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가 도쿄로 간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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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수장을 교체한 보테가 베네타가 지난 12월, 일본 도쿄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단순하고 현대적으로 정제된 이 스토어는 긴자의 랜드마크로 떠오르며 아주 새롭게 달라질 브랜드의 ‘미래’를 짚고 있다.

보테가 베네타 도쿄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의 전경.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연상시키는 외관이 인상적이다.

여성복을 만날 수 있는 3층 전경. 보테가 베네타 가구 컬렉션을 배치해 따뜻하고 안락한 인상을 준다.

그동안 보테가 베네타는 크고 작은 파도를 아랑곳하지 않는 육중한 배 같았다. 얼핏 캐주얼해 보여도, 엄격하고 전통적인 이탈리아 복식을 따른 컬렉션으로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현대와 정통을 유연하게 믹스한 토마스 마이어의 보테가 베네타. 하지만 변치 않을 것 같던 보테가 베네타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됐다. 첫 번째 신호는 지난해 7월에 발표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 소식이었다. 2001년부터 18년간 브랜드를 이끌어온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와 결별하고, 32세의 신예 대니얼 리를 신임 디렉터로 기용한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가 소속된 럭셔리 그룹 ‘케어링’은 이미 구찌, 발렌시아가에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해 브랜드의 21세기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룹이다. 새롭게 선택된 낯선 이름 대니얼 리는 영국인이며, 세인트 센트럴 마틴을 졸업했고,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도나 카란 등에서 일한 경험과 최근까지 셀린 디자인팀 디렉터였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그가 디자인한 첫 번째 2019 프리폴 컬렉션이 새로 연 일본 도쿄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공개될 참이었다.

교토 화이트와 미네랄 석고로 기울어지고 접히는 평면을 구성한 1층 내부.

지하 1층에서는 남성용 가죽 제품과 슈즈, 4층에서는 남성복을 만날 수 있다. 5층에는 예약을 통해 프라이빗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특별 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더불어 공개된 대니엘 리의 첫 번째 프리폴 컬렉션. 그는 모니카 비티, 소차니 자매와 같은 이탈리아 여성들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수장의 교체 이슈와 맞물려 이목을 끈 플래그십은 도쿄 긴자에 자리한다. 18년 만에 새 선장을 맞이해 출범한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아시아 스토어 중 가장 큰 규모. 브랜드 CEO 클라우스 디트리히 라스(Claus Dietrich Lahrs)는 아시아를 아주 중요한 시장으로 여겼다. 그중에서 일본은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한다. “아름답고 독창적인 공간에 풍성한 컬렉션을 갖춘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는 아시아 전역의 고객들에게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안할 것입니다.” 그가 브랜드의 고향 이탈리아 대신 도쿄를 전환점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은색 정사각형 메탈 9백여 개를 사용해 인트레치아토 기법(가죽을 끈 형태로 잘라서 엮는)을 연상시키는 외관은 미래적인 도쿄의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 한층 단순하고 명확해진 보테가 베네타식 화법을 암시했다. 이는 내부에서 더 잘 드러났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성행한 ‘빛과 공간 예술(Light and Space)’ 사조의 아티스트들(제임스 터렐, 피터 알렉산더 같은)에게 영감을 얻은 내부는 기울어지고 접힌 벽면의 창을 통해 채광이 아주 잘 들어왔고, 옅은 미색의 ‘교토 화이트’를 사용한 하얀 내부는 담백하고 미니멀한 미학을 드러냈다. 일본산 들메나무(Tamo)의 독특한 나뭇결에서 영감을 받은 천연 오크나무 바닥, 에도 시대 후반 건축물에 사용하던 일본식 석판 테페이 세키(Teppeiseki), 일본 전통 수공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벌집을 닮은 해머드 오크(Hammered Oak) 디스플레이 테이블 등 많은 요소에서 일본 문화와의 교집합이 드러났다. 이번 플래그십을 위해 익스클루시브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 타셀로(Tassello)와 루디(Rudi) 사의 밝은 벽돌색 소파 등 곳곳에 배치된 보테가 베네타의 가구 컬렉션은 미니멀한 공간에 따뜻함과 안락함을 더했고, 옷부터 가구, 홈 컬렉션까지 젊고 현대적으로 변모한 보테가 베네타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대니얼 리의 컬렉션으로 돌아가면, 프리폴 컬렉션은 본 컬렉션을 준비하기 전 수개월 사이에 준비된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있었다. 검은색 블레이저, 베이지색 오버사이즈 코트, 실크 블라우스, 금 장신구, 펌프스, 청록색 부츠 등은 위축되거나 소심함 없이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존경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일부 요소는 마틴 마르지엘라, 헬무트 랭, 심지어 90년대 톰 포드 시대의 구찌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브랜드의 가장 유명한 기법인 인트레치아토는 네모난 펌프스와 특대 사이즈의 토트백, 스웨터에 적절하게 쓰였다. 좋은 소재와 럭셔리에 대한 깊은 이해 또한 엿보였다. 과연 피비 파일로(Poebe Philo)의 대체자가 나타난 것인가? 그는 피비 파일로의 부재에 박탈감을 느끼는 여성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다른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프리폴 컬렉션을 미뤄보아 여성들의 지갑을 열게 할 크고 잘 만들어진 옷이 분명 여기 있었다. 2월 말, 밀란에서 열리는 가을 시즌 쇼에 참석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니얼 리는 클래식과 젊음, 동시대성의 화합에 다시 기대를 걸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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