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 전시의 장, 카셀 도큐멘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시, 도큐멘타

2022-08-03T11:19:41+00:002022.08.03|FEATURE, 컬처|

독일의 작은 도시인 카셀은 지금 작가와 관객, 작품과 작품 아닌 것이 뒤섞인 거대한 ‘광장’이 되었다. 이토록 당황스럽지만 눈이 뜨이는 경험을 안겨주는 거대한 전시가 있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 전시의 장인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Fifteen)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시 

카셀은 인구가 20만 명 정도에 불과한 독일의 소도시다. 나치 시절에는 강제노동수용소와 대규모 군수 공장이 있었고, 그런 탓에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도시의 90%가 폭격으로 사라졌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인 ‘도큐멘타(Docum-enta)’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도큐멘타는 한국의 광주 비엔날레와 성격이 비슷한 미술 행사 같기도 하다. 광주 비엔날레가 5 · 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을 공식 목적으로 삼은 것처럼, 도큐멘타 역시 미술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과거의 기억을 보듬으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도큐멘타’ 다음에 ‘열다섯 번째’ 같은 회차가 붙는 식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이 미술 행사를 ‘카셀 도큐멘타’라고 부른다. 비엔날레보다 개최 주기의 호흡이 더 긴 덕분에 누가 예술감독을 맡는지, 어떤 메시지를 제시하는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한다.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 10년에 한 번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한 시기에 열리는 일명 ‘그랜드 크로스’의 해는 10년 주기로 찾아오고, 그때면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미술인들이 ‘그랜드 투어’를 한다. 2017년이 그런 해였다(다음번 그랜드 크로스는 2027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지난해 열려야 했던 베니스 비엔날레가 팬데믹으로 한 해 늦은 올해 개최되는 바람에 그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지난 6월 18일에 개막한 2022 도큐멘타는 9월 25일까지 100일간 열린다. 현대미술을 ‘도큐멘트’하겠다는 이름의 의도처럼 그야말로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글로벌 이벤트가 다시 찾아왔다.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 자리에서 제시된 아젠다는 그 동안 현대미술계에서 꽤 유효하게 작동했다. 지난 10년간 열린 두 번의 카셀 도큐멘타에서 주제로 다룬 내용은 ‘붕괴와 회복’,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던지기’ 등이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 현대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카셀 도큐멘타에 방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행사 자체가 어떻게 진행되고 평가받았는지는 별개로, 도큐멘타에서 던진 문제의식은 바로 지금 우리 가까이 있는 여러 현대미술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제인 까닭이다.

올해의 주제와 작가, 없음

2019년 2월, 도큐멘타 예술감독 선정위원회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티브인 ‘루앙루파(Ruangrupa)’가 2022년 도큐멘타의 예술감독을 맡을 거라고 발표했을 때의 충격과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전 세계 미술의 비전을 제시하는 행사라고는 하지만 암묵적으로는 유럽과 백인(그리고 남성) 위주로 예술감독을 선정하던 도큐멘타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급진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루앙루파는 국제 미술계에서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컬렉티브다. 그래도 무려 카셀 도큐멘타의 예술감독이 되었다는 건… 오랜 시간 그들의 활동을 지켜본 (아시아) 미술인의 입장에서는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거두고 그래미 어워드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K팝 팬의 기분이었달까.

세계 미술계가 루앙루파의 다음 움직임을 숨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이 발표한 도큐멘타의 주제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춘 2020년 6월, 루앙루파가 한 발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룸붕(Lumbung)’이라는 개념을 알리고 우리와 함께 이를 실현할 멤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제도 없고, ‘참여 작가’라는 말 대신 품앗이 정신을 구현할 ‘멤버’라고 지칭하는 거대한 미술 행사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주제라면 주제랄 수도 있는 ‘룸붕’은 루앙루파가 활동하는 인도네시아에서 ‘농사 후 남은 쌀을 함께 저장하는 헛간’을 뜻하는 단어다. 루앙루파가 제시하는 열다섯 번째 도큐멘타의 방향은 마치 인도네시아의 ‘룸붕’처럼 지식과 경험, 비전을 공유하고 확장하는 100일간의 축제다. 이에 따라 그들은 67명(팀)을 ‘룸붕 멤버’로 초대했다. 그리고 67명의 멤버들은 다시 각각 자신과 함께할 이들을 초대했으니… 이 모든 참여자를 ‘참여 작가’ 로 센다면 이번 도큐멘타는 1,500명 이상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례가 없는 대규모 전시가 된다.

