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이 돌아왔다. 물론 더는 소녀가 아닌 어른이고, 어쩌면 다시 춤을 출지도 모른다.
촬영을 위해 제대로 스타일링된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 룸을 나오는 박지윤을 보고 새삼 놀랐다. 더없이 화려한 바로 그 스타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소속사와 결별하고 메이저 가요계에서 한 발 떨어져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어쩌다 마주치는 박지윤은 화장기 옅은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인디 성향의 뮤지션들에게 도움을 얻어 본인이 프로듀스한 최근 두 장의 앨범도, 한껏 순하고 어쿠스틱한 음악이었다. 그중 7집 앨범에 는 ‘꽃, 다시 첫 번째’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박지윤은 마치 화려한 메인스트림과는 연을 끊고 그간의 세월은 없었던 걸로 치겠다 작정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윤종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 ‘미스틱 89’로 적을 옮기고 10월에 나올 미니 앨범을 녹음하는 중이다. 어쩌면 다시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온 셈이다. 다시 한 번 피워낼 것이 꽃인지 나무인지 모르지만 박지윤이 한결 밝아지고 편안해 보이는 건 분명했다. “이제 혹시 댄스 음악을 한다고 해도 예전과 전혀 다를 거예요. 그리고 내가 다르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다르게 느낄 거라 생각해요. 전에 머릿속이 비워진 상태로 누군가 옷을 입혀줬다면, 지금은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 알고서 내 스스로 고르는 거니까요.” 화려한 쇼 비즈니스 세계의 정점을 누린 다음 거기에 질려 떠난 듯 보인 예전의 아이돌은, 뒤늦은 사춘기를 끝내고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정말 지겨운 단어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언급한다면, 박지윤은 우리가 못 본 사이 혼자 조용히 진짜 성인식을 치르고 돌아왔는지 모른다.
혼자 기획사를 만들어 앨범을 두 개 냈는데, 이제 윤종신의 회사와 계약을 했다.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로서 그가 어떤 말로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특별히 대단한 걸 제안한 건 아니었지만 믿음이 갔다. 7, 8 집을 내가 프로듀서로 혼자 만들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음악은 충분히 많이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혼자 하다 보면 폭이 좁아지겠다는 한계를 느꼈다. 나는 가수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프로듀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발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고민했다. 내가 아이돌을 키우는 프로듀서를 만날 건 아니니까…. 그런데 종신 오빠한테 연락이 딱 왔다. 전속이 아니더라도 좋으니까 앨범을 같이하고 싶다고. 나도 그 시기에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고, 종신 오빠도 새로운 회사를 꾸린 찰나에 서로 타이밍이 맞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여러 가지 방향에 대해 열어주고 찾아줘서 나도 정말 이게 운명의 만남인가 싶었다(웃음).
새로 하는 음악은 어떤 성격인가? 이번에도 통기타에 어쿠스틱은 아닐 거라는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다. 오늘 스타일링을 보니, 화려한 스타로서의 박지윤이 그립기도 하다.
예전에 아이돌 할 때는 화려한 비주얼에 내가 치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혼자 나왔을 때는 일부러 많이 누르고 내추럴하게 갔다. 음악도 통기타와 어쿠스틱이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 비주얼 같은 것도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의 하나라면 잘 활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마음이 오픈됐다. 너무 어릴 때 섹시 이미지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듣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더 스스로를 제한 했다. 하지만 그전에는 누가 만들어줘서 그런 옷을 입었다면 이제 내 스스로 갖고 있는 장점도 알고, 마음도 한결 열렸다. 타이틀은 경쾌한 팝적인 노래다.
경쾌한 음악이라고 하지만, 이제 만약 댄스를 한다 해도 이전과는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전혀 다를 거다. 그리고 내가 다르기 때문에 보는 이도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내 머릿속에 비워진 상태로 누군가 옷을 입혀줬다면, 지금은 이걸 내가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는 사람으로서도 신나는 기분일 것 같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을 잘 알게 됐을 때의 재미라는 게 펼쳐지는 시기일 거 같다.
