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만이 유일한 관심사라 말하는 배우 김선호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어디선가 빛이 비치고 (김선호)

2019-01-15T17:29:32+00:002019.01.15|FEATURE, 피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이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배우 김선호로 자랐다. 처음 연기를 할 때 그의 머리 위로 내리쬐던 빛처럼, 밝고 개운한 김선호의 오늘.

검정 레인 코트와 빨강 재킷은 드리스 반 노튼, 노랑 셔츠는 캘빈 클라인 진, 분홍 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팬츠는 캘빈 클라인, 슈즈는 토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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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수, 남지현과 함께 출연한 tvN <백일의 낭군님>이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출연 배우들은 베트남으로 포상 휴가를 떠났다는데 당신은 왜 여기 있나? 다음 드라마의 대본 리딩 연습이 잡혀 있어서 남기로 했는데, 리딩 일정이 취소됐다. 다들 수영복 입고 신나게 놀더라, 모래사장에 ‘백일의 낭군님’이라고 글씨 새기면서. 베트남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선 무지 부럽다. 서울에는 한파가 닥쳤는데….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KBS <김과장>으로 드라마에 데뷔한 지 2년이 채 안 됐다. 다섯 번째 드라마 체험은 어땠나? 사전 제작 작품이어서 한여름에 촬영했다. 더운 날씨에 한복을 껴입고 촬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경주, 문경 등 지방에서 촬영하느라 숙소 생활을 했다. 연기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으니 숙소에서 빨래를 열심히 하다가 바로 옆 촬영장으로 나가곤 했다.

마지막 회 촬영까지 마치고 방송을 모니터링했을 텐데. 자신의 연기를 봐줄 만하던가? 초반엔 못 봐주겠더라. 극이 흐르는 시간 순서대로 찍지 않은 경험을 처음 해봤더니, 장면과 장면이 이어질 때 내 연기가 자연스럽게 붙지 않는 게 다 보였다. 다행히 갈수록 어깨 힘도 빠지고 나아졌다.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원득(도경수)과 이어지는 홍심 (남지현)을 짝사랑하는 정제윤으로, 서브 남자 주인공이 었다. 감독이 김선호를 왜 캐스팅했다던가? <최강배달꾼>이라는 드라마에 같이 출연한 김기두 형이 나를 추천했는데, 감독님이 안 그래도 그 작품을 보면서 신인이 남다른 호흡과 말투로 연기한다고 눈여겨봤다더라. 그 드라마 오디션을 볼 때 껌을 씹으면서 건들거리며 들어갔다. 배달꾼의 일원 중 하나라도 맡고 싶어서. 그런데 생각보다 큰 역을 맡았다. 아버지한테 ‘병신’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사는 재벌가 자제 역이었다. 감독님한테 내가 먼저 물어봤다. ‘저는 괜찮은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나는 내가 아는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 재벌가 인물은 본 적이 없으니, 도도하고 날카로운 드라마 속 재벌남 대신 내 방식대로 연기했다. 어떻게 보면 재벌남답지 않게 평범한 인물로 표현했지. 보다시피 내가 좀 평범하니까.

평범한 사람인데 전국에서 날고 기는 끼의 소유자들이 모이는 서울예대엔 어떻게 입학했나? 고3 때 친구가 연기 학원에 간다면서 같이 가자더라. 그렇게 연기라는 걸 처음 접했다. 사실 나는 트라우마가 있어서 10대 시절 반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낯가림도 심한 아이였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길래? 초등학생 때 어머니와 집에 있는데 강도가 들었다. 멀리서 언뜻 보고선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가 칼에 찔리는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내 방에서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다. 아직도 기억난다, 장난감 상자가 와르르 무너져 장난감 기타가 넘어지며 내던 소리,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끌려가실 때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강도는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는 저항하고… 그 이후 늘 내 뒤에 누가 서 있기만 해도 불안했다.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일으켜 세우면 숨 쉬기도 힘들었고, 시험 감독하던 선생님이 걷다가 등 뒤쪽에서 멈추는 게 느껴 지면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던 나로서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힘들었겠다. 어머니는 괜찮으신가? 한동안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사람만 봐도 다 그 강도로 보이셨다고 한다. 외출하셨다가 문을 제대로 안 잠근 것 같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고. 물론 이제는 많이 괜찮아지셨다.

후드 카디건은 생로랑, 노랑 재킷은 드리스 반 노튼, 체크무늬 점프슈트는 막시 제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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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때 연기 학원에 다니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나?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 나에게 ‘너는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연습실의 노란색 핀 조명이 떨어지며 나를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연극 무대에 서서 핀 조명을 받을 때도 선생님이 조언해 주던 그 순간의 빛이 떠올라서 울컥했다. 바로 그 선생님 이 서울예대 출신이어서 나도 선생님을 따라 예대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처음에는 연기를 하겠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아이였는데, 조금씩 나아졌다.

