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가들의 여정, 글래드스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아트 이슈 03 – 글래드스톤 (Gladstone)

2022-09-05T15:54:02+00:002022.08.25|ART + JEWELRY, 컬처|

뉴욕을 거점으로, 아시아 내 첫 정착지를 서울로 택한 글래드스톤은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가들의 여정을 지지해온 갤러리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글래드스톤의 탁월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우고 론디노네 ‘Elftermaizweitausendundzweiundzwanzig’(2022). 202×302×4.5cm. 작가의 집이 위치한 뉴욕 롱아일랜드의 매티턱에서 본 노을을 담은 작품. 이 연작 전반에는 다채로운 색이 사용되지만, 각각의 작품엔 오직 세 가지 색만 등장한다.

UGO RONDINONE ‘ELFTERMAIZWEITAUSENDUNDZWEIUNDZWANZIG’, 2022, WATERCOLOR ON CANVAS, ARTIST’S FRAME, 79 1/2 X 119 X 1 3/4 INCHES (202 X 302 X 4.5 CM) © UGO RONDINONE,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올해 4월, 청담 사거리 인근 골목에 검정 외관으로 속을 가린 미니멀한 건축물이 터를 잡았다. 온통 회색인 뉴욕 본사 건물의 스타일과 똑 닮은 서울 갤러리. 약 2년 전부터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한국 지점을 개관한 흐름 속에서, 가장 최근 서울에 입성한 이곳은 뉴욕을 거점으로 한 갤러리 글래드스톤이다. 뉴욕 세 군데에 갤러리를 둔 글래드스톤은 LA와 브뤼셀에 이어 아시아 첫 지점으로 서울을 택했다. “글래드스톤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본토와 아시아 전역 예술 현장의 큐레이터, 기관, 컬렉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훌륭한 팀뿐 아니라 중심적 위치의 공간도 찾아냈죠.” 갤러리 파트너인 파올라 사이(Paula Tsai)의 말이다. 뉴욕에 머물며 서울 개관전을 비롯해 새 전시가 열릴 때마다 서울을 방문한 그녀는 작가들을 ‘새로운 관객’에게 소개하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글래드스톤이 탁월한 작가들의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달아 선보인 점만으로도 이 갤러리의 행보는 흥미진진하다. 전 세계 미술관 곳곳에서 몰입형 전시를 펼쳐온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는 서울 갤러리를 위해 특별히 작업한 작품들로 유연성과 독창성을 보여주었고,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작품화해온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Anicka Yi)는 드디어 한국에서 그녀의 어휘를 제대로 선보였다. 8월 현재는 설치 형태의 페인팅으로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서 각광받는 비비안 수터(Vivian Sutar)의 개인전이 열리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울 갤러리의 물리적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며 그들만의 예술적 언어를 표출했다. “글래드스톤은 예술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가들과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기술이나 새로운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아티스트 말이에요.” 파올라가 말하는 갤러리의 특징처럼, 글래드스톤의 작가 중에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게 해주는 이들이 유독 많다.

현재 70명 이상의 막강한 작가 라인업을 갖추기까지, 도전 정신과 독창적인 실험을 지지해온 이 갤러리의 뿌리는 오너에게서 찾을 수 있다.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현대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바바라 글래드스톤은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다 40대 중반에 갤러리 사업에 도전한 인물이다. 특히 전위 예술가 매튜 바니(Matthew Barney)와의 만남은 남다른 작가 발굴 능력을 지닌 그녀의 안목을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매튜 바니 스튜디오는 1990년대 초만 해도 꽤 삭막하고 거친 지역이었던 뉴욕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있었고, 거기서 그의 작업을 처음 본 바바라 글래드스톤은 스포츠와 의학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의 작업에 매료되었다. 의학과 미술을 전공한 매튜 바니는 플라스틱이나 의료 기기 등을 활용해 작업하는데, 예술 작업에 사용되지 않던 재료를 이용해 신체를 주제로 완성한 그의 도발적인 작품은 충격적일 만큼 새로웠기 때문이다. 매튜 바니는 1991년 글래드스톤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괴한 퍼포먼스를 발표하며 뉴욕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올가을 글래드스톤 서울은 매튜 바니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2005년 리움에서 한 전시 이후 그의 두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프리즈 서울은 글래드스톤의 확고한 정체성을 한눈에 경험시켜줄 장이다. 키스 해링(Keith Haring), 알렉스 카츠(Alex Katz),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들은 물론,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캐롤 던햄(Carroll Dunham), 클라우디아 콤테(Claudia Comte) 등 한국에선 다소 낯선 작가들의 작품도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파올라 사이는 프리즈 서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트페어는 많은 작가의 작품을 한공간에서 보여줄 기회죠. 프리즈 서울을 통해 글래드스톤의 폭넓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글로벌한 자리에서는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을 소개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리크릿 티라바니자 ‘Untitled 2022(tomorrow is the question, rénmín rìbào, march 24, 2022)’(2022). 157×163cm. 문구를 보며 작가의 메시지를 곱씹게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기에 작품의 의미가 관람객과 함께 구축되는 셈이다.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22(TOMORROW IS THE QUESTION, RÉNMÍN RÌBÀO, MARCH 24, 2022)’, 2022, OIL AND NEWSPAPER ON LINEN, 62 X 64 INCHES (157 X 163 CM) © RIRKRIT TIRAVANIJA,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PHOTOGRAPHY BY YANG HAO.

