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오웬스의 세 가지 그림자

전여울

릭 오웬스를 패션 디자이너로만 정의하는 것은 어쩐지 납작한 처사다.

“한자리에만 머물 수는 없다. 멈추는 순간, 서서히 죽어가는 거니까.” 그는 자신이 남긴 이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옷을 만들면서도 늘 옷 너머를 응시했다. 특히 미술, 건축, 가구는 그가 지속적으로 손을 뻗은 영역이자, 곧 릭 오웬스라는 존재를 감싸는 세 가지 그림자다. 머지않아 릭 오웬스의 대규모 회고전 <Temple of Love>가 개최된다. 이 전시를 읽어내는 데, 이 세 가지 그림자만큼 자연스러운 단서는 없다.

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수많은 릭 오웬스들

릭 오웬스는 겁이 많았다. 그는 늘 걱정으로 가득했다. 오웬스는 “너무 위축감이 든다”며 예술 학교를 중퇴했다. 예술계에서의 실패가 “지나치게 개인에게 쏠리는 것 같아서” 다른 영역으로 도망쳤다. 예술가의 길을 걷는 대신, 오웬스는 20대 중반 LA에서 패턴 메이커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예술학도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요제프 보이스와 마크 로스코, 프랜시스 베이컨과 줄리언 슈나벨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요제프 보이스의 수준에 절대 이를 수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1980년대 LA는 할리우드와 언더그라운드가 어우러진 기묘한 조합이었다. 뉴욕의 데이비드 살레, 줄리언 슈나벨이 아트 마켓을 지배하던 시기, LA에선 전혀 다른 실험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스트 빌리지의 갤러리 대신 다운타운의 창고에서, 값비싼 회화 대신 드래그 퀸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예술 학교를 그만두긴 했지만, 그 또한 소득이 없진 않았다. 대학 도서관에서 매일 리서치하며 데이비드 살레와 줄리언 슈나벨을 흉내 내던 그는 요제프 보이스, 마이클 하이저, 존 체임벌린 같은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 한복판에서, 겁 많은 패턴 메이커는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미학을 흡수했다.

2025년 지금, 파리의 패션 뮤지엄 팔레 갈리에라에서 진행 중인 릭 오웬스의 대규모 회고전 에선 그의 작업이 귀스타브 모로, 요제프 보이스, 스티븐 파리노와 같은 공간에 함께 놓인다. 오웬스의 30년 커리어를 아우르는 의상 100여 벌이 거장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된다. 그의 아내 미셸 라미와 공유한 캘리포니아 침실을 완전히 재현했고, 미공개 설치 작품과 비디오 작품도 함께다. 전시는 뮤지엄 밖으로도 확장된다. 정원에는 브루탈리스트 시멘트 조각 30점이 설치되고, 건물 파사드의 조각상들을 스팽글 자수 직물로 감쌌다.

“요제프 보이스는 나에게 영향을 준 최초의 예술가였고, 나는 지금도 그를 예술가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여긴다.” 물론 오웬스는 보이스가 너무 겁났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의지와 예술로 세상을 치유하겠다는 샤머니즘적 확신이. 보이스에게 예술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었다. 모든 인간이 창작자가 되어 사회라는 거대한 조각품을 함께 빚는다는 확장된 예술관은 20대의 오웬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하지만 보이스의 ‘사회 조각’ 개념을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역했다.

2014 스프링 컬렉션 런웨이에서 다양한 체형의 흑인 여성 스텝 댄서들이 춤을 추던 순간, 그의 컬렉션은 옷의 전시가 아니라 ‘사회적 선언’이 됐다. 당시 런웨이는 날씬한 백인 모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플러스 사이즈는 물론 흑인 모델조차 드물던 시절, 스텝 댄서들을 세운 오웬스의 선택은 파격이었다. 보이스가 펠트와 지방을 재료로 세계대전 이후의 상처를 치유했다면, 오웬스는 가죽과 캐시미어로 현대인의 갑옷을 만들었다. 보이스의 그림자는 평생 오웬스를 따라다녔다. “나는 현대미술을 거의 보지 않고 내 일에 흡수하지도 않는다. 미셸은 항상 내가 죽은 예술가들에만 관심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이스만은 예외였다. 그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기준점이다.

