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바이트

W

매일의 일상이 근면으로 채워진 사람들의 옷, 유니폼이 덜컥 나를 일깨웠다.

나사의 연구원

실험실 연구원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자수 장식 코트, 터틀넥 톱, 셔츠, 팬츠는 모두 발렌티노, 다운 장갑과 레이스업 부츠는 지제냐, 안경은 젠틀 몬스터 제품.

실험실 연구원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자수 장식 코트, 터틀넥 톱, 셔츠, 팬츠는 모두 발렌티노, 다운 장갑과 레이스업 부츠는 지제냐, 안경은 젠틀 몬스터 제품.

워크웨어로부터

로고 장식 패딩 베스트와 나일론 집업 후디는 프라다 제품.

로고 장식 패딩 베스트와 나일론 집업 후디는 프라다 제품.

성실한 수영 선수

PVC 포켓으로 포인트를 준 이브 클라인 블루 슈트, 스니커즈, 비닐 캡 안에 수모를 그대로 쓴 룩은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PVC 포켓으로 포인트를 준 이브 클라인 블루 슈트, 스니커즈, 비닐 캡 안에 수모를 그대로 쓴 룩은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세상은 어지럽게 흘러간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를 뒤덮은 지는 제법 오래됐고,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고 있으며, 재벌가의 갑질을 고발하는 제보가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패션계는 이 시공간의 민감한 이슈를 기민하게 반영했다. 우울한 현실을 들여다본 패션계는 로맨틱, 우아함, 장식주의보다는 냉소적이고 황량한 기운이 넘실대는 가운데 따뜻한 미래를 제안하기도 한다. 프라다 런웨이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예다. 실용과 내구성의 상징, 산업 소재 나일론이 거의 모든 룩에 쓰였고, 두툼한 패딩, 목까지 꽉 여민 집업 톱, 지퍼와 포켓 장식, 아이디 태그는 디자인적 요소가 많이 섞인 워크웨어 같았다. 메탈릭한 철판 위를 걷는 모델들은 톱니바퀴의 부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영화 <모던타임즈>를 연상시켰다. 혹은 영화 <메트로폴리스> 속 광산으로 힘없이 걸어가던 노동자 무리만큼 음산하고 쓸쓸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산업적인 동시에 시적이었다. 발렌시아가 남성복 프리폴 룩북은 거리에서 촬영됐다. 모델도 스타도 아닌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고, 반사 섬유가 붙은 오버사이즈 파카는 밤과 거리에서 일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캘빈 클라인의 소방관 파카는 또 어떤가. 현실의 유니폼을 아주 근사하게 변형시켰다.

거리의 누군가

반사 섬유 라인 장식의 파카, 셔츠가 붙어 있는 티셔츠, 부츠컷 데님 팬츠, 더비 슈즈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반사 섬유 라인 장식의 파카, 셔츠가 붙어 있는 티셔츠, 부츠컷 데님 팬츠, 더비 슈즈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실전,주짓수

스트리트 브랜드의 재해석이 담긴 네이비색 주짓수 도복은 하이퍼플라이 x 칼하트 WIP 제품.

스트리트 브랜드의 재해석이 담긴 네이비색 주짓수 도복은 하이퍼플라이 x 칼하트 WIP 제품.

소방수의 옷

비닐이 코팅된 체크 재킷, 삭스는 보테가 베네타, 오렌지색 다운 톱은 준지, 은색 지퍼 장식 팬츠는 루이 비통, 모자와 장갑은 지제냐, 핑크색 스니커즈는 펜디 제품.

비닐이 코팅된 체크 재킷, 삭스는 보테가 베네타, 오렌지색 다운 톱은 준지, 은색 지퍼 장식 팬츠는 루이 비통, 모자와 장갑은 지제냐, 핑크색 스니커즈는 펜디 제품.

올해 SFDF 1위에 선정된 한국의 패션 브랜드 이세 (IISE)는 국군의 밀리터리 유니폼을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복식사에 있어 미 군복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시도는 반갑다). 그리고 다음 봄 시즌에는 청와대 앞 시위 진압 현장에서 영감 받은 밀리터리 룩의 다른 버전도 선보일 것이다. 트랙 팬츠, 집업 후디가 포함되어 있고, 어떤 것은 의경의 우비, 방탄조끼처럼 보인다. 이는 현실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청바지, 폴로셔츠, 점프슈트, 밀리터리, 카고팬츠. 누군가의 유니폼, 누군가에겐 일상인 옷.

스쿨룩스

프레피 스타일의 폴로셔츠를 두툼하게 만든 톱, 체크 셔츠, 팬츠는 모두 폴로 랄프로렌, 버건디색 부츠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제품.

프레피 스타일의 폴로셔츠를 두툼하게 만든 톱, 체크 셔츠, 팬츠는 모두 폴로 랄프로렌, 버건디색 부츠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제품.

닥터 스트레인지

뼈 모티프 로고 재킷과 줄무늬 팬츠는 구찌 제품.

뼈 모티프 로고 재킷과 줄무늬 팬츠는 구찌 제품.

충성, 군복

한국 군복에서 영감 받은 밀리터리 재킷, 멀티 포켓 베스트, 광택 있는 후디 집업, 팬츠는 모두 이세, 부츠는 지제냐 제품.

한국 군복에서 영감 받은 밀리터리 재킷, 멀티 포켓 베스트, 광택 있는 후디 집업, 팬츠는 모두 이세, 부츠는 지제냐 제품.

바바라 레스의 사진을 본 적 있는가. 1980년대 트럼프 그룹 부사장을 역임했던 나이 지긋한 바바라 레스는 지금은 트럼 프 반대편에서 서서 그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인다. 시위 중 그녀는 젊은 시절 건설 현장에서 찍힌 사진 위 “I Am The Woman Who Built Trump Tower”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안전모에 투박한 청바지 차림으로 공사 현장을 누볐다. 1980년대 여성으로 그룹의 임원이 된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을 터. 이 같은 사실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한 장의 사진이 노동의 가치와 진실됨을 얘기하는 유니폼의 속성을 돋보이게 했다. 유니폼으로 태어나 유니폼으로 인정받고 다시 유니폼으로 돌아가는 옷. 부르주아적 면모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어진 유니폼은 ‘일상에 최선을 다해라’, 이렇게 말한다. 청바지가 제임스 딘에게 가서 시공을 초월하는 클래식이 됐듯, 당신도 당신 일상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음이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박종하
모델
노승화, 정용수, 이현신, 임지섭
헤어
장수일
메이크업
이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