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예능 만드는 사람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웹예능 만드는 사람들

2022-03-29T01:32:53+00:002022.03.29|FEATURE, 피플|

TV로 예능 보며 깔깔거리던 일이 까마득하다. 요즘 재밌는 예능은 OTT와 유튜브에 다 있다. 레거시 미디어를 벗어난 플랫폼에서 화제의 콘텐츠와 화제가 될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진 네 팀을 만났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정현남 + 오원택 + 손용락 + 강나래 PD 

<SNL 코리아>는 매주 토요일 밤,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되는 코미디 쇼다. 피디 15명, 작가 20여 명이 있다. 여기에 매회 고정으로 출연하는 크루진과 촬영팀 등을 더하면, 80분간의 쇼를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순항 중인 <SNL 코리아>가 더욱 의미심장한 건 과거 tvN에서 2011년부터 6년간 생방송으로 시즌 9까지 이어가다 막을 내린 이 ‘브랜드’가 20219OTT를 통해 부활했다는 점이다. 방송가에서 종료 선고를 받은 프로그램이 이렇게 화려하게 되살아나고 지속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여러 제작진 중 오원택, 정현남, 손용락, 강나래는 이 쇼를 총지휘하는 투 톱(안상휘 본부장과 신동엽) 체제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핵심 인력이다. ‘디지털 쇼트’라 부르는 야외 촬영물 연출을 담당하는 이들로, 2010년대 이후 ‘리부트’로 돌아온 <SNL 코리아>에서 지금껏 화제가 된 내용들은 대부분 이 디지털 쇼트에서 나왔다. 

<SNL 코리아>가 만들어지는 과정 | 제작진이 ‘본 공연’이라 부르는 스튜디오 촬영분과 ‘디지털 쇼트’라 부르는 야외 촬영분으로 구성된다. 매주 주말 동안 다음 회차를 위한 대본을 집필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그 대본을 바탕으로 야외에서 디지털 쇼트를 찍고, 수요일에 편집한다. 목요일 저녁은 스튜디오 공연이 있는 때다. 아침 9시부터 호스트와 크루들이 모두 모여 대본 리딩을 한다. 공연 녹화라고 하지만 과거 생방송 때와 똑같은 시스템으로 관객들 앞에서 한 호흡에 공연을 이어간다. 공개 방송 내지 여러 코너들이 이어지는 연극 무대와 비슷한 셈인데, 출연진이 다음 코너를 준비하는 사이사이에 야외에서 찍어놓은 촬영물을 트는 것. 그래서 최종 녹화분에도 관객석의 웃음소리가 그대로 담기고 그것 역시 이 프로그램의 요소다. 금요일에 이 공연 녹화분을 편집하고, 토요일 밤 최종 결과물이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다. 빈틈없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주일이라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물 한 방울 뽑아내듯이 모두가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목요일에 본 공연이 끝나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여느 예능과는 다른 구조 | 피디와 작가가 대본을 함께 쓴다. 대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코미디언들이 콩트와 대본의 얼개를 짜고 작가가 다듬는 식이지만, <SNL 코리아>에서는 연기자, 피디, 작가라는 3박자가 맞물려 돌아가는 식으로 완성된다. 연출자 개개인의 단편영화와도 같은 디지털 쇼트는 촬영 현장에서 연기자들의 아이디어와 애드리브가 덧붙으며 기존 대본과 크게 바뀌기도 한다.