존 체임벌린과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운명적이었다. 패턴 메이커 시절, 웨스트 할리우드의 레스토랑 겸 아티스트 스폿인 ‘코콜라’의 벽에는 체임벌린의 거대한 금속 조각이 걸려 있었다. 미셸 라미와 그 아래에서 나눈 키스는 두 사람의 시작점이 되었다. 긴 시간이 흐른 뒤, LA에서 파리로 이주한 오웬스는 다시 체임벌린과 마주쳤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드완 갤러리 개인전의 흑백 사진 한 장. 휘핑크림처럼 보이는 베이지색 폴리우레탄 덩어리들이 찢기고 뒤틀린 채 작고 검은 좌대 위에 놓인 전시 전경. 오웬스는 완전히 매혹되었다. 체임벌린의 폴리우레탄 폼처럼, 오웬스의 원단들도 인체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드레이핑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스티븐 파리노는 오웬스에게 어린 시절의 모순을 되살려주었다. 인구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포터빌 마을의 보수적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소년에게는 이 모든 모순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매일 저녁 제2차 세계대전 전리품으로 가져온 실크 기모노를 입고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던,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기묘한 의식. 16세가 될 때까지 집에서 볼 수 없었던 TV. 철학과 신학, 일본 서예와 건축, 그리고 미술관 도록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거대한 서재. 고등학생 시절 작은 마을까지 침투한 글램 록의 충격. 오웬스는 억압과 일탈, 보수성과 관능, 고급 문화와 반문화가 기묘하게 공존하던 집에서 겁많고 과감한 창작자로 자라났다.

오웬스의 동반자, 미셸 라미의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파리노의 작업을 좋아했고, 그의 작업은 우리 작업과 무척 관련이 깊다. 붕괴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통제된 캔버스라는 점에서 말이다.” 파리노의 2001년 작품 ‘13 Shattered Panels(for Joey Ramone)’ 역시 그런 정신을 드러낸다. 검은 모노크롬 페인팅을 찢고 구겨 파괴한 이 작품에선 완성된 형태에 대한 의도적 파괴가 엿보인다. 펑크 록 밴드 라몬즈에게 바친 파리노의 헌정은 미니멀리즘의 숭고함을 펑크의 날것으로 짓밟아버렸다. 파리노의 파괴된 패널들처럼, 오웬스의 비대칭 실루엣 역시 의복의 구조적 완결성을 거부한다.

전시 는 이 모든 대화의 집약이다. 보이스의 펠트가 오웬스의 캐시미어와 만나고, 파리노의 찢어진 캔버스는 오웬스의 해체된 재킷과 함께 숨 쉰다. 귀스타브 모로의 데카당한 아름다움은 오웬스의 고딕 글래머와 대면한다. 포터빌의 겁 많은 소년, LA의 패턴 메이커, 파리의 디자이너, 그리고 미술관에 선 아티스트까지.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수많은 릭 오웬스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글ㅣ박재용(독립 큐레이터)

브루탈리즘 건축의 자장 안에서

프랑스 미술관 ‘팔레 드 도쿄’에서 개최된 2018 S/S 컬렉션 ‘Dirt’. 예술가 스티븐 파리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옷을 만날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 중 ‘건축’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을 꼽는다면, 작고한 버질 아블로 다음으로 릭 오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버질 아블로야 건축에서 패션으로 전향한 배경이 있어 그렇다고 하지만, 릭 오웬스에게 건축이란 무엇일까? 릭 오웬스는 자주 건축을 빌려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곤 했다.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에 대해 ‘미래적 사원’을 연상시키는 구조라 언급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다듬고 장식성을 제거하는 방식이 브루탈리즘의 본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거나, 한 쇼노트에서는 “제어와 붕괴의 균형이 내 미학의 기초이며, 나는 절제된 구조인 건축과 본능적인 야생사이의 긴장을 좇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루엣 또한 단순히 인체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구조물처럼 다듬어지며, 그는 이러한 작업이 “기능과 구조, 감정의 절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며, 건축 설계와도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고, 무대 세트와 런웨이 연출을 두고는 “패션쇼는 일시적인 건축적 체험”이라 말하며, 공간의 감각을 옷의 감각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뤘다.

