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디지털 세계 어디론가 향한다. 비엔날레의 계절,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11월 21일까지 개최된다. 전 세계 대중 미디어에서 채집한 ‘도피주의’에서 시작한 올해 비엔날레는 팬데믹 상황에 놓인 우리를 탈출, 혹은 그 너머의 길로 초대한다.
비엔날레의 계절, 가을이 마침내 찾아왔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9월 오픈하는 비엔날레만 해도 전국적으로 8개에 이른다. 그중 단연 주목해야 할 것은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올해는 9월 8일부터 11월 21일까지 <하루하루 탈출한다>라는 제목으로 도피주의에 착안해 개최된다. 시계를 잠시 과거로 돌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출범한 2000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비엔날레는 ‘미디어_시티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적 디지털·미디어 혁명에 주목해 시작됐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할 당시보다 더 커다란 디지털·미디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를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봉쇄된 도시, 하루하루 탈출하자
‘하루하루 탈출한다.’ 이 제목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에서 방영한 TV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에 착안했다. 시트콤은 간호사인 남미계 싱글맘 페넬로페가 두 아이를 키우며 매일같이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포착한다. 어쩌면 이틀 건너 하루꼴로 복잡한 문제를 맞닥뜨리는 그녀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마다 머릿속에 절실히 떠오르는 것은 바로 ‘탈출’일 것이다. 이러한 탈출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은 팬데믹 상황 속 도시 봉쇄를 경험하며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활동과 탈출의 범위는 이제 현실 세계를 넘어선다. 현실에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온라인상의 어딘가로 향한다. 그리하여 감각과 메타버스라는 무형의 세계에 다다른다.
이번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은 융마(Yung Ma)다. 파리 퐁피두센터의 큐레이터를 지낸 그는 약 20년 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출범한 이래 첫 외국인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날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봉쇄령으로 자기 집에 고립된 채 미시적인 도피의 형태를 경험했다. 또 한편으로는 인종 차별과 사회 부정의에 맞서기 위해 많은 이들이 결집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에서 도피주의는 우리가 세계와 만나고, 또 우리를 세계와 연결해주는 비평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하루하루 탈출한다>의 주요 개념은 ‘현실도피주의’(Escapism)다. 현실도피주의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얼핏 무책임하게 들리지만 사실 중국의 은둔사상이나 도교의 노장사상도 이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자연으로 떠나 초월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 이러한 깨달음은 때로는 현실로 되돌아가 대응할 수 있는 심적 여유를 주기도 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바로 이 현실도피주의가 지닌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그 감상의 항해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항해의 끝, 어쩌면 거기엔 실험과 도전이 전하는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을 연결하는 촘촘한 네트워크
이번 비엔날레는 다양한 베뉴(장소)를 기점으로 삼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술관과 도시 전역에서 시작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MZ세대가 자주 찾는 서울의 식물원, 카페, 클럽도 예외는 아니다. 비엔날레가 도시 전체를 무대 삼거나, 온라인 전시장을 제공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비엔날레가 전보다 더 촘촘한 연결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측은 이러한 시도를 ‘메아리’라는 공공 프로젝트로 현실화했다. 프로젝트는 퍼포먼스, 온라인 채널, 작가 토크, 그리고 ‘유통망’ 등을 아우른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스마트폰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대중문화의 유통 모습에서 착안했다.
‘메아리’ 프로젝트 중 ‘온라인 채널’은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이 기획한 프로젝트, 퍼포먼스, 토크 등을 모아 송출하는 디지털 포털이다. 이는 비엔날레의 웹사이트는 물론 구독 서비스 등을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작품은 홍진훤 작가의 대안적 영상 구독 서비스 ‘Destroy The Codes’다. 작가는 유튜브 등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대형 플랫폼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시간 권력’으로 규정한다. 작품은 알고리즘을 통해 유튜브등에 빼앗긴 ‘시각 경험’을 되찾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는데, 작품이 구현되는 방식은 이러하다. 관람자는 작품 속 ‘구독하기’나 ‘제공하기’ 버튼을 눌러 영상을 받아보거나 게시한다. 영상의 대부분은 그간 상업 플랫폼에 흔히 노출되지 않은 세계 곳곳의 이슈와 관점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1960년의 아이들이 2000년을 어떻게 예상하는지 묻는 인터뷰를 담은 영상 등. 이러한 상호작용의 힘을 통해 프로젝트는 앞으로 나아간다.
