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0년차 프로이직러의 연봉 협상 투쟁기.
나의 첫 월급은 백만 원이 채 안 됐다. 적은 액수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어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예쁜 옷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초년생 시절엔 그저 감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작은 동화 속에서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인내력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인 투 식스’의 삶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반복되는 야근과 당연시 여겨지는 주말 근무, 그렇게 일과 삶의 명확한 분리가 되지 않는 하드코어한 노동을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한들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연봉에 대해 내가 겪은 최악의 사건은 회계-인사 담당자가 제대로 폐기하지 않은 전 직원의 급여명세서를 우연히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그다음날 난 바로 퇴사를 결심했다. (급여 보상 체계란 이렇게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 열정 페이가 눈 감아지던 시기는 서른 살을 넘기자 더 이상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다면 연봉은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스스로가 알아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내가 받고 싶은 연봉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그만큼을 왜 받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하는 방법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그저 나를 채용해 줬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취업 연결을 도와준 선배가 제시한 연봉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던 스물 중반의 내가 무척 안쓰럽게 느껴지곤 한다. 그때 내 목소리를 더 내도 되었을 텐데, 마치 그렇게 하면 나를 안좋게 보진 않을까, 혹시 무례한 건 아닐까, 그러다 취업이 어그러지진 않을까 어린 마음에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십여 년 동안 이력서에 차마 쓰지 못하는 직장까지 포함해 약 십여 군데의 직장을 옮겨본 프로 이직러로서 몇 가지 연봉 협상의 기술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이직은 연봉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렇기 때문에 전 직장의 연봉을 그대로 비슷하게 맞춰가는 건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만약 비슷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다시 한번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바란다. 일반적으로 전 직장 연봉의 5-10% 사이를 올려가는 것이 ‘국룰’이다. 10-15%까지 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경우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연봉 협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한다. 직급이나 직책을 이전보다 좋은 조건으로 올린다거나, 팀장이나 디렉터와 같은 한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자리로 가게 된다면 앞서 제시한 퍼센트보다 훨씬 더 높은 액수도 충분히 협상 여지가 있다. 과감하게 원하는 만큼 연봉의 앞자리 뒤바꾸는 액수를 불러보는 것도 좋다.
본인의 경우 업종 자체를 변경하여 이직한 적이 있는데 당시의 연봉에서 20%를 올려도 다음 직장의 신입 초봉보다 낮은 절망스러운 숫자를 목도한 적 있다. (요즘 주요 회사의 연봉은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을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상태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시작부터 동기 부여에 치명적인 ‘마상’을 입는 것은 물론,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연봉 협상에 다른 룰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헤드헌터에게 이 점을 충분히 어필하였고, 어느 정도 원하는 연봉을 맞출 수 있었다.
연봉에는 정해진 정답도, 응당 그래야 하는 의무도 없다. 충분한 협상과 조율, 그리고 약간의 눈치 작전을 통해 얻어내야 하는 어른들의 싸움이다. 이 과정이 때로는 불편하고, 누군가에게는 심리적인 괴로움을 줄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험난한 전투를 피한다거나 ‘회사 내규에 따름’이라는 안일한 대처로 넘기려 하지 말자. 대신에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더 큰 만족감과 장기적인 비전을 쟁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조언하고 싶다. 일의 가치를 돈으로만 판단할 수 없지만 때로는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줄 때도 있다. 그리고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 때로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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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스 에디터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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