서울예대 입학 시험을 볼 때는 어떻게 어필했나?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심하게 떠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이것저것 뭐든 해보려는 내가 예뻐 보였다고 한다. 내가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데, 주름 잡히는 얼굴 표정이 신하균 선배와 닮았다고도 하고. 다른 지원자들은 춤추고, 바지도 벗고, 아주 난리였다. 세상에 시험장에서 바지를 벗다니!

오늘의 사진에서는 그 보조개를 볼 수 없으니 다음 작품에서 꼭 확인해야겠다. 보조개가 김선호의 무기 중 하나 인가? 한때는 스트레스 요인이었지만, 그래도 심심한 마스크에 서 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는 피부도 하얀데 보조개까지 있어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어떤 여학생은 집까지 따라와서 어떻게 하면 보조개가 생기냐고 물어봤다. 그런 질문도 스트레스여서 어린 마음에 ‘어, 뜨거운 완두콩을 볼에 올려놨더니 보조개가 생겼어’라고 해버렸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집에 가서는 정말 완두콩을… 나중에 그 친구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7년 정도 연극에 출연하면서 <셜록>, <트루웨스트>, <클로저>, <거미 여인의 키스> 등으로 무대에 올랐다. 발성 훈련을 따로 많이 했나? 원래는 아주 묵직한 저음이어서 내가 뭐라고 말하거나 대사를 하면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다. 일상생활에서도 톤을 더 높이려고 엄청 애썼다. 드라마를 하면서도, 나 같은 사람은 평범함이 오히려 장점이라면 장점 인데 연극 발성을 내면 괴리감이 들까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극 생활을 하는 동안 내 연기가 참 별로 라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어서 조언을 구하려고 배성우 형, 오만석 형, 김소진 누나 등등 주변 선배에 게 많이 붙어 다녔다. 특히 성우 형은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연기는 과학이야’ 같은 명언도 남겼다.

연극 경험을 어느 정도 쌓았으니 드라마나 영화로 매체를 옮길 생각이 든 건가? 아니, 정말 우연한 기회로 시작했다. 연극 공연 중인 곳으로 김선호 씨가 오디션을 좀 볼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본 드라마 오디션이 <김과장>이었다. 당시 이은진 피디의 친구가 지금 드라마 <죽어도 좋아>의 작가님인데, 그 작가님이 1년에 연극을 1백 편은 보는 분이라고 한다. 피디님이 친구에게서 추천을 받아 나를 찾은 거다. 그 시절 나는 연극하는 행복에 젖어 있 었다. 선배들에게 귀동냥으로라도 주워듣는 이야기가 소중했고, 연극 생활이 마냥 배고픈 걸로 알려져 있지만 돈 벌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연기를 하면서 트라우마도 극복했다. 연기가 재밌나? 나는 사람들을 사귀고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법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기를 통해 그런 사회 활동을 다 알아갔다. 어느 순간 하나 알게 된 건, 내 마음이 조금만 다치면 연기도 다친다는 것. 상대 배우에게 내 부족한 점을 먼저 오픈하면 상대도 좀 마음을 열면서 사이가 가까워지곤 했다. 그런 재미로 연기를 이어온 듯하다. 연기 외에 다른 관심사도 없고.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배우는 누구인가? 송강호 선배. 누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물을 때도 송강호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연기는 선택의 문제인데, 그는 가장 리얼한 선택을 한다. 연기를 위한 연기를 인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로 말이다. 그래서 ‘저건 과연 시나리오에 묘사돼 있었을까, 저 사람이 알아서 한 걸까?’ ‘시나리오에 써 있었다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연기가 아닌 것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3월부터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 2 주연으로 또 만날 수 있다. 연기 잘하는 신인들이 출동한 시즌 1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와 <안녕, 프란체스카>, <푸른거탑>을 쓴 김기호 작가의 포복절도 할 대본이 다시 한번 기대된다. 나는 박효신을 꿈꾸지만 일이 잘 안 풀려서, 노래 교실에서 할머니들에게 트로트를 가르치는 인물로 나온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젖꼭지가 너무 처져서 저 밑에 달려 있는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하는 인물이고. 배경은 시즌 1과 똑같이 게스트하우스다. 우리 작품에서 는 ‘진지함 속의 코미디’가 생명이 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도 커리어가 잘 풀리고 있는 편 아닌가? 굉장히. 난 참 운이 좋다. 행운이 계속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