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즐거움을 누리는 배우 홍종현.
예리해서 각인되는 이목구비와 작품 속의 이 남자를 감상하는 것 외에 사적인 홍종현에 대해서 알 통로는 많지 않았다. 주목받는 여느 청춘 배우가 인기와 인정과 성공을 의식할 때, 그는 일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요즘 KBS 주말 연속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과 SBS 수목 드라마 <절대그이>가 동시에 방영 중이다. 일주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지금까지 한 작품 활동 중 가장 많은 촬영 분량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장기간 촬영하는 주말 연속극은 촬영 패턴이 일정한 편이라 비교적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운 좋으면 하루 쉬는 거고.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큰 고민 없이 보낸다.
연기하는 거 재밌나?
재밌다. 물론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 있는데, 내 연기 경력으로는 아직 버겁다고 느낄 단계는 아니겠지. 작년이 내가 연기 데뷔한 지 10년 되는 해였다. 사실 그런 걸 인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인터뷰 때 ‘10주년’을 맞는 기분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고서야 조금 체감했다. 떠올려보니 연기를 시작하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온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바로 그저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중요한 전개 가 펼쳐졌다. ‘마케팅전략부 신입사원 한태주, 알고 보니 사주의 아들. 한 사원에서 한 상무로 급 점프.’ 이 사실을 안 같은 부서 부장님 강미리(김소연)가 태주를 찾아가 어퍼컷에 가까운 타격으로 뺨을 후려쳤다. 레프트 컷, 라이트 컷 연 속 두 번 날렸던가?
아니다, 뺨 한 번 때리고, 그다음 내 얼굴에 사직서를 날렸다.
미리가 뺨을 때리는 팔의 각도와 그 직후 사직서가 날아가는 각도가 비슷해서 헷갈렸다. 클로즈업된 당신의 표정은 태주의 것인지 홍종현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서 있었나?
그 순간의 생각은 모르겠고, 촬영 끝나고 나서 ‘정말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그 드라마에서 지금까지 뺨을 두 번 맞았다. 처음엔 최명길 선생님한테 맞았다. 그 정도의 아픔이겠거니 했는데…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웃음). 맞은 순간 너무 놀라서 NG가 날 뻔했지만, 순간적으로 잘 참았나 보다. 한 번에 순조롭게 끝났다.
직속 상사인 미리가 배신감 느낄 만했다. 그녀에게는 가르치고 키우는 대상이었다가 그 대상과 애정이 조금씩 싹트는 단계인데 왠지 농락당한 기분도 들겠고. 직장 상사나 팀 선배와 연인이 되는 일, 어떨까?
내가 회사 생활의 암묵적인 룰이나 문화는 안 겪어봐서 알 수 없는데, 서로 좋아한다면야 너무 좋은 상황 아닐까? 우선 사랑하는 이를 매일 볼 수 있지 않나.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이 더 많을 것 같다.
김소연과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두 사람이 화면에 같이 잡히면 일단 비주얼 면에서 근사하다. 케미스트리가 좋아 보인다.
그럴 거다. 나는 나이가 살짝 더 들어 보이고 누나는 어려 보이는 얼굴이니까(웃음).
당신의 출연작 중에서 임시완, 윤아와 함께 한 MBC <왕은 사랑한다>의 열혈 팬이었다. 거기서는 다정다감하고 젠틀한 왕족이었고, 그전에 한 SBS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에서는 못된 역할을 아주 잘했다.
잘 어울렸지, 못되게 생겨서.
못되게 생겼다는 말 자주 듣나?
그보다는 화났냐, 기분 나쁘냐는 말을 예전부터 좀 들었다.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말하기 보다 주로 듣는 편이다. 나는 말없이 그저 멍하게 있는 건 데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쟤 화났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홍종현은 어떤 아들이나 동생, 어떤 친구인가?
어릴 때는 가족을 잘 챙기지 못했지만, 나이 들면서 자연 스럽게 좀 더 살가워졌다. 친구들에게는 여과 없이 말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누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잘해봐, 열심히 하면 되겠지’ 같은 말은 하지 않고 직구를 날린다. 그래서 친구 중에 나한테 고민 같은 건 안 털어놓는 이도 있고, 오히려 솔직한 반응을 찾아 나한테 물어보는 이도 있고 그렇다.
연인에게는 어떻나? 왜 집안에서는 무뚝뚝한 아들인데 밖에 나가 여자친구랑 있을 때는 엄청 스윗해지는 식으로 모드 변환하는 캐릭터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겐 다 퍼주는 스타일이다. 물질적으로 퍼준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다 티가 난다. 연애할 때 그렇게 화난다거나 싸우는 일도 별로 없는 편이다. 상대가 약속에 늦으면 전화해서 막 화내는 사람들 있지 않나? 카페 같은 데서 우연히 그런 장면을 보면, 그냥 기다리면 언젠가 올 텐데 왜 굳이 저럴까 싶기도 하다. 상대도 늦은 거 알고 마음 급하게 오고 있을 텐데 괜히 서두르게 할 필요가 있을지.
