸 부분도 많아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어요. 내가 표현하려는 것만 붙잡고 있으면 캐릭터가 더이상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 인물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실감했어요.
변주되는 얼굴_ 눈이 큰 편이고 짝눈이에요. 입도 가로로 길어서 이목구비가 전반적으로 뚜렷한 편이죠. 그래서인지 감정의 농도 조절이 비교적 편해요. 눈을 조금만 크게 떠도 놀라 보이거나 화난 것처럼 보일 때가 많거든요. 이런 특징을 제가 가진 무기로 삼아보려고 해요. 영화 <썬더버드>를 촬영했을 때 정그림 촬영감독님이 해주신 말이 있어요. 평소엔 과묵하신 편인데, 어느 날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거든요.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명로 씨는 뭐가 좋은 줄 알아? 한 신 안에서도 각도를 다다르게 잡을 수 있어. 이쪽 얼굴은 차분하고, 다른 쪽은 불안하거나 광적이고, 각도마다 얼굴이 다 달라.” 그 말을 듣고 자신감을 갖기로 했어요. 제 얼굴이 편안함을 주는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될 줄은 미처 몰랐죠.
내가 닿고 싶은 깊이_ 드라마 <더 베어>에서 제러미 앨런 화이트가 보여준 연기를 잊지 못해요. 내면의 불안이나 고뇌, 압박감을 대사 없이 상황과 표정만으로 밀어붙이는 순간이 많거든요. 주인공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이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달돼서, 보는 저까지 숨이 가빠질 정도였어요. 그런 연기는 다른 차원의 표현 같다고 느껴져요. 흔히 배우가 표현력이 부족하면 어떤 장치를 쓰잖아요. 긴장감을 보이려고 괜히 옷매무새를 만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더 베어> 속 주인공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오로지 표정과 눈빛만으로 감정을 훅 전달해요. 보는 내내 ‘나도 언젠가 저런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기 밖의 균형들_ 기댈 곳을 여러 개 만들어두는 편이에요. 취미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낚시는 연기를 시작하면서 붙인 취미예요. 최근엔 친구들과 바다낚시를 가서 삼치와 방어를 잡아 요리해 먹기도 했어요. 처음엔 낚시가 멋있는 취미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면 쉴 틈이 없어요. 하루 종일 낚시에만 집중하다 보면, 희한하게도 머릿속이 정리돼 있어요.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해요. 막연하지만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하는 거예요. 첼로 대신 가야금을 넣어서 한국적인 느낌으로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2026년의 목표_ 쉬지 않고 달리고 싶어요. 일이든 취미든 끊임없이 저를 과속으로 몰고 갔으면 해요.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찾아 달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소이

2000년생
@e._.soi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2025),
MBC <모텔 캘리포니아>(2025),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2~2023) 등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서 이소이가 연기한 ‘미나’는 곧 그어질 성냥개비 같은 인물이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스무 살 나이에 서울로 상경, 그 길 위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돌부리가 있다면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갔다. 원하는 것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 ‘미나’가, 고요한 호수 같은 얼굴의 이소이에게 돌아간 것은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연기를 향한 쉬이 꺼지지 않는 집요한 갈망만큼은 서로 닮아 있다. MBC <모텔 캘리포니아> 속 시인을 꿈꾸는 도서관 사서 ‘한아름’으로 풋사과 같은 청량함과 순수함을 드러냈고, 몇 해 전 폭발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 ‘소희’를 연기하며 삶의 가장자리에 선 인물의 처연함을 담아냈다. 배우로서 막 출발선에 선 이소이는 짧은 시간 안에 이미 여러 얼굴을 드러냈고, 그 변화의 스펙트럼은 예상보다 훨씬 넓다.

