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스미스는 ‘펑크의 대모’라는 거창한 닉네임으로 불리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직접 돌아보며 적은 회고록에는 <저스트 키즈>라는 담담한 제목을 붙였다. 세상의 찬양에 매여 지내기보다는 삶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해온 예술가가 두 번째 한국 공연을 갖는다. 관객들은 세월 속에서도 물러지거나 닳지 않은 옛 노래와, 뮤지션의 나이를 잊게 할 만큼 젊은 새 노래를 모두 듣게 될 것이다. 이 아티스트가 이국의 청춘들에게 전하려는 이야기를 이메일로 먼저 물었다.
2009년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건너뛴 건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었다.
베이스먼트 잭스나 오아시스 때문이 아니었다. 일요일의 낮이 저녁으로 바뀌고, 달궈졌던 공기가 서서히 식을 무렵 패티 스미스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공연을 직접 지켜본 사람들은 1시간 동안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고 했다. 좋다 나쁘다로 잘라 말하기 곤란한, 기이할 만큼 특별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눈치였다. 나는 혼자 뒤처져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놓친 절름발이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두 번째 내한 계획을 들었을 때는 지난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는 2월 2일 유니클로 악스홀에서 열릴 단독 서울 공연은 11집 발매 이후 돌입한 월드 투어의 일환이다. 불가코프, 고골리, 타르코프스키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마리아 슈나이더, 조니 뎁(‘Nine’은 이 배우의 생일 선물로 쓰여진 노래다)까지 다양한 이름이 언급되는 앨범이지만, 듣다 보면 그냥 패티 스미스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적인 내레이션은 위험한 주술 같기도 하고, 놓쳐서는 안 될 계시 같기도 하다. 그리고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듯한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들린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제 목소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확신해요.” 바다 건너에서 날아온 이메일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패티 스미스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물론 티나 터너부터 재니스 조플린에 이르기까지, 여성 로커의 강력한 롤 모델은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했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시와 공연을 결합해내지는 못했다.”
팝 음악계를 움직이는 거물 제작자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펑크의 대모라 불리는 전방위적 예술가를 이렇게 평한다. 1975년, 소매 끝을 잘라낸 흰 셔츠 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데뷔 앨범 [Horses]의 커버에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그는 다른 누군가와 비교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 이 고요하면서도 힘있는 흑백 초상은 잘 알려졌다시피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선물이다. 어린 시절의 연인이자 서로의 벌거벗은 영혼을 들여다본 평생의 친구였던 메이플소프와의 인연을 패티 스미스는 회고록 <저스트 키즈>에 담담하게 기록했다. 실패와 실수 사이를 오가던 20대를 돌아보는 문장에는 별다른 윤색이 없다. “전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에 대해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의 말은 예술가 특유의 오만함보다는 아이 같은 솔직함과 유연함에 가깝게 들린다. 물론 패티 스미스는 더 이상 ‘저스트 키드’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 길들여지지 않은 젊음이다. 2월이 되면 그 유일무이한 불꽃이 눈앞에서 타오르는 걸 직접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첫 한국 방문은 지난 2009년이었다. 그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다녀온 관객들은 패티 스미스의 무대를 가장 강렬했던 경험으로 꼽았다. 거꾸로 당신은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관중들의 따뜻함, 열린 마음, 그리고 친밀함을 기억한다.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었기 때문에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지산 밸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덕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퍼포먼스를 선보일 용기를 얻었다. 객석의 반응은 정말로 마법 같았다. 끝내고 난 뒤에는 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대단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는 2월 2일에는 한국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 4년 전과는 어떻게 다른 무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투어를 위해 구상하고 계획한 바를 묻고 싶다.
새 앨범 [Banga]의 수록곡뿐만 아니라 특히 좋아하는 1970년대 노래들을 연주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곡을 연주하는 건 뮤지션 입장에서도 즐거운 일이다. 좀 더 친밀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우리만의 쇼가 될 테니 음악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 모험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당연히 청중과 훨씬 개인적인 교감을 나누게 될 거다. 각각의 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특별하다. 서울에서 밤을 보내며 한국의 팬들을 좀 더 알아가고,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당신들의 문화 안에 우리의 노래가어떻게 담기는지 관찰하려고 한다.
