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가 거친 여성 아티스트 네 사람의 강렬한 눈길을 받아 빛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Artist Note 야요이 쿠사마 Yayoi Kusama
60년대 말에 쿠사마는 앤디 워홀과 맞먹는 유명인이었다. 뉴욕 아방가르드 아트 신의 중심적 존재였던 그녀는 정교한 패턴을 그린 추상적인 그림, 페니스가 달린 부드러운 가구, 지금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물방울무늬 패턴을 벌거벗은 사람들의 몸에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접 디자인한 아슬아슬한 옷을 파는 옷가게도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괴롭힌 감정적 문제들이 그녀를 압도하자, 그녀는 뉴욕을 벗어나 도쿄의 정신 병원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쉬지 않고 대담한 그림, 조각, 패션, 설치 작업을 발표해왔다. 쿠사마만의 우주를 반영하는 것이 분명한,거울 벽으로 된 무한한 방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유명한 점박이 무늬 작업은 쿠사마가 전쟁 중인 일본에서 자라며 처음 경험한 환각에서 왔다. “땡땡이가 내 손가락 끝에서 시작해서 정수리까지 퍼지고, 창문까지 가고 결국 방 전체를 덮었어요.” 84세인 그녀가 새 그림과 설치 작품을 발표한 최근 개인전 <천국에 다다른 나>는 뉴욕의 데이빗 츠비르너 갤러리에서 지난해 12월 21일까지 열렸다. “그런 환각 때문에 정말 겁이 났어요. 옷장 속에서 벌벌 떨 정도였죠. 하지만 심리적 컴플렉스와 공포를 계속해서 그렸더니 모두 누르고 극복해낼 수 있었죠.” 초기에 그녀는 자기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교한 폴카 도트 배경과 맞는 옷을 입은 경우가 많았다. “전 그걸 쿠사마의 자기 소멸이라고 불러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맨 앞에 놓는 예술 철학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다. 그녀는 조지 클루니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지만, 그에게 폴카 도트 양복을 입히기로 했다. “‘영원히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온 세상 사람에게 보내자는 생각이었어요. 폴카 도트는 우주와 인간, 생물을 상징해요. 성, 유명세, 스타라는 것은 아무 상관 없는 거죠.”
이른 봄에 개봉할 영화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에서 조지 클루니는 특별 소대의 리더 역할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아돌프 히틀러가 훔친 예술품을 구하려고 힘을 합친 미술관 디렉터, 큐레이터, 미술 역사가로 구성된 소대다. 실제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스릴러 영화다.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은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화적 산물이 한 나라의 정신을 정의하는가?’ 클루니는 이 영화를 공동 프로듀스하고, 시나리오를 같이 쓰고, 감독까지 했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를 취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기본적인 것, 즉 역사를 대표하지요.” 그의 말이다.
클루니는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같이 프로듀스한 파트너 그랜트 헤슬로브 때문에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헤슬로브는 로버트 M. 엣셀이 2009년에 쓴 책 <모뉴먼츠 맨>을 공항에서 샀다. 클루니는 <아르고>(헤슬로브, 클루니, 벤 애플렉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던 영화)나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영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랜트와 저는 우리가 보통 만드는 것보다 조금 덜 시니컬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우린 시니컬한 영화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이번에는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궁극적인 악당, 즉 히틀러와 싸우는 영화요. 이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은 무엇이었나?
어릴 적 나는 가톨릭 신자였다. 알다시피, 교회에 가면 늘 아이콘들이 있다. 십자가와 제단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고. 그러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에 데려가주셨다. 계단을 올라가서 대리석 조각상을 본 기억이 나는데, 대리석 조각상이지만 대리석 조각상만은 아닌 물건이었다. 그 조각상은 내게 사회로서의 우리에 대해 무언가를 주었다. <모뉴먼츠 맨>에서 우리는 예술을 구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나라면 사람들의 문화는 인생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겠다. 탈레반이 놀라운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할 때, 미군이 이라크의 미술관을 보호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상실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한 나라의 문화가 사라지면 정체성도 사라지는 거다. 그것은 뼛속까지 아픈, 끔찍한 상실이다.
