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을 빌리자면, 김C는 4년여 만에 노래 한 곡을 ‘툭’ 던졌다.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공개된 뜨거운감자의 디지털 싱글, ‘중력의 여자’ 이야기다. 새로운 것을 향한 열정적인 호기심과 창의적인 갈증, 진중함과 자유분방함이 뒤섞인 그의 깊은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마치 오랜 시간 묵묵히 그릇을 빚어온, 섬세하고도 거친 도예가의 손을 닮았다.
〈W Korea〉 음악과 뗄 수 없는 당신에게 4년이란 공백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김C 어느 날 싫증이 찾아왔다. 늘 듣던 드럼, 베이스, 기타 소리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이상하게 싫증이 났다. 익숙하게 다루던 악기들을 다 치우고 만지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봤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일시적이곤 해서 그럴 때면 조용히 기다려보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더라. 기다림의 시간 끝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음악을 듣고 공부하게 됐다. 그게 전자 음악이었고, 디제잉이었다. 밴드는 각각 악기를 연주하는 구성원이 모여야 연주가 가능하지만 전자 음악은 리듬 머신이 있고, 관련 악기를 연결시키면 혼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조건이니 더 열심히 배우면서 빠져들었다. 뜨거운감자의 멤버인 고범준도 개인 작업을 오랫동안 전자 음악 형태로 해왔다. 본격적인 프로모션은 없었지만 필요할 때 서로 같이 작업도 돕고, 간헐적인 SNS 홍보를 통해 중간중간 솔로 형태의 발매도 했으니 4년 동안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왜 하나의 앨범이 아닌, ‘중력의 여자’ 한 곡을 툭 던졌나?
복잡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든든한 소속사가 있는 상태에서 음악을 제작하면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울타리와 지붕 없이 음악가가 음악을 만든다면, 상황은 사업가의 입장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집에서 녹음 작업이 가능하다 해도, 앨범 전체를 만들려면 금전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운 좋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멋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영상 제작에만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거다. 개인적으로 제한적인 프로모션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찾는 음악을 하기가 힘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음악가가 음악으로 말하면 되지, 뭐 어때?’라고 하는데, 상업 음악을 할 때는 당연히 상업적 가치의 발생이 필요하다. 그런 탓에 나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소규모 작업을 해왔다. 앞서 말한 전자 음악, 클럽 디제잉도 그 연장선이다. 노래도 계속 갖고 있으면 고인 물처럼 죽기 마련이다. 적당한 시기에는 밖으로 나가야 새로운 것이 또 찾아온다. ‘중력의 여자’를 떠올리며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왜 ‘중력의 여자’였나?
예전에 배우 김혜자가 출연한 어느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 우연히 시놉시스를 읽었다. 그와 관련해 음악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극 중 김혜자의 역할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느끼는 걸 그대로 표현해내는 음악에는 자신이 있는데, 음악가가 아닌 기술자 역할에 치우친 드라마 음악 시장의 구조는 내 생각과 달랐다. ‘중력의 여자’는 당시 가벼운 데모 형태로 만들어놨다가 접어둔 곡이다. 후에 곡 작업을 더 했고, 다 같이 들으면 좋겠다는 친구들의 의견에 힘입어 확장시켜 완성했다.
이번 디지털 싱글 말고도 품고 있는 곡이 많은가?
