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성층권을 뚫고 새로운 유니버스를 열었다, 26 SS 샤넬 컬렉션

명수진

CHANEL 2026 SS 컬렉션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첫 샤넬 쇼에 패션계 뿐 아니라 대중의 시선이 집중됐다. 파리 패션위크 8일차인 10월 6일 월요일 저녁 8시. 그랑 팔레에는 무려 2,400명의 게스트가 모여 그 관심의 열기를 증명했다. 칼 라거펠트 시절 슈퍼마켓, 공항, 빙하, 심지어 우주정거장까지 등장했던 그랑 팔레는 이번 시즌 거대한 태양계로 변모했다. 지름 15m의 태양을 중심으로 12개의 행성이 설치되었고, 광택이 있는 블랙 바닥에 행성들이 반사되어 오묘한 빛을 냈다. 드뷔시의 ‘달빛’에서 시작해, 이사오 토미타(Isao Tomita)가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행성(The Planets)’을 일렉트로닉으로 편곡한 음악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블랙핑크의 제니, 마고 로비(Margot Robbie), 바네사 파라디(Vanessa Paradis),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 그리고 전날 새 앰배서더로 발표된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아요 에데비리(Ayo Edebiri)까지, 샤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프런트 로를 채웠다.

사람들의 눈앞에서 샤넬은 새로운 성층권으로 진입했다. 첫 번째 룩은 매니시한 회색 팬츠 수트였다. 크롭 블레이저와 로우웨이스트 팬츠 사이로 노출된 니트 밴드가 힙한 인상을 주었고, 둘둘 말아 올린 소매 끝에서 실크 안감과 작은 샤넬 로고가 살짝 드러났다. 이번 시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샤넬 최초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파리 방돔 광장의 유서 깊은 셔츠 메이커 샤르베(Charvet)와의 협업은, 가브리엘 샤넬과 보이 카펠이 즐겨 찾던 장소였다는 역사적 인연에서 비롯됐다. 샤르베의 전통적 남성복 비율을 따른 턱시도 셔츠, 드레스 셔츠, 크롭 셔츠에는 1920년대 가브리엘 샤넬이 사용하던 서체로 ‘Chanel’ 자수를 넣었고, 밑단에는 메탈 링크 체인을 더해 이브닝 웨어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쇼의 전반부는 마드모아젤 코코의 전복적 옷장에서 출발한 ‘역설(Un Paradoxe)’을 테마로 보이시한 뉘앙스를 펼쳤다. 이어 ‘하루(Le Jour)’에서는 일상적 우아함을, ‘보편성(L’Universel)’에서는 샤넬의 코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992년 유로댄스곡 ‘리듬 이즈 어 댄서(Rhythm is a Dancer)’가 오케스트라 믹스로 흐르며 런웨이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샤넬과 마티유 블라지의 상상의 대화를 담은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Marion Cotillard)의 내레이션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했다.

샤넬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공방 네트워크(Métiers d’art)는 마티유 블라지의 창작 세계를 뜨겁게 뒷받침했다. 카멜리아는 소담한 장식부터 거대한 아플리케까지 다양한 형태로 피어났고, 바로크 진주, 밀단 모티프, 깃털 장식, 풍성한 부클레(Bouclé) 등 샤넬의 DNA가 현대적으로 해석됐다.

아이코닉한 트위드 수트 또한 실험적인 방식으로 변주됐다. 손뜨개 니트, 비즈 장식, 시스루 등 새로운 직조 기법이 더해졌고, 넉넉한 실루엣으로 활동성을 높였다. 기존에 안쪽에 숨겨졌던 체인 마감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닳아 해진 듯한 비정형적 마감으로 빈티지한 모던함을 구현했다. 비즈를 하나하나 촘촘히 넣은 체크 트위드는 멀리서 보면 평범한 트위드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정교한 트롱프뢰유 효과로 마티유 블라지 특유의 위트와 섬세함이 드러났다. 또한 실크 안감에 다른 프린트를 덧대어 드라마틱한 대비를 준 트위드 수트는 이질적이지만 매혹적이었다.

액세서리 역시 신선했다. 토캡 컬러를 변주하거나 스퀘어 형태로 재해석한 투톤 펌프스, 태양계 무드를 반영한 천체 모양 미노디에르(minaudière)가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화제가 된 것은 플랩에 와이어를 넣어 반쯤 열린 형태 및 자연스러운 구김이 유지되도록 설계한 크러시드 2.55 백이었다. 퀼팅과 체인 디테일을 덜어내고 담백하게 업그레이드한 슈퍼모델 토트백까지 실용성을 강화한 새로운 가방 라인업은 벌써부터 매장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을 듯하다. 플랩에 CC 로고를 전면 배치한 메신저 백은 프런트 로의 켄달 제너(Kendall Jenner)가 착용해 더욱 주목받았다.

총 77벌의 의상이 선보인 뒤, 피날레에서 모델 아와르 오디앙(Awar Odhiang)이 화려한 실크와 깃털 카니발 스커트를 입고 등장했다. 그녀가 마티유 블라지와 진한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이번 파리 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이자 샤넬의 새로운 우주가 열린 순간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또 다음을 기대한다. 마티유 블라지는 앞으로 연간 약 10개의 샤넬 컬렉션을 어떤 방식으로 변주할까? 오는 12월 2일 뉴욕에서 공개될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컬렉션이 그 답을 알려줄 것이다.

영상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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