히틀러는 방대한 예술 컬렉션을 쌓아두고 있었다. 자기 미술관을 열려는 계획이었나?
그렇다. 퓌어러(지도자: 히틀러의 별칭) 미술관을 열 생각이었다고 한다. 벙커에 임시 미술관을 두었을 정도로 말이다! 전 세계의 위대한 미술품을 다 훔쳐올 계획이었고,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 중에 500만 점을 손에 넣었으니까. 그리고 자기가 ‘타락한 예술’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은 파괴했다. 나치들은 피카소와 클레, 미로의 작품들을 파리의 쥐 드 폼 미술관 앞 정원에서 불태웠다. 이런 작품은 불온하고 파괴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려 한 거다.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예술 사기를 저질렀다, 히틀러는. 그 가운데 기적적으로 구출된 작품도 좀 있지만.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히틀러는 화가 아니었나?
그랬다. 그런데 그는 예술가로서는 실패했다. 영화에서 히틀러가 그린 수채화 몇 점이 등장한다. 히틀러의 그림 실력이 조금만 더 나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히틀러가 유독 좋아한 예술가가 있었나?
히틀러는 다 빈치를 사랑했다! 1930년대부터 히틀러는 교수들을 세계 최고 미술관들로 보내 ‘회의’를 하게 했는데, 사실은 소장품 목록과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나치가 한 나라를 점령하면 히틀러가 그 나라에 있는 예술 작품을 가져가는 식이었다.
<모뉴먼츠 멘>은 해피 엔딩일 것 같다. <아르고>의 결말도 대단했는데, 당신 자신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결말이 뭔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멋진 인생> 결말 같은 건데, 요즘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요즘이라면 악당인 라이오넬 배리모어가 수갑을 차고 끌려갈 거다. 하지만 카프라는 그러지 않는다. 배리모어는 그냥 집으로 가고, 그걸로 끝이다. 우린 그를 잊고 용서하고. 카프라가 생각하는 완벽한 엔딩이란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이기 때문이다. 난 요즘 영화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엔딩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2013년에 <내일을 향해 쏴라>가 나왔다면 엔딩은 원작과 달랐을 거다. 그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틀어준 적이 있는데, 마지막 대목, 부치와 선댄스가 총에 맞는 정지 장면 이 나오면 다들 입을 떡 벌린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60년대, 70년대 영화들은 결말이 충격적이다. 우리가 그 영화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거다. 모든 규칙을 다 깨뜨리니까.
최근 산드라 불록과 함께 우주를 떠도는 우주인으로 나온 영화 <그래비티>는 놀랍고 전통적이지 않은 영화였다. 거의 영화 내내 혼자 촬영했는데, 고립된 환경에서 연기하는 게 힘들었나?
사실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한다(웃음). 연기하는 동안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건, 우주에 있으니까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데 동시에 말을 빨리 하는 거였다. 허리와 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기계에 들어가 있는 건 즐겁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도 한발 물러서서 내 인생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행운이었다.
<그래비티> 같은 영화를 만들 때면 당신은 감독에게 뮤즈 같은 존재가 된다. 이번 경우에는 알폰소 쿠아론이었고, <W> 프로젝트에서는 그와 비슷하게 여성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었다. 기분이 어땠나?
(웃음) 야요이 쿠사마는 나를 점 무늬로 뒤덮었다. 날 달마시안처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난 점박이가 된 게 자랑스러웠다. 궁극적으로 내가 감독 혹은 예술가들과 함께하려는 건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은 당신을 인터뷰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나 물었다. 영화를 보며 당신이 반한 사람은 누구였나?
