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예술 그리고 우리

W

커피와 예술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커피는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틈을 내고 다른 시간을 여는 매개체다. 예술 역시 잊거나 무심히 지나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그러니 진짜 시간을 조우하는 건 어쩌면 커피 한 잔, 그리고 예술을 만날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최정화와 네스프레소가 만들어낸 진짜 시간이 펼쳐진다.

버려진 플라스틱 소쿠리와 바가지, 돌을 쌓아 탑처럼 만드는 것, 이것이 작가 최정화가 말하는 '섬김'의 단계로 확장된 예술의 모습이다.

버려진 플라스틱 소쿠리와 바가지, 돌을 쌓아 탑처럼 만드는 것, 이것이 작가 최정화가 말하는 '섬김'의 단계로 확장된 예술의 모습이다.

작가 작업실에 놓인 네스프레소 커피.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최정화라는 이름이 단번에, 툭 나올 것이다. 시장표 플라스틱 소쿠리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사용된 소모품을 모아 빛나는 조형물을 만드는 그는 특별한 눈을 가졌다. 하찮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술을 향유의 영역으로 끌어낸다. 어느 날 최정화 작가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재활용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이 도착했다. 누군가에겐 쓸모를 다한 폐기물로 보이겠지만 곧 이 커피 캡슐들은 ‘새 생’을 얻을 것이다. ‘#네스프레소가피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최정화 작가의 디렉팅 아래 말이다. 12월 14일 열릴 <새 생, Vita Nova> 전시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물론 우리 앞에는 커피가 놓여 있다.

일본 기리시마 예술의 숲 뮤지엄에는 현 해변에 버려진 부표를 비롯해 최정화와 일반인들이 모으고 쌓은 작품이 전시 중이다.

일본 기리시마 예술의 숲 뮤지엄에는 현 해변에 버려진 부표를 비롯해 최정화와 일반인들이 모으고 쌓은 작품이 전시 중이다.

일본 기리시마 예술의 숲 뮤지엄에는 현 해변에 버려진 부표를 비롯해 최정화와 일반인들이 모으고쌓은 작품이 전시 중이다.

<W Korea> 평소 커피를 즐기는가? 커피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 포함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커피에 중독된 것 같다. 커피는 정신을 깨워주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을 없애주기도 한다. 매일 아침 작업실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옥상에 올라가 화분에 물을 준다. 그런 다음 나에게도 물을 주는 의미로 2층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때 고개를 들어 보면 나의 작품 중 하나인 인피니티가 있다. 세상의 시간은 선형적인 게 아니라 인피니티처럼 무한대로 이어진다. 어디서 언제 누구와 이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이다. 세상은 모든 게 만남이다. 커피를 통해 나는 나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맛보다는 시간을 즐기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커피에 담긴 시간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이번 협업이 너무 잘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네스프레소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된 이유가 있나?

우선 ‘커피 한 잔으로 예술 작품을 꽃피우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네스프레소의 생각에 공감했다. 나는 항상 ‘공생과 공존’을 생각한다. 나의 작품 활동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게 죽은 것인 동시에 살아 있는 것이고, 쓰레기가 예술이 되고, 또 예술이 쓰레기가 된다. 이것이 순환이다. 물론 순환 이전에 정신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게 중요하다. 생산과 생성의 차이, 생산된 제품을 이용해서 다시 생성시키는 것. 이런 과정을 이번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당신의 작품 속 사물의 전복을 볼 때면 마음이 찡해질 때가 많다. 플라스틱 소쿠리나 양동이 같은 싸구려 일상품이 당신 손을 거쳐 숭고한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번 커피 캡슐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

이건 단순한 캡슐이 아니고 커피를 담는 그릇으로 다가왔다. 캡슐뿐만 아니라 밥그릇, 플라스틱 그릇 모든 게 나에게는 다 똑같은 그릇들이다. 그릇의 용도는 마음을 지어 건네주는 거다. 밥은 ‘만들다’가 아니라 ‘짓다’라고 표현한다. 그건 단순히 만드는 것의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짓는 건 마음의 영역이다. 커피 캡슐이라는 그릇 역시 마음을 지어 담아 주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 세계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이슈와 여러 의미에서 맞닿아 있다. 네스프레소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재활용한 알루미늄 캡슐로 꽃과 나비를 만들고, 그 만드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면서 재활용이 예술 작품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강조한다.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는 참 좋다. 나 역시 90년대부터 이 단어를 참 많이 써왔다. 비닐과 플라스틱처럼 버려진 일상의 소모품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근데 요즘은 지속가능성이란 단어가 너무 많이 ‘소비’되는 것 같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담긴 환경적 이슈를 뛰어넘어 이제는 삶에 대한 서사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나는 4~5년 전부터 이 개념이 지속가능성을 넘어 ‘회복(Resilience)’ 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회복은 재활과는 또 다른 의미다. 자연과 인간 모두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단계다. 인간성(Human nature)과 대자연(Mother Nature)의 차이는 소문자와 대문자의 차이뿐 아니라,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있냐 없냐에 있다. 지구 자체는 회복력이 있는 존재다. 그럼 인간에게 회복력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한대로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상화한 작품, '인피니티'.

카타르 시민들이 사용했던 그릇과 냄비, 그리고 노동자들의 헬멧과 축구공 조각으로 만든 12미터 높이의 작품, '민들레'.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아티스트인가?

난 아티스트가 아니다. 나에겐 아트 디렉터 혹은 아티스틱 디렉터라는 말이 더 맞다. 예술가는 뭔가 벽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아티스트와 디렉터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나는 작품을 할 때 이번 ‘#네스프레소가피었습니다’처럼, 일반인이 재활용 캡슐로 꽃과 나비를 만들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기도 하고, 기획팀도 있고 제작팀도 있다. 무언가 하나를 탄생시키는 공정은 굉장히 복잡하다. 함께 태어나기, 함께 살아가기, 함께 살아남기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디렉터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아트를 대한다. 내가 원하는 순간과 장소의 것들을 골라 큐레이션하는 것, 그게 나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예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옆, 뒤, 밑 가까이에 있다. 예술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다. 울림, 떨림, 끌림까지는 다 예술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에 몇 단계를 더 만들었다. 스밈. 예술은 스며들어야 한다. 그다음으로 섬김과 살림까지 이어질 때 그게 예술이다.

당신은 하찮은 것들에게 그야말로 ‘새 생’을 준다. 올 12월 네스프레소와 기획하고 있는 전시의 이름도 <새 생, Vita Nova>다. 당신이 생각하는 삶( 生)이란 무엇인가?

삶을 풀면 살림이 된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 누군가와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 그게 삶이다. 이번 전시도 역시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전시이며, 관객이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나의 의자 컬렉션도 갖다 놓고, 거기에 관객들이 앉아서 직접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하고. 전시를 둘러본 후에 커피도 마실 수 있게 거대한 세트처럼. 대자연 속 존재하는 우리도 하나의 씨앗이며, 또 그것을 가져가 심는 일의 숭고함, 그리고 어찌 보면 생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겠다. 아, 오늘 고민 끝에 나온 문장이 있다. 전시 말미에 이 문장을 새겨 넣으면 어떨까 한다. ‘당신은 씨앗입니다.’ 이 문장으로 모든 게 정리될 것 같다.

전시 장소 :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강남구 언주로133길 11)

전시 기간 : 2022년 12월 14일 ~ 22일

디지털 에디터
김자혜
포토그래퍼
박종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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