이처럼 릭 오웬스에게 건축은 단순한 은유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의 디자인 철학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구조적 시각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형태에 대한 집요함, 구조의 명료함, 감정의 최소화 같은 특징들이 건축적 언어로 설명 가능한 것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자주 ‘건축’이라는 단어를 호출하는지 짐작이 간다. 다만, 릭 오웬스의 작업에 긴밀히 연결되는 ‘건축’은 르코르뷔지에의 근대주의라기보다는 브루탈리즘의 황폐한 아름다움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매끈함보다는 거침, 비례보다는 과장, 안정감보다는 긴장감을 추구하는 그의 미학이, 마치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육중한 구조물과 같은 브루탈리즘 건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부터 70년대 사이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확산된 건축 양식으로, 프랑스어 ‘Béton Brut (노출된 콘크리트)’에서 유래했으며 르코르뷔지에가 처음 언급했다. 재료 자체의 질감과 구조적 요소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특징.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능성과 구조 자체에서 미를 발견하려는 브루탈리즘 건축은 한때 ‘비인간적이고 냉혹한 건축’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솔직한 표현성과 조형적 강렬함으로 다시 재조명받으며 수많은 젊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주목하고 싶은 점은 릭 오웬스가 받은 브루탈리즘 건축의 영향이 단순히 시각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루탈리즘의 윤리적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솔직함, 절제, 구조 중심성에도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형태의 근육을 사랑한다. 건축이 보여주는 구조의 맨살 같은 것, 그게 나에겐 아름다움이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단지 거칠고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에 대한 동경을 넘어, 태도로서의 정직함과 긴장에 대한 경외가 드러난다.

2019 S/S 컬렉션 ‘Babel’.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러시아 건축가 블라디미르 타틀린 등은 이 컬렉션의 시작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들여다보면 그 영향 관계는 더욱 선명하다. 무릎 아래까지 떨어지는 코트, 어깨를 과장한 실루엣, 날카롭게 절제된 라인들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인다. 나아가 옷을 입은 사람까지 포함해 그 모든 것을 건축적 오브제로 다루는 듯하다. 재료를 다루는 측면에서도 브루탈리즘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죽을 노출 콘크리트의 방식으로 표면은 거칠고 두껍게 표현하면서도,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를 드러낸다. 어두운 색조, 무채색의 반복, 그리고 대칭을 거부한 구성 역시 브루탈리즘 건축이 주는 감각과 닮아 있다.

릭 오웬스의 2019 S/S 컬렉션 ‘Babel’은 이러한 브루탈리즘적 감수성이 극적으로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파리의 ‘팔레 드 도쿄’ 앞 야외 계단에서 열린 이 쇼는, 무대 자체를 하나의 브루탈리즘 공간처럼 조성했다. 콘크리트 계단 위로 등장한 모델들은 맨발로 물 위를 걸었고, 구조적 실루엣의 의상들은 마치 고대 신전의 사제나 신화 속 존재처럼 보였다. 거대한 사다리 구조물을 세운 무대 연출은 바벨탑을 연상시켰고, 인간의 욕망과 위계, 균열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구조물이 갖는 상징성과 물성을 극대화했다. 의복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하나의 제의적 건축 언어처럼 기능했다.

그뿐 아니라 릭 오웬스의 개인적인 공간 역시 브루탈리즘적 감수성이 매우 짙다. 그의 파리 아틀리에와 로스앤젤레스 자택, 상점 인테리어까지 모두 콘크리트, 석재, 철골 구조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의복은 공간의 연장처럼 존재한다. 파리의 자택은 19세기 건물 위에 세운 어두운 콘크리트 박스 형태로, 내부는 차가운 대리석, 노출 콘크리트, 모노톤 가구로 채워졌다. 그는 옷을 만들 때, 그것이 서 있을 공간까지 고려한다. 단순히 신체에 입히는 것이 아니라, 몸–공간–구조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조응해야 한다는 태도는 전형적인 브루탈리즘 건축가의 언어다.

결국 릭 오웬스에게 브루탈리즘 건축은 디자인적 수단을 넘어 세상을 구성하고 응시하는 방식 자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옷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숭고하고, 감각적이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압도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가 패션을 ‘입는 건축’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브루탈리즘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패션의 존재 방식에 대한 탐구와 태도라고, 감히 말해본다.

글ㅣ박세미(건축 칼럼니스트)

패션 이후의 창작 언어, 가구

릭 오웬스의 자택에서 진행된 2024 F/W 컬렉션 쇼,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관중석으로 사용했다.

