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좀 입을 줄 아는 ‘요즘 남자’ 패션 총정리.
런웨이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만한 기상천외한 괴짜 남자들이 산다. 그렇다면, 이런 별난 사람들은 과연 런웨이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실재하는 존재일까? 런웨이와 스트리트를 망라해, ‘요즘 남자’라 불리는 남자들의 부류를 정리했다. 그리고 런웨이와 실제의 괴리도 살펴봤다.
뒷골목의 남자들
요즘 런웨이에는 후미진 뒷골목에서 봤을 법한 껄렁한 모델들이 넘쳐난다. 뒷골목의 껄렁한 아이들을 불러모아 실제 같은 연기를 하게 만든 <키즈>의 래리 클라크처럼 말이다. 마틴 로즈, 베트멍, 어 콜드 월, 키코 코스타디노브, 발렌시아가까지, 지금 좀 ‘힙’하다는 디자이너들은 죄다 하이패션이 시시하다는 듯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는 남자들에게 자기 옷을 입힌다. 더군다나 이번 시즌 자신의 고국 조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런웨이에 풀어놓은 뎀나 바잘리아는 베트멍 쇼에 40명의 조지아 젊은이를 세웠다. 런웨이에 오른 모든 이들이 자기 옷을 입고,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 등장한 이들은 현실이고, 실재하는 남자들이다. 당신의 동네에도 서너 명 있을 것이다.
여자 옷 입는 남자
지난 연말 자신의 영화 홍보를 위한 레드카펫에서 발렌티노의 디자이너 피에르파올로 피촐리가 디자인한 몽클레르의 여성용 드레스 패딩을 입고 등장한 배우 에즈라 밀러의 괴짜스러운 행동은 성별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남자 옷과 여자 옷, 남자 백과 여자 백의 경계가 없어지는 요즘 패션계의 동향을 상기시킨다. 옷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에이셉 라키가 그래미 어워즈에서 핑크 테일러드 슈트에 진주 주얼리를 잔뜩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여자만의 신성한 영역이라 여긴 진주를 선택한 건 무척이나 독창적이며, ‘그동안은 왜? 하지 않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요즘 남성복 쇼에는 이번 시즌 마르지엘라처럼 젠더리스를 콘셉트로 차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런던의 웨일즈 보너나 파리의 팔로모 스페인처럼 젠더리스를 추구하는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줄기가 출현하고 있는 중이다. 치마 입는 남자는 물론이고, 진주 목걸이를 하고, 여자의 백을 걸치는 남자를 마주하는 것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요즘이다.
꽃중년, 꽃할배
남자의 진가는 세월과 함께 무르익어가며 발현된다. 늘 아름다운 것을 갈구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패션계에는 스타일리시한 꽃중년이 많다.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 폴 스미스를 비롯해 발렌티노의 수장 피에르파올로 피촐리, 제냐의 스테파노 필라티는 패션계의 유명한 꽃중년들. 이들 모두는 자연스러운 세월의 멋과 여유를 풍긴다. 최근 준야 와타나베의 2019 F/W 컬렉션에서는 모든 모델을 시니어 모델로 기용했는데, 그 런웨이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중장년층 남자와 하얀 수염이 가득한 노인이 등장해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꽃중년이 현실에 더 많이 존재한다.
운동복 입는 남자
지금 패션계가 다시 테일러드에 집중하고 있다지만, 스포티 트렌드는 꽤 오랫동안 패션계 전반을 뒤흔들어놨고, 지금도 가장 강력한 트렌드다. GmbH나 제냐에서처럼 트랙팬츠나 유니폼을 트렌디한 아이템과 매치하거나, 상의는 번듯한 재킷을 입고 하의에는 트레이닝팬츠를 매치하는 식의 이질적인 조합이 요즘 멋 좀 내는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포인트는 운동복만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 운동복이 아닌 아이템과 운동복의 대비가 클수록 강력한 스타일이 완성된다.
미켈레의 남자들
구찌의 수장이 미켈레로 바뀌고, 그를 흉내조차 내는 브랜드가 없다는 건 그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독특한지를 방증한다. 한마디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인물. 그는 영감을 받는 소재부터 독특하니, 아웃풋이 정상적일 수가 없다. 미켈레가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 중 공통된 요소는 극적이고 자극적인 디자이너라는 것. 그의 남자들은 순정만화나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뒷골목의 남자가 아니다. 판타지 뮤지컬이나 중세 연극에나 나올 법한 남자들이다. 하지만 그것만 있다면 그가 지금까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디자이너로 남을 수 없었을 것. 그의 남자에게는 극적인 동시에 늘 모던한 한 끗이 반드시 추가된다. 그 지점이 바로 동시대 남자들이 미켈레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비범한데 평범한 놈코어 남자들
노멀과 하드코어의 합성어인 놈코어. 평범함을 표방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패션을 말한다.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로, 꾸미지 않은 듯 편안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 자기만의 핵심 포인트를 담아낸 패션이다. 놈코어 패션은 내 몸에 잘 맞고, 편안한, 실용주의가 우선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연한 소재로 만들고, 모던하고 내추럴한 컬러가 주를 이룬다. 이런 스타일의 남자들은 런웨이 안팎에서 수시로 목격되며, 발렌시아가, GmbH, 베트멍 등 지금 가장 핫한 쇼에서 쉬어 가는 페이지처럼 등장한다. 거리에는 특히 가만히 있어도 멋진, 비현실적인 남자 모델들의 놈코어 룩이 자주 발견된다.
- 패션 에디터
-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