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가로수길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들썩일 정도는 아니지만,끈기 있는 방문객들로 언제나 일정 기온 이상을 유지하는 이곳에 가면 새로 문을 연 카페며 레스토랑이 항상 눈에 띈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가로수길 풍경에 새로운 표정을 더한 몇 곳을 소개한다.

가로수길 프로젝트

간판은 거창하게 내걸었지만 그 내용인즉슨 상당히 소박하다. 그저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취하자는 취지니까. 가로수길 프로젝트는 (당연하게도) 신사동 가로수길에 최근 문을연 일식 주점의 이름이다. 요란한 장식 없이 깔끔한 실내의 한쪽 벽면에 조명이 환한 선반을 만들고 빈 술병을 가지런히 진열했다. 간단하지만 귀엽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풍경에 활기를 더했다. 스틸과 돌 등 차갑고 묵직한 소재를 전체 인테리어에 활용한 대신, 밝은 색의 목재 테이블과 의자를 실내에 배치해 공간의 질감을 심심하지 않게 조율한 점도 눈에 띈다. 통유리로 외벽을 삼아 시야를 시원하게 확보했는데, 밤에는 조명을 은근하게 늘어뜨려서 한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시원한 아사히 맥주(8천원)나 오유와리,우롱차와리(각각 2oz에 7천원, 8천원) 같은 일본 소주, 혹은 종류별로 구비된 사케에 정갈하게 차려 내는 퓨전 일식을 곁들이면 조곤조곤한 대화에 딱 좋다 싶은 술상이 된다. 두부와 우엉조림을 함께 곁들이는 두부 스테이크(1만2천원)도 담백하게 먹기 좋고 아삭하게 튀긴 고로케(5개, 8개가 각각1만원, 1만4천원)의 식감 역시 뛰어나지만, 부타 샤브 샐러드(사진, R 1만1천원, L 1만5천원)는 슬쩍 출출해지는 늦은 저녁 안주로 더할 나위 없다. 기름이 쪽 빠지도록 삶은 삼겹살에 잘게 썬 파와 그린 샐러드를 내놓는 메뉴인데, 한꺼번에 집어 간장이나 고소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깔끔하다.

CAFE LA FIESTA

그럴듯하게 녹이 슨 철제 캐비닛과 선명한 색깔의 플라스틱 걸상을 한데 들여놓는 등, 시간을 레고 블록처럼 이리저리 맞추어 내는 인테리어 안에서라면 빈티지는 공간의 악센트가 된다. 하지만 벽과 천장에 붓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그린 그림이며 조용하게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이 있는 장소라면 옛것들은전체 풍경에 이음매 없이 녹아든다. 숨소리까지 편안해질 것 같은 이곳의 이름은 그래서 라 피에스따(휴일, 축제)다. 빈틈없이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별장 같은 외관과 옅은 핑크로 염색한 등나무 가구, 작은 테라스 등이 안온한느낌을 준다. 카페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차림은 아주 풍성하다. 향이 좋은유기농 커피(5천원~7천원 선)와 허브티(8천원)는 물론 주문 가능하고, 파스타나 리조토(1만원대)뿐 아니라 바비큐까지 맛볼 수 있다. 바비큐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30분까지만 제공한다. 하노이식 소스를 입힌 닭가슴살에 고추장 삼겹살이나 데리야키 소스를 바른 통오징어, 수제 소시지, 그린 샐러드 등을 포함하는 기본 바비큐세트(사진)는 2만5천원이다. 보유하고 있는 와인의 종류도 다양한데 가격은 대부분10만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다.

CAFE GRANDE

카페 그란데는 어쩐지 1년 내내 크리스마스일 것 같은 곳이다. 빨간색 차양 아래출입문 안쪽 공간은‘넓지 않다’보다 ‘좁다’에 가까울 만한 규모다. 음식 재료며 주방 도구가 고스란히 드러난 오픈 키친에서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요리를 시작하면, 가게 안의 모든 방문객들이 맛있는 냄새를 나누어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자칫하면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테이블 간 거리도 가깝지만, 벽은 노랗게, 그리고 테이블은 파랗게 칠한 이 앙증맞은 가게에는 그런 식으로 옹기종기모여 앉은 풍경이 잘 어울린다. 적당히 낡고, 적당히 닳아 있고, 공기가 흡족하게 따뜻하다. 뱃속을 기분 좋게 데우려면 밥공기만 한 머그잔에 하나 가득 담겨 나오는 아메리카노(4천8백원)를 한 잔 주문하면 된다. 입맛이 쓰지 않고 고소해 보리차처럼 훌훌 마실 수 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차림표가 단출하지만, 메뉴는 꾸준히 보완해갈 예정이다.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먹음직스럽고, 와인에 곁들이기에는 부르스게따(1만원)나 홍합찜(사진, 1만2천원)도 괜찮다.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홍합찜 국물에 거친 바게트를 적셔 먹으면 좋다. 전화로 예약하면서 원하는 가격대를 이야기하면 그에 맞추어 식단을 구성해주기도 한다.

