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가운데 마법 같은 쿠튀르의 순간

이예진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 디자이너 교체, 취소된 쇼,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어수선했던 파리 도심 한가운데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 2024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쿠튀르 메달리스트

올림픽을 위한 컬렉션을 준비한 톰 브라운. 지난해 첫 쿠튀르 컬렉션 발표 이후,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두 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자연 가공한 무명천에 장식한 그로그랭 테이핑, 에디터 이름을 필기체로 담은 아틀리에 코트 초대장을 보내주었고, 몇몇 참석자들은 가운을 입고 쇼를 관람했다. 금박 자수 장식을 넣은 비대칭 실루엣 코트나 싸개단추를 촘촘하게 넣은 중세풍 재킷, 크리놀린과 코르셋 디테일, 밀푀유를 연상시키는 레이어드 스커트, 어디에나 활용되는 트위드가 강조되었고, 하우스의 상징 레드, 블루, 화이트 테이핑으로 톰 브라운의 쿠튀르 정신을 드높였다. 손에 든 부채, 수영선수 유니폼을 페인팅한 드레스, 금은동 메달 색을 장식한 재킷은 메달 수여식의 단상대로 올랐다. 스포츠와 선수, 쿠튀르가 만난 완벽한 올림픽 이펙트!

빅 재미

추상주의에 대한 과장! 입체파로서의 쿠튀르 큐비즘! 동그라미, 삼각형, 사다리꼴 등 기하학적 블록들이 담긴 드레스가 런웨이 무대를 힘차게 가로지르며 등장했고,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가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어둠을 지나 등장한 쿠튀르의 유쾌한 듀오,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에게 박수 세례와 휘파람이 이어졌다.

올림픽 여신

파리 올림픽을 앞둔 지금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스포츠웨어를 재
구성해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아티스트 페이스 링골드의 작품을 핸드 자수 패널로 작업한 종목별 운동선
수들의 무대 콘셉트를 비롯해 올림픽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로 떠난 그녀는 그리스 의복의 시초이자 기원전 6세기부터 착
용한 여성의 전통 의상인 페플로스를 내세웠다. 실크나 저지, 메탈릭한 크리스털을 부착한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코르셋에 고정하는 탱크톱과 보디슈트, 종아리를 타고 오르는 스키머 샌들로 스포티한 무드를 더했다. 여성의 권익 신장과 몸을 해방시키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계속된다.

장갑 없이는 못 살아

Balenciaga
Elie Saab

드레스와 매치된 장갑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이번 시즌. 팔 라인을 완벽하게 감싸는 장갑을 매치해 여전사 코드를 강조한 스타일링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신부를 위하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꽃, 피날레와 오프닝을 장식하는 웨딩드레스의 향연! 물론 일반적인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보디슈트 뒤쪽에 길게 늘어뜨린 드레스 장식, 점프슈트에 매치한 롱 베일, 깃털 장식 볼가운 등등. 조금은 발칙한 코드가 더해져 재해석된 이 시대의 신부들!

잔혹 동화

유령의 집에서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 팀 버튼과 프랑켄슈타인, 애거사 크리스티 또는 암흑세계에 존재할 것만 같은
다채로운 캐릭터가 등장한 디스토피아적인 쇼!

차원을 넘어

쿠튀르의 아리송한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확장하는 디자이너 뎀나의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 컬렉션. 뎀나의 두 번째 컬렉션이자 하우스의 51번째 쿠튀르 컬렉션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했다. 이번 컬렉션의 4분의 1 이상이 업사이클링 아이템으로 구성되었다고 밝힌 이들은 특수 처리한 면과 하이브리드 패딩, 재킷을 레이어드한 듯한 데님과 아트 페인팅
한 스웨트셔츠, 데님 팬츠를 거꾸로 돌려서 만든 뷔스티에 드레스, 벨트와 패브릭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드레스에는 모두 테크니컬한 스판덱스 소재로 만든 오페라 글러브를 착용했다. 트롱프뢰유 트위드, 오간자와 저지에 장식한 시퀸과 비즈, 크리스털 장식 피시넷 가운은 수천 시간 공들여 수작업한 작품. 네오프렌과 패딩, 테리, 스웨트셔츠와 팬츠, 데님이 캐주얼을 넘어 오트 쿠튀르 영역으로 당당하게 입성하는 마법이 발렌시아가 하우스에서는 가능하다.

