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Your W'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참여한 현대미술가 강재원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미래의 조각

2021-11-20T22:29:24+00:002021.11.22|FEATURE, 피플|

제16회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을 살피다 보면 필히 이 사람의 작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D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디지털 조각을 전개하는 현대미술가 강재원. ‘미래의 조각’을 그려가는 그가 올해 캠페인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더블유>와 손을 잡았다. 

강재원 작가. 올해 DDP <디지털 웰니스 스파>, 문화역서울 284 <2021 타이포잔치 2021-거북이와 두루미>,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1 Archetypes> 등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때아닌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을 기억한다. 〈더블유〉 사무실에선 편집장과 에디터들이 모여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팅 약속 시간이 20분쯤 지났을 무렵 백팩을 멘 한 남자가 부랴부랴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음 날이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 참석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그런 와중에 비를 뚫고 <더블유> 사무실을 찾은 작가 강재원이다. 1989년생, 3D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새로운 감각의 조각을 제시하는 조각가. 올해로 제16회를 맞은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Love Your W’에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참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 진행되는 캠페인은 ‘3D’, 이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캠페인에 동참하는 총 16명의 셀레브리티를 3D 스캐닝 기법으로 촬영해 이들의 3차원 버추얼 캐릭터를 제작하고, 각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션을 추가해 완성한 결과물을 가상의 디지털 환경에서 다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그간의 캠페인에서 시도한 적 없는, 3D 웹뷰어 기술을 전면에 활용한 디지털 프로젝트다. 문제는 가상의 환경을 <더블유>만의 감도로 디자인하는 것이었고, 그 중심에 자리하며 올해 캠페인을 관통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아티스틱 오브제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논의 끝에 강재원이 컬래버레이션 작가로 호명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3D 프로그램을 다루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작업을 전개하고, 작업에 그만의 독창적 조형 감각이 담겨 있을 것. <더블유>가 고민한 세 가지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로 강재원만 한 해결사가 없었다. 과연 디지털 프로젝트다운 협업 제안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재원의 SNS에 DM을 보내는 것으로 그와 〈더블유>의 인연은 시작됐다. 강재원을 부르는 별칭이 있다. ‘Ctrl+Z로 조각하는 현대미술가.’ 201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3D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디지털 조각을 제작한다. “미래의 조각에 관심이 많아요. 전통적으로 조각이라 하면 에스키스(조각 밑그림)를 기반으로 나무, 돌, 금속 등의 재료를 손으로 깎거나 빚는 과정이 떠오르죠. 그런데 저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과 형태의 조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3D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조각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강재원 작가의 작업 도구는 태블릿 한 대. 작업은 프로그램에 구, 원기둥, 육면체와 같은 기본 입체 도형을 불러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형태를 왜곡하거나(Skew), 뒤틀거나(Twist), 중력을 가하는(Gravity) 등 현실의 물리 법칙을 모사한 기능을 도형에 더하며 원하는 조형성을 갖춘 형태가 나올 때까지 ‘Ctrl+Z’, ‘‘Ctrl+ Shift+Z’ 단축키를 반복해 적용한다. 이렇게 완성된 3D 조각은 때때로 렌더 이미지, 영상으로 재가공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디지털상에만 갇혀 있지 않다. 주물·주조를 통해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등의 금속 조각으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조각을 패턴화한 후 이를 토대로 제작한 원단을 봉제하고 여기에 공기를 주입해 풍선과도 같은 형태의 인플레이터블(Inflatable) 조각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번 캠페인의 협업을 제안하기 위해 강재원의 SNS에 접속했을 당시에도 인플레이터블 조각이 소개된 피드는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언뜻 매스감 있는 둔중한 금속 조각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알고 보면 바늘로 콕 찔렀을 때 바람이 빠져버리는 반전을 품고 있다는 것. “부모님이 공기막 조형물을 제작하는 업체를 운영하세요. 과거 석촌호수에 전시된 ‘러버 덕’과 유사한 형태의 대형 조형물을 만드시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업을 돕다 보니 자연스레 인플레이터블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다만 얼핏 금속처럼 매끈하고 단단해 보이는 나일론, 필름, 우레탄 등 소재의 원단을 사용해 착시를 일으키고자 했죠. 인플레이터블 조각은 송풍기를 통해 공기가 주입되면서 직립하게 되지만 전원을 차단하는 순간 바람이 빠지면서 형체를 잃어버려요. 어쩌면 ‘허무’라 할 수 있는 이 속성이 제 작업 전반에 깔린 기본 정서라 할 수 있어요.” 금속성 표피로 가장된 견고함과 그 안에 숨겨진 형체 없는 공기의 대비, 거대한 부피로 공간에 침투해 새로운 맥락을 만들었다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허무성.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플레이터블 조각은 유독 올해 많은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여러 작품 중 특히 이번 캠페인의 아티스틱 오브제로도 소개된 ‘Exo2_crop’ (2021)은 2월부터 4월까지 뮤지엄헤드에서 열린 <인저리 타임>전, 9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Archetypes>전, 11월 DDP의 <디지털 웰니스 스파>전 현장을 누볐다. 다양한 모양새의 원형 도형 6개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의 ‘Exo2_crop’은 흔히 외골격 슈트라 불리는 장비 ‘엑소스켈레톤’에서 착안한 작업이다. 주로 산업용, 군사 목적으로 쓰이는 엑소스켈레톤은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게 하거나 힘들이지 않고 달리게 하는 등 쉽게 말해 신체가 가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슈트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조각을 엑소스켈레톤처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Exo’ 연작을 이어갔다. “‘신체’에서 출발한 제 작업이 여성의 신체 일부인 유방을 주목하는 <더블유>의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과 만났다는 것이색달라요. 처음 연작을 작업했을 당시엔 3D 프로그램상에서 사람을 가운데 불러놓고 그 위에 입체 도형을 쌓아가며 조형적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후 조각을 SNS 페이스 필터로도 제작해 사람들이 디지털상에서 직접 조각을 착용해볼 수 있도록 발전시켰고요.”

인플레이터블 소재로 제작한 ‘Exo2_crop’.

올해 캠페인을 통해 공개될 다양한 콘텐츠의 중심엔 작품 ‘Exo2_crop’이 있다. 3D 웹뷰어로 모습을 드러낸 총 16명의 셀레브리티는 작품 앞에 서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더블유>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된 페이스 필터, 12월호 커버를 통해서도 이를 만날 수 있다. 디지털 조각으로 시작한 ‘Exo2_crop’은 그렇게 현실의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이번 캠페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었다. 강재원 작가가 상상한 ‘미래의 조각’이란 이렇듯 다양한 의도, 형태, 장소 아래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될 수 있는 트랜스포머 그 무언가이지 않았을까? 제16회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의 부제는 ‘3D Play’. 이제 정말 남은 것은 즐기는 일뿐이다. 웹 뷰어에 접속해 화면상에서 다양한 각도로 작품을 돌려보거나 확대, 축소하며 즐겨볼 것. 작품 곳곳에 숨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