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을 개조한 건물에 작은 가게들이 모여 공간을 공유한다. 동교동의 ‘어쩌다 가게’는 감각적인 상업 공간이자 이웃들의 커뮤니티이며 건축 방식의 작은 실험이기도 하다.
감도 좋은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생긴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동네의 개성이 점점 알려진다 –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린다- 원래 있던 가게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건물주 자녀나 프랜차이즈 업소가 그 자리에 들어온다- 그곳만의 느낌이 사라지고 방문자도 줄어든다. 여기까지가 ‘요즘 뜬다’하는 동네에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법칙이다. 대표적으로 젊은 기운의 동네인 홍대에서도 이런 식으로 작은 가게들이 주변으로 밀려났다. 감당이 어렵도록 상승하는 임대료, 건물주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같은 사례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21세기 도시 괴담이다. 살벌한 부동산 정글의 먹이사슬에서 덩치가 작은 자영업자가 살아남는 길은 정녕없는 걸까? ‘어쩌다 가게’의 사례는 어쩌면 거기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다.
홍대 공항철도역 인근, 연남동과 동교동의 경계에 생긴 ‘어쩌다 가게’는 마당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을 레노베이션한 공간이다. 이곳의 크고 작은 방에는 8개의 숍과 작업실이 입주해 있다. 서점 ‘별책부록’, 가죽 수제화 숍 ‘아베크’, 싱글 몰트위스키 바 ‘앤젤스 쉐어’, 조각 케이크 공방 ‘피스피스’ 가 1층 입주자들이다. 2층에는 100% 예약제의 1인 미용실인 ‘바이 더 컷’, 초콜릿 공방 ‘비터스윗나인’, 실크스크린 작업실 ‘에토프’, 꽃과 핸드메이드 생활 소품을 다루는 ‘아 스튜디오’가 들어와 있다. 카페 격인 ‘어쩌다 라운지’ 그리고 마당은 입주 숍들이 함께 사용한다. 최소한의 사적공간을 제외한 거실이나 주방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셰어 하우스’가 공용주거의 개념이라면, 마당과 라운지를 함께 쓰는 ‘어쩌다 가게’는 일종의 ‘셰어 스토어’인 셈이다. 입주자들은 일정 금액의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하며 5년 동안의 임대 기간을 보장받는다.
건축가이자 홍대의 터줏대감 카페 b-hind의 창립 멤버인 임태병 소장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작지만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했고, 콘텐츠로서의 공간을 기획했다. 입주자들은 카페 b-hind를 중심으로 홍대 인근에서 맺은 인연으로 연결된 느슨한 커뮤니티이자, 서로 교류하고 의지하는 새로운 개념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공방을 두 번 옮기면서 부동산 문제로 에너지를 많이 뺏겼어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월세를 올리고, 새 공간을 구해 인테리어를 바꾸는 건 정말 피곤하고 불안한 일이었거든요. 이제 하고싶던 초콜릿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공간을 얻었죠.” 비터스윗나인 대표 정지윤 씨는 임차인으로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서점인 별책부록의 공동대표 임윤정 씨는 저마다 다른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입주자들과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해 긍정적인 구상 중이다. “플로리스트, 쇼콜라티에, 바텐더, 실크스크린 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웃들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북 셀렉션을 제안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위스키 바와 함께 심야책방을 기획할 수도 있겠죠.” 방문자들은 라운지에서 커피와 함께 피스피스의 케이크를 먹고, 앤젤스 쉐어에서는 위스키와 곁들여 비터스윗나인의 초콜릿을 맛보며, 마당에서 별책부록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고들 농담처럼 말하는 시대, 그 농담이 백일몽에 가깝다면 이렇게 동료들을 모아 힘을 합치고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보는 일은 실현 가능한 꿈 아닐까. 어쩌다 함께해서, 어쩌면 더 즐겁게.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김미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