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칵테일에 요리의 언어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주방에서나 볼 법한 식재료는 물론, 수비드, 발효, 인퓨징, 지방 세척 등 다양한 조리 기법이 투명한 잔 안에 담긴다. 어쩌면 이제 ‘한 잔’이 아니라 ‘한 끼’의 감각을 마시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열대야를 피해 거리를 헤매던 어느 밤, 서울 청담동의 바 ‘제스트’에서 칵테일 한 잔을 주문했다. 곧장 서브된 무색투명한 빛깔의 칵테일에선 솔직히 어떤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첫 모금이 닿은 순간, 입안에서 별안간 샐러드의 풍미가 번지기 시작했다. 토마토, 치즈, 바질, 올리브유의 조합. 익숙한 그 맛은 영락없이 카프레제 샐러드였고, 이 칵테일의 이름 역시 ‘카프레제’였다.

‘마시는 요리.’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요리의 식재료와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컬리너리 칵테일(Culinary Cocktail)’은 지금 서울의 바 신을 가장 흥미롭게 변화시키는 키워드다. 대표적으로 청담동 바 ‘제스트’의 ‘소이 카라멜’은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에빗’의 시그너처 디저트 ‘참기름 카라멜’에서 영감을 얻은 칵테일이다. 녹인 버터를 럼과 버번에 섞어 냉동 보관하는 ‘팻 워싱’ 기법으로 버터의 군침 도는 향을 입힌 베이스에, 짭짤한 간장과 비정제 설탕, 아마레토를 더해 특유의 ‘단짠’ 매력을 완성했다. 술이라기보다 한입 크기의 디저트를 마시는 기분에 가깝다. 요즘 바 호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바 ‘페르마타’에선 ‘콘파체’를 만날 수 있다. 분자요리 기법인 ‘에스푸마’로 옥수수 폼을 얹고, 테킬라에 허브 딜을 인퓨징해 증류한 뒤, 파인애플 껍질과 레몬그라스를 발효해 얻은 탄산의 청량함을 더했다. 그야말로 요리를 닮은 칵테일이다. 여기에 바 ‘참’의 ‘충무김밥’, ‘장생건강원’의 ‘삼계탕’까지, 술인지 요리인지 헷갈리는 메뉴들이 바마다 출몰하고 있다. 술잔이 아니라 접시에 담겨도 어색할 것 없는 풍경이다.
사실 술에 음식을 더하는 방식 자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토마토주스를 넣은 ‘블러디 메리’, 올리브 브라인이 들어간 ‘더티 마티니’, 고추의 매운맛이 가미된 ‘스파이시 마가리타’ 등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스테디셀러로 군림해왔다. 다만 요즘의 컬리너리 칵테일은 여기서 한술 더 뜬다. 고추장, 묵은지, 버섯, 연어, 참치액젓, 멸치육수 같은 흔히 주방에서 쓰이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단순한 ‘이지 믹스’에서 벗어나 수비드, 발효, 팻 워싱, 인퓨징 등 요리의 테크닉으로 술의 구조를 새롭게 짠다. 즉 컬리너리 칵테일은 요리의 철학과 기술을 바텐딩에 도입해 술을 ‘마시는 요리’로 진화시키려는 움직임인 셈이다. “사실 컬리너리 칵테일은 세계 곳곳의 바에서 오래전부터 선보여왔지만, 부러 찾아 나서지 않아도 다양한 곳에서 가시화되고 트렌드로 언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2022~2023년경이에요. 이때는 ‘요리에서 영감 받은 칵테일’을 모토로 하는 뉴욕의 바 ‘더블 치킨 플리즈’가 ‘월드 50 베스트 바’에서 2위를 석권한 해이기도 하죠.” F&B 콘텐츠 기업 ‘스타앤비트’의 장새별 대표의 말이다. 발효를 테마로 실험적인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바 ‘MMS’의 안경원 바텐더도 이렇게 덧붙인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의 바 ‘오퍼레이션 대거’가 컬리너리 칵테일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오너 바텐더인 루크 웨어티는 분자요리와 발효 등 요리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이곳 출신 바텐더들이 이후 ‘네이티브’, ‘노 슬립 클럽’ 등 모던 테크닉과 음식을 중시하는 바를 열기도 했고요. 국내에서도 2~3년 전부터 이 흐름을 따라가는 바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요즘 바 신이 유독 ‘마시는 요리’에 꽂힌 데엔 이유가 있다. “컬리너리 칵테일이 많아졌다는 건, 결국 그것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죠. 