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가 표현한 색의 언어

신지연

색은 언어가 되고, 움직임은 표현이 되며, 각 주얼리는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된다.

브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포함된 불가리의 새로운 하이엔드 컬렉션 ‘폴리크로마(Polychroma)’. 미의 도시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새 컬렉션 폴리크로마를 공개하는 성대한 막이 올랐다. 600점에 달하는 하이엔드 피스부터 백, 아이웨어, 그리고 향수까지, 불가리 세계의 모든 게 집결한 그날의 찬란한 순간을 되새기며, 메종의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치오 부오나마사 스틸리아니(Fabrizio Buonamassa Stigliani)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레코로만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상.
네크리스 중앙에 자리한 131.21캐럿의 스피넬이 천상에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셀레스티얼 모자이크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매해 이맘때면 전 세계 곳곳에서 하이 주얼리 메종들의 성대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단연 기대가 되는 이벤트가 불가리가 준비한 행사다. 쇼룸 투어부터 프라이빗 쇼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완성도 높은 구성은 본 적 없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올해 불가리는 우리를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도시, 타오르미나로 초대했다. 고대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매혹이 교차하는 이곳, 시칠리아의 보석이라 불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메종의 새로운 하이엔드 컬렉션 ‘폴리크로마(Polychroma)’가 공개됐다. ‘폴리크로마(Polychroma)’는 그리스어로 다수를 뜻하는 ‘폴리(poly)’와 색을 의미하는 ‘크로미아(chromia)’를 결합한 단어다. 그 이름 그대로, 이번 컬렉션은 ‘색’이라는 주제에 대한 찬사이자 탐구의 결과다. 이번 이벤트가 기대가 되는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만 꼽는다면, 총 600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이 소개되었다는 점. 그중 60점은 초고가의 밀리
언달러 피스로, 불가리 역사상 가장 많은 하이엔드 피스가 한자리에 모였다. 주얼리와 워치뿐 아니라 백, 아이웨어, 향수까지 확장된 이번 컬렉션은 다채로운 형태와 색, 재료가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했다. 마치 모든 빛을 흡수해 자신만의 색으로 내뿜는 프리즘처럼 말이다.

우리는 방대한 규모의 마스터피스를 만나기 위해 15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폴리크로마 쇼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대 극장의 커튼을 연상시키는 오간자 베일이 부드럽게 공간을 감싸고, 조각상들이 쇼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쇼룸의 하이라이트 공간인 ‘갤러리 오브 원더스(Gallery of Wonders)’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메종의 DNA와 절정의 장인 정신이 만나 탄생한 단 다섯 점의 유일무이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폴리크로마 행사에 참석한 블랙핑크 리사의 모습.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그 첫 번째는 ‘불가리 코스믹 볼트(Bvlgari Cosmic Vault)’.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Lucia Silvestri)가 천체 별자리와 로마의 상징적인 돔형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작품이다. 깊은 로열 블루 색조의 사파이어가 시선을 사로잡는 이 피스에는 별의 아름다움과 건축의 웅장함에 대한 메종의 찬사가 담겨 있다. 두 번째 작품은 ‘불
가리 셀레스티얼 모자이크(Bvlgari Celestial Mosaic) 네크리스’인데, 예리코의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받아, 생명과 성장의 이미지를 다채로운 젬스톤과 다이아몬드로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네크리스 중앙에 위치한, 매혹적인 붉은빛을 띠는 스피넬이 화려함의 정점을 장식한다. 이름에서부터 생동감이 느껴지는 세 번째 작품, ‘폴리크로마틱 블룸(Polychromatic Bloom)’. 500개 이상의 요소로 이루어진 이 네크리스는 강렬한 색상 조합과 볼륨감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루벨라이트를 중심으로 페리도트와 탄자나이트가 양옆에 자리해 놀라운 삼중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 실베스트리는 “폴리크로마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예요”라며 이 작품을 소개했다. 이어지는 ‘에센스 오브 옐로우(Essence of Yellow) 링’은 1928년 레오닐드 불가리(Leonilde Bulgari)가 어머니를 위해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트롬비노(Trombino) 링을 오마
주한 작품이다. 희귀한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태양의 생명력과 환희를 담아냈다. 마지막은 ‘마그누스 에메랄드(Magnus Emerald) 네크리스’. 고전주의와 현대성이 맞닿은 순간을 표현한 이 피스에는, 메종이 지금껏 선보인 것 중 가장 큰 에메랄드가 사용되었다. 자연의 위대한 선물에 찬사를 보내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인간에게 경의를 표한 작품이다.

기념비적인 마스터피스뿐 아니라, 진보적인 메종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장치 세 가지를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다. ‘폴리크로마 시어터(POLYCHROMA THEATRE)’에서는 시각예술가 주세페 로 스키아보(Giuseppe Lo Schiavo)의 설치 작품을 통해 조각상 표면이 살아나는 듯한 몰입형 체험이 가능했다. 두 번째로는 애플 비전 프로를 통해 불가리의 젬스톤 세계를 혼합 현실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크로마틱 유니버스(Cromatic Universe)’를 최초로 공개했다. 마지막으로 럭셔리 하이 주얼리 최초의 ‘커넥티드 주얼리(Connected Jewelry)’가 공개되었는데, 이는 초정밀 마이크로 인그레이빙 기법을 통해 각 주얼리에 고유 코드가 새겨지며, 스마트폰 스캔 한 번으로 소재, 희소성, 장인 정신 등 해당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게 해주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예술과 기술, 유산과 비전이 교차한 이번 컬렉션을 통해 불가리는 다시 한번 이탈리아 하이 주얼리의 무한한 가능성과 ‘색’이 주는 마법 같은 힘을 온전히 체험하게 해주었다.