<SNL 코리아>의 제작사, 에이스토리 | 에이스토리는 넷플릭스 <킹덤>, tvN <지리산>, <시그널> 등 드라마 위주로 제작하던 콘텐츠 스튜디오다. 미국 NBC의 <SNL> 라이선스를 구매하면서 과거 CJ E&M에서 <SNL 코리아>를 만들던 인물을 대거 영입했다. 현재 피디 전원과 메인 작가 등 대부분의 제작진이 2010년대의 <SNL 코리아> 경험자다. 폐지 후 4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위해 기존의 제작진 수십 명이 그대로 뭉치는 경우가 흔할까? 신동엽, 정상훈, 안영미 등 크루진 역시 마찬가지. 바쁜 일정의 크루진이 대본 리딩과 촬영 및 공연을 위해 매주 며칠씩 할애한다는 건 웬만한 애정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히트 코너, ‘주기자가 간다’ | 시즌 1 때 히트를 친 ‘주기자’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진짜 정치인을 만나보면 어떨까 했다. 어수룩하면서도 당돌한 20대 주기자와 현직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노련하고 연배 높은 인물의 만남에서 발생할 케미스트리를 떠올리며 선택한 첫 주자는 홍준표. 이후 여러 정치인이 주기자와의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 코너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쓰는 건 주기자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해서 물어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기자는 여느 기자들이 각 정치인에게 감히 못 물어보거나 굳이 안 물어볼 것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사전에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난감한 질문이나 갑작스러운 요청 앞에서 당황하는 정치인의 표정이 화면에 그대로 담긴다.

호스트 | ‘회당 제작비 10억, 호스트 출연료는 1억’이라는 정보가 세간에 떠돌았다. 발군의 콩트 재능과 예상치 못한 매력을 보여준 호스트들을 두고 ‘출연료를 그 정도 받으면 열심히 할 만하지’ 식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SNL 코리아> 호스트의 면면을 보면 출연료에 따라 이러한 예능 출연을 결심할 정도로 돈에 의해 움직일 셀럽들이 아니다. 그동안 선보이지 못했던 여러 모습과 재능을 기꺼이 펼치려는 이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시즌 1부터 최근까지 이병헌, 제시, 조정석, NCT 127, 조진웅, 신혜선, 이동휘, 허성태, 화사, 스트릿 우먼 파이터 팀 등이 호스트로 나섰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시즌 1은 총 10편이었고, 시즌 2는 총 20편으로 5월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제작진은 호스트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한다. 그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나 잘 알려진 작품 속 캐릭터가 있다면 그걸 극대화해 재미를 자아내기. 또 그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흥미를 일으키기.

다종다양한 콘텐츠와 플랫폼의 시대에 피디로 산다는 건 | 제작진 수가 많은 만큼 취향도 생각도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의 초점과 중심은 플랫폼 환경 같은 문제보다 <SNL 코리아>라는 IP 자체에 있다. 우리끼리 자주 입에 올리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SNL>스럽게’이다. 자주 쓰지만 아무도 그 정의를 명확히 문서화하지는 못하는 말이랄까. 늘 우리만의 의외성을 염두에 둔다. 우리 넷 모두가 20대였던2010년대에 이 쇼를 만들 때는 우리의 말투나 우리가 향유하는 것 자체가 젊은 세대의 보편적인 유행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대세인지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젠 ‘요즘 애들은 어떤 말투를 잘 쓰니’,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하니’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진다. 호스트 신혜선이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코너에서 ‘요즘 애들 말투와 표현’을 쏟아내는 콩트를 준비할 때는, 현실 말투와 억양을 참고하기 위해 제작진끼리 회의실에 모여 한 고등학생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기도 했다. 주요 제작진의 나이대가 있는 만큼 조연출과 작가들은 20대다. 하지만 꼭 ‘젊음’이 답은 아닐 것이다. ‘<SNL>스럽게’ 만들려는 그 고민 안에 동시대의 흐름과 에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속성이 이미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야외 연출 총괄, 오원택 피디는 | 한 번 문을 닫았던 프로그램인 ‘옛날 것’을 굳이 되살려내는 건 상당한 도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으면서 느끼는 건 <SNL 코리아>스러운 정신과 탄탄한 IP의 중요성이다. 리부트로 돌아오기 전인 과거부터 우리는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여러 인물의 개성이 멜팅팟처럼 버무려져서 한 편의 쇼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SNL 코리아>의 큰 힘은 ‘공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시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넷플릭스 <셀럽은 회의 중> 