정말 많지만 현실적 상황 때문에 다 내놓기 쉽지는 않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디지털 싱글은 다분히 실험적이다. 올해 안에 디지털 싱글을 한 차례 더 낼 계획이다. 스케치는 된 상태고, 관련 비디오 작업을 구상하다 보면 일 년이 훌쩍 갈 것 같다. 작업하다 보면 내 힘이 닿지 않은 비디오처럼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영역이나 상황이 많다. 이번에는 뮤직비디오가 특히 그랬다. 비디오 촬영을 하며 금전적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대신 그들에게 ‘권한’을 줬다. 나는 한 번도 어떻게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고, 영상 속에서 철저히 퍼포먼스를 펼치는 배우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러니 모두가 주인 의식이 생겼고, 가장 이상적인 작업 과정을 거쳐 결과물이 나왔다. 마치 블록 체인처럼 서로의 고리가 엮여, 각자가 주인이 돼 새로운 창의력이 폭발했달까. 창작 집단에게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음악가로서 다시 느끼게 됐고, 함께해준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예술적이고 묘한 분위기의 ‘중력의 여자’ 뮤직비디오 구상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처음에 친구인 스테레오 바이널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허재영에게 음악을 들려줬다. 허재영은 런던 쇼 스튜디오 소속의 한국인 편집자 구윤지가 생각난다고 했고, 딱 한 번 본 적 있는 그에게 연락해 곡을 보내며 비디오 작업에 함께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구윤지는 ‘기억이란 미신 같은 거라고 믿고 싶은 대로 원하는 것만큼만 남았더라’는 노래 구절에서 이태리의 브루노 무나리 작가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의 작업 중 유명한 ‘불편한 의자에서 편안함 찾기’라는 주제가 가사와 관통되는 부분을 느꼈다면서. 이 곡은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삼대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고단함이 중력처럼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요즘 이어지고 있는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저항, 수평적인 남녀 관계를 원하는 시대에 마침 이 곡이 나오게 된 거다. 구윤지는 장면의 구성, 카메라 앵글, 프레임 수, 조명 톤 등까지 세심하게 제안했고, 이런 의견을 반영해서 사진가 목정욱이 영상 촬영을, 허재영이 진행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부딪치지 않았다. 프로들의 생각과 생각이 만나는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상투적이라고 여겨지는 장면도 있지만 전체 그림을 그린 담당자의 권한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그런 논의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디제잉을 할 때 느낌은 곡을 만들 때와 어떻게 다른가?
디제잉은 궁극적으로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거라고 볼 수는 있지만, 내 자신이 1차 표현자는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작곡가라면 스타일리스트는 디제이 같은 거다. 다양한 제품을 모아 어떻게 스타일링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디제이가 어떻게 섞고 표현하냐에 따라 다른 무드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재미있다. 선동적인 특징이 있다는 점도 다르다. 다양한 장르의 디제잉이 있는데, 나는 언더그라운드 중에서 테크노, 일렉트로, 미니멀 음악을 주로 튼다. 디제잉은 굉장히 선동적인 음악이고, 항상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디제잉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고, 바이닐도 엄청 사 모았다. 한국에선 좀처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일주일에 주말 빼고는 매일, 몇 년간 택배로 수천 장의 바이닐이 도착했다. 바이닐은 디제이에게 일종의 총알이다. 한 번 플레이하려면 수십 장이 필요하다. 지금도 열정을 다하고 있는 디제잉 일은 지난 4년간 나를 지탱하고 고무시킨 원동력이었다.
음악적으로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지금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게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불덩어리 같았다. 누군가 나한테 던져 준 그 불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고, 뭔가로 풀어 내야 했는데, 그게 음악적으로 이어지게 됐다. 어느 날 여자친구는 왈츠곡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중력의 여자는 삼박자로 구성된 왈츠곡이다. 어떨 때는 내가 음악의 출발이 아니라, 그 사람이 출발이 됐다. 아직도 내겐 몇 개의 숙제가 있다.
자신의 세계로 둘러싸인 듯한 김C의 음악은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땐 유재하 씨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어떤 역할을 한 건지 몰랐다. 노래도, 가사도 좋지만 음악사의 지평을 넓힌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음악가이니 음악을 좀 더 깊이 탐구하고, 직업적으로 심도 있게 들을 필요가 있지 않나. 그렇게 다시 들어보니 새로운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일반적인 노란 고무줄을 떠올려보라. 기다란 타원의 일률적인 형태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잡아서 늘이냐에 따라 고무줄 형태가 변화무쌍해진다. 문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득 유재하 씨가 어느 고무줄을 잡고 한참 당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유재하 음악회를 통해 나온 사람들이 또 조금씩 넓혔다. 그리고 윤상 씨 등 많은 음악가들이 고무줄을 점점 팽창시켰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냥 팽창돼 있는 상태 안에서 놀고 싶지만은 않다. 고무줄을 조금 당겨서 모양의 변형을 이루는 데 일조하고 싶다. 중력의 여자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아니다. 이건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안 해주면 추상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잘 모를 수 있다. 내 음악이 대중이 알았으면 하는 것을 한 번쯤 돌아볼 계기가 되고, 사고의 확장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누군가는 알면 좋겠다. 나 또한 그래왔으니까.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겐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구애받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시간이 있다. 음악가의 입장보다는 방송에서 보여준 각인된 이미지가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가 만드는 음악을 모른다면, 그 사람들이 손해지 특별히 내가 손해는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적극적으로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계기가 됐던 게 ‘고백’이다. 그전에는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인지 몰랐던 이도 많았다. ‘고백’이 어떤 창문 역할을 해준 것 같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이전 음악은 복잡했고, 친절한 음악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고유하다’까지는 아니어도 다양한 측면으로 봤을 때 ‘김C 같은 사람도 존재해야 했다’고 여겨지는 음악가로 남고 싶다.
