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올림픽 히어로즈_역도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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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Never Ends 도쿄 올림픽의 막은 2021년 여름 내렸지만, 그 열기는 아직 채 식지 않았다. 모두를 넘어서 마침내 꼭대기에 오른 선수부터 당당한 ‘영 파워’를 보여준 선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자신이란 원석이 존재함을 증명해 보인 선수까지. <더블유>가 그라운드 밖에서 이들과 함께 특별한 레이스를 펼쳤다.

#W올림픽 히어로즈_역도
 LEE SUN MI 

소리 없이, 표정도 없이, 이선미는 든다.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역도 최중량급 랭킹 4위에 오른 이 뉴 타입의 스포츠 우먼은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한다. ‘역도는 직업이고, 연봉이 올라갈 때 제일 기쁘다.’

검정 시스루 드레스는 H&M × Toga 제품.

화보 촬영하는 건 어땠나?

지금 아니면 이런 걸 또 언제 해보겠나. 다른 인터뷰는 안 하기로 했는데 <더블유> 촬영만 하겠다고 그랬다. 찍어보니 좀 어렵다. 내가 예쁘게 입고 사진 찍고 이런 거 할 성격이 못 되어서. 평소엔 립스틱도 안 바르고 그대로 다닌다.

다른 선수들은 촬영장에 매니저나 코치와 함께 왔는데 이선미 선수만 혼자 왔다.

원래 혼자 다닌다. 그게 편하다. 충남 서천에서 전지 훈련하다가 혼자 기차 타고 여기 왔다.

꽃무늬 장식 톱은 H&M × Toga, 리본은 H&M × Simone Rocha 제품.

도쿄 올림픽에서 인상 125kg, 용상 152kg, 합계 277kg으로 4위를 기록했다. 이 성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순위로 따지지 않고 기록을 보기 때문에 잘했다고 본다. 작년 허리 부상을 입기 전 기록이 127kg, 155kg이었는데 회복한 이후로 베스트다. 155kg을 놓친 건 정말 아쉽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고 충분히 들 수 있었는데, 구르기 자세에서 삐끗했다. 코치님이 등 두드려주는데 눈물이 터지더라. 그래도 다쳤는데 이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루만 우울해하고 다음 날부터 전국체전 준비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첫 올림픽 출전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나?

올림픽에 나가려면 2년 전부터 6개의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전 세계 8등 안에 들어야 한다. ‘진짜 미친 것처럼 해보자’고 했다. 부서지든 말든 그냥 해보자고. 아무 생각 없이 역도만 했다.

지난해 생긴 허리 부상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재활하면서 기록을 잴 때마다 무서웠다. 그때마다 코치님이 ‘할 수 있어, 들어가 봐’ 해서 바벨을 잡았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 따르지만, 105kg, 110kg, 115kg, 이렇게 조금씩 무게를 높여가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검정 시스루 드레스는 H&M × Simone Rocha 제품. 구두와 헤어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정 시스루 드레스는 H&M × Simone Rocha 제품. 구두와 헤어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역도 선수들은 표정과 기합으로 분위기를 장악하더라. 이를테면 금메달을 딴 중국 선수 리웬웬은 소리를 강하게 지르던데, 이선미는 표정 없이 조용히 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소심하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주목이 쏠리는 게 싫다. 웬웬이도 소리를 그렇게 질러서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귀엽다. 항상 내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만다. 내가 시합에 안 나오면 한국 사람들한테 이선미는 왜 안 왔냐고 물어본다더라. 그런데 막상 마주치면 또 인사는 안 하고. 하하. 정말 잘하는 선수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나?

역도는 기록 싸움이다. 나는 등수나 다른 선수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미란 언니의 기록을 한 번만 넘어서봤으면 좋겠다. 장미란 언니가 밥을 사주셨는데, 그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하라’고 한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역도를 드는 순간에는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바벨을 잡았다’, 하면 이제 그냥 운에 맡겨야 된다. 속으로 ‘난 미쳤다, 난 할 수 있다’ 만 되뇐다. 나 혼자서 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검정 시스루 드레스는 H&M × Simone Rocha 제품. 구두와 헤어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정 시스루 드레스는 H&M × Simone Rocha 제품. 구두와 헤어밴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선생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하게 됐다고 들었다.

