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라운' 시즌 4의 다이애나비, 엠마 코린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The Weight of The Crown

2021-12-08T15:48:54+00:002021.12.09|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 4의 다이애나비, 엠마 코린(Emma Corrin)이 팬데믹 시기에 유명세를 얻게 된 건 다행일지 모른다. 덕분에 코린은 파파라치와 밀려드는 스케줄에 치일 일 없이, 하지만 연이어 작품에 부름을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드레스처럼 입은 박스와 슈즈는 로라 반스 제품.

엠마 코린(Emma Corrin)이 줌 화면 너머로 밝게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 당시 코린은 런던의 해럴드 핀터 극장에서 한 달간 상연 중인 새 연극 <안나 X>의 공연 3주 차에 접어든 상태였다. 다행히 코린의 웨스트엔드 데뷔작은 찬사를 받았다. “최선을 다해 공연했어요. 주옥같은 대사가 가득한 연극이지만, 호불호가 크게 갈릴 거라고 생각했죠.” 그 연극은 가짜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상류층 사회를 속여 2017년 경찰에 체포된 러시아 출신 사기꾼, 안나 델비(실명은 안나 소로킨)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인공 안나는 틴더와 비슷한 데이팅 앱을 개발해 스타트업 유망주가 된 아리엘을 유혹하려는 인물로, 안나 역할은 엠마 코린이, 아리엘 역은 나반 리즈완이 맡았다. 80분간 극 중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한 두 사람은, 코린의 설명에 따르면 ‘흡인력 강한 어느 테드 강연’처럼 공연을 이끌어간다. “다양한 억양을 빠르게 익혀야 했어요. 미국 중서부 출신 여자친구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매번 ‘뭐라고? 아,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실리콘밸리의 남자들처럼요. 저는 중서부 억양이란 걸 알아볼 생각을 한 적도 없었어요. 무난한 쪽만 해왔죠.”

사실 런던 상류사회 여성인 슬로운족(Sloane Ranger)의 말투를 익히는 건 켄트에서 자란 코린에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피터 모건이 연출한 히트작 <더 크라운(The Crown)>에서 코린이 재현한 고 다이애나비의 모습은 모두가 인정한 명연기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무명의 엠마 코린은 같은 드라마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배우 올리비아 콜먼을 제치고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함께 출연 중인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인으로 성장했다. <더 크라운>의 가장 최근 시즌은 지난해 공개된 시즌 4이고, 이 10부작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톱은 마르쿠 히베이루, 모자는 피오나 베네트, 장갑은 로런 페린 제품.

편안한 팬츠에 니트 스웨터를 입고, 소파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코린에게서 유명세에 당황스러운 기색보다 덤덤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연륜 있는 배우나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움과 확신 있는 태도가 엿보인달까? “어젯밤 남동생이 제 공연을 보러 왔어요. 우리 연극은 데이팅 앱이 얼마나 엉망진창이며 우스꽝스러운가를 알려주는 대사가 많기 때문에 더 재밌었죠. 왜냐면 제 동생에게도 데이팅 앱과 관련된 기막힌 사연이 있거든요.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했다고 동생한테 한마디 들을 것 같은데…(웃음) 여튼 무대 인사를 할 때 제가 윙크를 했더니,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주더군요. 행복했어요. 유명세를 타니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을 들어도 뼛속 깊이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은 없는데, 어젯밤에는 좀 울컥했어요.”

사실 최근의 모든 일은 코린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만큼 여유롭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코린은 <안나 X>의 리허설 직전까지 해리 스타일스와 데이비드 도슨이 출연하는 영화 <마이 폴리스맨(My Policeman)> 촬영을 진행했다. <마이 폴리스맨>은 작가 베탄 로버츠가 2012년에 발표한 소설로,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1950년대 영국 브라이튼에서 연인 관계였던 소설가 E.M. 포스터와 유부남 경찰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코린은 남편의 사랑을 다른 남자와 공유해야 했던 경찰관의 아내 마리온을 연기한다. 이후에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의 리메이크작에 주연으로 출연할 계획이다. 이 작품은 어딘가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D. H. 로런스의 장편소설을 여성의 관점으로 그려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거예요. 이미 수많은 해석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터틀넥 보디슈트와 모자는 버버리 제품.

다이애나비가 파리에서 일어난 자동차 충돌 사고로 세상을 떠난 1997년, 코린은 두 살배기였다.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백지상태에서 출발했죠.” 16세부터 28세까지의 다이애나비를 연기한 코린은 언어 치료사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귀족 특유의 억양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더불어 배우 라미 말렉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에 동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저명한 안무가 겸 행동 교정가인 폴 베넷과 며칠간 비밀 합숙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는 다이애나의 몸과 마음 상태에 집중하며 내러티브를 구축했고, 고개를 기울이고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특유의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했다. “따뜻한 환대를 기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불안정했던 유년 시절과 분명 연결돼 있어요.” 코린이 말을 이어간다. “다이애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애정 어린 시선과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랐지만, 왕실은 그녀의 생각과 정반대였죠.”

