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 SOHEE 26 SS HAUTE COUTURE 컬렉션
1월 29일,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의 마지막 날. 샹그릴라 호텔에선 한국의 정원이 오트 쿠튀르의 모티프가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전통 미학을 현대적인 쿠튀르 언어로 번역해온 디자이너 박소희가 이번 시즌에도 다시 한 번, 시간과 정성의 무게를 눈부신 이미지로 증명했다. 테마는 ‘브리딩 폼(Breathing Forms)’. 한국 남쪽 끝 여름 별장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등나무와 대나무, 계절이 바뀌는 정원의 풍경이 한 벌 한 벌 드레스 위에서 숨 쉬듯 피어났다. 디자이너는 ‘육체가 기억과 풍경, 상징의 그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아래, 코르셋과 한복의 영감을 레이어링하며 몸을 하나의 조각처럼 다뤘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쇼의 문을 연 이는 모델 코코 로샤였다. 자개처럼 빛나는 블랙 드레스에 자개 트리밍을 더한 오프닝 룩은 한국의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제 자개를 잘게 조각 내 상감 기법으로 박아 넣어, 빛의 각도에 따라 전복 껍데기의 영롱함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곡선이 많은 드레스 위에 딱딱한 자개를 이식하기 위해 자개 조각을 수천 개로 쪼개 인체의 곡선에 맞춰 하나하나 이어 붙인, 극도의 정밀함이 요구된 작업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하얀 공작새에서 영감을 받은 화이트 깃털 드레스는 브라이덜 피스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디자이너가 상상한 ‘하얀 공작이 대나무 정원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수만 개의 깃털이 스와로브스키의 결정화된 스케일로 렌더링되어 몸 위에 조립되듯 수놓인 구조 속에 담겼다. 그 결과, 드레스는 깊이와 움직임, 광도를 동시에 품게 되었다. 3만 7천 개가 넘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도안에 따라 수십 명의 장인 손에서 수백 시간을 거쳐 완성된 이 한 벌은, 오트 쿠튀르가 아니고서는 탄생할 수 없는 ‘집약된 시간’ 그 자체였다.
런웨이의 한 축에는 한국 민화가 있었다. 호랑이, 소나무, 꽃 모티프는 크리스털과 비즈 워크를 통해 한층 더 윤이 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민화 속 붓 터치가 비즈의 입체적인 질감으로 옮겨져 화면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냈다. K-컬처 열풍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호랑이 모티프는 화이트 드레스 위에 블루 크리스털 자수로 수놓여 전통과 트렌드가 만나는 장면을 흥미롭게 보여줬다. 무엇보다 눈길을 붙잡은 것은 김홍도의 작품에서 출발한 드레스들이었다. 김홍도의 산수화는 비단 오간자 케이프와 조각적인 모래시계 실루엣 드레스 위에 옮겨져 회화가 하나의 움직이는 풍경이 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층층이 쌓아 올린 라벤더 오간자 스커트는 김홍도 민화 속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컬러 팔레트 역시 한국 정원에서 비롯되었다. 묵색(Ink Black)과 소색(Creamy White)의 대비는 수묵화 같은 정갈함과 고결함을 드러내고, 옥색과 비취색은 한국의 보석과 도자기에서 보던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그린 톤으로 컬렉션의 축을 잡았다. 등나무 꽃을 닮은 바이올렛, 새벽 정원의 안개를 닮은 그레이시 블루, 진주 펄이 살짝 섞인 아이보리, 세이지 민트, 피치 톤까지 더해져, 정원의 공기와 빛이 천 위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컬렉션의 서사를 더 단단히 만든 건 협업의 힘이었다. 한국 자개 명장 이영옥과의 협업으로 자개 장식 디테일 뿐 아니라, 인비테이션, 부채 모양 클러치, 나전칠기에서 영감을 받은 휴대폰 케이스 등을 함께 선보이며 런웨이 안팎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개 세계’를 구축했다. 주얼리는 2023년부터 미스 소희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런던 베이스의 아티스틱 주얼러 아나벨라 챈(Anabela Chan)과 함께 완성됐다. 꽃과 나뭇잎 모양의 과감한 이어링은 마치 모델의 어깨와 귀에서 식물이 직접 자라나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냈고, 조각적인 실루엣의 드레스 위에 놓인 주얼리는 인체를 하나의 작은 정원이자 조각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미스 소희의 26 SS 오트 쿠튀르는 말 그대로 ‘시간과 정성의 집약체’였다. 한국의 산수화와 민화, 정원과 공예, 그리고 장인정신이 하나가 되어 오트 쿠튀르에 오른 모습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 영상
- Courtesy of Miss Soh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