학창 시절 인기는 많은 편이었나?
많지는 않았고, 마음을 표현하는 여학생들은 가끔 있었다. 남녀 공학 학교를 나왔지만 여학생과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층수가 달랐던가 그래서.
배우보다 모델 생활을 먼저 했다. 어릴 적부터 키가 크고 튀었나?
아니다. 고등학교 올라갈 즈음 많이 자라기 시작했다. 고2 때 178cm 정도였을까? 스무 살, 스물한 살 즈음에도 계속 자랐고.
홍종현이 유명한 연예인이 된 건 10대 시절 동창들이 생각 하면 놀랄 일인가, 으레 그럴 법하다고 여길 일인가?
고등학생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는데, 주변에 내 계획이나 꿈에 대해서 별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결과로 보여 주기 전에 미리 꺼내놓는 걸 꺼리는 편이었다. 패션쇼에 서고, 이후 매거진 촬영도 하고 나서야 학교에 소문이 퍼지면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아이들도 생겼다.
모델 생활을 시작하면서 언젠가 연기자의 길을 걸을 거라고 마음먹었나?
처음부터 모델과 배우 일을 같이 준비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시작했다. 처음 연기 경험을 했던 영화 <쌍화점>에서는 내가 다시 봐도 나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고, 대사가 있는 역할도 아니었다. 영화 촬영에 거의 1년이 소요될 텐데도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펼쳐지는 현장은 어떤지 궁금해지더라. 큰 부담 없이, 어떤 사람들이 모여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지 경험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 겪어보니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지금이야 모델로 먼저 시작해서 배우로 옮아가는 케이스가 비교적 자연스럽지만, 그때만 해도 영역이 다른 일로 여겨 지던 시절이었다. 고민은 없었나?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건 해봐야 하는 성격이다. 대신 싫증도 금방 느끼는 편이다. 그러다 재밌는 것 하나 걸리면 그게 취미 생활이 되는 거고. 살면서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를 해보고 싶으니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도전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나이 먹어 ‘그때 해볼걸’ 하며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지금 서른인데, 홍종현의 20대는 한마디로 어땠나?
굴곡이 좀 있었던 듯하다.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내 미래가 탄탄할 거라는 확신은 없어도 최소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답은 어느 정도 찾았다. 그게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것보다 더 값진 일 같다. 돈, 명예, 권력, 일 등등 중에서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바로 일이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일. 그걸 즐기고 잘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기보다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까진 못 닿아도 일을 꾸준히 오래 하길 더 원하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렇다. 만약 이 나이에 금전적으로 만족하지 못했다면 돈을 더 벌고 싶다고 생각했겠지만, 일하면서 물질적으로 크게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다. 돈이 있으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뭔가를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한번 해보려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아등바등하는 그때가 나는 가장 재밌다. 뭐든 돈으로 단번에 해결되는 건 그리 즐겁지가 않다. 사람마다 가장 빛나는 시기는 다 다르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 다른 무엇 보다 기억과 추억이 더 소중할 거라고 본다.
호기심 많은 경험주의자이고, 대신 싫증도 잘 느끼는 사람.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건 거의 변함이 없는 팩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언제 싫증 날지 모르는 가능성도 포함 돼 있다. 평생 모험하며 살 각오가 돼 있나?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심지어 그 장소도 매번 바뀐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력을 하며 작업을 완료하고 나면 그때 즐거움이 찾아온다. 취미에 싫증을 느끼는 것과 달리 이 일엔 정답이랄 게 없기 때문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을 시작한 이래 선배들에게서 들은 말 중 기억에 남는 건 뭔가? 지금처럼 주말 연속극을 할 때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텐데.
첫 리딩, 첫 촬영이나 중요한 신 촬영, 이런 순간에 너무 긴장돼서 그 감정을 토로하면 대부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나도 떨려. 나도 긴장돼.”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아, 저렇게 몇십 년을 일한 선생님도 떨린다는데 내가 이러는 건 당연한 거구나,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전에는 무조건 스스로를 진정시켜보려 했다면 이제는 그 상황 자체를 좀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가 난다. 그리고 떨린다는 건 내가 잘하고 싶고, 진정 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본인이 감독이나 작가가 되어 배우 홍종현을 캐스팅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에 기용해보고 싶나?
일상적인 이야기에 조금 모자란 캐릭터. 살짝 덜떨어져 보이는 아이.
홍종현의 샤프한 얼굴과 기럭지에 덜떨어짐이라니.
내가 가끔 바보 같은 실수를 한다.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파 약국에 가서 가루약과 쌍화탕을 샀다. 한 손에 약봉지를, 또 한 손에 뚜껑 연 쌍화탕을 들고서 가루약을 입에 털겠다고 동시에 양손을 뒤로 젖혔다. 가루약을 입에 털어놓고 보니 쌍화탕은 이미 옷에 다 부어버린 거다. 내 쌍화탕….
언젠가 작품에서 홍종현이 재현하는 그 장면 꼭 보고 싶다.
백수 설정이면 어떨까? 맨날 똑같은 옷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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