TV에 다시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나?
물론이다. 대중음악가로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다음 스텝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캠핑 프로그램 <집시맨>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를 듣고 얻는 부분도 많다. 전처럼 예능에 출연하긴 쉽지 않겠지만 좋은 기획이 있다면 좋겠고, 이따금씩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한다.
어떤 아이디어일지 궁금하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난 청년, 청소년 세대를 위해서라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가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에 ‘잘 먹고 잘 사는데 통일이 왜 필요한가?’ 하는 고립된 사고에 갇혀선 안 된달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섬나라에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고립감에서 오는 폐쇄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짧게나마 유럽에 살 때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수학여행 때 기차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대륙적 기질과 원대한 꿈을 키우며 자랐으면 좋겠다. 국경과 국경이 만나서, 문화와 문화가 만나서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그렇게 지구의 역사가 발전해 왔다. 세계의 확장을 경험한다면 더 이상 가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경제력이나 보이는 것으로만 폄하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도 없어질 거다. 그래서 국경만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 스페인 국경 지대를 가면 두 가지 언어와 화폐가 통용되고, 음식 스타일도 섞이고, 건축물은 어떻고… 등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무궁무진할 것 같다.
관심 있는 음악 외의 분야가 무척 많은가 보다.
국내외 정치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는 정치색을 띠는 것에 대해 의외로 편견이 강한 나라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사람은 정치를 벗어나선 단 1초도 살 수 없다. 앞으로 공공성을 무시하는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퍼블릭 마인드가 명확히 있는 사람이라야 정치계에서도 성공할 거다. ‘나’를 포함한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크다. 나를 포함하지 않는 우리에는 관심없다. 우리라는 말을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이 쓰는 나라가 있을까? 어떤 때는 내가 없고, 희생을 강요할 때도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행복할 때, 내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정치가가 된다는 건 아니고, 당연히 관심 갖고, 참견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한가?
몇 가지 측면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따금씩 지구적 환경, 정치적 이유 때문에 우울하고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완벽한 게 어디 있겠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누구와 있냐에 따라서 행복감이 다를 거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 마지막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엔 만남과 헤어짐은 단 한 명의 마지막 사람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불행하게도 원치 않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하면서 살아가기보단, 지금 명확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말이다.
과거에 떠안은 대중적인 잣대를 극복했는지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
혼자 있으면서 스스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해보고, 비슷한 사회적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서 나 또한 많이 떨쳐냈다. 내가 유명인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타인의 시선보단 나와 진정으로 연결된 것들과 함께 무슨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물론 그땐 당연히 분노, 배신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있었다. 결국에 우리는 서로가 행복한 결론을 찾아냈다. 아이들의 엄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관계가 더 좋아져서 아이들을 통해서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긍정적인 기운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더 이상 분노와 갈등은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속얘기를 알 리 없다.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표면적인 면만 보고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내 얼굴 앞에 대고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이젠 미움, 증오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우리만의 안락함을 찾았고, 세상이 어떻게 보든 간에 편안하다.
인생의 선배로서, 행복을 찾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서울은 속도 면에서 정말 빠르고 다르다. 그 속도감에 적응하지 못하고 휩쓸려 다니면 정신없고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걸 찾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방송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좀 더 이기적이 되고, 가능한 한 빨리 스스로 좋은 걸 찾아야 한다. 거창하건 소박하건.
더 많은 화보 컷은 더블유 4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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