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ewe 2023 F/W Collection

명수진

로에베 2023 F/W 컬렉션

2013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조나단 앤더슨은 “로에베에서 10년을 보냈어요. 이제 ‘음, 그다음 챕터는 어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라고 소회를 전했다. 2023년 FW 시즌 로에베는 하우스의 유산인 가죽과 스웨이드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호보백 형태의 ‘스퀴즈 백’을 포함해 로에베 아카이브의 1970년대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디자인의 핸드백을 선보였다. 조나단 앤더슨는 ‘처음 로에베에 합류했을 때에는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꺼내 런웨이로 올리는 것을 거부했다’며 ‘유서 깊은 하우스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로에베 컬렉션이 열리는 파리 동쪽 외곽의 웅장한 샤토 드 뱅센(Château de Vincennes)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안쪽 정원에 설치된 베뉴, 새하얀 런웨이에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라라 파바레토(Lara Favaretto)가 10톤의 색종이 가루를 흩뿌린 21개의 큐브 조각상을 설치했다. 종이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 것으로 컬렉션이 진행되는 동안 형태가 살짝 흔들리기도 했으며, 컬렉션이 끝난 후에는 모두 수거해서 라라 파바레토의 설치 작품에 재사용할 계획이다.

조나단 앤더슨이 만든 로에베 컬렉션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란 시구를 떠오르게 했다. 그가 하우스의 유산에 경외를 보내는 방식은 고작(?) 심플한 원피스 위에 빈티지 드레스를 어사무사하게 프린트하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셔츠 원피스는 숄더백을 멘 것처럼 보이게 자락을 체인과 연결시켰고, 화려하기로 작정한 듯 파리의 장인들이 깃털을 하나하나 붙이며 작업한 옷은 사실 깃털만 빼고 보면 단순한 스웨트셔츠에 불과했다. 우아한 드레이핑 드레스는 가슴 위에 단 골드볼 장식을 빼면 그저 몸 위에 천을 휘두른 것!

조나단 앤더슨은 이처럼 유서 깊은 하우스에서 10년이라는 시간에 잠식되지 않고 힘을 뺀 쿨한 태도로 컬렉션을 차분히 만들어냈다. ‘눈속임’ 기법 역시 모던한 분위기에 일조했다. 많이 구겨진 것만 빼면 평범해 보이는 두 벌의 니트 카디건은 사실 종이에 카디건 사진을 인쇄하고 몸에 붙인 것이다. 조나단 앤더슨이 스스로 ‘플레이모빌 같다’고 표현한 플라스틱 장난감 같은 재킷, 톱, 스커트는 로에베의 시그니처인 가죽 소재를 정교하게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새삼 하우스의 기술력을 일깨워줬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바이럴 된 것은 앵클부츠였는데 바지가 벗겨져 발목까지 흘러내린 것처럼 보이게 한 장난기가 흥미로웠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피날레를 하는 조나단 앤더슨의 무심한 태도가 그가 선보인 컬렉션의 태도와 일맥상통했다. 10년의 세월에도 천재성을 잃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디자이너에게 큰 박수가 쏟아졌다.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영상
Courtesy of 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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