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묘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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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식재료에 목마른 셰프들은 요리에 ‘한 방’을 더해주는 비밀 병기에 손을 뻗기 마련. 다소 기괴할지언정 막상 입에 넣어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수상한 식재료 8가지를 모았다.

1_가지버섯

“능이버섯이 끝물일 무렵 가지버섯을 채취한다. 습한 골짜기에 쌓인 떡갈잎 사이로 가지색 버섯이 솟아 있다면 십중팔구 가지버섯이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가지버섯은 모두 야생에서 채취해 그때그때 사용하는데, 인공으로 재배한 버섯과는 맛이 천지 차이다. 꼬독꼬독 씹히는 쫄깃함과 알알이 찬 수분감은 ‘감칠맛’이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정도다. 7시간에 걸쳐 숯에서 서서히 익히면 버섯임에도 육고기와도 같은 맛과 식감이 느껴진다.” – 조셉 리저우드 셰프(에빗)

2_국수호박

“제주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달리면 한경면 신창리에 닿는다. 해안가를 바투 끼고 있어 해풍이 무지막지하게 불어오는 지역인데, 인근 농장에서 해풍을 맞으며 자란 국수호박을 매년 공급받고 있다. 어른 얼굴만 한 국수호박은 늦가을부터 딱 두 달만 재배하는 귀한 몸이다. 일반 호박과 닮은꼴이지만, 뜨거운 물에 삶은 후 찬물로 헹구면 호박살이 국수처럼 가닥가닥 풀어진다. 고추장과 들기름을 넣고 대충 버무려도 공들인 요리처럼 근사한 맛이 나지만, 갈치와 궁합이 좋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거다. 국수호박을 타임과 오일, 소금으로 마리네이드한 다음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속까지 알맞게 구워진다. 반으로 잘라 포크로 속을 박박 긁어내면 호박살이 국수처럼 뽑아지는데, 구운 갈치 옆에 가니시로 올리면 꽤 그럴싸하다.” – 김봉수 셰프(마린)

3_모렐

“국내에 자연송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모렐이 있다. 가격이 만만치 않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갓 채취한 모렐에서 풍기는 희미한 견과류 향기가 트러플의 풍미에 절대 뒤지지 않다는 사실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완전히 익히면 버섯의 뉘앙스는 줄고 고기에 가까운 질감이 살아난다. 모렐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오래 끓인 비프주(고기 육즙 소스)를 첨가하는 것. 이때 다른 향을 가진 향채를 사용하지 않아야 천연 그대로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독성만 조심하면 된다. 물에 담가 살살 흔들어 갓에 낀 이물질을 없애고 완전히 익혀서 먹어야 탈이 없다.”- 김성모 셰프(라씨에트)

4_펜넬

“줄기부터 꽃, 씨앗, 잎까지 몽땅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펜넬이다. 부분부분 맛과 질감이 널뛰기를 뛰고 향이 강해서 ‘한 방’이 필요한 요리에 마지막 필살기처럼 사용한다. ‘벌브’라고도 부르는 줄기 밑동은 오일에서 천천히 익혀 콩피로 먹거나 생으로 얇게 썰어 샐러드로 요리하면 두루 좋다. 씨앗과 꽃, 잎은 피클로 담고, 줄기는 해산물이나 채소 육수를 낼 때 아낌없이 넣는다. ‘만능’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절제력을 잃기 쉽지만 향이 강하다 보니 적당량만 사용해야 요리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 박진용 셰프(63)

5_달팽이

“희미하게 풍기는 흙냄새만 잡아도 달팽이 요리의 절반은 성공이다. 달팽이에게 이틀 동안 밀가루를 먹이고 사흘째부터 굶기면 내장이 말끔하게 비워져 퀴퀴한 잡내가 잡힌다. 다음은 끓는 물에 10분 정도 데쳐 껍질을 살과 분리할 차례. 한 입 맛보면 조갯살처럼 쫄깃하면서 관자처럼 말캉한 식감이 입 안에 퍼진다. 사실 버터 녹인 프라이팬에 이대로 달달 볶아 먹어도 그만이다. 만사가 귀찮은 밤에는 이만한 술안주가 따로 없다. 외형 탓에 진입 장벽을 느낀다면 크로켓 형태로 만들어 먹는 것도 방법이다. 채소 스톡에 살을 넣어 3~4시간 뭉근하게 끓이고, 부드럽게 익힌 달팽이 살을 감자 퓌레에 섞은 후 공처럼 둥글게 모양을 잡아준다. 밀가루, 달걀, 빵가루 순서로 묻혀 180도 기름에 튀기면 순식간에 크로켓이 완성된다. 프렌치 드레싱으로 버무린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 – 지오, 그레구와르 셰프(랑빠스 81)

6_메추리

“메추리 하면 ‘알’이었다. 육질이 뻣뻣하고 닭에 비해 크기가 작은 탓에 메추리알이 고기보다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경남 의령에서 마늘을 먹인 왕메추리가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메추리구이가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메추리 고기의 독특한 향에 빠지면 달리 헤어날 길이 없다. 하루 정도 마리네이드한 다음 오븐에 구우면 보기만 해도 침이 솟을 정도로 윤기가 흐른다. 좀 더 공들여 대접하고 싶다면 메추리 가슴과 다리에 풀렛(작은 닭)으로 만든 무스를 채워 굽는 것도 방법이다. 타닌감 있는 시라즈 와인을 홀짝이면서 먹으면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진다.” – 손종원 셰프(라망 시크레)

7_달고기

“달고기는 괴팍한 생김새에서 알 수 있듯 해저에서 서식하는 심해어다. 유럽에서는 고급 어종에 속해 극진한 대접을 받지만, 국내에서는 유달리 평가절하되는 생선이기도 하다. 2011년 호주와 영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자마자 제주도에서 바다낚시로 달고기를 구해주는 곳을 수소문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1kg1만원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작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달고기구이가 오르며 가격이 배로 뛰었다. 좀처럼 ‘실패’가 없는 재료이기 때문에 튀기든 익히든 어떤 조리법과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생선회로 즐겨도 그만이지만 16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분간 익히면 달고기의 잠재력이 화르르 살아난다. 살이 익을 수 있는 최저의 온도에서 짧은 시간 익히기 때문에 오븐에서 갓 꺼낸 살점을 맛보면 청포묵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주 맑은 꽃게 에센스를 한 바퀴 뿌리고 허브로 만든 퓌레, 태운 가지, 피클, 미더덕 폼을 곁들이면 맛의 빈칸이 채워진다. – 류태환 셰프(류니끄)

8_돼지족

“대부분 마장축산물시장을 한우만 취급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상가 아케이드를 조금만 뒤지면 돼지족을 다루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돼지족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부족하지만 그중 껍질을 부들부들하게 삶은 다음 순대처럼 속재료를 채워 먹는 방법을 제일 즐긴다. 취향껏 재료를 추가해도 좋지만 돼지 안심, 훈제 우설, 버섯 콩피의 조합이 아직까진 ‘베스트’였다. 먹을 때 다소 난감하더라도 꼭 발가락까지 씹고 뜯고 맛보시길. 양념이 가장 잘 배는 부위라 한 입 먹으면 응축된 맛이 농밀하게 퍼진다.” – 이재훈 셰프(있을 재)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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