‘유통망’ 프로젝트는 공공 기관과 시민의 오프라인 생활권 내에서 모두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PRNT’와 같은 서점부터 ‘오브젝트’와 같은 상점, ‘신도시’와 같은 클럽 등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MK2’나 ‘커피앤시가렛’과 같이 커피를 마시러 방문한 카페 한쪽에 놓인 시각물. 우리가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화이트 큐브 안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작품이다. 유통망 프로젝트에 참여한 공간은 100여 곳에 달한다. 이렇게 촘촘한 연결망을 통해 비엔날레는 빠르게, 지금, 당신 곁으로 다가온다.
비엔날레의 본진, 미술관에서 경험하는 탈출의 맛
온라인과 도심 속 프로젝트도 흥미롭지만 역시나 많은 이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다. 오프라인 전시장에서의 관람 경험은 분명 그만의 힘과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힘과 매력을 활용해 공간 안에서 작품을 어떻게 선보이는지 예측하는 일은 늘 커다란 설렘이다. 올해도 비엔날레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을 전시 장소로 삼았다. 1층부터 3층까지 거의 모든 전시관을 활용하여 넓게 펼쳤다. 참여한 작가들은 팬데믹의 장기화 속에 만연해진 현실 도피와 봉쇄의 일상을 감각하고 각자의 예술 언어로 풀어놓았다. 림기옹, 브리스 델스페제, 리우추앙, 토비아스 칠로니, C-U-T 등 약 50팀이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로비에서 픽셀로 구성한 대형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한국화에서 볼 법한 풍경을 디지털적으로 표현한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작은 풍경을 위한 레시피’다. 작품에 의해 미술관은 역사, 문화, 자연 그리고 디지털이 교류 또는 충돌하며 진화하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변모한 미술관의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하면 앞서 말한 ‘Destroy The Codes’ 프로젝트를 선보인 홍진훤 작가의 작품을 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 미디어와 현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현시대의 모습을 실감하는 경험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될 때 중국 우한에 거주한 작가 리랴오의 작품 ‘모르는 채로 2020’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손바닥 위에 빨간 플라스틱 백을 매단 기다란 나무 장대의 균형을 잡으며 봉쇄된 도시를 오간다. 나무 장대를 쓰러뜨리지 않기 위해 플라스틱 백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는 작가. 그의 모습에서 우울한 현실을 외면하려 다른 곳에 애써 집중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3층에서는 다른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고 넓은 디스플레이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작품은 유리 패티슨의 ‘선_셋 프로_비전’이다. 대기 오염 측정기기로 얻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바다와 태양 시뮬레이션을 생성하는 작업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LED 화면은 현실의 문제를 담은 채 그것과 가상 세계와의 상호 연관성을 보여준다. 또 하나 3층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는 DIS의 ‘기본 소득: 이성애자의 트루바다’가 있다. 이 작품은 2018년에 제작했지만 작품이 던지는 성적, 경제적, 물질적 자유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 혁명의 실체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해 인상 깊다.
탈출의 목적지, 예술의 회복과 가능성
다시 글의 처음에 언급한 <원 데이 앳 어 타임>으로 돌아가보자. 페넬로페가 두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인종, 젠더, 계급, 성 정체성, 이민, 재개발, 폭력 등 동시대의 화두들이 있다. 시트콤인 만큼 페넬로페와 주변 인물들은 이 화두들을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적극적으로 돌파한다. 비엔날레의 제목이 여기에서 온 이유를 이제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는 대중 미디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현실 도피를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해 첨예한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항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팬데믹 시대의 심리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 도시와 교류하는 다채로운 시도를 펼친다. 예술의 역할을 회복하는 동시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비엔날레의 네트워크는 시공간을 넘어 메아리처럼 서울에 전역에 울려 퍼진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이 일찍이 말했듯 미디어는 그 위험성을 주지하면 어떤 가능성을 열어준다. 초기부터 포스트,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까지 미술인들은 이 가능성의 실현에 앞장서왔다. 그리고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역시 예술로서 시대의 새로운 문화 향유 방식을 실험하고 보여준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정연심 교수는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전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1년의 연기를 거쳐 열렸다.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경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전시를 가능케 했다. 예술의 실험과 정신은 이와 같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비엔날레가 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아르카디아’와 같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에 있는 지역의 이름인 동시에 미술사에서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르카디아를 ‘이상적 현실’이라고 읽어내기도 한다. 이제 전시를 보고 생각해보자. 팬데믹의 혼란 속, 우리의 이상적 현실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그려야 할지.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김대호
- 글
- 김한들(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