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서울 핫플레이스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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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가볍게 챙겨 훌쩍 떠나기 좋다, <더블유>의 2020 서울 시티 가이드가 여기 있다.

모노하 한남

용산구 독서당로

맑은 물로 머리칼을 적신 듯한 개운함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줄은 몰랐다. 한남동 어귀, 과거 니트 공장을 개수해 문을 연 ‘모노하 한남’의 이야기다. 국내외 작가들의 공예품과 희소성 있는 가구 및 예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모노하 한남은 그 이름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 경향인 ‘모노하(物波)’는 인공의 반대편에 서서 돌, 철판, 유리, 흙 등 자연 소재의 물성 자체에 주목한다. ‘만들지 않는다’에 시선을 두는 이 운동에 시동을 건 인물은 일본에서 타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화가 이우환이었다. 유유자적한 공간 속 피에르 잔느레와 마르셀 브로이어, 장 프루베의 가구 옆으로 이우환의 그림이 바투 걸린 풍경을 마주하면 이곳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회유식 동선으로 꾸린 입구 정원을 숨을 고르며 거닐다 보면 옻칠 공예가 강석근의 작품을 전시한 1층이 드러난다. 안드레아 브루기, 안도 마사노부 등의 손을 거친 공예품과 모노하 한남에서 자체 제작한 간편복은 2층에, 불탑과 규데, 드메이어의 키친 시스템은 3층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탈로 서울

강남구 학동로

가로수길이되 가로수길의 소란에서 잠시 비켜난 골목에 연식 지긋한 다세대 주택이 자리한다. 그리고 301호의 문을 두드려 문지방을 넘으면 그곳은 다시 핀란드가 된다. 서울 한복판에서 핀란드의 주거 문화를 경험하는 숙박 시설 ‘탈로 서울’을 개업한 것은 패션 광고회사에서 오래 몸담아온 지치구 대표다. 3년 전, 북향 배치 탓에 한낮에도 한 줌의 햇빛만이 실내로 들어오는 이곳 공간을 발견하곤 일조량이 적어 독특한 주거 문화를 틔운 핀란드를 떠올리며 탈로 서울을 기획했다. 조도를 확보하기 위한 램프가 곳곳에 달려 어둠을 몰아내고, 목재로 마감한 천장에선 핀란드 사우나에서 맡았을 법한 솔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핀란드 디자인의 거장 알바 알토의 화병과 의자, 김환기의 단색화가 무심히 놓인 공간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호젓한 하루를 지새우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는 건 왜일까? 계절이 바뀌면 탈로 서울은 아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거라고, 문장 사이 다소 긴 쉼표를 두어가며 지치구 대표는 말한다. 그 옷이 바우하우스가 될지, 그도 아닌 무엇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301호의 문지방을 넘어 완전히 다른 도시에 발을 들인 듯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새 옷에 대한 정답은 수수께기로 남겨두는 것이 아무래도 맞는 듯싶다.

기러기식당

용산구 한남대로

한남오거리 부근의 터줏대감 느티나무한의원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 궁금하던 찰나, 돼지 모양의 핑크빛 네온사인을 내걸고 돼지고기 구이 전문점 ‘기러기식당’이 오픈했다. 한남동 일대 ‘맛집’으로 호령한 레스토랑 ‘닷츠’와 ‘한남소관’을 론칭한 ‘디플랏’이 새로이 전개하는 공간이다. 출입구에 들어서면 외투를 보관할 수 있는 라커가 일렬종대로 펼쳐지는데, 독일의 모듈식 가구 브랜드 USM의 가구로 라커를 꾸려 ‘고깃집 맞아?’라는 반갑고 황송한 감상이 불쑥 튀어나온다. 대표 메뉴 ‘찰삼겹’을 주문하면 두툼한 삼겹살 위로 색종이만한 크기의 다시마가 이불처럼 다소곳이 덮여 나온다. 삼겹살을 다시마에 절여 찰기와 감칠맛을 극대화시켜, 소금을 뿌려 간하지 않아도 입에서 육향과 비계의 맛이 제법 강하게 번진다. 고기로 한 상 거하게 즐겼다면 비빔면과 짜장밥, 청국장으로 2차전에 돌입할 차례. 하우스 와인 3종을 비롯해 와인을 20종 가까이 넉넉히 구비했다.

낫배드

마포구 동교로

‘칸틴(Kantin)’은 커피나 간단한 스낵을 먹으며 요기를 때우는 학생 식당을 말한다. 공간 디자인 브랜드 ‘낫배드’의 디렉 터 조남인이 운영하는 카페 ‘낫배드’는 여러 사람이 칸틴에 모여들어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고, 그러다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근사한 창작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문제가 생겨 난동이 일어나는 칸틴의 기분 좋은 법석을 차용한 공간이다. 벽이며 바닥이며 온통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널찍한 공간에는 6인석 테이블 4개만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바닥에는 짐짓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게 하는 읽다 만 책과 커피잔이 우두커니 놓여 있다. 고정된 메뉴판이 없는 대신 매장에서 그날그날 출력한 영수증으로 메뉴를 알리는데, 커피를 주문하면 과거 10년 가까이 로스터로 활약한 조남인 디렉터가 끝내주는 필터 커피를 내려준다. 조만간 카페가 위치한 망원동 근방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전시를 빙자한 근사한 작당을 펼칠 예정. 공간에 악센트를 더하는 포스터와 그래픽은 디자이너 유경원의 솜씨다.

