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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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F/W 파리 남성 패션위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들

‘네임드’ 디자이너들의 새 하우스 적응기부터 예상치 못한 협업까지. 2019 F/W 파리 남성 패션위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여덟 가지 순간.

복면가왕

클래식한 슈트에 아방가르드한 트위스트를 더하는 톰 브라운의 이번 컬렉션은 파격이었다. 재활용 버블 랩을 이용해 디자인한 무대와 좌석뿐만 아니라 모델의 얼굴까지 플라스틱 랩으로 감싼 메이크업을 선보였으니까. 잘 만들어진 테일러드 슈트 사이로 해체적인 실루엣의 룩이 섞여 있는 톰 브라운의 컬렉션은 고전적인 것과 전위적인 것,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정면 돌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임 후 선보인 첫 셀린 컬렉션에서 자가 복제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에디 슬리먼이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셀린의 첫 남성 컬렉션이기도 했던 이번 시즌, 런웨이는 어김없이 에디의 남자들이 걸어 나왔다. 삐쩍 마른 몸, 앙상한 다리, 퀭한 눈과 건들건들한 애티튜드… 바지의 통이 아주 조금 넓어진 것 외엔 디올 옴므, 생로랑 디렉터 시절의 룩과 다를 바 없다지만 아무렴 어떤가. 광신도 같은 든든한 지원군들에게 그는 여전히 영웅이니.

세계는 하나

루이 비통 쇼는 마이클 잭슨이 평화를 노래했던 곡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흐르는 가운데 시작됐다. 모델들은 마이클 잭슨이 즐겨 착용한 장갑과 그의 서명이 적힌 셔츠, 스웨터를 입고 걸어 나왔다. 후반부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를 이어 붙여 만든 룩이 등장했으니, 아마도 세계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나 보다. 국기로 만든 룩, 광섬유 소재의 빛나는 백과 슈즈는 쇼가 끝남과 동시에 SNS를 점령했다. 이쯤 되면 버질 아블로의 두 번째 루이 비통 쇼는 성공적인 셈.

식사하세요

파리 쇼의 마지막 날 아침, 자크뮈스 부대는 ‘밀레꾼’으로 변했다. 쇼 초대장과 함께 보낸 투박한 시골빵은 쇼의 힌트였다. 쇼장에는 소박하면서도 멋 내지 않은 아침 상이 차려져 있었고, 작업복 재킷과 유틸리티 베스트, 카고 형태의 팬츠를 입고 덕 부츠를 신은 모델들이 아침을 먹으며 걸어 나왔다. 프랑스 전통 워크웨어를 특유의 낙천적인 정서로 풀어낸 자크뮈스의 쇼는 여유와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청년과 신사 사이

크리스 반 아셰의 벨루티 데뷔 쇼는 청년과 신사 그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백발의 신사와 삭발의 청년이 교차하며 새로운 벨루티의 시작을 알린 런웨이는 고유의 색이 된 로열 블루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컬러 팔레트와 격식 있는 가방과 구두, 그리고 액세서리가 이어졌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이끄는 크리스 반 아셰는 디올 옴므를 떠나 벨루티라는 몸에 꼭 맞는 새 옷을 입은 듯하다.

함께해요

발렌티노 쇼에서 잇따라 등장한 베토벤의 정체는 바로 다음 쇼로 배치된 언더커버 쇼에서 알 수 있었다. 언더커버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쓰인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를 오마주한 쇼를 선보였고, 베토벤은 이 두 브랜드의 협업을 연결하는 고리였던 것. 두 브랜드의 수장인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와 준 다카하시는 각자의 컬렉션을 위한 일련의 그래픽 시리즈를 따로, 또 함께 고안했다. 언더커버는 베토벤 초상화의 판타지를 살렸다면, 발렌티노는 2099년 발렌티노를 테마로 미래를 그렸다. 같은 베토벤을 다른 느낌으로 차용한 것도 흥미로운 점.

기대해

로에베가 프레젠테이션 형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파리 남성 컬렉션에 합류했다.  럭비 스트라이프의 스포티한 룩, 테일러링 슈트, 루스하고 심플한 핏의 니트 등 특유의 우아하고도 위트 있는 룩이 등장했다. 가죽 명가답게 적재적소에 가죽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했음은 물론이다. 조너선 앤더슨은 실망시킬 리 없었다. 앞으로 파리 남성복 컬렉션의 기대주로 부상할 듯.

미래로

킴 존스의 디올 맨은 지속적으로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모든 영감의 근원은 무슈 디올에서 시작된다. 이번 쇼의 핵심 요소였던 표범 모티프 또한 무슈 디올의 첫 번째 컬렉션에서 등장한 것. 피날레에 사용된 무빙 워크 런웨이는 전통적인 쿠튀르 기법에 최첨단 기술력을 버무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을 연출하는 킴 존스의 디올 맨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패션 에디터
김민지
사진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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