초등학생 때 172cm에 88kg이었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역도 해볼래?’ 하시더라. 재미있어 보여서 하겠다고 했는데, 체육관에 가니 언니들이 소리 지르고 기합 넣고 바벨 떨어트리는 게 무서워서 바로 잠수 탔다. 그런데 엄마랑 선생님이 힘을 합쳐 체육 중학교에 원서를 넣어서 어쩔 수 없이 간 거다.

역도를 계속한 까닭은 뭔가?

실은 운동부 특유의 군기나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소년체전에 나가면서 여기서 금메달 3개 못 따면 운동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인상, 용상, 합계 3개 금메달에 최우수선수상까지 받고 말았지. 그냥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선생님한테 ‘힘이 넘쳐나 주체를 못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더라. 조용히 내 할 일 하는 아이였는데, 누가 시비 걸면 봐주지 않았다. 남자애들이 내 앞에서 까불면 때리고, 또 까불면 또 때리고. 하루하루 1 대 1로 맞짱 뜨고. 하하.

내향적인 편인가?

보다시피 그렇다.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를 안 사귄다. 카톡 하는 것도 귀찮아서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로 한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데, 친오빠도 오랜만에 보면 어색할 정도다.

힘들거나 외로울 땐 뭘 하나?

작년에 허리 수술을 한 이후 치료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어서 너무 힘들 때, ‘작은 것들을 위한 시’부터 시작해서 BTS 덕질을 했다. 특히 ‘Answer’라는 곡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라는 가사가 와닿더라. 나의 ‘최애’는… 돌고 돌다가 결국 슈가에게 정착했다. ‘민빠답’이란 말이 있다. ‘민윤기에게 빠지면 답이 없다’고. 내가 그렇게 되어버렸지 뭐야. 슈가는 엄청 어른스러워서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좀 위로가 된다.

이젠 어릴 때와 달리 역도를 좋아하게 됐나?

아니. 나는 아직까지 역도를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단지 내 직업이고,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잖아. 먹고살아야 하니까. 비즈니스다.

너무 솔직한데…

사람은 솔직하게 살아야지. 말할 때마다 말이 바뀌면 쓰나? 거짓말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이 비즈니스가 기쁨을 주는 순간이 있다면?

기록이 향상됐을 때, 연봉 올라갈 때. 그리고 운동 쉬는 날!

분홍색 시스루 드레스와 스커트, 숄 장식은 모두 H&M × Simone Rocha 제품.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훈련은 얼마나 하나?

나는 놀면서 하는 선수다. 다들 나더러 ‘또 노냐’고 그런다. 한 번 하고 나와서 앉아 있다가, 두 번 하고 나와서 옆 사람이랑 이야기하다가. ‘재능충’인가 보다, 흐흐. 고등학생 때까진 그런 편이었고, 실업팀에 오니까 선수를 잡아서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이젠 스스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징크스 있나?

내가 계속 역도를 하게 해준, 전국소년체전에서 신었던 파란색 아디다스 양말을 10대 내내 신었다. 이젠 그런 거 없앴다. 그 양말 안 신어도 지장 없이 잘하더라고.

도쿄 올림픽을 통해 세대교체의 인상이 두드러졌다. 당신을 비롯한 젊고 어린 선수들이 선두에서 큰 관심을 받았는데.

모두가 코로나19로 힘들었기 때문인지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국민들이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고, 우리가 운동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도 알아봐주시더라. 그런 면에서 굉장히 감사하다.

꽃무늬 장식 톱은 H&M × Toga, 리본은 H&M × Simone Rocha 제품.

스물한 살 이선미는 뭘 좋아하나?

혼자 극장 가서 영화 보기. 혼자 보면 옆에서 말 걸 사람도 없고, 집중해서 보기 좋다. 최근엔 <모가디슈>를 봤다. 조인성은 아저씨 같은 옷을 입어도 멋있어 보인다는 걸 알았다. 또 좋아하는 건 귀여운 것들! 캐릭터 어피치, 토토로, <해리포터>의 도비를 좋아한다. 귀여우면 다 좋아.

선수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파리 올림픽과 그다음 올림픽까지 나가고 싶다. 파리에 나가는 자체도 쉽지 않을 거다. 나랑 기록이 비슷한 선수들이 성인부에 올라왔기 때문에 그들보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스포츠 선수로서 당신의 가장 큰 긍지는 뭔가?

안 놀고 일하고 있다는 것. 백수가 아니면 됐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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