고민석 + 김주형 PD 

예능 제작사 컴퍼니상상의 김주형, 고민석 피디는 SBS 예능국에서 일하던 선후배 사이다. 몇 년간 <런닝맨>을 연출하며 예능 피디들 사이에서 ‘가장 난도 높은 미션’으로 회자되는 주말 버라이어티를 함께했다. ‘유재석이 택한 넷플릭스 작품’으로 화제가 된 <범인은 바로 너!> 를 통해서도 호흡을 맞췄다. 4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코미디 스페셜 <셀럽은 회의 중>은 송은이, 김신영, 안영미, 신봉선으로 구성된 그룹 ‘셀럽파이브’가 ‘우당탕탕’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가는 날것의 모습을 담는다. 페이크 다큐 형식의 콘셉트로, 이들이 해외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는 넷플릭스 코미디 쇼를 제안받고서 대망의 쇼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그간 방송사에서는 미처 담아내지 못한 네 여자의 케미스트리 를기대해볼 만하다. 

<셀럽은 회의 중>이 기획되기까지, 김주형 피디는 | <범인은 바로 너!>를 시즌 3까지 하면서, 그보다 가벼운 성격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넷플릭스는 ‘스탠드업 스페셜’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로 코미디 장르에 애정이 있는 서비스다. 덕분에 스탠드업 코미디인 〈박나래의 농염주의보〉(2019년), 〈이수근의 눈치코치〉(2021년)를 만들 수 있었다. 셀럽 파이브를 통해 나름 ‘스탠드업 코미디 3부작’의 마지막을 완성하면 어떨까 했는데, 셀럽 파이브는 코미디언 혼자가 아닌 네 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설을 푸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찾은 형식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면 무대 위에서 네 명의 역할을 나누기도 쉽지 않으니, ‘모든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평소 회의 때 모습 그 자체를 콘텐츠화해보자’는 송은이의 제안이 있었다.

셀럽 파이브의 네 여자 | 송은이는 코미디언으로서도 훌륭하지만 예전부터 워낙 아이디어가 많고 제작자 마인드도 강했다. PD나 작가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기획 단계부터 스토리라인에 관한 대화를 활발히 나눴다. 참고로 손재주도 많다. 신봉선은 전체의 흐름을 잘 읽고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룬다. 너무 예민하지 않으면서도 여린 면이 있다. 안영미는 ‘본투비 연예인’에 가깝다. 평상시엔 정적이거나 그저 ‘허허’ 웃는 편인데, 카메라만 돌면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기가 막히게 잘한다. 사석에서는 남을 잘 웃기다가 녹화 때는 그닥 재미없는 코미디언도 있다면, 신봉선과 안영미는 실전에 강한 스타일. ‘방송을 하는 코미디언’에게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능력이 바로 ‘연기’다. 연기 능력은 관찰한 바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김신영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천재적이다. 축농증에 걸린 송은희의 모습까지 흉내 내는 그 표현력이란.

지금, 코미디라는 장르는 | 과거에는 누군가를 공격하는 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게 흥했다. 요즘엔 표현의 수위나 자유 정도가 한국과 다른 미국에서도 코미디언의 발언이 문제시될 때가 있다. 코미디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가 갈수록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이 장르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상황을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종영한 KBS <개승자>의 경우 확 인기를 끌지는 않았어도 코미디와 서바이벌 형식을 결합한 시도로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보였다. 수위 조절이 쉽지 않을 <SNL 코리아> 역시 자신들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때마다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이라는 게 있다. 그 하나의 예가 ‘부캐’다. ‘부캐’라는 개념 덕에 코미디의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유튜브는 관련 콘텐츠를 쉽게 퍼뜨리는 데 좋은 역할을 했다. <피식대학>이 반향을 일으킨 것처럼.

코미디와 버라이어티의 차이 | 코미디의 기본은 철저한 ‘대본 플레이.’ 코미디 중에서도 무대 공연용과 방송용의 차이가 있고, 또 프로그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코미디의 대본 작업은 대개 그것을 플레이할 연기자가 직접 쓴다. 버라이어티는 정해진 꼴이 없이 쇼도 할 수 있고, 토크도, 게임도 할 수 있는 장르다. <런닝맨> 같은 버라이어티는 한 번 촬영할 때 참여 인원이 200명 정도는 족히 되는 규모다. 철저히 코미디언의 역량으로 끌어가야 하는 코미디 장르에서는 제작진과 코미디언의 합이 중요한 반면, 버라이어티 장르에서는 제작진이 수많은 연기자와 스태프 등을 잘 통솔하고, 상황에 대처하며 끌어가야 한다. 시즌 3까지 제작된 <범인은 바로 너!> 역시 방대한 세트와 디테일한 이야기 설정이 필요한, 소위 말하는 큰 사이즈의 예능이었다.

