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예고편이 한국 스타들의 목소리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 2년을 재구성한 <다이애나>의 특별 예고편에는 뜻밖의, 하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 타이틀롤을 맡은 나오미 와츠가 아니라 내레이션 더빙에 참여한 김성령 이야기다.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오직 그뿐이었습니다”라는 다소 감상적인 문장은 배우의 감정이 포개지면서 적절한 호소력을 얻었다. 올해 아카데미 4개 부문 후보작이었던 <필로미나의 기적> 예고편의 캐스팅 역시 만만치 않다. 소지섭과 김영애의 내레이션은 실화를 각색한 이 영국산 드라마를 국내 관객들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소년과 떠돌이 개의 우정을 그린 <벨과 세바스찬> 역시 <아빠! 어디 가?>로 전체 관람가풍의 따뜻한 이미지를 얻은 이종혁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종혁의 목소리를 영입했다. 요즘은 영화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만을 제작하는 데도 별도의 스타 캐스팅이 필요한 시대다.

해당 작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덩치 큰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멀고, 거장 감독의 이름값에 기댈 수 있는 아트하우스 영화도 아니다(섭섭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필로미나의 기적>을 연출한 스티븐 프리어스 역시 한국에서는 딱히 티켓 파워를 발휘할 만한 이름이 못 된다). 즉,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 마케터들이 비빌 언덕이 협소한 작품들인 셈이다. 이런 경우 홍보에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해지는 건 당연하다. “한국 영화는 배우들을 직접 움직일 수 있으니 홍보가 그나마 쉬운 편이에요. 외화의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돼 있고 경쟁작도 워낙 많죠. 그래서 관객의 눈에 들기 위해 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벨과 세바스찬>의 수입사인 그린나래 미디어 유현택 팀장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시도 가운데서 스타 마케팅만큼 효과가 확실한 예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목소리 연기자로 전문 성우보다 개그맨이나 아이돌 가수를 선호하게 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유행에 다짜고짜 편승한 몇몇 작품은 미스 캐스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본편을 건드리지 않고 예고편 내레이션 정도에서 선을 긋는 요즘의 마케팅은 이같은 위험 부담이 없다. 게다가 10대 초반까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는(그래서 이들의 어린 입맛에 맞춰야 하는) 애니메이션 더빙에 비해 훨씬 유연한 선택이 가능한 편이다. 김성령, 이종혁, 그리고 소지섭과 김영애는 어느모로 보나 납득할 만한 캐스팅이다. 유현택 팀장은 투자한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일단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에 매체에 노출될 기회가 확실히 늘어난다)를 거두는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시도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거라고 내다봤다. 문득 앞으로 개봉할 외화들의 예고편에는 어떤 한국 배우들이 참여할지가 궁금해진다. 다이애나 비의 전기 영화를 김성령이 맡았다면, 니콜 키드먼이 그레이스 켈리를 연기할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는 누구의 목소리가 어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