폴리크로마의 정체성은 하이엔드 워치 컬렉션에도 이어졌다. 불가리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치오 부오나마사 스틸리아니(Fabrizio Buonamassa Stigliani)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번 컬렉션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W Korea> 먼저, 불가리 폴리크로마 이벤트를 성대하게 마무리한 것을 축하한다. 워치에 담긴 조형적 아름다움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번 컬렉션의 기획 의도와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파브리치오 부오나마사 스틸리아니
이번 컬렉션은 불가리의 유산을 바탕으로 빛과 색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했다. 정교한 워치메이킹과 세련된 주얼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성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색’을 통해 워치가 단순한 장식을 넘어 감정과 이야기의 매개체로 작동하고, 하나의 감정적 서사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컬렉션의 키 포인트인 ‘색’은 단순히 장식 그 이상의 조형적 언어로 느껴졌다. 디자인 과정에서 어떻게 해석하였고, 그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색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시계의 구조와 디자인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케이스의 곡선에 반사되는 색, 다이얼 위로 빛 반사가 일어날 때 비치는 색의 움직임까지, 사소한 요소 하나에도 색이 개입한다. 우리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색을 찾아 나섰고, 색과 재료, 형태를 조화롭게 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탐구를 거쳤다. 최종적으로 총 56종의 보석을 활용해 다층적인 색의 레이어링을 구현했으며, 문화와 감성을 다채로운 색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했다.

주얼리와 워치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엔드 워치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창의성, 장인 정신, 그리고 예술성.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옥토피니씨모’나 ‘루체아’ 컬렉션과 달리, 이번 컬렉션 하이엔드 워치에서는 색감과 형태, 불가리 고유의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화이트 골드와 옐로 골드 소재에 블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케이스와 베젤, 블루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옐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다이얼, 마이크로 무브먼트 ‘피콜리씨모’를 탑재한 디바 하이 주얼리 워치.
현대무용계의 전설, 웨인 맥그리거 경이 연출한 안무를 추고 있는 댄서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가장 도전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각 보석은 크기와 색감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기술적으로 정밀하게 배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색의 조화와 기술적 정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이 가장 까다로운 과제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마스터피스가 있다면?
‘폴리 멀티튜드 하이엔드 워치 네크리스(Poly Multitude Highend Watch Necklace)’가 떠오른다. 총 1,340시간이 투여된 이 작품은 로마의 건축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 제단 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피스이다. 떨림 장치 위에는 섬세한 나비 모티프가 장식되었고, 구름 장식은 분리해서 이어링으로 착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채로운 젬스톤과 소재를 융합해 베르니니 작품 특유의 장엄함을 구현했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브먼트인 피콜리씨모 BVL100을 장착해 기술력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컬렉션의 주요 워치들에는 피콜리씨모(Piccolissimo) 무브먼트가 탑재되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피콜리씨모 BVL100’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원형 기계식 무브먼트다. 기술적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시계 디자인의 예술성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된 이 장치는 지름 12.3mm, 두께 2.5mm, 무게는 1.3g에 불과하지만, 102개의 부품이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메종의 아이코닉한 세르펜티 시크릿 워치와 같은 시크릿 하이 주얼리 워치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기술과 디자인이 집약된 비밀 코드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와 로즈 골드 소재에 블루 사파이어, 차보라이트, 아쿠아마린, 옐로 사파이어, 루비, 루벨라이트, 자수정, 터키석, 말라카이트, 솔달라이트를 세팅해 극강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지오코 디 포르메 에 콜로리 하이 주얼리 시크릿 워치. 분리 가능한 브로치가 워치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다채로운 보석을 정밀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담아낸 투보가스 에 콜로리 하이 주얼리 만체트 워치는 불가리가 만들어낸 완벽한 마스터피스이다.
메종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인 세르펜티 라인도 등장했다. 화이트 골드 소재에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세르펜티 에테르나 하이 주얼리 워치.
화이트 골드 소재에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세르펜티 에테르나 하이 주얼리 워치.

그간 불가리는 프라그먼트 디자인,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을 펼쳤다. 계획 중인 협업이 있다면?
협업은 불가리 메종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자극제가 되니까.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할 협업이 곧 공개될 예정이며, 특히 한국 불가리 팬들에게는 더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묻고 싶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자동차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이력이 워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두 분야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자동차와 워치 디자인은 모두 정확성과 균형, 그리고 기능성의 미학을 중시한다. 두 분야 공히 곡선, 유기적인 라인, 구조 속에 기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능을 형태에 녹여내는 방식’에서 둘은 아주 가깝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 고유한 루틴이 있다면?
영감을 얻으면 그것을 시각화하고, 손으로 스케치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후 다양한 재료와 색을 실험하며 개념을 조율하고, 형태와 감정을 설계해간다.

메종의 하이엔드 워치를 전시한 공간의 전경.
메종의 하이엔드 워치를 전시한 공간의 전경.

불가리라는 브랜드의 특별한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이엔드 주얼리와 워치메이킹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점.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처럼 기술력으로도 인정받는 워치 컬렉션과 폴리크로마 컬렉션 같은 하이엔드 워치 컬렉션 둘 다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불가리 워치가 나아가려는 방향, 그 비전이 궁금하다.
마치 운동선수가 1초의 기록을 줄이기 위해 한계를 넘어서려고 무수히 도전하는 것처럼, 디자인과 기술력 모두에서 시험과 도전을 통해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세르펜티 에테르나와 옥토 피니씨모의 극한의 얇기에 대한 도전처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늘 새롭고 대담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자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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