어렸을 때는 오드리 헵번을 사랑했다. 11살 때 <로마의 휴일>을 봤는데, 내가 이제껏 본 그 무엇보다 헵번은 우아함 자체였다. 미친듯 사랑하게 됐다. 그레이스 켈리도 늘 사랑했다. 히치콕의 <나는 결백하다>의 물 속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Artist Note 카렌 킬림닉 Karen Kilimnik
카렌 킬림닉은 패리스 힐튼을 마리 앙투아네트로 그린 적이 있고, 발레 스타 루돌프 누레예프를 그렸고,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를 거대한 저택과 승마 테마, 오컬트에서 영감을 받은 스위트룸들로 바꾼 적이 있지만 조지 클루니를 그린 적은 처음이었다. 은둔하는 것으로 유명한 킬림닉은 클루니가 레드 카펫에 섰을 때와 <오션스 일레븐>에서 본 모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클루니의 모습 중 가장 담아내기 힘들었던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콩티 왕자의 18세기 와이너리에서 2014년 3월 31일까지 그녀의 그림과 사진을 전시한다.
Artist Note 마릴린 민터 Marilyn Minter
65세의 민터는 하이퍼리얼리즘 사진과 그림을 통해 화려함과 매력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에 접근한다. 그녀의 작품 속 금으로 싼 입과 혀, 빛나는 진주, 높은 하이힐을 신은 발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갑자기 그것들은 겉모습대로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게 된다. 유명한 마약 중독 광장공포증 환자 어머니 시리즈를 작업했던 1969년 이후 내내 뉴욕 예술 신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는 뉴욕 메트로 픽처스에서 2014년 1월 16일부터 2월 22일까지 열릴 <나쁜 양심> 전시의 작가 중 한 명이다. “난 문화에서 먹고 남은 음식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곧 대체되거나 쓸려 없어질 것이라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미지들요.”
<W>의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녀는 버스 정류장이나 게시판에 붙었다 곧 떼어질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클루니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녀는 클루니의 땀구멍, 조금 자란 수염, 눈의 클로즈업 사진을 직접 찍어서 작업했다. 컴퓨터로 눈썹을 더 강조했고, 금이 간 유리에 마커로 그라피티를 한 다음 글리세린 혼합액을 발라 비에 맞은 것 같은 효과를 냈다. 마지막으로 조명을 설치해 눈동자를 빛나게 만든 다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했다. 결국에는 “그냥 남자 눈 하나만 남도록 다 지워버리기로 했어요”라고 한다.
Artist Note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50세의 에민은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 작가였고, 그녀의 고백적이고 대담한 작품을 주도하는 것은 글이다. 에민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1995년 작품 ‘내가 같이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는 그녀가 함께 침대를 썼던 사람들 전부의 이름을 안에 자수로 써놓은 캠핑 텐트였다. 영국 바닷가의 마게이트에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자란 그녀는 런던에 만든 트레이시 에민 미술관에다 1995년에 네온으로 만든 자기 이름을 올렸다. “내 네온은 다 손으로 불고 휘어서 만든 거고, 아주 독특한 내 손글씨와 똑같이 만들어요.” 에민은 자기가 직접 쓴 글씨가 그림만큼이나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글자가 다 붙어 있고, 꽤 예스럽죠.” 2009년부터 그녀는 문자로 된 포트레이트 작업을 해왔다. 이번 경우의 조지 클루니처럼, 포트레이트를 만들 인물에게 같은 질문지를 보낸 다음, 그 답변에 기초해 작업을 한다. 에민은 클루니는 영화와 정치적 활동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답변을 받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굉장히 진솔했어요. 그래서 난 그의 미소가 얼마나 강력한지 생각했죠. 그는 정말 웃기니까요.” 집에 대한 그의 소박한 생각 역시 그녀의 흥미를 끌었다.