어린 시절의 나_ 꿈이 참 많았어요. 카리스마 넘치는 국어 선생님을 동경해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고, 아이돌이 되어 무대에 서면 어떨까 막연히 상상한 때도 있었어요. 대학 진학을 고민할 때는 예체능에 대한 오랜 열망도 있었지만, ‘연극영화과’라는 타이틀이 주는 환상 역시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다소 무작정 입시에 돌입했지만, 제가 보기와 달리 지기 싫어하고 승부욕이 강해서 어떻게든 합격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창작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요. 첫 공연의 커튼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너무 좋다.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 함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도, 무대 위에서 처음 느낀 그 벅찬 기운도 지금까지 제 마음 한쪽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눈을 뜬 순간_ 배우가 되고자 마음먹은 후로 가장 여러 번 돌려본 영화가 <밀양>과 <화차>예요. 전도연, 김민희 선배님의 연기는 당시 제게 충격에 가까웠어요. 그때가 스무 살, 막 대학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던 시기였거든요. 복식 호흡이나 전형적인 연기 방식에 익숙해 있던 때라, 두 작품 속 선배님들이 보여준 비언어적 연기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대사가 없을 때의 호흡, 눈빛, 아주 작은 행동들, 그 모든 것이요.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아요.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꿈이 또렷하게 생긴 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_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서 제가 연기한 ‘미나’는 스무 살에 배우가 되겠다고 상경한 인물이에요. 오직 성공에만 마음이 쏠려 있어서, 극 중 가장 문제적 인물로 꼽히는 영화사 대표 ‘구중호’의 연인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죠. 욕설도 서슴지 않고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데, 사실 저와는 결이 완전히 반대인 인물이에요. 그래도 ‘미나’를 보면서 제 모습이 겹치는 순간이 있었어요. 신인으로 시작하는 시기엔 항상 긍정적일 수만은 없잖아요. ‘나는 왜 안 되지?’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비교에서 오는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이 올라올 때도 있고요. 시작하는 사람이 가진 특유의 ‘흔들림’에 크게 공감됐고, 그게 연기에 큰 힘이 됐어요. 사실 ‘미나’ 역할은 저보다 키가 큰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운 좋게도 제게 기회가 왔죠.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했던 모습을 꺼낼 수 있었던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어요.

나와 무척 닮은 너_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소희’는 정말 운명처럼 만난 캐릭터예요. 사실 오디션을 보고 나왔을 때는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끝까지 제 얼굴을 보지 않으셔서,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울 정도로 마음이 무너졌거든요. 그런데 훗날 감독님이 “목소리만 들어도 알지!”라며 그날을 이야기해주셔서 더 큰 감동을 받았어요. ‘소희’는 학교폭력 피해자이자, 조롱과 모욕이 일상이 된 인물이에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삼키는 면이 많은데, 그 부분이 제 성향과 무척 닮았어요. 그래서인지 대본 없이 지금 바로 연기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만큼,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캐릭터였어요. 언젠가 누군가가 “너는 죽는 역할이 잘 어울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충격적이었는데, 듣고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한 인물의 죽음이 불러오는 동정심이나 여운 같은 감정, 그런 기운이 제 얼굴이나 표현 방식에도 배어 있는 것 같아요.
끈기는 나의 힘_ 인생 영화 중 하나가 <위플래쉬>예요. 작품 속 주인공은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으로,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질주하잖아요. 분명 재능이 있지만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고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집요하게 몰아붙이는 인물인데, 그런 모습이 평소의 저와 많이 닮았어요. 저는 좋게 말하면 집요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집착이 강한 편이에요. 연기 연습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울면서 붙잡고 반복할 정도로, 일단 마음이 가면 끝까지 해내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대충 넘기는 걸 못 참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해결될 때까지 계속 파고드는 스타일이에요.

