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분더샵 팝업 스토어를 위해 방한한 가브리엘라 허스트 인터뷰.
진심과 사력을 다해 자신의 브랜드를 건축해온 태도에 완벽주의자라는 수식어를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 (Gabriela Hearst). 미국 언론 재벌 허스트 그룹의 안주인이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 것은 그녀의 미학과 탁월한 안목이 빚은 백 덕분일 터다. 최근 LVMH 그룹의 투자를 받으며 더욱 큰 날개를 단 그녀가 서울로 날아왔다. 청담 분더샵 팝업 스토어를 위해 방한한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내한을 맞아 청담 분더샵에서 프라이빗한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배우 최지우, 이민정을 비롯해 모델 강소현, 박희현 등이 참석했고,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백을 든 많은 인플루언서가 등장해 그녀에 대한 서울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서울에 패션 이슈가 많았다.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연 이유가 궁금하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오래전부터 서울에 오고 싶었다. 우리 가방은 대량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2주 동안 한국에서 하는 첫 전시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가브리엘라 허스트를 통해서만 가방 구입이 가능했다면, 이번에는 분더샵과 같은 완벽한 파트너를 통해 한국 고객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분더샵 가브리엘라 허스트 백에 벌써 웨이팅리스트가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어제 새벽에 호텔에 도착했는데, 컨시어지에서부터 내 백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 매우 놀랐다. 한국 시장에 판매한 적이 없었던 터라 의아하면서 기뻤다. 한국 사람들의 따듯한 환대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감사하다.
완성도 높은 가브리엘라 허스트 백을 실제로 만져보니 당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럭셔리’가 느껴졌다. ‘정직한’ ‘진정한’ 럭셔리와 같은 정신을 추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 당신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나? 독특한 사상을 가진 아이였나?
그런 아이였던 것 같긴 하지만, 사실 모든 아이들이 천성적으로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상황에 따라 그걸 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거다. 진정한 럭셔리에 대한 점은 내 브랜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이들은 알겠지만 가격 정책, 마케팅 전략 같은 것 없이 시작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금의 가격은 비즈니스를 영위할 만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거품 없는 가격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기, 나의 천성인 것 같다.
당신은 뉴욕에 사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우루과이 양 목장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두 나라의 정체성을 가진 삶은 어떤가?
균형 있는 삶을 완성해주는 것 같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우루과이 목장의 실질적인 운영은 아주 헌신적인 파트너가 담당하고 있다. 운영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온 목장이기 때문에, 난 매니저 역할만 하면 된다. 뉴욕에서 디자이너 일에 매달리고 있는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아직 시작 단계라 부족할 수 있다. 물론 성장 가능성은 아주 높다.
백의 부품 하나하나도 허술한 게 없다. 디자인과 제작 과정 모두 엄격해 보인다. 이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적용되나?
엄격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적당한 단어를 고르자면 ‘기준’이 나을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한 직종일수록 기준이 중요하다. 집중과 절제와 선택.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계획이 필요한 일이고, 가정에 충실한 것 또한 나에게는 중요한 축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광란의 파티걸이 됐을지도 모른다(웃음).
당신은 극심한 자원 소모를 피하기 위해 가방을 많이 만들지도 않고, 재활용 소재 패키지를 사용하는 등 지속 가능성에 반하는 낭비에 엄격하다. 비용적 측면에서 상충하는 점은 없나?
중요한 질문이다. 지속 가능성은 아직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고민하는 부분이다. 패키지는 분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고, 의류를 출고할 때나 매장에 옷을 걸 때도 플라스틱 옷걸이,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지구가 겪고 있는 문제에 나까지 보탠다면 내 사업의 당위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물론 재활용 소재 패키지가 널리 쓰이는 패키지보다 비용이 더 들지만, 럭셔리 브랜드로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면 그 비용은 좀 더 절감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배송 방법이다. 항공 대신 배운송 비율을 높이려고 한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소재가 정말 중요하지 않나? 최근 가장 당신을 흥분시킨 신소재가 있다면?
2년째 사용 중인 소재가 있다. 면보다 수분을 더 잘 흡수하는 리넨이야말로 내게 완벽한 소재다. 미국 고객들은 리넨을 까끌까끌한 소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알로에를 사용해 리넨을 부드럽게 만드는 밀라노 회사의 원단을 발견하고서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그 후 CEO를 설득해 레디투웨어의 면을 알로에 리넨 소재로 대체했고, 데님처럼 보이는 원단도 리넨과 울 혼방 소재를 사용했다. 나무를 자르고 그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비스코스 또한 실크와 울 혼방 소재로 대체했다. 이런 신소재를 찾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올해 초, LVMH 그룹이 당신 브랜드에 투자를 했다. 모든 거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투자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LVMH 그룹의 풍부한 경험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이를테면, 매장 오픈 경험이 부족한 점이나 제반 설비, 가격 전략 같은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전략적 파트너십의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에 없던 자원과 조언을 많이 얻고 있다.
당신은 레디투웨어도 디자인한다. 가방을 디자인할 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레디투웨어는 도매로 판매되고, 시즌별로 순환하는 구조라 어쩔 수 없이 압박을 받게 된다. 핸드백은 컬렉션으로 출시하지 않기 때문에 시즌에 구애받지 않고 훨씬 자유롭게, 천천히 디자인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조너선 아이브(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가 당신의 백을 아내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한 일화가 흥미로웠다(백을 선물로 받은 조너선은 가브리엘라에게 아이패드 프로를 건넸다고 한다). 이는 당신이 백을 본격적으로 론칭하게 된 계기라고 들었는데, 또 새로이 구상하고 있는 핸드백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디자인팀과 내가 나누는 농담이 있다. “어떻게 하면 공방을 미쳐버리게 할까?”(웃음) 지금 거의 완성된 프로토타입이 있는데, 아주 복잡한 구조다. 올가을쯤에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좀 더 힌트를 준다면?) 복잡하고 정교한 오르골을 떠올리면 된다.
가장 최근 당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들은?
어머니, 팀원, 고객은 물론 성공한 여성들의 강인함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오늘 만난 신세계 분더샵 정화경 상무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녀와 함께라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허스트라는 이름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 리더를 꿈꾸는 한국 여성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겠는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근면 성실이 가장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꿈은 언젠가는 실현된다. 원하던 내 꿈이 펼쳐졌을 때 고개 숙일 줄도 아는 태도도 중요하다. 언제나 출발점에 서 있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고 한다.
좋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개발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소재를 재활용 소재로 대체하는 것.
곧 휴가 시즌이다. 휴가를 보낼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7월 말에 런던 매장을 오픈한다. 아마 그때 맞춰 가족과 휴가를 보내지 않을까 싶다.
런던 매장이라니, 빅토리아 베컴과 경쟁할 수도 있겠다.
오, 내가 생각하는 경쟁자와는 다르다(웃음).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김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