코린이 바라본 대로, 차갑고 거대한 버킹엄 궁전 속에서 다이애나비의 외로움은 커져만 갔고, 결국 그녀는 궁 입성 이틀 만에 자기만의 행보를, 혹은 왕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잘 알려졌듯 다이애나는 폭식을 하고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신경성 과식증을 겪었는데, 코린은 이 모습을 반드시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요. 이런 마음의 싸움은 음식이 아닌 감정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예요. 음식을 몸 밖으로 뱉어내는 일이 그녀에게는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것을 꺼내는 행위와 마찬가지였던 거죠.” <더 크라운>에는 다이애나비가 남편의 관심을 얻으려 어딘가 어색하게 구는 장면도 등장한다. “댄스 장면에서는 다이애나의 강렬하고 젊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찰스 왕세자의 마음을 돌리려는 그녀만의 해결책이었죠.” 그러나 조쉬 오코너가 연기한 찰스 왕세자는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빌리 조엘의 ‘업타운 걸’에 맞춰 순수하면서도 어색한 몸짓으로 몸을 흔드는, 민망한 아내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만다. 다이애나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오페라의 유령>의 수록곡 ‘바람은 그것뿐(All I Ask of You)’을 부르며 이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찰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나 찰스는 이런 그녀의 행동을 여동생에게 ‘괴이하다’고 표현한다. “확실히 하이틴 무비의 범주는 아니었죠.” 누구의 말마따나 이런 ‘괴이한’ 장면들을 지켜보다 보면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잔혹 동화의 슬픈 엔딩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조차도 비슷한 감정에 휩싸인다. 코린은 상대 배우인 오코너와의 우정이 이러한 순간들을 잘 이겨내도록 도와주었다고 믿는다. 오코너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둘 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패한 결혼이 주는 미묘한 뉘앙스를 오랫동안 연구했답니다. 맡은 캐릭터에 집중할 뿐 아니라 서로를 마음으로 돌보고 챙기기도 했죠. 이런 관계를 형성한 결과 어떤 장면이든지 그 사건 속에 존재하는 진실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케이프, 보디슈트와 슈즈는 카야 치에 제품. 브리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엠마 코린은 골든 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고인이 된 다이애나를 ‘연민과 공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인물이라 밝히며 감격적인 헌사를 전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코린과 다이애나 사이에는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온라인으로 열린 골든 글로브에서 코린이 상을 받을 때 그녀는 아파트에 있었고, 옆 방에는 대학 시절의 플랫 메이트와 반려견 스펜서가 대기 중이었다. 어린 다이애나비가 룸메이트와 살던 아파트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인 버킹엄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장면과 겹치는 데가 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코린은 대학 시절 친구와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변치 않고 자리에 있어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이전부터 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든 과정을 함께한 사람이죠.”

코린은 <더 크라운>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사실뿐 아니라 팬데믹 기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제 삶에 찾아온 일생일대의 변화지만, 감당할 만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펼쳐지는 레드카펫 행사와 TV 출연 없이, 그저 일을 한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신고식’은 가볍지 않았다. 다이애나처럼 늘 파파라치 군단의 함성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친구와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의 모습을 포착하려 드는 파파라치나 해리 스타일스와의 키스신을 외설스러운 것으로 둔갑시키는 타블로이드지에는 내성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엠마에 대해 조쉬 오코너에게 묻자, 그는 “엠마는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대중의 시선이 주는 압박감에 대해 잘 알고 있죠. 오랫동안 대중 앞에 서온 사람들을 포함해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7월 초, 코린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그녀/그들(She/They)’이라고 설정했다. 여성인 동시에 논바이너리임을 밝힌 것이다. ‘그들’은 이번 인터뷰에서 그 언급을 피했지만, 코린은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한 파급력을 잘 인지하고 있다. “플랫폼을 관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재킷과 팬츠는 스키아 파렐리 오트 쿠튀르, 귀고리는 까르띠에 제품.

자신이 성 중립적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 코린은 가슴 주변을 천으로 둘러맨 자신의 흑백 사진 여러 장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그 당당하면서도 위태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사진 아래엔 코린의 진심이 담겼을 문구가 적혀 있다. “드디어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붕대를 찾았다. @sirdavidsimon과 함께했고, 복싱 랩을 사용했다. 순간을 기록해준 그에게 고맙다. 아주 친밀하고, 새롭고, 멋진 시간이었다. 틀린 여정은 없다. 수많은 반전과 변화가 있겠지만, 괜찮다! 그 또한 반갑게 맞이하면 되니까.” 코린의 모든 팔로워가 그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을지라도, 코린의 따뜻한 면모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이애나비라면, 공감과 격려를 담아 작은 하트를 띄워 보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