“우리의 영역 표시 행위는 옷으로 시작된다. 옷의 스타일과 그 옷을 입었을 때 나오는 제스처와 자세에서 출발해, 의자를 통해 영역을 피부 너머로 확대한다.” 영국 건축가 피터 스미스슨의 말처럼, 패션 디자이너가 선보인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곧 영역을 넘나드는 경험 그 자체다. 독창적인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일수록, 그들의 가구는 난감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장 폴 고티에는 인체 실루엣을 본뜬 도발적인 형태의 의자를 선보였고, 레이 가와쿠보는 비정형적이고 실험적인 의자로 형태와 기능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했다. 라프 시몬스는 인체 내부 구조와 외피, 장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의자를 디자인했다. 이들은 의자를 단순한 ‘앉는 도구’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구축한 조형 언어와 세계관을 담는 구조체로 삼았다. 그들에게 가구는 옷에서 멈추지 못한 감각이 어떻게 구조물로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인 셈이다. 한편 그중에서도 가장 난감한 것은 단연 릭 오웬스의 가구들이다. 돌, 앨러버스터(석고), 청동, 사슴뿔, 가죽 같은 거칠고도 육중한 재료로 빚어진 그의 작품은 조형성과 물성, 그리고 창작 방식에 있어 원초적 매력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성스럽고 숭고한 미학을 드러낸다. 어딘가 그의 가구는 오브제라기보다 성스러운 제단을 연상시킨다.

가구의 미학은 그것이 놓일 공간과 만들어질 당시 디자이너가 상상한 장면 속에서 살아난다. 어떤 장소에 놓일 것인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까다로울수록 더욱 황홀한 오브제가 된다는 점은 가구를 탐색하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릭 오웬스의 가구는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시작은 2007년, 파리 자택에 두 점의 가구를 직접 제작하면서다. 의자, 침대, 테이블, 조명 등 다양한 유형의 가구는 그의 긴밀한 파트너인 미셸 라미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이들이 창조한 형태는 육중하면서도 절제되어, 기능보다는 존재감과 물성의 힘을 강조한다. 옷에 다 담지 못한 미학을 구조물로 번역한 모습이다. 원시적인 소재와 날것 같은 조형 언어가 얼핏 차갑고 위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창작의 여정, 동행의 시간, 그리고 미셸 라미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존재감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특히 이들 가구의 전위적인 물성은 미셸 라미의 에너지와 호응해 거칠지만 묘하게 따뜻한 낭만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이 가구들은 그들의 삶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가구에서 풍기는 성스러운 긴장감이 곧 매혹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릭 오웬스의 가구는 침대, 의자, 테이블이라는 사적인 용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2019년, 아트페어 ‘FIAC’ 기간 동안 퐁피두 센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You x Art x Centre Pompidou’에서 그는 가구의 확장성을 본격적으로 실험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6개의 침대는 토미 캐시, 데이비드 호일 등 7명의 아티스트가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대로 변모했다. 침대는 더 이상 휴식의 장소가 아닌 참여와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었고, 오웬스의 조형 언어는 이 퍼포먼스를 감싸는 강렬한 의례의 장치로 작동했다. 이후 2024년, 그는 이 침대를 모듈 시스템으로 확장해 뮤지션 트래비스 스캇의 공연 백스테이지 ‘테크 글레이드’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자신의 시그너처인 프렌치 울 블랭킷과 바티핀 합판으로 제작한 이 구조물은 오웬스의 브루탈리즘적 조형 언어를 따라 디자인됐고, 10개 이상의 모듈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결합되며 백스테이지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구성됐다. 스캇은 이를 “나의 뇌 속 연장을 닮은 공간”이라 표현했고, 창작과 휴식이 동시에 가능한 구조로 기능했다고 말했다. 공간의 쓰임을 넘어서, 그 자체가 창작자의 내면을 형상화한 하나의 구조물이 된 것이다. 나아가 2024 F/W 컬렉션 쇼, 릭 오웬스에서 자택에서 열린 런웨이에서 그의 가구는 관중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몽상적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이 가구에 앉아, 드라마틱한 실루엣의 모델들을 한 명 한 명 마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처럼 그의 가구를 통해 드러나는 미셸 라미와의 파트너십, 창작자들과의 우정과 연대, 패션쇼와 콘서트의 감각적 현장성은 이 가구들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치는 헌신과 찬사의 제단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다가오는 6월, 릭 오웬스의 대규모 회고전 , 즉 ‘사랑의 신전’에서는 이 육중한 구조물들이 또 한 번 그의 창작 세계를 온전히 증언하는 조형 언어로 등장할 것이다. 가구는 그렇게 옷 이후의 언어가 되어, 그의 세계를 말한다.

글ㅣ유다미(<매거진 C>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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