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테크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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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 디스플레이 가방과 광섬유 슈즈의 본격 등판. 테크놀로지와 패션의 결합은 어디까지인가? 웨어 테크와 그 저변, 첨단 패션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본다.

만약 스마트워치와 스마트밴드가 웨어러블 기기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다면 루이 비통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 JFK 공항에 불시착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그의 루이 비통 2020 리조트 컬렉션을 통해 경외감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하이테크 럭셔리 제품을 선보였다. 이른바 ‘미래의 캔버스(Canvas of Future)’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이 제품의 정체는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스피디와 더플백에 유연하게 휘어지는 OLED 화면을 부착한 것. 제품화하는 데만 2년 이상의 연구 기간이 소요된 이 제품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로 호평받는 로욜(Royole) 사의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다국적 럭셔리 기업 LVMH의 미래적 비전을 과시하듯 TWA호텔(TWA항공 터미널로 쓰이다가 호텔로 개조된)의 활주로를 유유히 걸어 나왔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겠지만, 스마트폰급의 LED 광량과 1920×1440의 고해상도를 자랑하는 이 스크린은 터치도 가능한 것으로 보도자료에 따르면 결국 스마트폰과 주머니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TV가 루이 비통 활주로에 등장한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도 전인 2007년, 루이 비통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2008 S/S 시즌 스폰지밥이 등장하는 TV 미니 트렁크를 들고 등장했다. 예술계 악동 리처드 프린스와 협업한 이 컬렉션은 아주 익살스러웠으며, 문제적이었다. 과거의 그런 공상이 다시 부활한 것일까? 비슷한 예로 80, 90년생이라면 한 번쯤 신어봤을 발광 신발이 루이 비통 2019 F/W 남성복 쇼에 등장한 사례도 있다. 피날레를 맞아 어두워진 쇼장에 등장한, 무지개색으로 변하는 광 섬유를 사용한 트레이너 슈즈와 키폴은 SNS를 마비시키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패션과 테크의 결합은 그 면면도 속도도 상상을 넘어선다. 단순하게는 럭셔리 브랜드의 핸드폰 케이스나 메종 마르지엘라 2019 S/S 런웨이에 등장했던 백, 슈즈처럼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패셔너블하게 소화하기 위한 액세서리는 첨단 기술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로 보인다.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고, 그 적용은 화려하다. 2017년 선보인 아디다스와 실리콘밸리의 3D 프린터 벤처 기업 카본 (Carbon)이 함께 제작한 ‘퓨처크래프트 4D’는 세계 최초 빛과 산소로 만들어진 미드솔이 특징이다. 특히 몰딩을 없앤 3D 프린팅 방식에 따라 대량생산 가능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이키는 2016년 출시한 ‘하이퍼 어댑트 1.0(영화 <백투더퓨처2>에 등장하는 나이키 슈즈에서 영감을 얻은)’을 더 발전시켜 올해 ‘어댑트 BB(Adapt BB)’를 출시했다. 첫 보급형 어댑트 시리즈인 이 모델은 미리 설정한 끈 조임 강도에 따라 끈을 자동으로 줄여주고,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배터리 잔량에 따라 중창에 장착된 버튼 색이 바뀐다. 이처럼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거대 기업은 디지털 생산과 개인화의 공존을 이미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캔버스 같은 백의 등장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스마트폰처럼 일상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술의 등장은 보수적인 패션 영토까지 변화시켰다.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 최고 기술 기업들이 입주한 첨단 테크 생태계가 조성됐다. 프랑스 기업가이자 백만장자인 자비에 니엘이 25천만 유로를 투자해 파리 화물 기차역을 개조한 111,550제곱피트(기차역의 길이는 에펠탑 높이와 같다)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테이션 F’가 그 현장이다.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한국의 네이버 라인까지, 명성이 자자한 블루칩 대기업뿐 아니라 로레알과 LVMH 그룹의 입주 사실 또한 매우 흥미롭다. LVMH 그룹은 2015년 애플 뮤직 수석 디렉터 이안 로저스를 디지털 최고책임자(CDO)로 영입해 새로운 디지털 언어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의 영입 이후 호라이즌 이어폰과 땅부르 호라이즌 커넥티드 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출시됐고, 이커머스 쇼핑몰 ‘24S’ 론칭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이안은 “단순히 럭셔리 제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려는 게 아니다. 온라인 쇼핑 경험을 럭셔리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LVMH 그룹은 이커머스를 외면한 8년의 시행착오를 뒤로하고 제3의 쇼핑 채널에서 일어나는 쇼핑 경험을 자사 웹사이트로 끌어오기 위해 공을 들인다. 럭셔리 그룹은 변혁은 물론 미적 정교함까지 제공해야 한다. 이른바 테크 쿠튀르. 예를 들면 나무로 만든 마네킹 대신 로봇으로 고객의 치수를 측정하는 유베카(Euveka)의 존재 또한 놀랍다. 유베카는 디자이너와 재단사가 개인화된 치수에 맞게 고객 기반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쯤에서 세계 최초 3D 프린팅 드레스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얻은 이리스 반 헤르펀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그녀가 3D 프린터기를 통해 집대성해온 쿠튀르식 기술력이 얼마나 파워를 발휘하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벨루티의 고객들은 증강현실 기술 스마트픽셀을 통해 슈즈를 커스텀하고, 코냑 브랜드 헤네시는 상품 정보 제공을 위해 9만 병을 스캔할 수 있는 스카이보이의 코드를 부착했으며, 시계 브랜드 제니스는 오르비스(Orbis)가 개발한 홀로그램으로 시계 메커니즘을 매장에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루이 비통과 디올을 클라이언트로 둔 비주얼 인식 기업 휴리테크(Heuritech)는 SNS를 통해 공유되는 수천만 개의 패션 이미지를 분석하고 트렌드를 예측 분석하고 있다. 이런 패션계의 시도는 단순히 기술 과시가 아니라 주춤해진 성장률 극복을 위한 돌파구라 볼 수 있다. 온라인 덕분에 한산해진 매장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면서 특정 장소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증강현실 같은 기술을 분주하게 도입하고 있다.

터치스크린 달린 가방 하나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당장은 어렵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의 부작용을 생각해보라. 나이키 어댑트 BB의 경우 미국 대학 농구팀 스타 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이 경기 도중 신고 있던 어댑트 BB의 블루투스가 원활하지 않아 밑창이 뜯겨 나가면서 부상을 입는 사건도 있었다(다음 날 나이키의 주가는 1% 넘게 하락했다). 하지만 분명 미래는 온다. VR 기기가 일반화되고, 증강 현실이 본격화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향하는 그 ‘미래의 종착지’ 말이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아트워크
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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