룸붕 멤버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부다페스트 비엔날레가 헝가리 현지의 아트 신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요구하는 ‘OFF-비엔날레 부다페스트’, 홍콩에서 아시아 미술 관련 자료를 축적하는 연구 기관인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같은 집단이 있는가 하면, ‘시각 연구 밴드’를 표방하는 한국의 컬렉티브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도 있다. 레바논 여성의 시선을 바탕으로 역사, 젠더, 영토 갈등 등을 바라보는 마르와 아르사니오(Marwa Arsanios)처럼 ‘작업’을 만드는 아티스트, 예술을 매개 삼는 지식 공유 플랫폼 ‘굿스쿨’이나 ‘ZK/U – 예술과 도시 연구 센터’도 있다. 각각의 멤버마다 수십 명의 구성원이 있거나 멤버가 초대한 참여자의 수가 수십 명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총 1,500여 명이라는 숫자가 도출되는 것이다.

작품 아닌 작품, 전시장 아닌 전시장

그렇다면 소도시 카셀 전역의 32개 전시장에서 룸붕 멤버들이 보여주는 건 뭘까? 베를린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인 카셀에 도착하면, 관람 동선의 출발점인 ‘루루하우스(ruruHaus)’를 방문하게 된다. 이곳은 안내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자 100일간의 도큐멘타 기간 동안 매일 몇 개씩 행사가 벌어지는 장소다. 도큐멘타 안내문에서는 이 루루하우스가 도큐멘타 참여자와 방문객을 위한 공식적인 ‘거실’이라고 알려준다. 예술감독을 맡은 루앙루파의 출발점이 2000년대 초 거실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며 시작된 것에서 영감을 받은 제스처다. 이곳에서는 ‘카셀에서 거의 유일한 아이스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비서구권 예술 기관 25곳의 연합인 ‘아츠 컬래버토리’가 운영하는 뉴스룸과 신문을 살펴볼 수도 있으며, ‘룸붕’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다양한 월(Wall) 드로잉으로 설명해주는 ‘룸붕 갤러리’도 볼 수 있다. 뉴스룸과 월 드로잉을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어쨌든 루루하우스에선 미술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 캡션은 찾아볼 수 없다.