다종다양한 콘텐츠와 플랫폼의 시대에 피디로 산다는 건 | 회의를 하면, 유튜브를 접하며 자란 세대와 TV를 즐겨 본 세대에게서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인기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생각도 전혀 다르다. 누구를, 무엇을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년 치 빅데이터를 분석한 분야별 화제성 순위를 보면, 톱 10 안에 든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은 특정 세대나 부류만 알 법한 이름이 아니다. 콘텐츠가 너무 많은 시대라 큐레이션이 중요한 이때, 그저 남들이 ‘재밌다’고 하거나 ‘인기 있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들과 경쟁하는 게 과연 확률적으로 현명할까? 우리가 연출자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스케일과 퀄리티다. 새롭고 특이한 것에는 누구든 도전하기 쉽지만, 스케일이 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퀄리티에 집중하는 제작사들의 한 번 올라간 수준과 안목은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공짜 클립들 속에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보고 싶은 것, 그렇게 시청자가 ‘각 잡고 보는’ 콘텐츠와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 | 김주형 〈김씨네 편의점〉, <모던 패밀리>, <오피스> 같은 시트콤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 시트콤에서는 인물들의 ‘캐릭터 플레이’가 관건이다. 버라이어티 예능을 만들 때도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위해 출연진의 캐릭터가 어떻게 자리 잡으면 좋을지 많이 고민하지만, 그건 방송 회차가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시트콤에서는 연출자가 처음부터 캐릭터의 특징을 설정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쳐갈 수 있다. 내가 재밌게 만든 캐릭터가 대중에게 어필한다면 감독으로서 굉장한 쾌감이 있을 것 같다.
고민석 여행과 캠핑을 좋아한다. 언젠가 여행 프로그램을 꼭 기획해보고 싶다. 캠핑을 가는 내용이더라도 캠핑이 메인이 되면 재미없을 거다. 여행이나 캠핑은 기본 바탕일 뿐, 역시 출연자의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 요즘 MZ세대에게 궁금증이 큰데, 그 세대를 어떻게 캐릭터화해서 버라이어티 장르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셀럽은 회의 중> 관전 포인트 | ‘재밌겠다’라고 충분히 예상되는 네 명이 모여, 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펼칠 때 엿듣는 재미. 편집하면서도 많이 웃었고, 우리끼리 ‘이거 어디까지 내보내야 하나’ 같은 말을 자주 했다. 그들이 어떤 코미디를 해볼 수 있을지 자유롭게 대화하는 형식이라 날것의 재미가 있다. 날것이되, 정제된 날것.

 

유튜브 <공부왕 찐천재> 

이석로 + 염여린 + 김지희 + 오지민 + 조영민 PD 

‘공부에 한 맺힌 모두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공부 예능이 탄생했다.’ 약1년 전, 딸을 키우며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낀 홍진경이 ‘지식을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공부왕 찐천재>를 시작했다. 홍진경 혹은 홍진경과 남창희, MC 그리 등의 고정 출연자가 이금희에게 맞춤법을, 수능 족집게 강사에게 한국사를, 립제이에게 왁킹 댄스를 배운다. 예능인들이 모여 홍진경이 천재인지 바보인지 토론하는 것도, 시내를 돌아다니며 명소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는 것도 공부가 된다. 이 채널의 매력은 전문 지식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열의와 서투름 같은 격차가 뒤섞이는 데서 나온다. 우리는 그 모든 과정에서 피어나는 예능적 순간을 지켜보다가 정말 유익한 배움에 동참할 수도 있다. 메인 연출자인 이석로를 포함해 총 5명의 피디는 작가 없이 한 팀으로 기민하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현재 스코어 | 3월 초 기준 구독자수는 115만 명. 콘텐츠를 시작한 초기, 홍진경의 딸인 라엘이 출연해 엄마 못지않은 예능감과 언변을 보여준 ‘홍진경의 눈물겨운 천재 교육법 “엄마 내 돈 어딨어?”’의 조회수는 497만 회다. 이영자와 명절 음식 만들기, 안철수와 이재명에게 수학 배우기, 홍진경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배워 온 노하우를 딸에게 적용해보기 등의 콘텐츠는 모두 조회수 300만 회 이상으로 인기를 끈 것들이다.