대본에서부터 시작되는 일_ 캐릭터에 접근할 때 제 첫 번째 원칙은 ‘대본 안에서 찾자’예요. 대본을 계속 반복해 읽다 보면 숨어 있는 단서들이 보이거든요. 그러면서 연기 노트에 인물의 전사나 습관, 행동 같은 것들을 하나씩 적어두죠. 저와 인물을 나란히 놓고, 같은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발현될지 비교해보기도 하고요. 2026년에 개봉을 앞둔 <내 이름은>에서는 염혜란 선배님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어요.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시나리오 안에서 정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배님을 많이 관찰하려 했어요. 리딩 때의 표정, 말투, 지난 작품들 속 작은 포인트까지 최대한 흡수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밝고도 굳센 캐릭터를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 계속 결을 다듬으려고 노력했죠.
미래의 나에게_ ‘인생은 기세다’라는 말로 내년을 맞이하고 싶어요. 이상하게 다가올 새해가 조금 겁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트렌드 코리아 2026> 같은 책을 읽으면서 젊은 세대가 좋아할 연기가 뭘까 생각도 해보고요(웃음). 내년의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한발 더 나아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다이어리에 ‘2026년 12월의 나에게’라는 편지도 썼어요. ‘네가 너무 바빴으면 좋겠어. 더 단단해져 있으면 좋겠다’라고요. 저는 한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익숙한 틀에 안주하기보다 낯설더라도 진심을 다해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결국 배우는 다양한 삶을 ‘겪어보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가진걸 아끼지 않고 꺼내서, 살아온 모든 순간을 연기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창민

1997년생
@imabcm
지니TV 오리지널 <착한 여자 부세미>(2025),
SBS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2025),
MBC <노무사 노무진>(2025),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2022) 등
2025년 가을, 이 신인 배우는 TV 드라마 두 편에 나타났다. 연쇄살인마로 분한 고현정을 따라 모방 살인을 하는 유력 용의자 ‘박민재’로(<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또 멀끔한 슈트를 입은 재벌가의 골칫덩이 ‘가선우’로(<착한 여자 부세미>). 다정함과 광기를 오가며 극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배가한, 혹은 망나니처럼 패악질을 부리던 젊은 남자를 시청자는 또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서로 달랐던 그 이창민의 얼굴에서 드라마 <혼례대첩>(2023)의 승려를 떠올린 당신이라면 훌륭한 눈썰미의 소유자다. 새삼스럽지만, 악하고 강한 캐릭터로 접한 배우의 본모습이 그와 아주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때면 늘 신선하다. 이창민은 친구들과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평범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새로운 맛에 호기심이 많아, 맛집 탐방도 잘한다. <개그 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 같은 공개 코미디물 클립을 주기적으로 챙겨 보며, 언젠가 코미디 장르에 도전하길 기다리는 이창민이다.


<착한 여자 부세미>의 가선우_ 그 정도로 긴 서사의 인물에 도전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워낙 감정 표현이 과격하고 평이하진 않은 인물이라 더 어려웠죠. 제 성격과도 거리가 멀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차츰 긴장이 풀렸어요. 저와 남매 연기를 한 장윤주 선배님부터 전여빈, 서현우, 문성근 선배님… 다들 따뜻하게 대해주시니 마음 붙일 데가 생긴 느낌이더라고요. 그저 선배님들의 연기를 잘 받고, 잘 느끼고, 잘 반응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신인으로서 그렇게 여러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짜릿했습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오디션_ 변영주 감독님의 오디션 방식이 재밌었어요. 보통의 오디션에서는 발췌 대본을 주는데, 변 감독님은 희곡 대본을 주셨죠. 또 한 소설의 발췌문을 주면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도 하셨어요. 저는 소설 내용을 보고서 상대방에게 편지를 썼고, 오디션장에서 그 편지를 낭독했어요. 가슴 아픈 내용을 담았죠. 그렇게 편지를 쓴 형식과 제 연기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연기의 시작_ 고1 때 사춘기가 왔어요. ‘나는 뭘 하고 싶은가’ 하는 고민을 처음으로 했죠.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시원히 털어놓을 수는 없고, 그저 혼자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어요. 어느 날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배우’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30분 정도 걸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연기를 해볼까? 해보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고요. 영화를 보는 날이 쌓이면서 제 안에도 무언가 쌓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에 재능이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죠. 확신이 없는 채로 영동고 2학년 때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막상 해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학생극을 만들어가는 여건이라는 게 그리 풍족한 환경일 수도 없는데, 저는 작업 자체가 정말 재밌었어요. 다 같이 노는 느낌? 그렇게 시작됐어요.