카셀에서 유명한 ‘나이트 라이프 스폿’인 베르너 힐퍼트 스트라세 22번지는 ‘WH22’라는 이름의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영업 중인 ‘롤리타 바’의 비어가든에서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온 멤버, ‘냐산 컬렉티브(NHasan Collective)’가 만든 정원을 산책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문법으로 해석하면, 외부에서 독일로 이주한 씨앗으로만 길러낸 이 정원 또한 카셀 도큐멘타를 위한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베트남계 이민자라면 정원을 산책한 뒤 씨앗도 받아 갈 수 있다. 같은 장소에 있던 문을 닫은 ‘클럽 A.R.M’에서는 인도 뉴델리에서 온 반-카스트, 반-인종주의, 트랜스 · 페미니스트 공간 ‘파티 오피스’가 BDSM(구속과 훈육, 지배와 굴복, 가학과 피학의 3가지 성적 성향을 일컫는 약어) 지향 파티를 연다. 미술계 관계자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오프닝 파티에선 파티장 입장 순서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과 퀴어에게 우선순위를 내주기도 했다. 물론 흔히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전시장 중 하나인 카셀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한국 멤버인 이끼바위쿠르르가 만든 2채널 영상 <Tropics Story>(2022)를 볼 수 있고, 낙서 같은 드로잉으로 널리 알려진 단 페르조브스키(Dan Perjovschi)는 신전처럼 생긴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Museum Fridericianum) 외부의 대리석 기둥을 손글씨 낙서로 뒤덮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 역시 이번 도큐멘타에서는 창작의 ‘결과물’이라기보다 ‘과정’의 일부로 제시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볼 법한 잘 만들어진 작품을 잔뜩 볼 거라고 기대하고 카셀을 방문한다면, 실망한 당신이 마주할 건 문서 자료 더미나 영상 기록물,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벽화, 팬데믹으로 파티가 취소되었다는 안내문, 전시장 안에 ‘작품’ 대신 자리 잡고 있는 스케이트보드장, 그 사이로 종종 보이는 설치 작업들뿐이다. 어떤 경우엔 설치 작품처럼 보이는 것에 다가갔다가 설명문을 읽고서 ‘행사를 위해 만든 어린이용 장난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현대미술 전시에서 ‘작품’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도큐멘타가 보여주려는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하지만 과정을 공유하려는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관객이 잔여물처럼 남아 있는 기록만 보고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카셀 주민이 아닌 이상, 보통의 관람객이 100일간 카셀에 머무르며 매일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참고로 도큐멘타 티켓은 하루 기준으로 27유로, 100일 치 시즌 티켓은 125유로다). 그러나 카셀에 사는 사람들은 5년에 한 번씩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미술 방문객을 수십 년째 맞이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 잃은 표정으로 서 있으니, ‘전시 지킴이’ 명찰을 단 현지 주민이 말을 걸어온다. ‘일행이 10명쯤 있다’고 전하자 ‘시간을 정해서 루루하우스에 오면 이번 도큐멘타 전체에 대해 알려주겠다’고도 한다. 루루하우스가 카셀의 ‘거실’이 된다는 말은 그저 프로젝트를 멋지게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도큐멘타로 상상해보는 미래

카셀에 직접 방문하기 전 인터넷 검색으로 도큐멘타를 살펴보았을 때는 마치 이번 도큐멘타가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난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해외 뉴스를 찾아보면 참여한 일부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반유대주의’ 논란, 이에 따라 마침내 철수되고 만 작품들, 도큐멘타 주최측에 대한 항의(예술감독에게 하는 항의가 아니라)의 뜻으로 자기 작품 철거를 요구하는 작가들 소식이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다. 그런데 룸붕 멤버이자 인도네시아 출신 컬렉티브인 타링 파디(Taring Padi)가 설치한 거대한 걸개그림에서 유대인을 탐욕스러운 돼지로 묘사한 부분이 발견됐다. 작품 철거와 공식 사과문 발표라는 해프닝이 있었던 것은 물론, 7월 초엔 독일 국회에서 도큐멘타 재단과 예술감독을 대상으로 청문회까지 열렸다.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 카셀에서는 고정된 형태의 작품이 설치된 게 아니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수많은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작은 도시가 예술감독을 맡은 루앙루파가 꿈꾼 것처럼 거대한 ‘룸붕’이 되어 들썩이는 것이다. 종종 누가 참여 작가이고 누가 관객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눈앞에 놓인 것을 과연 작품이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5년 뒤, 10년 뒤엔 이번 도큐멘타처럼 주인공과 관객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 전시를 더 많이 보게 될까? 카셀에 도착하기 전엔 몰랐지만, 도시 전역에서 배포 중인 도큐멘타 부클릿은 영어와 독일어 버전뿐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쓴’ 버전도 존재한다. 색맹이나 시력이 낮은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흰 종이에 큼직한 글자로 쓰인 쉬운 부클릿은 도큐멘타를 이렇게 요약한다. “도큐멘타는 100일간 열립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은 도시 전역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작업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각주: 미술 전시는 특별한 행사입니다. 관람객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