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음악과 패션이 교차하는 문화 프로그램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s)’를 성황리에 마친 아뇨나(Agnona).
그 직후,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테파노 아이모네(Stefano Aimone)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단정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아뇨나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힘’에 관하여.

<W Korea> 더블유 코리아와는 첫 만남이다. 서면으로 진행하는데, 지금 어디에서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가?
스테파노 아이모네(Stefano Aimone) 아뇨나의 본사가 위치한 밀라노에서 답변을 작성하고 있다. 전통과 혁신, 현대적 에너지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늘 나에게 영감을 준다.
한국을 24시간도 채 되지 않는 일정으로 방문했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s)’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직접 공연을 관람하며 고객, 프레스와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은 패션과 문화에서 매우 역동적이고 영향력 있는 시장이다. 짧았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방문이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사운드스케이프’는 아뇨나가 패션을 넘어 감각의 언어로 브랜드를 표현하고자 진행하는 문화 프로젝트다. 작년에 ‘피아노 시티 밀라노(Piano City Milano)’에서 시작했는데, 사운드 배스(Sound Bath)와 피아노 연주가 결합된 콘서트로, 소리와 영혼이 만나는 경험을 통해 음악과 패션이 어떻게 공명하고 또 다른 창조로 이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브랜드가 가진 감성을 ‘조용한 울림’으로 전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서울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관객이 흔쾌히, 그리고 온전히 몰입하길 바랐다. 공간의 에너지와 아뇨나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소리와 공간, 그리고 우리의 원단이 한국의 문화 속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흐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구현하는 데 ‘진정성’과 ‘친밀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소리, 소재 그리고 감정이 연결되는 그 순간. 그 고요한 공기 속에서 브랜드의 철학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길 바랐다.
평소에도 음악을 자주 듣는지 궁금하다.
당연하다(웃음). 음악은 내 창작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나에게 음악은 기분과 분위기, 기억을 소환하는 가장 순수한 표현 형태 중 하나여서, 디자인을 구상할 때도 자주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참가자들이 아뇨나의 제품을 덮고 공연을 관람했다. 텍스타일과 음악을 어떻게 연결했나?
텍스타일은 아뇨나의 핵심이다. 따뜻함과 친밀감, 그리고 편안함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이라 생각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참가자들이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우리의 원단으로 몸을 감싸는 순간, 소리와 소재가 하나의 언어가 되어 지극한 평온을 선사한다. 이 경험을 통해 ‘고요한 럭셔리’가 지닌 내면의 힘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가 2025 F/W 컬렉션과도 연결된다고 들었다.
그렇다, 긴밀히 맞닿아 있다. 사운드스케이프가 소리와 분위기로 평온을 그렸다면, 컬렉션은 그 감정을 옷으로 구현했다. 두 작업 모두 친밀함, 조용한 힘, 섬세한 제스처 같은 ‘드러나지 않는 힘’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In Between(사이에 존재한다)’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 낮과 밤의 교차, 일과 여가가 섞이는 시간, 그리고 원단이 옷으로 완성되기 직전의 순간. 이렇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그 마법의 찰나에 매료됐다. 그 경계의 순간을 아뇨나의 미학 코드인 가벼움, 친밀함, 우아함으로 엮어냈다.

아뇨나 하면 원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컬렉션에는 어떤 소재에 집중했나?
캐시미어, 알파카, 고급 울 소재를 중심으로 작업했다. 전통적인 아우터웨어를 새롭게 재해석한 퀼팅 텍스처를 사용하기도 하고, 더블 페이스 패브릭과 섬세한 기술로 마감해 클래식한 소재에 가벼움과 기능성을 더했다.
컬렉션을 전개할 때, 이미지, 원단,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나?
컬렉션을 진행할 때 주로 텍스타일과 영감에 집중한다. 텍스타일과 영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때로는 원단이 실루엣과 무드를 제안하고, 때로는 영감이 새로운 소재 개발을 이끌기도 한다. 둘이 완벽히 만나는 순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뇨나를 입은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
진정성 있고, 내면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 과시보다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편안함, 세련됨을 추구하는 이들.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이들일 것이다.
5년 넘게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아뇨나를 이끌고 있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진정성, 장인 정신, 그리고 문화적 호기심. 내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럭셔리란 책임을 전제로, 탁월한 품질 기준에 기반하면서도 다양한 문화와의 대화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갖고 아뇨나를 이끌고 있다.

최근 개인적으로 깊이 빠져 있는 관심사가 있다면?
요즘 건축과 현대미술에 빠져 있다. 이 두 분야에서 나타나는 형태와 구조, 리듬감이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건축물의 선이 코트의 드레이핑에 영감을 주고, 조각 작품의 볼륨감이 재킷 실루엣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또 현대미술 작품들의 강렬한 색감은 새로운 컬러 팔레트를 제안한다. 이런 다양한 예술 분야와의 소통은 내가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창작 비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현대백화점 본점, 갤러리아 EAST에 이어 올해는 무역센터점에도 매장을 열었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계획이 더 있을까?
한국은 정말 역동적이고 세련된 시장이다. 한국이 보여준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지만, 급히 확장하기보다 아뇨나의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한국 고객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이려고 한다.
- 포토그래퍼
- 박현경
- 사진
- AGNONA(SOUNDSCAPES STILL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