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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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대가 이제 막 배의 돛을 올린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의 삶에 영문 없이 연기가 찾아왔고, 연기는 난생처음 김영대를 뜨겁게 달군 불씨나 다름없었다. 김영대는 말했다. 욕심은 끝이 없어요. 잘하고 싶을 뿐이에요.”

꽃무늬 실크 셔츠는 디올맨 제품. 링은 에디터 소장품.

요즘 유일한 길티 플레저가 당신이 출연하는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2>를 보는 거다. 솔직히 말해 욕하면서 본다.

김영대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웃음).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다는 말도 들어봤다.

납치, 감금, 살인, 불륜, 패륜이 한 회에 휘몰아친다. 심지어 지난주 방송에선 극 중 당신이 좋아했던 배로나(김현수)가 영문 없이 살해당했다.

대본을 보고 나도 놀랐다. 바로 현수한테 전화해서 물었다. ‘너 죽어?’(웃음) 현수 본인도 잘 모르겠으니 일단 작가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고 하더라. 내가 연기한 주석훈과 배로나가 그리는 러브 라인이 ‘마라맛’ 전개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의 유일한 숨통이었는데….

<펜트하우스2>를 둘러싼 한 가지 통설을 아는가? 방송을 보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사이 누군가 죽어 있다는 것.

안다. 배우끼리도 대본을 받으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살핀다. 이번 회에서 내 배역이 죽는지 안 죽는지(웃음). 안 죽는다 하면 ‘아이고’ 한숨 돌리면서 그때부터 다들 정독하기 시작한다.

<펜트하우스1>의 최고 시청률이 31.1%였다. 지상파 미니 시리즈 드라마 중 5년 만에 시청률 30%의 벽을 깬 셈이다. 잘 될 거라고 예상했나?

김순옥 작가님의 파워가 있으니까 중년층에게 어필하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부동산, 교육, 불륜이라는 이야깃거리를 마다할 사람은 없으니까.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소위 말하는 ‘막장’이 요즘 시대에도 먹힐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10대, 20대 구분 없이 모든 연령층이 좋아해주니까 신기할 따름이지.

부비트랩처럼 복잡하게 꼬여가는 이야기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에 큰 힘을 실어준다.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선배들이 연기로서 납득시켜주니까. 개연성이 어떻든 그 순간 배우한테 몰입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김소연 선배가 대단하다. 극 중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한 채로 태연자약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나조차 욕하면서 봤다(웃음). 또 엄기준 선배는 현장에서 한 없이 유머러스하다. 후배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늘 먼저 장난을 걸어주는 편인데, 언젠가 여느 때처럼 배우들과 농담을 나누는 모습을 모니터 너머로 봤는데 그 모습조차 사각 프레임 속에서만큼은 엄기준이 아닌 주단태로 비쳐 정말 놀란 적이 있다. ‘저래서 배우구나’ 싶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화면이 한 사람의 에너지로 꽉 찬 듯한 느낌?

크롭트 티셔츠와 부츠컷 데님 팬츠, 로퍼는 모두 구찌 , 액세서리는 앤드뮐미스터 by 아데쿠베 제품. 링은 에디터 소장품.

공부면 공부, 싸움이면 싸움, 못하는 게 없는 주석훈은 한마디로 ‘무결점’이다.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물인데 어떻게 다가갔나?

일단 사람들이 나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게 있다. 마스크가 워낙 차가워 보이니까 주석훈처럼 진중하고 무게 있는 인간일 거라 짐작하는데 실은 정반대다. 평소 수다스럽고 허당이란 소리를 많이 듣는다. 나와 주석훈이 완전 다른 캐릭터다 보니까 처음엔 엄청 헤맸다. 말 한마디에도 ‘포스’가 풍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연기할 때 냅다 힘을 줬다. 그러다 한순간 깨달았다. 완벽한 기질이 내재된 인간은 실은 엄청난 여유를 가진 자들이라고. 그런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구태여 발언하면서 자신을 뽐낼 이유가 전혀 없기에 말을 아낀다. 이걸 알고부터 대사를 툭툭 여유 있게 던진 것 같다.

맡은 배역이 실제 당신과는 영 딴판이라 주변에서 방송을 보며 한마디씩 거들었을 것 같다. 특히 친구들이 이랬겠지. “쟤 저런 애 아닌데?”

걔네는 내가 나오는 드라마를 안 본다. 심지어 너무 연기를 못해서 못 봐주겠다던데?(웃음)

가족은 뭐라고 하던가?

부모님은 늘 응원해주신다.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여동생은 연기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연예계에 몸담은 나를 걱정하는 편이다. 가끔 덜렁댈 때면 곧바로 처신 똑바로 하라는 카톡이 온다(웃음). 여동생이 일찍 철이 들었다. 내가 덜렁대는 성격이라면 그 친구는 늘 조용하고 차분하다.

가족과 사이가 끈끈한가 보다.

정말 감사하게도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이런 걸 행운이라고 하지. 학창 시절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5년 정도 했는데 그때 떨어져 지내다 보니 더 애틋해진 게 있다.

줄무늬 니트 셔츠와 이너로 입은 실크 셔츠는 디올맨 제품.