과거에는 대부분 ‘스윗 앤 사워’ 같은 친숙한 맛을 원했지만, 이제는 입맛의 지평이 넓어졌어요. 예부터 인간은 본능적으로 쓴맛과 강한 산미를 경계해왔어요. 쓴맛은 독의 신호, 산미는 부패의 징후로 받아들였죠. 그런데 시대가 변하며 그런 직관이 무뎌지고, 오히려 파인다이닝 요리에서 맛볼 법한 감칠맛(Savory)을 찾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미각의 층위를 즐기려는 감수성이 열린 셈이죠.” 바 ‘페르마타’의 양효준 바텐더의 말처럼 입맛의 진화는 곧 칵테일의 플레이버를 다채롭게 만들었다. 여기에 바의 정체성을 ‘로컬리티’에서 찾으려는 흐름이 컬리너리 칵테일의 시작을 부추겼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지금의 유행은 결국 ‘로컬리티’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다이닝 신에서 시작된 로컬 재료에 대한 조명이 바 신으로 이어진 것이죠. 특히 한국을 비롯해 전통적인 칵테일 베이스인 위스키, 진, 테킬라 등을 생산하지 않은 나라의 경우 술 외에 로컬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식재료예요. 나아가 바에서 자체적으로 원심분리기, 증류기 등을 갖추는 등 기술의 발달은 더욱 다양한 식재료 사용의 촉매제 역할을 했어요.” 스타앤비트 장새별 대표의 말이다. 한편 이런 흐름과 별개로, 주류 수입사 ‘메타베브코리아’의 김서울 대리는 보다 단순한 이유를 짚는다. “일차원적으로 알코올 부즈, 즉 알코올 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컬리너리 칵테일만 한 게 또 있을까요? 음식의 플레이버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나 익숙하잖아요.”
이제 술은 더 이상 취기를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한 잔의 칵테일이 하나의 순간이 되고, 그 순간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소비된다. 바에서조차 감각적 경험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팬데믹 이후 해외에서 다양한 바 문화를 접한 손님들이 늘면서, 칵테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어요. 이제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한 잔 안에 담긴 스토리와 창의성을 감상하는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히 있거든요. 경험의 가치가 높아진 만큼, 결국 더 새롭고 낯선 조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컬리너리 칵테일로 관심을 옮긴 거죠.” ‘제스트’의 바텐더 박영민의 말이다. 한편, 컬리너리 칵테일의 부상에는 이처럼 달라진 사람들의 취향만큼이나 바텐더들의 움직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바텐더가 다른 바로 초청돼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게스트 바텐딩’ 문화는 바 신에 새로운 자극과 교류의 물꼬를 텄다. 이 자리에서 바텐더들은 주로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는 자국의 식재료로 로컬리티를 강조하는데, 서울의 바들도 그런 해외 바텐더들의 태도와 방식을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체득해온 것이다. “확실히 해외의 바 문화나 게스트 바텐딩을 접하다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재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칵테일에는 시트러스가 많이 사용되는데, 한국은 레몬이나 라임 외에 선택지가 적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시트러스는 뭘까?’를 고민하게 되죠. 예를 들면, 덜 익은 청매실은 산미가 높아서 라임이나 레몬의 대체재가 될 수 있거든요. 보통은 산미를 내기 위해 애시드 같은 화학 재료를 쓰기도 하는데, 특유의 인공적인 맛을 피할 수 없고요. 동남아의 경우 덜 익힌 망고로 산미를 구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식의 연구가 한국에서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MMS의 안경원 바텐더의 말이다. 결국 게스트 바텐딩이 로컬 식재료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이런 흐름이 바의 실험을 더욱 촉진한 셈이다.