어릴 때는 바쁘게 일하느라 잘 몰랐고, 오늘은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중요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고,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30대가 좋다. 몇 안 되지만 음악 하는 동료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우리 일이라는 게 나이에 대한 제한과 섣부른 판단이 상당히 많은 업계다. 여자로서 30이라는 나이가 지나가면 지는 세대인 것처럼 취급받기도 하지만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게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경험과 지혜가 생겼고, 그때 할 수 없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있게 됐다. 인생은 진짜 30대부터인 거 같다(웃음).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할 때와 뭔가 알고 말 한마디를 하고 노래를 한 곡 부르는 느낌은 무척 다르다.
어릴 때 파격적이고 강한 걸 보여주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들으면 너무 야한데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야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짐작도 못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 가사를 내가 모른다고 말하는 게 바보 같아 보일까봐, 모르겠다는 말도 잘 못하겠더라. 모르고 불렀다고 하기가 민망해서. 요즘 어쩌다 내 옛날 노래를 들으면 가사의 뜻이 정말 심오해서 깜짝 놀란다(웃음). 진영이 오빠는 늘 양면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 같다. 한동안은 그런 이미지가 참 싫었다. 어른 남자가 써서 준 걸 어린 여자애가 부르는 것도 아이러니가 있었고. 그런 게 얼마 동안 내 상처였다. 잘 알지 못하는 걸 어거지로 드러내는 게 너무 싫으니까 부정하고 싶고 그랬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웃음) 사람들이 날더러 섹시하다고 하는 데 나는 잘 모르겠다. 성격으로는 그런 타입이 아닌데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나한테서 그런 걸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또 싫었다.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도 타고난 모든 것들을 잘 활용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
프로듀서 윤종신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같이하는 첫 앨범이다 보니 얘기를 많이 했다. 신인을 키우며 만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윤종신과 손잡았는데 다시 한 번 대박이 났다, 하는 소리 듣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 같고(웃음). 나는 종신 오빠에게 이러이러하게 내가 살아온 과정을 얘기했다. 이제는 준비가 됐다며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달라고 말했다.
7, 8집을 같이한 뮤지션들의 이름이 화려했다. 권순관, 루시드 폴, 용린, 정준일, 임헌일… 이제 또 함께하는 파트너의 이름들이 상당히 달라질 것 같은데.
그들이 있어 나는 동료이자 팬이고 친구인데 참 많이 배웠다. 지금도 작업한 시간을 떠올리면 훈훈하고 행복하다. 어떤 생각을 공유한다는 게 귀한 경험이다. 이번에는 장르적으로도 좀 달라지고… 실은 가요라고 할 수 있다. 작업하는 주변 환경도, 종신 오빠를 주축으로 함께하는 분도 달라졌다. 사실 싱글이어서 곡 수가 많진 않다. 계절별로 미니 앨범을 하나씩 내고 이걸 나중에 묶어 앨범을 다시 낼 거다.
월간 윤종신에 이어 계간 박지윤인 셈인가? 회사에 하림이나 조정치 씨처럼 음악 하는 동료들이 있는 건 어떤가?
예전 JYP에는 거의 나 혼자였다. 다른 그룹을 늘 부러워하면서 외로웠는데 회사에 같이 있는 아티스트들이랑 묶여서 예능 나가고 그런걸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신 오빠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워낙 많고, 식구랑 같이 있으면 나의 예능 울렁증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요즘은 예능으로 음악을 홍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니까. 이렇게 음악 환경이 바뀌어서 생경하기도 할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알려야 하는 건 옛날에도 그랬다. 요즘은 물론 더 영향력이 커졌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싱글로 음악을 발표하는 게 처음이라 낯설다.
다음달에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준비해도 되나?
