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RAGAMO 2026 FW 컬렉션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브랜드의 기원인 1920년대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다시 한번 이어갔다. 금주법 시대의 비밀 주점이었던 스피크이지(speakeasy) 문화에 해군 유니폼의 요소를 충돌시켰다. 전통의 규범을 해체하고 그 틈새에 관능을 채워 넣은, 지극히 동시대적이고도 서사적인 런웨이였다.
26 FW 페라가모 컬렉션은 트리엔날레 밀라노(Triennale Milano)의 어두운 갤러리에서 펼쳐졌다. 입구는 좁고 미로 같은 통로로 구성하여 비밀스러운 장소에 입장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짙은 네이비 커튼을 드리워 스피크이지의 은밀한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델들이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억압된 시대를 뚫고 나온 해방의 에너지였다. 런웨이의 서막을 연 것은 익숙한 해군 유니폼의 전복이었다. 피코트와 세일러 칼라 셔츠는 단추의 위치가 과감하게 옮겨지거나 여밈이 느슨하게 풀린 채 흐트러졌고, 칼라 부분이 날카롭게 잘려 나간 화이트 셔츠는 해체주의적 미학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잉크 블루 컬러의 드레시한 룩들은 일본식 오리가미를 연상시키는 구조적 실루엣을 뽐냈으며, 단추로 촘촘하게 연결된 원피스는 80년대 본디지 룩의 묘한 긴장감과 관능미를 일깨웠다. 특히 해군의 언더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실크 드로스트링 셔츠는 거친 해상 유니폼 사이에서 유려하게 유영하며 부드러운 대조를 이루었다.
실루엣은 한층 대담해졌다. 80년대 특유의 풍성한 볼륨감이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정제된 미니멀리즘과 조우했다. 와이드 숄더와 벌룬 슬리브가 극적인 볼륨을 만드는 화이트 모크넥 원피스, 세일러 칼라에 웨이스트 벨트를 더한 시어링 재킷은 과거의 향수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그레이지 컬러의 스웨이드 수트 위에 툭 걸친 그린 레인 코트는 이번 시즌 페라가모가 제안하는 현대적 워크웨어의 정석을 보여주었으며, 퀼팅 레더 코트와 포 포켓 원피스는 브랜드의 가죽 장인 정신을 증명했다.
컬렉션의 후반부는 계급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스피크이지 바의 은밀한 공기로 채워졌다. 브론즈 컬러의 벨벳 라메와 플로럴 자카드 소재가 등장하며 런웨이는 한층 화려해졌고, 피날레에 이르러서는 마치 그리스 신전의 기둥이 걸어 나오는 듯한 거대한 주름 원피스가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냈다. 플루이드한 골드와 브라운 새틴 소재가 몸을 타고 흐르며 만드는 유려한 실루엣은 오버사이즈 블랙 울 코트와 만나 드라마틱하게 완결됐다. 네이비 블루를 중심으로 초콜릿 브라운, 카멜, 틸(Teal)로 이어지는 차분한 팔레트는 후반부에 이르러 오렌지와 스칼렛 레드로 폭발하며 대담하게 전개됐다.
액세서리 역시 아카이브의 영리한 부활이 돋보였다. 아이코닉한 허그 백(Hug Bag)은 가로로 긴 ‘이스트-웨스트(East-West)’ 비율로 변주되어 한층 모던해졌고, 가방의 버클 하드웨어를 의류나 벨트백에 그대로 이식한 위트 넘치는 디자인도 눈길을 끌었다. 슈즈 라인은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혁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954년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딥 뱀프 슬링백과 1950년대 ‘쉘 솔(Shell Sole)’ 기법을 적용한 하이브리드 웨지 샌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정교한 가교 역할을 했다.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이번 26 FW 컬렉션을 통해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탐닉적인 화려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일상적인 워크웨어와 고전적인 이브닝웨어의 경계를 능숙하게 허문 그는, 페라가모라는 거대한 유산을 지금 당장 입고 싶은 동시대적 럭셔리로 안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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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Ferragam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