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르리 정원에서의 산책, 26 FW 디올 컬렉션

명수진

DIOR 2026 FW 컬렉션

“파리 정원에서 옷을 차려입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담고 싶었습니다.”
– 조나단 앤더슨

파리패션위크 두 번째 날인 3월 3일, 파리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 내려앉은 정오의 햇살은 화창한 날씨 이상의 역할을 했다. 조나단 앤더슨의 두 번째 디올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위해 튈르리 공원에 팔각형의 유리 온실 런웨이가 설치되고, 파리 전역의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초록색 의자와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를 소환한 듯한 수련 연못이 설치됐다. 그곳을 찬란한 자연 채광이 내리 비치자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토록 집착했던 ‘빛의 찰나’가 펼쳐졌다. 조나단 앤더슨은 이번 시즌, 파리를 영원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산책(Promenade)’과 ‘기쁨의 정원(Pleasure Gardens)’이라는 테마로 아름다운 한 폭의 인상주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쇼의 서막은 하마나 카즈노리(Kazunori Hamana)의 세라믹 작품과 수련 어렌인지먼트에서 시작되었다. 조나단 앤더슨이 디자이너 벨라 프로이드(Bella Freud,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증손녀이자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딸)와 함께 공원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티저 영상으로 공개됐다. 조나단 앤더슨은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과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의 퀴어 소설 <외로움의 우물(The Well of Loneliness)>이라는 두 작품에서 받은 이질적 영감을 정교하게 하나로 직조해냈다. 그 결과물은 깃털처럼 가벼운 파스텔 꽃무늬 프린트와 대담한 아플리케, 그리고 조나단 앤더슨의 전매특허인 과장된 실루엣을 통해 우아하면서도 반항적인 분위기로 만개했다. 특히 하우스의 성소와도 같은 바 재킷을 크롭 기장으로 과감히 쳐내고 풍성한 시폰 튀튀와 매치한 대목은, 무슈 디올이 정립한 ‘플라워 우먼’을 동시대적인 산책자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압권이었다.

디테일의 변주는 더욱 치밀했다. 1949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발표된 전설적인 주농(Junon) 드레스는 비대칭 데님 스커트로 해체되었고, 엄격한 브로케이드 재킷과 실크 트랙 팬츠의 옆선을 타고 흐르는 수십 개의 싸개 단추는 고전적인 브라이덜 무드와 스포티즘의 기묘한 동거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샹티이 레이스와 도네갈 트위드, 물결에 반사되는 빛을 형상화한 무지개빛 이리데슨트(Iridescent) 실크와 깃털이 더해지며 런웨이는 마치 모네의 정원 같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련은 컬렉션 전반에 흐르는 주요 모티브로, 대담한 커스텀 주얼리 뿐 아니라 가방과 신발의 입체적인 모티프로도 사용됐다. 한편, 조나단 앤더슨은 고전적 여성성과 상반되는, 새틴 라펠이 돋보이는 디너 재킷을 와이드 데님 팬츠와 매치하며 젠더의 경계를 비틀어버리는 반전을 선사하기도 했다. 특히 오버사이즈 체크 울 수트는 남성복의 견고함과 여성복의 섬세함 그 어딘가에 위치하며, 현대적인 산책자가 지녀야 할 자유로운 태도를 대변했다. 위트가 넘치는 액세서리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땅콩 모양을 본뜬 피넛 클러치와 카나쥬 패턴 대신 꽃과 꿀벌 장식을 더한 레이디 디올, 그리고 개구리 모양 미노디에르(Minaudière)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럭셔리의 권위를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조나단 앤더슨 특유의 실용적 럭셔리는 데님으로 완성됐다. 수천 개의 진주와 크리스털을 수놓아 이슬 맺힌 정원을 형상화한 데님 팬츠에 디올 스타일로 재해석한 어그 스타일 부츠를 매치한 룩은 동시대적 럭셔리의 ‘추구미’를 잘 보여줬다. 이처럼 과거의 아카이브를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정원 위로 불러내 기어이 산책하게 만드는 힘. 조나단 앤더슨은 이번 26 FW 컬렉션을 통해 디올이라는 정원에 자유롭고도 초현실적인 꽃을 피워냈다.

영상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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