고잉메리 을지 트윈타워점

중구 을지로

올해 4월 을지로4가역 부근 금싸라기 땅에 들어선 것은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이되 ‘감성 편의점’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고잉메리’는 SG다인힐의 박영식 대표, 앤디앤뎁의 김석원 디자이너 등이 의기투합해 출시한 라면 ‘요괴라면’으로 화제를 모은 네오스토어의 야심작이다. 으레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식료품, 잡다한 생활용품과 나란히 주당이라면 모를 리 없는 노량진 ‘형제상회’의 모둠 생선회, 30년 역사를 훌쩍 넘기는 와인 노포 ‘와인나라’의 와인까지 구비한 것으로 보았을 때 이곳은 편의점이라기보다 술꾼을 위한 놀이터라는 수식이 어딘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매장에서는 시종 분위기를 띄우는 라이브 버전의 음원이 흐르고, 일본의 드럭스토어에서 봤을 법한 ‘긱’한 상품 설명 안내판 덕분에 이곳에서만큼은 얇은 지갑도 펄럭거리며 열리기 마련이다. 매장에는 음식을 구입해 바로 즐길 수 있는 테이블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어슴푸레한 저녁에 이곳으로 발길을 향하면 간단한 안주에 와인을 걸치며 술자리를 즐기는 직장인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쿠캣마켓 코엑스몰점

강남구 봉은사로

‘쿠캣마켓 코엑스몰점’은 1인 가구이자 평소 식단 관리에 철저해 매 끼니 건강식을 챙기지만, 술만큼은 포기 못한다고 선언하 는 주당들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지난 5월 스타필드 코엑스몰점에 353㎡ 규모로 통 크게 문을 연 쿠캣마켓 코엑스몰점은 운동장보다 너른 쇼핑몰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도 쉽사리 당도하게 된다. 떡갈비, 닭볶음탕, 볶음밥, 돈가스 등에 이르는 가정간편 식부터 장류, 반찬, 건강식까지 두루 단단하게 구비해 퇴근길 저녁 메뉴를 막막히 고민하다 들르기에 제격이다. 복순도가 손 막걸리, 한강주조 나루생막걸리, 모월 약주 등 40종의 우리 술을 쇼케이스에 빼곡히 채운 술 섹션은 전통주 소믈리에 천수현이 날렵한 혀끝과 애정, 사심을 모두 동원해 직접 꾸렸다.

펠른

마포구 성미산로

커피도 오마카세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카페 ‘펠른’에서 처음 알았다. 늠름한 10인석 바 테이블이 공간을 장악하는 펠른은 ‘2017 월드 시그니처 배틀’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지호 바리스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느 바 못지않게 알차게 구 비한 위스키 술장을 구경하며 입맛을 다시다 보면 1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오마카세 코스가 시작을 알린다. 다크 초콜릿의 쌉싸래한 맛이 진동하듯 피어오르는 필터 커피를 들이켜다가 캐비아 모양으로 만든 커피 알갱이를 톡톡 씹고, 오크통에서 숙성해 위스키를 마시는 감각을 부추기는 커피를 마시는 중간중간 파이와 케이크가 함께 나와 커피와 디저트의 쿵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오마카세에 구성된 메뉴는 단품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시청각

용산구 효창원로

용문시장에서 도원어린이공원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턱끝에 차오를 즈음, 올해 4월 종로 자하문로에서 용문동으로 이전한 ‘시청각’에 당도하게 된다. 2006년부터 편집자 안인용과 큐레이터 현시원이 공동 운영하는 이곳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예술을 경험하는 어떤 다른 상황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시각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전시 공간이다. 재개관과 동시에 진행한 박미나 작가의 개인전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를 통해서는 작가가 1998년 이후 진행한 색칠 공부 드로잉 시리즈와 12색 시리즈 180여 점을 벽면 빼곡히 전시하며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모자이크 서울

중구 다산로

희소한 바이닐을 수집하며 다리품 파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치고 ‘클리크 레코드’를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세계에서 그러모은 수상하고도 희소성 있는 음반을 소개하던 클리크 레코드의 대표 커티스가 광희문교회 부근에 새로운 레코드 숍 ‘모자이크 서울’을 차렸다. 커티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서울에서 거주한지 7년 차에 돌입하는 프랑스인이자, 존댓말과 반말을 오묘하게 섞은 어딘가 중독성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인물. 연세 지긋한 동네 이웃에게 ‘형님!’이라고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다가도 연석원, 박동률 등 한국인에게조차 생소한 음악가의 바이닐을 꺼내며 눈을 전구처럼 밝히는 것을 보면 사뭇 그의 취향으로 쌓아 올린 이곳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이곳에서 다루는 음반은 95% 이상이 중고품으로, 장르는 레게, 훵크, 테크노 등 다양하다. 지갑에 오천원 한 장만 있어도 ‘제대로 된’ 음반을 살 수 있다는 커티스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게, 바닥으로 눈을 돌리면 500원부터 5000원까지 다양한 가격으로 책정된 바이닐 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1500원짜리 음반을 구입한 후 3500원짜리 민트 차를 마시는, 이 소소하지만 아주 그럴싸한 호사를 마다할 이가 있을까?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박종원,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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