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번째 파리 개인전이 지금 알민 레슈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단색화 1세대를 대표하는 최명영 작가. 그가 회화적 실존을 탐구하며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 시리즈를 통해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의 예술을 전개한 지 반백 년 세월이 넘었다. 그의 첫 번째 파리 개인전이 지금 알민 레슈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최명영 화백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영화나 소설 같은 장면들이 숱하게 펼쳐진다. 1941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남해 인천에서 자랐으며, 1950년대 후반 인천사범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다가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 현대 예술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김환기, 정상화 선생에게 사사한 것까지.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캔버스 평면과 물감이라는 매체, 그리고 작가 자신의 몸 사이의 관계를 끈질기게 탐구해 ‘사포’와 ‘지문’ 시리즈에 천착해왔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에 수직과 수평을 넘나드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한 그만의 독특한 방법론과 화법을 확립했다. 그가 지내온 세월은 지난 과거의 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든을 넘긴 작가의 스튜디오. 위대한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반복적 몸의 움직임으로 평면에 정신을 심는 예술가가 그을림 그린다. 이 모든 수행적 과정은 그의 과거와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가 평면 위에 표출해내는 ‘무한한 변주’처럼 말이다.
<W Korea> 최근 프리즈 서울이라는 국제적 아트페어가 열렸고, 서울은 이제 세계 아트 신에서 뜨거운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의 서울을 바라보는 소회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최 명 영 옛날이야기라고 고루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거를 기억해야 해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국제적인 미술 교류는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가까운 일본과 교류가 있었지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디지털 혁명과 함께,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전과 함께 유사 이래 이런 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교류가 활발해졌지요. 이런 시대에 여전히 내가 하려는 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관람객과 컬렉터들의 층위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선생님의 작품을 대하는 분들의 변화 말이에요.
아시다시피 내 그림은 무슨 특별한 형상이 있거나 컬러가 다채롭다든지 그런 게 아니에요. 단색조, 단색화 계열이라 어쩌면 뭐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할까요. 요즘 관람객, 특히 젊은 세대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가 없는데도 그걸 직접 부딪쳐 어떤 느낌을 찾아내는가 봐요. 작가 입장에서는 궁금하죠. 어떤 입장으로 그렇게 대하는지.
맞아요. 지금은 어느 세대든 예술을 향유하고 느끼려는 열망이 강한 시대입니다. 현재 2030 세대가 어떻게 예술을 바라보는지 신기하고 재밌으실 것 같아요.
이 세대는 형상이라든지 예술적인 대상에 기존 세대인 우리가 알고 있던 거와는 다른, 어떤 직접적 감각을 키워가는 것 같아요. 평생 일반인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저의 작품을 주목하는 걸 보면 미술을 통해서 회화가 갖는 어떤 급진적인 문제나 명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대체 평면이 무엇인지, 거기에 작가가 어떤 예술적 장치를 담는지 그걸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내 그림은 무슨 특별한 형상이 있거나 컬러가 다채롭다든지 그런 게 아니에요.
단색조, 단색화 계열이라 어쩌면 뭐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할까요. 요즘 관람객, 특히 젊은 세대는 어떤 특별한 메시지가 없는데도 그걸 직접 부딪쳐 어떤 느낌을 찾아내는가 봐요.”
선생님의 청년 시절은 어땠을까요? 나는 예술이 좋다, 이걸 평생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정상화 선생님이 서울대학을 갓 졸업하고 인천사범학교 미술 교사로 오셨어요. 그때 처음 만났지요. 선생님께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나는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그것도 훌륭한 일이죠. 교생 실습을 나간 어느 날 수녀 선생님이 고행자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걸 집에 와서 읽어보는데 고행자의 삶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이내 그림을 통해 나도 평탄한 삶이 아니더라도 나를 실현하는 그런 세계를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그래서 미술대학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했어요. 그때 인천에서 홍대까지 1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통학했어요.