우리는 | 이석로는 TV조선 공채 1기로 입사해 10년을 보냈다. 현재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인 스튜디오 에피소드의 제작 본부장이다. 오지민은 이석로가 TV조선에서 웹예능을 만들 때 인턴으로 함께한 연이 있다. 김지희는 프리랜스 피디로 MBC <세 바퀴>, <나 혼자 산다>, <복면가왕> 등을, 염여린 역시 MBC에서 <나 혼자 산다>와 <우리 결혼했어요> 등의 연출팀으로 일했다. 광고 프로덕션 출신인 조영민은 광고 문의가 밀려드는 이 채널의 마케팅과 PPL 등을 담당한다. 스튜디오 에피소드는 <조승연의 탐구생활>도 제작하는 곳이다. 여느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아닌, 연예인을 메인 인물로 삼은 콘텐츠들을 준비 중이다.

홍진경 | 우리 콘텐츠의 가장 근간에 깔려 있는 재미 요소는 홍진경이라는 사람이 주는 ‘공감’ 아닐까? 채널 개설 초기, 유명세라고는 없을 때, 홍진경이 문방구에서 문구를 사고 이것저것 공부 준비를 하는 모습이 큰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특별할 게 없는 행위들에 주목하고 콘텐츠화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애초에는 홍진경이라는 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네 가지 카테고리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한 건 홍진경이다. 우리가 함께하면 뭘 하든 재밌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홍진경이 제안한 ‘공부’라는 키워드는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됐다.

출연자의 자격 | 어떤 연예인을 그저 ‘핫하다’는 이유로 섭외하진 않는다. 분명 웃기고 재밌고 열정적인 사람인데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만났을 때 합이 살아난다. 고정 게스트 중 하나인 남창희는 메인 MC로도 손색없는 인물이다. 탁월한 소프트웨어를 지닌 개그맨으로, 그와 맞는 시대를 만나면 지금보다 크게 활약할 것이다. 대선 시즌을 고려해 섭외한 몇몇 정치인에게 우리가 내건 조건은 ‘절대 정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근의 공식을 증명 풀이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지만, 일일이 담진 못했다. 많은 이들이 유력 정치인을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해하는데, 대중과의 접점이 중요한 그들은 생각보다 이런 만남에 꽤 열려 있다. 구독자수가 빈약하던 초기에 안철수가 출연해 중1 수학을 가르친 것도 그런 점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공부왕 찐천재>의 경쟁자가 있다면 | 구글 코리아에서 분석한 우리 채널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구독자들의 성향’이다. 보통의 경우, 연예인 한 사람이 콘텐츠를 이끌어가는 1인 유튜버 채널을 즐겨보는 사람은 그와 비슷한 성격의 1인 채널들을 구독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구독 리스트에는 방송사 유튜브 채널(방송 프로그램을 클립으로 보여주는 채널)이 있는 경우가 많다. <공부왕 찐천재>는 홍진경이 메인인 1인 채널이지만, 여느 1인 채널이 아닌 방송사의 채널과 경쟁 중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1인 채널 중 이런 양상을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구글 코리아 측의 말에 놀란 기억이 있다. 그만큼 우리 채널의 성격이 버라이어티하다는 것 아닐까? 앞으로도 마니아층을 위한 기획보다 방송 프로그램처럼 대중적인 기획을 더욱 펼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의 고민은 | 한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받기는 힘든 일이다. 특히 뉴미디어 콘텐츠의 경우, 한때 핫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공부왕 찐천재>와 구독자 사이에도 어느 순간 매너리즘이 찾아올 수 있고, 그게 바로 가장 두렵고 원치 않는 상황이다. 구독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지금까지 온 결과 느끼는 건 우리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는 것보다 ‘달라지고 있다’에 가깝다. 단 10분짜리 영상이라도, 우리 콘텐츠를 보는 시간만큼은 시청하는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질리지 않는 행복을 안겨주려면 일정 시기마다 ‘전과 다른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게 최대 과제이고 고민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정해진 포맷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뭐든 시도할 수 있고, 혹은 매회를 특집처럼 임할 수도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자꾸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며 키워갈 가지는 키우고, 쳐낼 가지는 쳐내야 한다.