이렇게 일정이 촉박해도 괜찮나? (웃음) 예전에는 CD를 물리적으로 찍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여유를 뒀다면 이제 마스터 나오면 바로 올리면 되는 거니까 확실히 시간이 단축되긴 했는데, 뚝딱 이런 느낌이다. 준비 기간이 짧아진 만큼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즐기는 텀도 점점 짧아졌다. 음악 하는 사람은 그런 변화를 다들 아쉬워하는 거 같지만 어쩌겠나, 세상이 그런 걸. 우리가 적응해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뮤지션 이전에 배우이기도 했다. 연기하는 박지윤의 모습은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연기는 꾸준히는 할 생각이지만, 두 가지를 해보니까 나는 노래하는 게 더 좋더라. 예전에 어느 쪽이 좋느냐는 질문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둘 다 매력이 다르다고 답했는데, 이제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노래할 때가 더 즐겁구나, 그걸 깨달은 것 같다. 연기에도 나름대로의 희열이 있지만 아직은 어렵다. 하면 할수록. 노래할 때가 더 좋다.
<오페라 스타>라는 서바이벌 쇼에서 노래를 참 잘하더라.
그 프로그램 나간 목적이 그런 평가를 듣는 거였다(웃음). 그리고 박지윤이 노래 잘한다는 기사가 처음으로 많이 났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가사 외우느라 과정은 힘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악을 해서 성악을 베이스로 소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비주얼이 강한 댄스 가수로 데뷔해서 늘 가창력 논란이 따라다녔다. 사람들이 비음이라고 얘기하는데 실은 내가 비음 창법을 쓰진 않는다. 어릴 때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주눅 들고 자신 없어 하고 그랬다. 처음 <오페라 스타> 제안받았을 때는 내가 원래 성악했던 사람이니 이걸 통해서 사람들에게 성악을 베이스로 소리를 만든 가수, 노래도 잘하는 가수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있었다.
댄스 가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춤추면서 노래하면 일단 폄하하는 시선이 김완선 때부터 있었으니까.
요즘은 아이돌 친구들이 실력이 좋아지면서 그런 선입견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다만 우리나라 대중의 취향이, 시원하게 질러줘야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목소리의 색깔이 다 있는 건데… 말하듯이 나긋나긋하게 읊조리는 뮤지션이나, 허스키한 목소리로 지르는 뮤지션은 노래로 인정받기 힘든 분위기다.
아이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박진영이 제작한 선미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진영이 오빠는 정말 잘한다. 프로듀서로서 작곡가로서 게다가 가수로서도 뛰어나고, 춤을 감히 얘기하자면 안무를 그렇게 짜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는 거 같다. 본인이 쓴 노래고 그 맛을 잘 알아서 쓰겠지만 음악이 정말 잘 들어올 수 있게 맞춰서 안무를 짠다. 선미를 보면서도 역시 박진영은 ‘난’ 사람이구나, 했다.
JYP와 결별할 당시 좋게 헤어지진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랬다. 소속사와 가수로서의 소송 문제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하지만 지금은 앙금이 남아 있지는 않다.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던데.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사진 없이 글만 있는 트위터는 심심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툭툭 내뱉는 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의 입장 대한 배려보다 각자의 생각, 자기 주장만 하는 것 같아 보고 있기 지쳐서… 인스타그램이 나에게는 훨씬 맞는 SNS 같다.
윤종신 씨가 트위터에서 말 많은 사람 아닌가? 열심히 홍보 채널로 잘 활용하는 걸 보면 마케팅 감각이 있는 것 같다(웃음).
그렇더라. 많은 프로듀서를 봤지만 종신 오빠 정도 되면 성공도 했고 똑똑하니 자기 고집과 아집이 커질 수 있는데, 스쳐 지나갈 법한 주변 이야기까지 귀담아들을 줄 안다. 내 것을 저 사람에게 주입하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걸 살려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내공을 갖고 있다.
박진영과 비교한다면?