“너 잘될 거 같아.”_ 한예종 시절 몇몇 선배들이 그랬어요. 그냥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저를 딱 보더니, 잘될 거 같다고 말해주는 거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당연히 기분이 좋았어요. 제 연기를 본 것도 아닌데 누군가 그런 말을 해주면 무슨 요인인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나한테 내가 모르는 어떤 에너지가 있나’ 싶으면서, ‘나도 나를 차차 알아가보자’ 생각했어요.
‘나’로서 연기하기_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의 박민재는 몸만 큰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재의 모든 행동은 결국 사랑받기 위한 거였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변영주 감독님이 ‘인물에 맞추려 하지 말고, 너를 믿고 너로서 연기해라’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저에게 필요한 말이 었어요. 연기를 배울 때도 그랬고, 어떻게든 주어진 인물에 맞춰 나를 변형시키는 식으로 접근했거든요. 이젠 저로서 좀 더 집중하려는 면이 생겼어요. 제 안의 매력을 끌어 내면서요. 그냥 그 상황만을 보고, 상황에 충실히 존재한다면, 인물의 감정은 느껴질 테니.
ISFP_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표현하며 살잖아요. 내향인은 표현을 많이 못하면서 산다고 느껴요. 저도 그렇고요. 처음 제가 연기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 놀랐어요. 어릴 때 저는 맨날 야구만 하면서 놀았거든요. 반에서 롤링 페이퍼를 만들면 “야구 열심히 해” 같은 말이 쓰여 있었죠. 수학여행 장기자랑요? 절대, 그런 무대에는 당연히 나갈 생각도 안 했고요. 워낙 조용한 편이고 끼도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평소보다 훨씬 솔직한 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나한테 이런 면도 있네?’ 발견하는 재미도 있죠. 연기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해소가 되어주는 거죠. 배우 중 많은 내향인이 그렇게 연기로 무언가를 풀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옆집 사람_ 아직 밖에 나가면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요. 유일하게 옆집에 사는 분이 저를 알아보셨어요(웃음). <착한 여자 부세미>와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둘 다 보셨대요. 기쁘면서도 좀 부끄러웠어요. 집에서 노래를 그렇게 불렀는데. 노랫소리 다 들렸겠지….
2025년의 자랑거리_ 힙합 음악을 좋아해요. 맥 밀러를 자주 듣죠. 트래비스 스캇도 좋아하는데, 얼마 전 내 한 공연에 갔어요. 그거 자랑하고 싶어요!(웃음) 콘서트라는 거 자체가 처음이었거든요. 예매도 직접 했고요. 제가 사실 티케팅에 재능이 없어요. 수강 신청을 할 때도 실패율이 99%는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리 어렵지 않게 예매했죠. 와, 정신을 놓고 놀았던 기억입니다. 행복했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다 같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즐기는 것 같네요. 운동도 헬스보다는 풋살이나 야구 같은 단체 스포츠를 좋아해요. 최근엔 스쿼시 모임을 만들었어요.
꿈_ 배우로서의 꿈이 명확하게 있어요. ‘길게’ 연기하고 싶다는 것. 연기가 참 재밌거든요. 이 재밌는 일을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 장인처럼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연기도 기술이니, 기술을 갈고닦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언젠가는 장인 혹은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 피쳐 디렉터
- 권은경
- 피쳐 에디터
- 전여울
- 패션 디렉터
- 김신
- 패션 에디터
- 김현지
- 글
- 홍수정(김주미, 박서경), 이예지(김지오)
- 포토그래퍼
- 박현경(김주미, 김지오. 박서경, 박연우, 이명로, 이소이), 니콜라이 안(문유강, 유선호)
- 헤어
- 홍현승(김주미, 박연우), 광효(김지오), 임안나(문유강, 이명로), 장해인(박서경, 이소이), 박세민(유선호)
- 메이크업
- 유혜수(김주미, 박연우), 김태영(김지오), 조혜미(문유강, 이명로), 임정인(박서경, 유선호, 이소이)
- 어시스턴트
- 박예니, 김수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