LA KAZBAH

이국적인 상호만큼이나 공간의 느낌도 특별하다. 조도가 낮은 실내의 테이블과 바 곳곳에 작은 촛불을 밝혀두었고, 벽면을 따라 놓인 소파에 아랍식 문양의 쿠션을 가지런히 배치했으며 천장에는 붉은 천을 늘어뜨렸다. 큼직한 구식 램프나 물담배 같은 소품은 2007년의 서울이라는 시간적, 지리적 맥락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그런 까닭에 눈이 더욱 즐겁다.입구 쪽에 놓여 있는 디제이용 오디오 기기에서는 하우스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흘러나와 실내를 소란스럽지 않은 비트로 채운다. 늦도록 적당량의 알코올과 대화를 섞기에 꼭 알맞은 장소다. 78만원인 샤토 마고부터 5만원대 저가 상품까지 다양한 와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칵테일(사진) 가격은1만원으로 통일했다. 가볍게 곁들일 만한 메뉴로는 홍합 와인찜의 인기가 높다. 화이트 와인, 크림소스, 토마토소스 중에서 선택 가능하고 가격은 2만원이다. 연어나 베이컨을 이용한 샐러드(2만원)도 깔끔하지만, 오븐구이 단호박 베이컨(2만5천원)의 맛은 특별하다. 장식대에 놓인 물담배는 그저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딸기나 바닐라 등 과일 향이 나는 담배를 1시간에 1만5천원 정도로 즐길수 있다니 호기심을 품어볼 만하겠다. 라 카즈바는 성채, 혹은 요새라는 뜻이다.

GARDEN PARTY

커피 한 모금과 작게 자른 와플 조각만으로 충분한때도 있겠지만, 지글지글한 안주에 시원한 생맥주나 소주를 양껏 기울이고 싶은 날도 있게 마련이다. 떠들썩한 대화가 새벽까지 이어질 것 같으면 가로수길에서 몇 발자국만 더 걸어 가든 파티로 향하면 된다. 날이 풀린 뒤에는 비닐 천장을 걷어낼 야외 데크부터1, 2층으로 이어지는 실내까지, 전체 공간이 상당히 넉넉하다. 원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마당에서 직접 구워주는 돼지갈비나 닭갈비 바비큐(2만5천원), 혹은 모둠 튀김(2만원) 등을 주문하면 테이블 위가 금세 푸짐해진다. 큰부담 없이 생각날 때마다 들를 수 있을 만큼 가격도, 맛도, 느긋한 분위기도 모두 흡족한 곳이다.

BUCCELLA

갓 구운 빵과 볶은 커피의 고소한 냄새가 작은 가게를 가득 채우는 오후면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싶어진다. 부첼라는 1년 365일이 오후만 있던 일요일로 채워지기를 바라게 할 만한 곳이다. 정통 프랑스풍의 키쉬며, 유기농 허브와 신선한 속재료를쫄깃한 빵 사이에 끼워넣은 샌드위치며, 제대로 달콤한 케이크와 타르트 등 어느 것 하나 허술한 메뉴가 없다.창가에 앉아 빵을 찢으며 나른하게 볕을 쬐어도 좋겠지만 모든 메뉴가 포장 가능하다니 잠시 들러 간편하게 도시락만 꾸며도 되겠다.

CAFE BYUL

요즘 새롭게 문을 연 카페들은 하나같이 시멘트 내벽과 질감을 살린 나무 바닥, 그리고 일부러 짝을 어긋맞게 배치한 빈티지 가구나 구식 소품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그 비슷비슷한 꾸밈에 싫증이 날 지경이지만, 트렌드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남달리 예민한 감각과 색깔까지 드러내는 공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게 안의 각 요소가 하나의 그림조각들처럼 꼭 맞게 어울리는 카페 별이 적당한 예다. 복층 구조인데 1층에는 펜선 느낌이 살아 있는 큼직한 드로잉 스티커를 그래피티처럼 벽에 붙여두었고, 2층 벽면의 나무 선반에는 클래식한 장식품을 차분히 배열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전구와 등을모빌처럼 기하학적으로 늘어뜨린 샹들리에는 시선의 무게중심으로 적절하다. 옛것과 새것, 투박한 나무와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소재는 공간에 유쾌한 긴장감을 주면서 서로 어우러져 조화롭다. 디자인을 전공한 오너들이 실내 설계를 직접 맡았다고 한다. 인테리어 면면에서 짐작되는 취향이 예사롭지 않다. 향이 깊으면서도 부담스럽게 진하지 않은 커피가 훌륭한데 가격은 7천원부터 1만1천원 선이다. 클래식 벨지안 와플(사진, 단품 9천원, 세트 1만3천원)은 초콜릿 시럽을 뿌린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생크림, 메이플시럽 등과 함께 나온다. 과하게 달지도 않고 딱 좋을 만큼 반죽에 찰기가 있어 씹는 맛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