이석로 피디가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 | 나는 늘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전달하길 좋아했다. 그 관심으로 예능 피디가 된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성격과 많이 다르지만, 미디어 종사자가 됐을 때부터 내 꿈 중 하나는 북한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내 소원이 ‘통일’이었다. 북한, 인권, 통일에 대한 담론을 여느 다큐와는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다. 현재는 웹예능의 맛에 한창 빠져 있어서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유튜브 <미노이의 요리조리> 

김우경 작가 + 방미리 PD 

“뒤질래?” 뮤지션 미노이가 게스트로 모신 래퍼 로꼬에게 던진 말이다. 아기자기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호스트인 미노이가 게스트에게 요리를 대접하며 토크한다는 콘셉트의 줄거리에서, ‘요리’는 미끼다. 가벼운 토크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노이는 ‘주는 대로 잘 먹어라’ 식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을 드러내기도 한다. 게스트 중 미노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나왔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노이의 요리조리>는 레이블인 AOMG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로, AOMG의 유튜브 채널(AOMGOFFICIAL)을 통해 공개된다. 작년 8월 출발한 시즌 1이 4회 분량이라는 건 이들의 시작에 큰 포부나 거창함은 없었다는 걸 말해준다. 의외로 반응이 좋자 작년1 2월부터 8회 분량의 시즌 2가 이어졌고, 더 큰 호응에 힘입어 4월부터 시즌 3이 공개될 예정이다. 유튜브를 하는 뮤지션 중 ‘최종병기’와도 같은 미노이와 함께 이 시리즈를 히트시킨 손길은 AOMG 소속 피디인 방미리, 그리고 웃음소리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을 새기는 작가 김우경이다.

현재 스코어 | 3월 초 기준, 시즌 1의 EP. 4인 우원재 편의 조회수는 493만 회. 시즌 2의 기리보이 편은 335만, 모니카&립제이 편은 333만 회다. AOMG의 아티스트 외에 개그맨 이용진, 래퍼 비오, 유튜버 꽈뚜룹 등이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시즌 2의 마지막 게스트는 ‘콩고 왕자’ 조나단이다. 인기 있는 콘텐츠 회차의 경우 업로드한 지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넘긴다.

