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아름다움, 카를라 브루니가 우리 곁으로 왔다. 세기적인 모델, 뮤지션,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공교롭게도 카를라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장윤주에게 카를라는 인생의 롤모델이자 오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랑데뷰가 <더블유>의 뷰파인더 안에서 이루어졌다.
11월 낭만의 계절, 카를라 브루니가 서울을 찾았다.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친 그녀의 대장정이 코리아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1990년대를 풍미한 모델로, 프랑스 전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로,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로, 카를라는 그야말로 ‘만인의 연인’ 같은 삶을 살았다. 특유의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보이스, 음률처럼 들리는 마성의 숨소리, 문학과 삶 속에서 받은 영감으로 완성되는 멜로디와 가사까지 더없이 그녀답다. 11월 2일, 3일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한 번씩 공연이 열린 짧은 일정의 방한이지만, 그녀가 한국에 착지해 있는 동안 낮과 밤으로 사람들은 카를라가 불러준 노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카를라 브루니는 배철수와 김창완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히트곡 메들리를 감미롭게 불러주었다. ‘가을 햇살’ ‘낙엽 소리’ ‘솜이불의 촉감’ ‘만추의 목소리’ 등 마치 백일장이라도 열린 것처럼 청취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격을 표현했다. 다음 날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콘서트 현장에는 꼬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긴 행렬이 이어졌다. 성처럼 생긴 고전적인 건축물 안에는 붉은 벨벳을 배경으로 높낮이가 다른 초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굽이 낮은 앵클부츠에 가죽 팬츠를 입고 등장한 카를라는 때로는 점성술사처럼 관객을 홀렸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위트 넘치는 멘트로 사람들을 웃게 했다가 끝내 노래로 모두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아바의 커버곡인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를 때는 턱시도 재킷을 벗고서 생로랑의 반짝거리는 글리터룩으로 변신한 모습도 참 그녀다웠다.
그리고 여기, 그날 객석 가장 앞줄에서 카를라와 눈을 마주쳤을 한 사람. 그 누구보다 오랜 세월 카를라 브루니를 사랑하고 앙망해온 여자가 있다. 장윤주는 카를라 브루니가 지금까지 발표한 전 앨범을 모두 소장하고 있으며, 그녀가 찍은 화보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만큼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다. 카를라와의 만남을 누구보다 기다려왔을 그녀. <더블유>는 두 사람의 랑데뷰를 주선했다. 마침내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공연장 ‘벨로주’에서 감격적인 하모니가 이루어졌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스태프들에게 눈인사와 악수를 청하며 카를라가 입장하자, 장윤주는 작가 나난이 그려준 위트 넘치는 종이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심플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세기적인 두 모델은 카메라 셔터가 열리자, 공연장 한 귀퉁이를 순식간에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바꿔버렸다. 이어 장윤주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지그시 눈을 감은 채 ‘Stand by Your Man’을 부르던 두 사람의 공연은 비주(Bise)처럼 부드럽고 따듯했다. 과거 장윤주는 <더블유> 2013년 10월호에 기획된 ‘뮤지션 8인의 오마주 화보’에서, 카를라 브루니의 앨범에 헌정하는 멋진 화보를 남긴 적 있다. 기타를 아기처럼 살포시 껴안고 있는 흑백 사진 속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았다. 드디어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나는 당신의 오랜 팬이고 지금까지 나온 모든 모든 앨범을 소장하고 있다. 음반을 쭉 들어보면 모든 노래가 공통적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랑, 꿈 같은 사랑, 그리고 사랑의 상실감. 나도 윤주의 앨범을 들어보았다. 목소리도 작곡하는 방식도 너무 좋았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심플하고 순수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이 부르는 멜랑콜리하고 시적인 음악이 좋다. 그런 음악은 마음속으로 들어와 바로 와닿기 때문이다. 윤주의 노래를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를 배우고 싶을 정도다(웃음).