당신은 뮤지션이기에 앞서 이미 시인이었으며 미술 작가와 사진가로도 활동 중이다. 글과 미술에서는 얻기 힘든, 음악만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으로는 어떤 것을 들겠나?
공연과 연주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훨씬 공적인 방법이다. 라이브 무대의 즉흥성과 즉각적인 에너지를 사랑한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작업은 다르다.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점점 고독해진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예술적 표현 사이에 별다른 구분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각각의 것들이 또 다른 것들에 영향을 미치니까. 시나 산문을 쓸 때도 나는 멜로디와 리듬을 느낀다. 뮤지션으로서 레코딩을 할 때는 시각화와 공간감에 대한 생각을 한다.
무대 위의 패티 스미스를 화나게 만드는 관객도 있을까? 어떤 사람이나 행동을 목격할 때 언짢아지는 편인가?
구체적으로 꼽을 내용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길 바란다. 더 많은 관객이 참여해줄수록 더 행복해진다. 난 대화를 하고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거니까.
작년 여름에 발표된 앨범 [Banga]를 들으며 당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노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까?
난 담배를 안 피우고 술도 좀처럼 마시지 않는다. 둘 다 목소리에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늘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난 전보다 내 목소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각각의 노래에 맞는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만약 이 앨범에 어떤 메시지가 담겼다면 이런 내용일 거다.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 위기를 인식하며 지구를 더욱 잘 돌보기 위해 협력하자는 것.
[Banga]에는 2011년에 사망한 두 명의 예술가에 대한 곡이 수록됐다. 각각 뮤지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를 추모하는 ‘This is the Girl’과 ‘Maria’다. 언젠가는 커트 코베인을 기리며 ‘About a Boy’라는 노래를 만든 적도 있다. 단지 우연인가? 아니면 아티스트의 죽음이 당신을 특히 크게 흔들어놓는 사건이기 때문인가?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물이나 사람을 기리고, 영광을 돌리고, 축하하고 싶을 때 노래가 내게 찾아오곤 한다. 그 대상이 친구이거나 동료 예술가일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감동과 영감을 준 존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자 이 곡들을 썼다.음악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투어를 떠나기 전, 어떤 책들을 가지고 갈지 오래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골라든 목록이 궁금하다.
나에게 책은 투어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썩 훌륭한 방법이다. 게다가 여정에 심미적인 프레임을 더해주기도 한다. 가끔 내가 읽고 있는 책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로베트로 볼라뇨의 미완성 유작 <진정한 경찰관의 비애>를 마쳤다. 사실 지난 1년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집중한 기간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읽었으며 이번 투어 기간에는 <태엽 감는 새>를 다시 보고 있다. 난 정말로 이 책을 좋아한다.
2010년에 발표한 회고록 <저스트 키즈>가 한국에는 몇 개월 전에 소개됐다. 당신은 40여 년 전의 사건들을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선명하게 술회하고 있다. 남다른 기억력 덕분일까? 아니면 삶 전체를 여러 권의 노트에 기록하며 살고 있는 건가?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생각한 것과 관찰한 것을 노트에 수시로 기록한다. <저스트 키즈>에 묘사된 젊은 시절은 작은 일기장에 담겨 있다. 그리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내가 특정한 날짜에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였는지를 상기시켜줄 정도는 된다. 항상 노트를 지니고 다니며 매일 뭔가를 적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기라고 보긴 어렵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단상들이다.
혹시 지금껏 해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시도하고자 계획해두고 있는 일이 있나?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바닷가에서 많은 책을 쓰며 살고 싶다. 그게 내 꿈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집단적인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정치적인 의견 또한 무시되기 일쑤다.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젊음을 누린 사람으로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예술을 창조하겠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걸 감수하고 늘 긍정적이어야 했다. 물질적인 것은 포기했으며 꿈에만 초점을 맞췄다. 쉽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갖고 있는 것 대신 선한 행동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겨라. 당신의 휴대전화는 당신이 아니다. 정신과 마음, 그게 바로 당신이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기억해야 할 조언이 있을까?
자신에게 진실할 것(Be True to Yourself).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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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S | 아트북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