우리는 | 김우경 방송 작가 생활 17년 차. <화성인 X파일>, <쇼미더머니 5>와 <쇼미더머니 777>, <고등래퍼 2>, 이용진과 이진호의 ‘국내 최초 푸대접 길방 토크쇼’ 였던 유튜브 콘텐츠 <괴릴라 데이트>와 <괴로운 데이트> 등을 거쳤다. 현재는 <터키즈 온 더 블럭>과 <못 배운 놈들 4>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촬영 때 시원하게 웃는 웃음소리 덕에 ‘깔깔마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과거 <괴릴라 데이트>의 MC였던 이용진이 처음 불러준 별명으로, 매회 그 웃음소리가 빠지면 허전하다면서 그가 당시 콘텐츠 속 한 요소로 만들어줬다. 정말 웃겨서 크게 웃는 거다. 지금껏 만난 여러 출연진에게서 ‘웃음소리에 힘이 나니 계속 웃어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더 잘 웃기도 한다.
방미리 피디 생활 7년 차.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거쳐 AOMG에 합류한 지 2년여 됐다. 과거 조연출로 <슈주 리턴즈>, <슈퍼TV> 등의 웹예능을 만들었다. AOMG에서 만든 첫 예능은 <후디의 요리 모음집>. 요리하길 좋아하는 후디에 이어 하나의 콘셉트를 계속 풀어 나가고자 미노이도 요리를 하게 됐다. 물론 미노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미노이 | 작은 체구에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 그 입으로 뱉는 말은 세다. 상대를 당황시킬 수 있지만, 미노이가 하는 말은 기분 나쁘지 않게 다가오는 것 같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요즘 친구들’이 갈망하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라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미노이의 매력도도 더욱 상승했다. 10대나 20대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방송가의 30대부터 50대까지 주변에서 두루 미노이에 대해 물어본다. 미노이는 AOMG 산하 레이블인 에잇볼타운 소속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미노이의 요리조리>가 터지기까지 | 처음엔 미노이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미노이가 거기에 부담을 느꼈다. 뭘 해도 귀여울 인물이라 ‘그렇다면 세게 가보자’, 정도만 정하고서 시작된 일이다. 첫 촬영 날, 미노이의 입에서 ‘뒤질래?’ 소리가 나왔을 때 거기서 우리도 감을 잡았다. 이 친구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재밌고 잘 풀릴 것 같았다. 시즌 2가 잘되면서 시즌 1까지 몰아 본 사람이 많은 듯하다. 미노이 역시 시즌 1보다 2에서 좀 더 능글맞게 변했다.

티 안 나는 듯 티 나는 장치, ‘미술’ |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화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예쁘게 만들어보고자 했다. 날것이거나 화면 퀄리티가 좋지 못한 여느 웹예능과 차별성을 갖고 싶어서다. 소품과 세트는 물론, 색보정 작업 등 미술적 측면에 공을 들인다.

우리의 고민은 | 김우경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제일 크다. 아무리 재밌는 구성이 받쳐주더라도 MC 혹은 메인 출연진의 역량과 캐릭터 여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랩 잘하는 래퍼, 말 잘하고 재주 많은 개그맨은 많지만,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성과는 결국 ‘캐릭터가 잡혀 있는지’, ‘어떤 캐릭터인지’에 달렸다. 오래전부터 작업해온 개그맨 이용진의 경우 워낙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푸대접’, ‘무근본’이라는 캐릭터가 잡혀 있기에 작가로서 어떤 콘텐츠를 풀기가 더 수월하다. 미노이도 그런 스타일의 특성이 부여된 상태다. 거기에 귀여움이라는 매력까지 겸비해서 앞으로 기대된다.
방미리 디지털 콘텐츠는 수명이 짧은 편이다. 잘된 콘텐츠도 금방 잊히거나 다른 콘텐츠에 묻혀버리기도 한다. 누구와 경쟁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과연 전략을 세우는 게 의미 있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가늠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팀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AOMG에 매력 있는 아티스트가 많기 때문에 콘텐츠의 콘셉트는 앞으로도 즐겁게 개발할 수 있겠지만, 제작 인력을 꾸리고 지속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고민될 시점이 올 것 같다.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 | 김우경 코드 쿤스트가 웃음이 참 많다. 시즌 2의 게스트로 출연한 래퍼 쿠기도 웃음을 못 참는 병이 있어 보인다. 웃음은 곧, 긍정 에너지. 다크한 기운의 게스트를 모시고 이 두 사람과 함께 웃음 치료를 꾀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 내가 참여하는 콘텐츠에는 어쩔 수 없이 내 성향이 묻어나는데, ‘근본 없는 스타일’에 애정이 있다. 개그맨 중에서는 이 계열의 원조 격인 이경규를 가장 좋아한다. 이경규나 박명수처럼 ‘버럭’ 하는 특징이 있는 이들과도 꼭 작업해보고 싶다.
방미리 평소 인디부터 고전까지, 영화를 즐겨 본다. 영화적인 면을 어떻게 하면 웹예능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시청자로서 가장 애정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하트 시그널>이다. 로맨스와 스토리와 색감이 예쁜 화면까지 갖춰 신선했던 <하트 시그널>처럼, 연애 리얼리티를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