오! 카를라, 당신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 카를라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나? 모델로 일할 당시에는 1980년대 모델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예를 들면 패티 핸슨(Patti Hansen), 크리스티 브링클리(Christie Brinkley), 그리고 제니스 디킨슨(Janice Dickinson)과 같은 내 세대 바로 전에 활동한 모델들. 특히 당시 활동한 모델 중 팻 클리블랜드(Pat Cleveland)는 지금 봐도 정말 근사하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재즈 뮤지션 빌리 홀리데이, 포크계의 거장 조니 미첼,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바바라 등 환상적인 뮤지션들을 정말 좋아한다.
작년에 발매된 앨범 <French Touch>는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른 ‘Stand by Your Man’은 한국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OST로 흐르며 한국에서도 정말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신에게 ‘프렌치 터치’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프렌치 터치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패션은 나에게도 윤주에게도 첫 번째 가족이지 않은가? 그것을 예로 들어보겠다. 프랑스는 패션의 나라다. 같은 패션이라고 해도 파리에는 오트 쿠튀르부터 현대적인 스타일까지 각양각색의 개성이 공존한다. 이런 것들이 서로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것이 내게는 프렌치 터치처럼 느껴진다.
작년 9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의 베르사체 패션쇼에서 감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당신을 비롯해서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시퍼, 헬레나 크리스텐슨 등 전설적인 슈퍼모델 다섯 명이 런웨이 위에 올라 큰 화제를 모았다. 그날 어떤 기분이었나?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날의 쇼는 고인이 된 지 아니 베르사체에게 헌정하는 자리였다. 압도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이 일었다. 나는 여전히 지아니 베르사체를 사랑하고 그가 종종 그립다. 아무도 나에게 런웨이에 오를 기회를 주지 않았던 그때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지아니였다. 백스테이지에서 쇼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도나 텔라와도 오랜만에 만났고, 내게도 딸 같은 신디 크로퍼드의 딸 카이아 조던 커버도 모델로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무대로 걸어 나가자 2백여 명의 후배 모델들이 박수를 쳐주는데 그 순간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단상 위로 걸어 나갔을 때, 모두가 놀라는 탄성 소리가 내 귀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커튼이 열리기 전까지 그날의 깜짝 이벤트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날의 쇼는 패션 역사상 대단히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모델 친구, 동료들과 정말 멋지다고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카를라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명세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서 심플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로서의 음악은 나에게 너무 중요하다. 남자들은 야망을 갖고 실현하기 더 쉬운 구조이지만, 여성은 그러기가 쉽지 않지 않나. 일은 여성에게 자유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좀 갇혀 살지 않았나? (웃음) 딸에게도 언제나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직업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한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당신의 노래를 자주 들려주는 편인가? Stand by Your Man~(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렇게 아침마다 매일 남편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일동 웃음) 이것 좀 들어봐, 이러면서. 그가 엘리제궁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수면 시간이 굉장히 중요했다. 대통령으로 부임한 이래 아주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늘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마다 노래를 불러주며 그를 깨웠다.
그럼 곡 작업은 주로 밤에 하는 편인가? 그렇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일이 시작된다. 집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로 들어가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 그렇게 새로운 노래가 완성되면 아침에 남편을 깨워서 들려준다. 그러면 사르코지는 잠에서 덜 깬 채로 ‘좋아 좋아 아주 좋아’라고 웅얼거린다. 주변에서는 한숨이라도 더 자고 싶을 텐데 깨우지 말라고 하지만, 내 남편인데 뭐가 어떤가? (웃음) 모두가 잠든 새벽 2시에라도 나에겐 언제나 새로 만든 노래를 들어주고 조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너무 공감 가는 이야기다. 나는 다음 주에 며칠간 파리에 머물 예정이다. 정말인가? 파리에 오면 우리 같이 점심을 먹자. 아주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주겠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에서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나눌까? (웃음)
- 피처 에디터
- 김아름
- 포토그래퍼
- 목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