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k Owens 2023 F/W Mens Collection

명수진

릭 오웬스  2023 F/W 맨즈 컬렉션

릭 오웬스 컬렉션의 베뉴는 언제나처럼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판금 소재로 관객의 눈높이보다 높이 솟은 무대를 만들고 오프닝은 릭 오웬스의 뮤즈인 타이론 딜란(Tyrone Dylan)이 맡았다. 검은 망토, 짧은 상의, 반바지를 입은 그는 릭 오웬스의 분신과도 같은 사이하이 플랫폼 부츠를 신고 근육질 몸을 뽐냈다. 슈퍼 히어로를 방불케 하는 실루엣은 릭 오웬스가 일 년 중 겨울에 거주하는 이집트 룩소르(Luxor) 지역의 드라마틱한 풍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릭 오웬스는 ‘이탈리아 베니스가 나의 여름 휴양지라면 이집트 록소르는 나의 겨울 휴양지이다. 광활함은 영화 <십계(The Ten Commandments)>에서 세실 데밀(CECIL B. DEMILLE) 감독이 꿈꾼 판타지와 거의 일치한다. 나는 밤마다 운동하며 이어폰을 끼고 이 영화를 보는데, 이처럼 현실과 판타지를 결합하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하늘로 뾰족하게 솟거나 광활하게 확장된 어깨 라인, 두터운 패딩으로 단단하게 결박한 듯한 아우터, 가늘고 길게 과장한 다리…. 릭 오웬스는 인체의 비율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남녀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거의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니엘 살스트롬(Daniel Sallstrom)은 모델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몇몇 모델은 커다란 블랙 렌즈로 눈동자 전체를 가렸고, 얼굴에 칠한 검은 삼각형 라인은 이집트 파라오를 연상시켰다.

릭 오웬스의 미학은 의식 있는 공정을 통해 완성된다. 항공 점퍼는 GRS(GLOBAL RECYCLED STANDARD) 인증을 받은 재활용 폴리아미드 나일론으로 제작하며, 천연염료(검은색을 내는 대나무 숯이나 녹색을 내는 올리브 폐기물 등)를 합성 섬유에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기술로 염색한다. 데님 미디스커트와 스파이크 숄더 블루종은 일본산 인디고 셀비지 데님(18OZ JAPANESE INDIGO SELVEDGE DENIM)을 사용하고, 이탈리아 베네토에 있는 데님 워싱 공장은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는 정수 공정을 갖춰 ZDHC(Zero Discharge of Hazardous Chemicals) 인증을 받았다. 아우터와 점프슈트는 GOTS(글로벌 유기농 섬유 표준) 인증 유기농 면 소재로 1597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롬바르디 공장에서 직조된다. 섀기 재킷은 LWG(Leather Working Group) 골드 등급을 받은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무두질 공장에서 공급받는다. 얇고 부드러운 피라루쿠 피시 스킨은 지난 시즌에 이어 계속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브라질 원주민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많은 이들이 릭 오웬스를 이변 없는 파리 컬렉션의 하이라이트 컬렉션으로 꼽는 것은 디자이너의 미학적 감각뿐 아니라 이처럼 굳건한 철학 때문이 아닐까!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영상
Courtesy of Rick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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