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씻지만, 그 방법과 취향은 다 다르다. 씻는 행위와 그 의미에 대한 리얼 클렌징 토크.

샤워 부스는 나만의 동굴
사춘기 딸의 샤워 횟수가 부쩍 늘었다. 어릴 땐 그렇게 씻기 싫어하더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샤워한다. 그것도 꽤 긴 시간 동안. 하지만 “물 아껴 쓰자”고 돌려 말할 뿐, 샤워 좀 그만하라고는 차마 말 못한다. 아이에게 샤워는 오롯한 자유의 시간임을 잘 알기에. 나도 머리가 복잡할 때,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이른바 ‘기 빨린’ 하루를 보냈을 때, 어김없이 샤워 부스로 들어간다. 옷을 벗고 자연인이 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엄마도, 아내도, 그 어떤 역할도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이다. 가족들로부터, 핸드폰 알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방해 금지 모드’ 스위치가 켜지는 셈이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 샤워를 하며 감각의 향유와 내적 몰입을 통해 일종의 ‘자기 돌봄’ 시간을 갖는다. 내 피부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온도로 토닥이는 듯한 부드러운 물줄기, 향기로운 샤워젤의 풍성한 거품을 즐기고 있노라면 기분까지 맑아
진다. 그리고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도 ‘뭣이 중한데?’라며 가볍게 전환이 된다.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문제의 실마리를 잡기도 한다. 아마도 머릿속이 비워지며 드러나는 직관의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눈을 감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고요히 바라보기도 한다. 나를 향해 비난하는 자책감이 있으면 ‘괜찮아, 난 최선을 다했어, 이번 기회로 배웠네,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야’라며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그러면 스르르 용기가 자란다. 다시 살아갈 힘이 채워진다. 이렇게 샤워를 하며 자가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나와 마주하며 ‘나다움’을 회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요히 혼자만의 시공간에 머물며, 타인의 말, 관계 속 휘둘림, 상황의 무게 등을 차분히 헤아리고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치유 의식.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에.
입욕보다 샤워를 즐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샤워는 욕조에 물을 받고 빼고 청소하는 전후 과정 없이 빠르게 치유 작
업으로 진입할 수 있다. 또 욕조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가 포근하게 안겨 위로받는 기분이라면, 샤워는 머리에 닿아
발끝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부정적 에너지도 씻어내주는 느낌이다. 그렇게 피부의 노폐물과 마음의 불편감을 흘
려보내면 산뜻함만 남는다. 비로소 가족과 주변에 개운한 미소를 건넬 수 있게 된다. 되찾은 나의 온전함으로.
– 강옥진(마인드풀 뷰티 랩 대표)
너희가 욕실용품을 믿느냐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어쩌면 욕실 속 도구들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들은 매일 내 민 낯을 마주한다. 도톰한 40수 송월타올 수건과는 3년째 동거 중이고, 이름이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고체 샴푸와는 6개월째 썸을 타고 있다. 이쯤 되면 가족 수준이다. 피는 안 섞였어도 물은 매일 섞는다.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량은 그 어떤 마케터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샴푸는 내가 스트레스 받은 날을 기가 막히게 안다. 그럴 땐 머리를 밥솥 긁듯 박박 문지르니까. 보디워시는 내 운동 스케줄을 꿰고 있다. 운동 후 몸에서 나는 체취를 잘 안다. 수건은 내가 몸의 어디부터 닦는지 알고 있다. 이런 정보 수집 능력 앞에서 빅데이터는 갈 길이 멀다.
놀라운 건 나 역시 이들에 대해 터득한 것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몸이 피곤한 날엔 특정 샴푸가 더 부드럽게 느껴지고, 일상의 분노가 극에 달한 날엔 라벤더 향 보디워시가 은근한 진정제가 된다. 또 환절기엔 샤워 후 수분크림이 생명줄이고, 운동한 날 멘톨 제품을 바르면 근육이 기꺼이 나를 받아준다. 면도기가 빠지면 서운하다. 면도기는 체중계보다 빠르고 거울보다 정직하다. 살이 찌면 턱 아래가 불룩해지고, 빠지면 턱선이 칼처럼 선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칫솔은 내 생활 패턴을 가장 잘 알아채는 기술을 지녔다. 늦잠을 자면 아침 양치가 건성이고, 술 마신 다음 날엔 입안이 아수라장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욕실용품을 백화점 쇼케이스처럼 진열하는 대신 확실한 것들만, 검증된 파트너들만으로 욕실을 간결하게 유지한다. 각자 제 분야의 프로들만 모았다. 욕실이 단순할수록 마음도 정갈해진다. 선택의 피로가 줄고, 공간은 넓어 보인다.