교편을 잡기로 했던 청년이 평면을 마주하게 된 그 결정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최명영 작가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선생님의 화풍은 어떻게 확립되었을까요?
대학 시절 구상적 그림에 어떤 회의가 생겼어요. 형상을 그려서 리얼리티를 얘기하는데 도대체 나는 이해가 안 되었죠. 그래서 평면 그 자체에 골몰하기 시작했어요. 이건 회화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맞닿아 있어요.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평면 위에다 재료를 갖고 내 몸을 통해서 어떻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탐구했죠.
이규상, 이봉상, 김환기 등 한국 현대미술의 기라성 같은 분들께 사사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김환기 선생님과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4학년 때 선생님이 담당하셨는데, 실기 시간 한 30분 시작한 후에야 천천히 들어오세요. 그러면 실기를 하다가 선생님께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거죠. 그런데 말씀이 좀체 없으세요. 그저 이러셨죠. “자네, 1년 대패질한 목수하고 10년 대패질한 목수하고 같은 줄 아나.” 그러고 그냥 가시는 거예요. 당시엔 좀 어리둥절하기도 섭섭하기도 했죠. 그림 어떻게 그려라 혹은 어떤 말씀을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긴 세월을 살아보니 그 말씀이 평생을 가는 거예요. 결국은 묵묵히 열심히 그려야 한다, 그 메시지였죠.
겹쳐진 물감이 캔버스 질감에 녹아 거의 분해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표면을 샌딩하는 작업이나, 손끝으로 문지르고, 수직과 수평으로 반복적으로 페인트칠하는 등의 화법은 어떻게 확립하셨나요?
처음에는 붓이 아닌 손에 물감을 묻혀 문질러서 캔버스 평면 위에 소멸되는 반복을 시도했어요. 또 롤러로 평면 위에서 밖으로 반복해 밀어내다 보면 어떤 표정이 생기게 됩니다. 한두 번 할 때는 물감 자체가 그냥 단순한 물질이었는데 반복 도포해서 하면, 이게 축적되면 어느 때 정신화가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우리가 많이 다뤄왔던 한지에 먹물을 침투시키고 뒤에서 송곳으로 찍어내면서 어떤 존재감을 획득하는 작업도 마찬가지예요. 반복적 행위로 평면 위에 나타내는 존재감, 그리고 정신화를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 흔히 달인이라고 얘기하지요? 달인들도 끝없이 반복하잖아요. 하지만 그들의 반복은 변화를 허용하지 않아요. 반면에 내가 하는 반복은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행
위입니다.
그 반복의 행위를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요즘도 작업실에 매일 출근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나이를 먹으니까 컨디션을 관리하는 게 참 중요해요. 매일 10분 거리의 집에서 걸어서 작업실로 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작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자다가도 비몽사몽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어떤 때는 내가 자는 중이었구나 깨닫고 일어나 내 방에 가서 뭘 긁적거리고 드로잉을 하기도 해요. ‘흔적을 남기자.’ 이 생각으로 살아요. 최명영 작가가 살아서 남긴 이런저런 형태로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지금 미술가가 되려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어렵죠. 시대가 많이 달라졌네. 맞아요. 옛날에는 미술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화집을 보거나 또 일본을 통해 수입된 미술 잡지 같은 게 전부였어요.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다 보잖아요. 세계가 순간적으로 소통하죠. 어떤 의미에서 젊은 세대는 많은 정보를 잘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은데, 선택의 문제가 있겠죠.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 선택하려면 자기 자신이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확고한 안목과 마음이 필요해요. 내가 대학에서 퇴임한 지 15년 정도 됐는데 점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게 분명해야 되겠다.’ 남 눈치보지 말고 다른 사람 경향 보지 말고 말이에요. 비단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미술이 아니어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속에서 뭔가를 창조하는 생활. 우리에겐 그게 필요해요.
* 9월 7일 파리 알민 레슈(Almine Rech) 갤러리에서 시작한 최명영 개인전 <Choi Myoung Young Conditional Planes>는 10월 7일까지 이어집니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강보라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