백전노장

90세를 눈앞에 둔 백전노장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의도한 듯 89개의 룩과 자신의 피날레 인사로 90개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흐르는 실루엣의 팬츠 슈트, 날카롭게 재단된 테일러드 재킷, 벨벳 소재와 진주 단추, 플랫슈즈와 베레, 몸의 실루엣을 타고 흐르는 간결한 이브닝드레스는 그가 애정하는 코드다. 마치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벨벳 블라우스와 오간자 소재에 수놓은 진주 장식, 진주를 발처럼 엮어 만든 케이프, 매우 섬세한 소재로 직조한 시스루 톱과 플레어스커트는 그가 여전히 우아한 이브닝 룩을 선보이는 대가임을 입증했다.

뜨거운 피

장 폴 고티에의 7번째 게스트 디자이너의 주인공은 바로 니콜라 디 펠리체. 이 새로운 형식의 콜라보가 시작된 2021년, 바로 그해에 꾸레쥬 컬렉션으로 데뷔한 그는 치토세 아베나 올리비에 루스테잉, 글렌 마틴스, 하이더 아커만, 줄리앙 도세나, 시몬 로샤보다는 경험이 적은 디자이너다. 하지만 기운을 잃어가던 꾸레쥬를 다시금 동시대의 뜨거운 브랜드로 일으켜 세운 이 혈기 왕성한 벨기에 디자이너가 보여줄 특별한 쿠튀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티에의 아카이브에서 꺼낸 후크 앤 아이(hook & eye)와 코르셋 디테일을 결합한 개버딘, 트렌치 태피터, 시스루 드레스, 눈썹 라인까지 장식한 아방가르드한 직각 톱, 무릎과 속옷 라인까지 절개를 더한 팬츠와 수많은 후크 앤 아이 4만 개로 완전하게 뒤덮은 드레스 등등 곳곳에 펠리체식 코드가 더해져 시선을 모았다.

오 놀라워라
인간의 손으로 만든 하나의 작품. 최고의 소재로 수백 시간을 들여 완성한 디테일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가까이 봤을 때 더 놀라운 이 시대 장인들의 한 땀 한 땀.

Thom Browne
Thom Browne
Thom Browne
Arzadei
Alexis Mabille
Elie Saab

오페라 드라마

올림픽을 앞두고 공사 중인 그랑팔레를 떠난 샤넬의 이번 시즌 쿠튀르 무대는 오페라 가르니에로 결정되었다. 골동품처럼 보이는 오페라 안경을 게스트에게 보냈고, 이는 곧 오페라 무대에서 쇼를 관람한다는 것을 뜻했다. 샤넬을 떠난다는 버지니 비아르의 소식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열린 쿠튀르 쇼는 샤넬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팀이 담당했다. 태피터 소재 오페라 케이프를 입은 비토리아 세레티가 오프닝을 장식했고, 이어 클래식 스커트 슈트, 꽃과 스팽글, 크리스털이 뒤덮인 드레스와 퍼프 소매 실루엣 블라우스와 이브닝 케이프 등이 등장했으며, 모든 룩에는 리본 장식이 활용되었다. 그리고 피날레는 안젤리나 켄달의 볼륨감 있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문을 닫았다. 오페라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재현한 샤넬의 신부와 함께 블랙과 화이트 드레스의 드라마를 만끽했던 시간.

CHANEL HAUTE CO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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