중국의 명문 대학인 푸단대학에 다녔다고 들었다. 산업무역학을 전공하던 학생 김영대는 어쩌다 배우가 됐나?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 공부에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중국어를 배워 글로벌하게 세상을 누벼보는 건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권유로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뿐이다. 살면서 신념을 가지고 역경을 헤쳐나가거나 삶을 역행한 적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졸업 후 외국계 무역회사에 취직하는 선배가 많았으니까 나도 막연히 나이가 차면 회사에 취직해 샐러리맨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방학 때 처음으로 역행이란 걸 해본 거지.

배우 제안을 받은 건가?

맞다. 방학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지금 소속사를 만났다. 큰삼촌이 장사를 하시는데 어느 날 우연히 가게에 들른 손님이 지금 소속사의 대표님이었다. 막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해 신인을 찾던 시기였는데 때마침 삼촌이 내 조카도 한 인물 한다며 대표님한테 내 사진을 보여줬다고 들었다(웃음).

삼촌의 일장 연설에 “게다가 내 조카 푸단대 다녀”란 말도 빠지지 않았겠다.

그렇지(웃음). 대표님이 삼촌과 만난 다음 날 바로 미팅차 만났다. 그땐 ‘뭐지?’란 생각뿐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나는 그저 방학을 맞아 잠깐 한국에 놀러 왔을 뿐인데.

이런 생각이 스쳤을 것 같다. ‘내가 배우를?’

사실 굉장히 막연한 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에도 매니지먼트 직원들한테 캐스팅 제안을 받은 일이 두세 번 정도 있었으니까.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연예인이란 직업은 어떨까?’란 생각은 어느 정도 했다. 그러다 성인이 돼서 또다시 캐스팅 제안을 받은 셈인데 그때 좀 본격적으로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마침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에 흥미가 떨어진 시기이기도 했고. 가만히 앉아 내 훗날을 그려봤는데 너무 잔잔할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도 들었고 그러면서 바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난리가 났지.

왜인가?

돈 들여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갑자기 때려치운다고 하니까. 무릎 딱 꿇고 말했다. 단 2년 만이라도 좋으니까 휴학계 내고 도전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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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2년이 끝나갈 무렵 어떤 생각이 들던가?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욕심이 생기면서 잘하고 싶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사실 수험생 시절엔 늘 목표가 ‘어느 정도만’이었다. 그런데 연기는 달랐다.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그보다 훨씬 더 잘하고 싶었다.

배우의 길을 택한 것에 어떤 후회도 없나?

없다. 물론 옛날이 그리울 땐 많지.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대학생 시절엔 단칸방에 친구 여섯 명이 같이 살며 동고동락했다.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배우를 하면서부터는 늘 혼자였으니까. 그때의 왁자지껄함이 자주 그립긴 하다.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

노는 것에 진심이었다. 축구며 농구며 가리지 않았고, 일명 ‘와리가리’라고 해서 테니스공으로 편 나눠 노는 것도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공 들고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애였다. 누가 오면 같이 공 차고 오지 않더라도 운동장을 떠나지 않고. 굉장히 활동적이었다.

잘생겼는데 운동까지 잘했으니 한 인기 했을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인가?

나와 1시간 가까이 얘기해봐서 알겠지만 내가 말이 많다.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가 좋다. 상대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도 보는 것 같다. 물론 살면서 가치관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서로 이해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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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2>에서 주석훈은 배로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이 잘못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자각한다. 사랑이 주석훈을 움직였던 것처럼 김영대를 움직이는 것은 뭔가?

나도 사랑인 것 같다. 사랑은 많은 것을 포용하지 않나. 책임감, 배려심 등이 모두 사랑이란 테두리 안에 들어오니까. 그리고 사랑을 지키려면 내가 늘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내 삶의 원동력을 꼽자면 사랑이 유일하다.

과거 인터뷰에서 당신의 신념을 ‘좋은 자존감을 갖자’라고 말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가?

연예계에는 출중하고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안에서 결국 경쟁하는 것이고,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내 부족한 점에만 눈이 간다. 흔들릴 때가 많았다.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신념이라도 좋은 자존감을 갖자고 정한 거다.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봤다. 건강한 자존감은 남한테서 받는 인정이 아니라 자기가 일관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오는 신뢰감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나약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신념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배우란 직업을 갖고 생긴 신념이네.

그렇지. 이전까진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늘 내가 매력 덩어리인 줄 알았다(웃음). 주변에 늘 친구들이 많았고 항상 행복했다. 가정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받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 단점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수트와 링은 알렉산더 맥퀸 제품. 슈즈는 라프시몬스×닥터마틴 제품. 브레이슬릭과 타이핀은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연기는 김영대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나?

연기를 하면 할수록 세상의 정답이란 것을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게 된다. 세상, 그리고 나를 잘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연기 때문이다.

지금 김영대에게 가장 두려운 건?

사실 지금이 제일 두렵다. 다 잘되는 것만 같고 흔히 말하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은데, 그런 지금이 사실 무섭다. 더 책임감을 느끼고 진중해야 할 때고, 한 번 생각할 것도 세 번은 생각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또 사실 나라는 사람이 오롯이 인정 받았기보다 <펜트하우스>라는 작품의 덕을 본 것도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더 신중해지려 하지. 나 때문에 잘된 건 절대 아니니까.

훗날 돌이켰을 때 2021년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

쉴 틈 없이 일했던 일 년. 그런데 나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왜냐면 늘 부족하단 사실을 느끼지만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도 느껴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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