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연말연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2022-12-19T16:13:27+00:002022.12.19|FEATURE|

가장 많은 약속과 만남이 기다리는 12.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보는 어떠세요?  

12월은 어쩌면 가장 많은 약속이 잡히는 달일지도 모르겠다. 1년 내내 보지 못한 얼굴들,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날렸던 공수표, 의무든 진짜 마음이든 우리는 숫자가 바뀔 때 만나서 올해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것 같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년의 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혼자만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휴식이 허락된다면 어떤 의무감 때문에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진짜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언제부턴가 호들갑스러운 만남은 최소화하고, 연말은 최대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오곤 했다. 해외가 부담스럽다면 평소 관심 리스트에 있었던 국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호캉스, 미식 여행, 유적지 탐방 등등 각자만의 여행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 고택이나 한옥 같은 고즈넉한 공간이 주는 적막감이 특히 연말 디톡스를 위한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안동은 정신 문화의 수도로 불릴 만큼 도시 전체가 온화하고 기품 넘치는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찬 곳이다.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전통리조트 구름에도 좋고, 진정한 한옥스테이를 체험하고 싶다면 농암종택이나 치암고택을 추천한다.  

만약 완전 산속에 갇혀 진정한 무릉도원을 경험하고 싶다면,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퇴계태실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이황 선생의 조부 이계양이 지은 집으로, 이 집에서 퇴계 이황이 태어나 퇴계태실로 불리는 공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가만히 방에 앉아 있으면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새소리와 고요함만이 존재하는 격조 높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힘들 때 한 번씩 다녀오기도 하는데, 안동역으로부터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하루 머물다 가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평화, 고독, 위로를 선사하는 정말 특별한 한옥이다. 근처에 도산서원이 있기 때문에, 낮에 들러 조선 후기 정신적 중추 역할을 했던 기품 넘치는 공간 곳곳을 둘러보고, 저 멀리 보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멍 때리는 것만으로 심신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안동이 너무 멀다면 강원도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도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웰니스, 회복, 치유 등에 집중하는 호텔, 리조트이다. 요가나 명상 프로그램도 괜찮고, 뜨끈한 사우나와 탕에서 몸을 노곤노곤하게 릴랙스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식사도 채식 중심의 영양식으로 잘 갖춰서 나오는 무척 진보적인 공간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최대 장점이나 단점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방에서는 휴대폰 연결이 잘 안되기 때문에 각종 업무 연락 공격에 지친 사람이라면 와이파이와 최대한 멀어진 진정한 디지털 디톡스를 이룰 수 있는 기회다.

누군가는 너무 지쳐서 이런 여행조차 갈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면, 개인적으로는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을 보내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고위 신하들에게 유급 독서 휴가를 주던 것에서 유래한, 일종의 책 읽는 방학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자기만의 방이든,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이든, 도서관이든 장소는 상관없다. 최대한 휴대폰과 SNS를 멀리 둔 채로 그동안 사두고 못 읽은 책을 마음껏 탐험하고 사유해 볼 것. 올해 12월 겨울 방학 독서로 택한 책은 작가 세라 망구소의 <300개의 단상>이다.

시집과 같은 물성의 얇은 책으로 시와 산문 사이에 있는 독특한 형식의 단문이 담겨 있어 부담 없이 쉽게 읽힌다. 위인이 남긴 지혜로운 경구 같기도, SNS 피드를  떠도는 짓궂은 농담 같기도 한 매력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물론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욕망과 좌절, 삶과 죽음 등의 화두가 중심을 이루는데, 삐딱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태도로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아무 장을 펼쳐 읽어도 마음속에 문장들이 훅훅 박힌다. 그 가운데 필사하고 싶었던 좋았던 문장을 두서없이 나열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렇게 행복해지기 위해 그 모든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었느냐고.” 

“걱정은 그다음에 올 공포를 느끼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모욕하거든 그 모욕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척하라. 그러면 그 사람을 몹시 화나게 할 수 있다.” 

“행복은 일단 행복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행을 시작한 곳에서 충분히 멀어지고 나면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세라 망구소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해야 하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강박적으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세라 망구소를 ”오늘날 영미 문단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작가”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쓰는 행위, 그리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주는 순간이 가득하다. 나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한해를 되돌아보는 연말 연초, 이보다 완벽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각자의 방 혹은 책 속에서 부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