보통 대형 기획사들은 자기 스타일이 다 있다. 워낙 자기 색깔이 강하고 그 색깔을 뮤지션한테 입힌이 정말 잘 들어올 수 있게 맞춰서 안무를 짠다. 워낙 자기 색깔이 강하고 그 색깔을 뮤지션한테 입힌다. 진영 오빠도 마찬가지고. 둘 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좋은 프로듀서고,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종신 오빠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걸 최대한 살려준다는 면이 큰 장점인 거 같다.
연출 공부를 하려고 외국에 갔다고 들었다.
사진을 진지하게 하다 보니 영상을 공부하고 싶었다. 4년 정도 사진을 찍고, 포토 에세이도 내보고 하니, 사진에 스토리를 담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간 거 같다. 사정상 시작은 못하고 일찍 돌아왔지만, 언젠가는 다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
말하자면 아이돌 1세대인 셈이고, 주체적인 삶을 서서히 찾아간 케이스다. 요즘 많아진 아이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걱정이 많이 된다, 일단. 게다가 요즘 아이돌들이 경험하는 삶은 우리 때보다 더 화려한 것 같다. 한류라는 게 강해졌고, 우선 관객이나 팬 수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사랑을 받으니까. 월드 투어나 해외에서 쇼도 많이 다니고… 화려한 만큼 그들의 삶이 더 공허할 거라 짐작한다. 열아홉, 스물 피어나는 애들인데, 슬픈 사실은 그 인기가 오래가지 않다는 거다. 그 화려함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애들이 몇이나 될까, 그 나머지 애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런 명예와 부, 인기의 달콤함을 맛본 아이들은 그게 사라졌을 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거다. 지금은 기획사와 서로 이용하는 관계인 셈인데, 기획자들은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키워낼 뿐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건 아니니까. 자신의 길을 잘 찾고, 지금 그 길에 도움이 될 사람들을 만나기 바란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새로운 음악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나?
어쿠스틱한 7, 8집을 듣던 사람들은 다시 대중가수가 됐느냐고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포커스를 조금 더 대중에게 맞춰서 가다 보니까 이 음악에서 내 정체성이 제대로 잘 표현되고 있을까 그런 염려도 있었다. 내가 곡을 쓰고 가사를 쓰면서 내 이야기를 담아 소통하던 앨범과는 조금은 다른 기획이니까. 녹음하면서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중간의 혼란이 오긴 했는데 뭔가 가수로서 충실하자 그런 정리를 스스로 내린 것 같다. 우선 노래를 맛깔나게 표현해보자는 생각이다. 앞으로 다양한 음악을 계절별로 들려드릴 거니까, 가볍게 받아들여주셨음 좋겠다.
사춘기를 늦게 지내고 돌아온 사람 같다.
나름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게 큰 약이 됐고 교훈이 됐다. 누구나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걸로 성숙해지고, 자기의 깊이를 만드는 것 같다.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쓰면서 힘들었던 시간을 표현하고 치유한 느낌이다.
우선 그전에 취미로 갖고 있던 사진이라는 게 도움이 됐다. 나는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나를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두려움이 컸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위치인데 표현이 서툴다 보니 아예 점점 말을 안 하게 됐다. 이제는 사진을 찍으면서 글도 쓰게 되고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다 보니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도 됐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표현할 줄도 안다.
7집 재킷은 작은 꽃 그림, 8집은 자신의 얼굴 사진이다. 그 변화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자신을 더 보일 수 있게 된 사람 같달까.
7집에서는 나를 안 보이게 그림으로 숨겼다. 노래도 좀 더 멜랑콜리한 것이 많았는데 8집은 비슷하지만 가사도 조금 더 희망적이고 밝은 노래도 실렸고, 커버도 숨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더 하고 나를 조금 더 보여주자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그럼 이번에는 거기서 더 보여주는 건가?(웃음)
30대 여자의 진짜 섹시함을 보여주겠다. 스무 살의 섹시함은 아무것도 아니다(웃음).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유영규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서정은, 어시스턴트 / 최지영, 임정현, 김가용, 헤어 / 이혜영(Aveda), 메이크업 / 박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