“혼자 앉아서 답을 적으면서 생각해보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의 답을 보면 그에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묘한, 누구의 시간도 아닌 시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에민의 말에 의하면 직접 만나보는 것보다도 이렇게 질문지를 보내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낼 때가 잦다고 한다. “가장 단순한 방식의 컬래버레이션이죠.” 에민의 첫 미국 미술관 전시인 <당신 없는 천사>가 노스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에서 2013년 12월 4일부터 2014년 3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녀의 네온 작품들만 선보인다. “난 그들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달라고, 그래서 내게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부탁하죠.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하는 질문에 영향을 받아요.” 예를 들어 섹스에 대한 질문은 ‘한 사람이 얼마나 솔직한지,혹은 자신의 환경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드러내준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죽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허영심을 보여줘요. ‘우주로 발사되어 죽고 싶다’라고 대답한다든가 할 때 말이죠.
네온 라이프 – 포트레이트
친애하는 조지에게
이 프로젝트는 아주 심플해요. 아래의 질문 15개에 답을 해주면, 난 당신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네온사인을 만들게요. 당신의 답을 기대합니다. 진심을 담아 트레이시 에민
네온 라이프: 포트레이트
1) 신을 믿는가?
믿지 않는다.
2) 몇 살인가?
신에게 물어보라.
3) 거울에 비치는 당신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나이가 들수록 가진 거울 수는 줄어든다.
4)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색상이 있는가?
난 색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일한다… 날 토하고 싶게 만드는 색은 없다…
5) 캐피탈과 풀 플로우 중에서 고르라면?
무슨 질문인지 이해 못하겠다.
6)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만약 시라는 것이 단어를 조합해서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미국 시인은 마크 트웨인이다. 그 누구도 트웨인처럼 자만심, 공포,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 현재 상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만약 그런 게 시가 아니라면 난 시가 뭔지 모르겠다.
7)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있다면?
내 친구들 앞에서.
8) 열정, 로맨스, 하드코어 섹스 중에서 고르라면?
열정. 열정은 로맨스와 하드코어 섹스도 아우른다.
9) 당신 인생 최고의 사랑은 누구인가, 혹은 누구였나?
아직 만나지 못했다.
10) 이 네온사인이 그들을 위한 작품이 되길 바라나?
까다로운 질문이군…
11) 섹스할 때 말을 하나?
전화로만.
12) 지금 당장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면 어디에 있고 싶은가?
내가 3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 그들의 가족이 있는 방. 우리가 젊었을 때 얼마나 똑똑했는지 마구 거짓말을 하면서.
13) 당신의 유머 감각에 점수를 매긴다면? 만점은 10 점이라고 하자.
누가 점수를 매기느냐에 따라 다르지. 마크 트웨인이 매긴다면 2점.
14) 앤티크와 컨템퍼러리 중에 고르라면? 벽난로가 좋은가, 라디에이터가 좋은가?
앤티크. MRI 전까지… 난 ‘세기 전환기’의 MRI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15) 집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빠지는 일이 자주 있나?
집이란 내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곳이다. 난 1년에 8개월을 내가 휴가로는 가지 않을 도시의 방 하나짜리 호텔에서 보낸다. 하지만 어떤 도시도, 어떤 곳도 친구나 가족이 시간을 내서 찾아와주면 집이 된다. 난 어디를 가든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면 굉장히, 우울할 정도로 향수에 빠진다. 내 누나와 나 중 누가 더 못된 아이였나를 놓고 입씨름을 하는 우리 부모님과 밤을 보낸다든가, 아니면 내 친구들이 박쥐가 나오는 어떤 시리즈물을 내가 아주 망쳐놓았다는 농담을 한다든가… 집이란 유머다. 그리고 사랑과 책임감…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들과 함께할 수 없을 때 향수를 느낀다. 글 | Lynn Hirschberg ·아티스트 인터뷰 | Diane Solway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Emma Summerton(M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