컬리너리 칵테일의 유행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시선도 있다. 누군가는 술도 음식도 아닌 어정쩡한 ‘괴식’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요리적 재료를 활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더 맛있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리의 문법에 대한 진지한 탐구 없이, 특정 음식의 맛을 흉내 낸 결과물이 컬리너리라는 이름 아래 소비되는 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술로 표현할 수 있는 맛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은 언제나 흥미롭죠. 다만 우려되는 지점도 있어요. 클래식 칵테일처럼 어느 정도 검증된 맛이 아닌 창작 칵테일의 경우, 미흡한 실험과 크리에이티브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누가 더 독특한 재료를 쓰는가’ 같은 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만드는 이들이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중요한 건 단순히 ‘신기한 칵테일’이 아닌 ‘다시 마시고 싶은 칵테일’이어야 하니까요.” 스타앤비트 장새별 대표의 말에 호응하듯 제스트의 박영민 바텐더가 말한다. “칵테일의 기본은 ‘밸런스’예요. 재료 간의 어울림, 그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수백 번 시도하고 조율해야 하죠. 그래서 컬리너리 칵테일을 설계할 때도 저는 늘 클래식 칵테일에서 출발합니다. 단순한 새로움보다 ‘왜 이 재료를 썼는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의 맥락이 반드시 담겨야 해요.” 두 사람의 말처럼 ‘마시는 요리’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경계의 혼란을 불러온다. 셰프와 바텐더의 직능은 엄연히 다르다. 칵테일이 요리의 기법만 흡수하고 철학은 따르지 못할 때, 그 음료는 기술적인 풍경에만 머무를 뿐이다. 조선 팰리스의 총괄 소믈리에로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의 손종원 셰프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김성국은 이를 명확히 짚는다. “컬리너리 칵테일의 발전은 술 한 잔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바텐더들의 아름다운 여정이죠.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과잉의 순간입니다. 그로 인해 술이 지닌 여백의 미를 놓치게 될 때가 있거든요. 술이 요리가 될 수는 있지만, 술이 요리여야만은 안 된다는 것. 그 균형을 지키는 것이 곧 컬리너리 칵테일의 본질이라 믿어요.”
컬리너리 칵테일은 결국 ‘우리는 왜 마시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대답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각하기 위해 마시는 시대다. 맛의 경계를 실험하고, 그 안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설계하려는 시도는 지금의 미각 문화가 술에게 요구하는 감수성에 대한 응답이다. 이 흐름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 보는 이들도 있다. “칵테일을 사랑하는 바 호퍼들에게 컬리너리 칵테일은 새로운 탐색의 영역이에요. 지겹도록 클래식 칵테일만 마시다 보면, 가끔은 그 낯선 조합에서 마치 폭죽 터지듯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되거든요. 분명 경험해볼 가치가 충분한 영역인 거죠.” 메타베브 코리아 김서울 대리에 이어, 스타앤비트 장새별 대표도 말을 더했다. “요즘 들어 서울은 칵테일 허브 도시로 부상하는 중이에요. 해외에서 한국 바 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요. 컬리너리 칵테일의 부상에 ‘로컬리티’가 중요한 축인 만큼, 이 트렌드가 잘 자리 잡는다면 한국적인 색이 더 뚜렷한 칵테일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 보면 먼 훗날 음료에서의 한식 역할을 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요?” 지금의 유행이 얼마나 오래갈지, 어떤 형태로 변주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술 한 잔에 질문과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한 지금, 바는 더 이상 취기를 파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기이함이든 새로움이든, 술이 다시 마시고 싶은 경험으로 남는다면 컬리너리 칵테일의 가능성도 그 안에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바는 그 가능성을 증류하는 실험실인 셈이다.
- 포토그래퍼
- 박종원
- 푸드 스타일리스트
- 권민경, 안세희(101레시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