욕실용품은 입이 참 무겁다. 내 몸 구석구석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뢰를 기반으로 점점 더 끈끈해지고 있다. 샴푸의 향기로 머리를 감싸고, 수건의 포근함으로 몸을 덮으며, 칫솔의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입안을 정리한다. 이들로 인해 나는 욕실에서 늘 아늑함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의심 없이 몸을 맡긴다. 믿으니까!
– 목지수(매거진 <집앞목욕탕> 편집인)
나를 위한 ‘새로 고침’
취미로 웨이트 운동을 한 지 어언 1년 반이 넘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는 온탕이 있어 자주 애용한다. 처음에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헬스장은 어느새 삶의 도피처가 되었다. 휴대폰을 사물함에 가둔 채 디지털 세상에서 완벽히 멀어지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직업 특성상 레퍼런스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온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SNS를 들여다보기에 디지털 피로도가 심한 편. 하지만 그곳에 가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휴대폰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운동으로 땀을 낸 뒤에 하는 개운한 샤워와 따뜻한 입욕은 지친 뇌와 몸을 잠시 쉬게 해준다.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는 것 같달까? 오직 내 몸에 집중하며 땀을 내고 나면 머리가 비워지고, 샤워까지 하면 몸과 마음이 오롯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씻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제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분 좋은 오렌지 향의 러쉬 ‘굿 카마…에브리바디 니즈 썸’ 샤워 젤을 사용하면 긴장이 풀리며 몸이 편안해진다. 같은 향의 러쉬 ‘카마 보디 스크럽’으로 피부의 각질과 노폐물을 흘려보내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츠바키 ‘0초 헤어팩’ 사용 후 매끈해진 머릿결을 마주하면 부들부들한 촉감에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제품을 꾸준히 써서 바닥이 드러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샤워를 마치면 비워진 공병처럼 한결 깨끗해진 몸으로 온탕에 들어가 명상을 하며 깊은 휴식을 누린다. 수건으로 물기를 톡톡 닦아낸 피부에 공기가 닿는 게 느껴지면, 리셋된 몸과 마음을 다시 건강한 것들로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루틴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종종 업무가 바빠 이를 지키지 못할 때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도, 또 노동일 수도 있는 씻기는 내게 꽤나 중요한 취미이자 휴식이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어준다.
– 심화평(뷰티 크리에이터)
하루의 시작과 끝, 목욕
겨울의 교토. 바닥 난방이 없는 다다미방에서 눈을 떴다. 이불을 둘둘 말고 자도 새벽 공기는 매서웠고,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따뜻한 물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공중목욕탕, 센토(錢湯)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을 뚫고 도착한 목욕탕 앞에서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아직 오전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 일본의 센토는 대부분 오후 3시 반이나 4시쯤 열린다. 그날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지만, 그 안에 담긴 하루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같은 행위지만, 전혀 다른 리듬으로 생활을 감싼다는 것을.
서울에서 자란 내게 목욕탕은 아침의 것이었다. 빠르면 새벽 5시, 늦어도 6시 전엔 불을 켜고 문을 연다. 동네 목욕탕은 주택가 한복판이나 전통시장 한쪽에 자리하고, 오픈 30분 전부터 줄이 생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갓 받은 깨끗한 첫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다. 월 목욕권을 끊어 매일 방문하는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아침에 때 밀고 나면 몸과 정신이 가뿐해져.” 한국에서 목욕은 아직 오지 않은 하루를 맞이하는 준비이자 의식이다.
반면 일본의 센토는 변두리, 저지대 주택가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길에 자전거를 타고 모여드는 사람들. 퇴근 무렵, 별말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김 서린 물에 조용히 몸을 담근다.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서 고단함을 천천히 씻어낸다. 말없이 자신을 다독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의 마지막 정거장 같은 곳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센토를 리모델링해 맥주 바를 결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목욕 뒤, 바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좁은 골목을 따라 귀가하는 풍경을 그린 맥주 광고도 흔하다. 씻는다는 일이 위생을 넘어서 일상의 위로가 되는 셈이다. 한국의 목욕탕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밤의 목욕탕은 썰렁하고, 오히려 아침이 북적인다. 출근 전, 장 보러 가기 전, 하루의 시작점에서 몸을 씻는다.
씻는다는 건 결국, 하루의 어디쯤에서 나를 살펴보느냐는 질문 같다. 어떤 이는 해가 뜨기도 전에 물속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깨우고, 어떤 이는 해가 저문 뒤 물속에서 자신을 풀어낸다. 같은 온도, 다른 리듬. 김이 서린 물 위에,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하루가 나란히 떠 있다.
– 이인혜(<씻는다는 것의 역사> 저자)
- 사진
- GETTYIMAGESKOREA(샤워기), TOM SCHIMACHER/TRUNKARCHIVE(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