출품작 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건 우고 론디노네의 회화다. 그에 관해서라면 돌과 같은 자연물을 인공물로 치환해 작업하는 스타일이 더 익숙하지만, 프리즈 서울에서는 그가 2019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매티턱(Mattituck)’ 연작을 만날 수 있다. 대형작 외 자그마한 사이즈일 때도 작품은 일출이나 일몰의 풍경을 바다, 하늘, 태양의 형상을 따라 오직 세 가지 색 수채화로 온전히 담아낸다. 색과 색 사이, 하늘과 태양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고, 불규칙한 간극을 두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 연작에는 작가의 오랜 파트너였던 존 지오르노가 세상을 떠난 후 작가가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치유 과정을 담은 의미도 있다. 작품명들이 모두 ‘Elftermaizweitausendundzweiundzwanzig’ 식으로 긴데, 작품을 완성한 날짜 및 연도를 발음대로 풀어쓴 것이다. 세 가지 색상의 조화는 하루 중 특별한 시간의 마법을 담아낸 것이자, 어떤 대상에 대한 애틋함, 열정, 그리움, 행복 등 무수한 감정이 깃든 ‘회상의 집약체’가 아닐까?

알렉스 카츠 ‘Coca-Cola Girl 7’(2017). 213.4×182.9cm. 작가 특유의 감각적 구성이 빨강과 하양의 대비를 통해 증폭된다.

ALEX KATZ ‘COCA-COLA GIRL 7’, 2017, OIL ON LINEN, 84 X 72 INCHES (213.4 X 182.9 CM) © ALEX KATZ /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아니카 이 ‘Qui Cocos?’(2022). 152.4×121.9×7.6cm framed. 미생물과 인간, 식물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가 AI를 활용해 제작한 신작이다.

ANICKA YI ‘QUI COCOS?’, 2022, UV PRINT ON SILK SCREEN MESH IN CHERRY FRAME, 58 1/2 X 46 1/2 INCHES (148.6 X 118.1 CM) 60 X 48 X 3 INCHES (152.4 X 121.9 X 7.6 CM) FRAMED ©ANICKA YI,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전시를 통해 각별한 관심을 받은 미국 출신의 현대 초상회화 거장, 알렉스 카츠의 ‘Coca-Cola Girl 7’(2017)도 출품작에 포함된다. 코카콜라를 대표하는 빨간색을 배경으로, 흰색의 무용복을 입은 두 명의 댄서가 유연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부 묘사를 최대한 절제한 단색 구성에서 전달되는 카츠 특유의 감각적 구성이 빨간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증폭된다. 아니카 이는 미생물과 기계 지능을 연구하는 신작 ‘Qui Cocos?’를 공개한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더블유>에 작품에 대한 소개말을 전해왔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저는 여러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대화했어요. 생체 이미지와 미생물 이미지를 혼합하면서 지난 작품 이미지를 분해하고 조작해, 다양한 알고리즘이 출력되도록 유도했죠. 각각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페인트’ 레이어처럼 기능하며 고유한 이미지를 생성해내요. 혈구와 생선알, 긁히고 파열된 피부, 조류 덩어리, 폴립과 갑각류, 심해의 바닥 등등 다양하죠.”

로버트 라우션버그 ‘Street Suite (Calle del Cuarto) / ROCI CUBA’(1988). 215.7×215.3×3.8cm. 작가가 쿠바에서 발표한 연작 중 하나. 아바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국 올드카의 색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ROBERT RAUSCHENBERG ‘STREET SUITE (CALLE DEL CUARTO) / ROCI CUBA’, 1988, SILKSCREEN INK AND ENAMEL ON ANODIZED ALUMINUM, MIRRORED ALUMINUM AND GALVANIZED STEEL, 84 7/8 X 84 3/4 X 1 1/2 INCHES (215.7 X 215.3 X 3.8 CM) ©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COURTESY THE FOUNDATION AND GLADSTONE GALLERY, PHOTOGRAPHY BY RON AMSTUTZ.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의 대형 알루미늄 페인팅 ‘Street Suite(Calle del Cuarto)/ROCI CUBA’(1988)나 관계미학 운동을 이끈 태국의 현대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가 신문지를 활용해 제작한 ‘Untitled 2022(tomorrow is the question, rénmín rìbào, march 24, 2022)’(2022)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라우션버그의 페인팅은 작가가 1980년대에 진행한 해외 문화 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쿠바 아바나에서 발표한 연작에 속한다. 그는 당시 자유로운 예술 실험이 억압받던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중국 등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도시별 문화와 예술 제작에 대한 관행을 탐구했고, 이를 기반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투영해 재구성했다. 사람과 작품, 주변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작품 속에 관객 모두가 존재하도록 이끄는 형태의 작업을 한다.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인 ‘Untitled-Free’ 는 작가가 전시장에서 카레와 팟타이를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관객들은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그 작품의 일부로 존재한다. 프리즈 서울에서 리크릿은 ‘내일이 의문이다(Tomorrow Is The Question)’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운 심플한 페인팅을 선보인다. 관객은 그 문구를 따라 읽는 과정에서 가슴에 품고 있을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질문에 대한 답, 해결책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기에 작품의 의미가 관객과 함께 구축되는 셈이다.

갤러리의 프라이빗 디너와 파티가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프리즈 위크’를 앞두고 글래드스톤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소속 작가가 호스트로서 파티를 연다는 점이다. 8월 말부터 국내 첫 개인전을 하는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전시 오프닝 참석, 프리즈 서울 관람, 그리고 클럽을 대관해 미술계 친구들을 초대하는 파티 주최까지, 내한 한 번에 세 가지 굵직한 미션을 완료하고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