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손꼽히는 악동, 제레미 스콧이 책을 펴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안정감보다는 파격, 원숙함보다는 젊음, 온화함보다는 반항, 고급스러움보다는 키치함, 선택된 소수보다는 잠재적 대중 지향. 패션계에 발을 들인 이후 18년간, 제레미 스콧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한 방향을 바라보며 뛰었다. 현대 패션에서 고급 살롱과 백화점, 길거리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이 컸다. 맥도날드, 바비 인형 같은 키치한 팝 문화를 이토록 노골적인 방식으로 패션과 접목시킨 예는 없었다. 최근 출간된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사진집, <제레미 스콧> 속에는 그의 패션 세계,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스콧의 시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브랜드와 모스키노, 두 브랜드를 맡고 있으며 사진집 출간뿐만 아니라 마이애미 아트 바젤 참여 등 데뷔 이래 가장 숨가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제레미 스콧에게 더블유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이 열정적인 작은 거인은 시간을 쪼개 다음과 같이 근사한 대답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책 출간을 축하한다. 이름을 책 제목으로 정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제레미 스콧 내 책, < Jeremy Scott >은 지금껏 만들어온 것과 커리어를 사진으로 표현한 책이기에 내 이름 외의 다른 제목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굳이 부제를 붙여야 한다면 ‘My Life Work’일 것이다.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독특한 표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난 18년간 만들어온 것들이 책에 실렸기에 표지만큼은 새로운 이미지를 넣고 싶었다. 내가 책을 들고 있는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으로 구성된 표지는 사진가 이네즈&피노트 듀오가 촬영한 것이다. 클래식하면서도 무언가 색다른 트위스트가 느껴지는 그들의 흑백 사진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데뷔 후 18년간의 작업을 편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사진을 골라냈나?
이미지를 편집하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최대한 많은 컬렉션을 담으면서, 동시에 시각적으로 멋진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책은 몇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각 섹션에는 여러 시즌의 컬렉션이 테마에 맞게 들어에 FLASH가 있다. 특정한 테마를 가지고 디자인하는 내 작업 방식을 독자들에게 색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자체는 멋지지만 테마에 맞지 않을 경우 과감히 포기해야 했다.
이사벨라 블로나 데본 아오키의 개인적인 사진 등, 직접 촬영한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당신이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원래 사진에 관심이 많았나?
사진을 정말 사랑한다! 분위기를 포착하는 힘을 지녔고, 특히 디자이너가 옷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수년간 내 컬렉션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는데, 내가 찍은 사진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아트 디렉터와 레이아웃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더 개인적이면서도 오리지널한 것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드물긴 하지만 이사벨라 블로의 사진처럼 좀 더 사적인 인물 사진도 몇몇 있다. 그녀는 신인 시절,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최고의 친구였다. 이런 사적인 이미지를 공유해서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스티븐 마이젤을 비롯한 당대의 패션 사진가들의 작품도 풍부하게 수록되었다. 당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진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책의 결과물이 특히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위대한 패션 사진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아베던, 스티븐 마이젤, 마리오 테스티노, 유르겐 텔러, 엘렌 폰 운베르트, 마리오 소렌티, 테리 리처드슨, 장 폴 구드, 데이비드 라샤펠, 아라키, 톰 먼로 등등! 책에 이 대가들의 스타일과 개성이 섞여 있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마이젤의 사진을 담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진집을 발간한 적도 없고, 다른 책에 자신의 이미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일도 거의 없다. 우리는 지난 두 시즌간 모스키노의 광고와 향수 캠페인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았다. 그의 지원과 애정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러 셀레브리티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들어에 수록된 셀렙의 이미지 중 당신의 기억에 남는 것은?
월드 투어를 일주일 앞두고, 오프닝 룩을 피팅하고 있는 리애나와 나의 모습이 책에 담겨 있다. 피팅 다음에 엘렌 폰 운베르트와의 촬영이 잡혀 있어 일정이 빠듯했다. 그런데 채 끝내지 못했을 때 엘렌이 먼저 도착했고, 그녀가 피팅하는 찰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우연한 결과물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당신은 SNS를 통해 수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디지털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큰 패션 피플 중 하나다. 디지털 콘텐츠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소 아날로그적인 ‘사진집’을 발간해서 놀랐다. 패션 디지털 환경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소셜 미디어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나 자신의 홍보대사가 되어야 한다. 제레미 스콧 라인뿐 아니라 아디다스와 모스키노까지,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라인 전부를 알려야 하니까. 따라서 작업물을 디지털로 공유하는 건 내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즘 사람들이 소통하는 창구인 SNS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팬들과 연결 고리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하지만, 그 어떤 미디어도 다양한 이미지를 아름답게 인쇄한, 반짝이는 책에 대항할 수 없다.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스크린으로는 절대 재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인쇄물’은 갖고 있다. 또한 요즘은 구글 서치를 통해 웬만한 이미지를 다 찾을 수 있기에, 이 책에는 독자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자신의 컬렉션도, 아디다스와 모스키노도, 아트 바젤도, 또 이렇게 인터뷰에도 응해야 하는 일정 중에서 책까지 펴냈다. 일 중독자인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평생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건 처음이라 최대한 시간 관리를 잘하려 한다. 여러분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나는 일을 사랑하고, 일로부터 기쁨을 얻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내게는 즐거움이라는 거다. 물론 할 일이 심하게 많고 잠을 잘 못 자기는 하지만! 작년부터 내 작업물을 사진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형식의 동영상으로도 촬영하고 있다. 올해 공개할 예정인데, 이 영상을 보면 나의 일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PHOTO
- COURTESY OF RIZZOLI,
- 뉴욕 통신원
- 하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