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들의 반응이 좋았던 이번 시즌 서울패션위크. 그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다섯’을 만났다.
JWL_이재우
JWL은 디자이너 이름의 약자다. 이화여대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한국에서 MD일을 하다 30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유학 길에 올랐다. 파슨스에서 공부한 뒤 2015년 런던에서 첫 쇼를 선보였고, 이번 서울컬렉션은 두 번째 시즌이다.
이번 시즌 콘셉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젠틀 우먼.
완성도 높은 테일러링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테일러링이다. 최근 이태리에서 공부한 남성복 테일러링 패턴 선생님을 만났다. 합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정말 중요하다.
런던에서 쇼를 먼저 시작한 이력이 새롭다.
패션 스카우트라고 런던에서 영 디자이너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우연히 시기가 맞아 지원했다. 운이 좋아 기회가 주어졌다.
본인이 입고 싶고, 좋아하는 옷을 만든 건가?
내가 동 경하고 좋아하는 여성의 옷을 만든 게 맞다. 이번 시즌에서 명확하게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컬러, 형태 같은 것에 집중한 이유다. 강인한 가운데, 여성이 가진 이미지들을 모던하게 투영했다.
구체적인 가격대를 물어도 될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팬츠는 30만원, 아우터는 100만원 정도.
옷을 만들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원단.
좋은 원단을 보는 눈을 갖췄다고 생각하나?
원단 욕심이 정말 많고, 많이 보러 다닌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것을 어렵게 구하기도 하고, 이탈리아에서 직접 수입해서 쓰기도 한다.
지금 신인 디자이너에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인가?
자본.
그렇다면 JWL은 자본을 어떻게 충당하나?
아직 부모 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외국에서 유학도 했고, 런던에서 첫 쇼도 했는데, 왜 해외에서 브랜드를 시작하지 않았나?
비자 문제, 생활비 문제, 한국에서 제작할 때의 비용 절감 부분도 고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평생 살 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보고 싶었다.
런던에서는 어떤 지원을 해줬나?
공간 제공, 헤어, 메이크업 지원, 헬퍼 지원 정도였다. 영국 베이스가 아니면, 많은 지원을 기대하긴 힘든 것 같다.
그곳에서 얻은 경험은?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한국에서 쇼 하기 직전이라 부족한 스타일을 채울 수 있었다.
옷을 보니 취향이 확고해 보이고, 트렌드를 좇느라 급급해하지도 않고, 느긋함이 보이더라.
나는 내 옷이랑 비슷한 사람이고, 좋아하면 파고드는 성향이다. 느긋하다가 닥치면 전투적으로 변한다.
어떤 브랜드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나?
웰 메이드, 웰 테일러드를 잃지 않는 브랜드. 다음 쇼가 기대되고, 가능성, 미래가 보이는 브랜드.
트렌드는 어느 정도 담아내나?
트렌드도 중요하고 넣고 싶긴 하지만 나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흥미로운 요소들을 적절하게 넣고 싶다.
옷을 만들 때의 신념이 있다면?
‘Love at the First Sight Moment’라는 모멘트 창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본능적인 옷, 본능적으로 이 옷이 좋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이번 시즌 가장 자신 있는 룩은?
오늘 내가 입고 온 브라톱과 테일러드 팬츠 착장.
당신 옷을 입은 것을 본 적 있나?
아직 나만 입고 다닌다.
지금 몇 명과 일하나?
혼자 일 한다.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더블유에 궁금하거나 묻고 싶은 것이 있나?
내 쇼를 보고 든 생각을 듣고 싶다.
한국에 웰 테일러드. 타임리스 피스를 추구하는 국내 하이패션 브랜드는 별로 없다. 그것도 신인은 더더욱. 틈새라고 생각한다. 흥미를 놓지 않게 해주는 게 JWL 이 할 일인 거 같다.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그 고유함을 지켰으면 한다.
블라인드니스_신규용, 박지선
블라인드니스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패션을 전공한 신규용과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박지선은 둘 다 올해 29살, 88년생이다. 2013 S/S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블라인드니스는 신규용 디자이너 혼자서 이끄는 브랜드인 줄 알았다.
작년 4월부터 여자친구인 박지선이 합류했고, 이번 시즌부터 공식적으로 같이한다고 공표했다.
처음 시작은 3명의 친구가 함께했던 걸로 알고 있다.
학교 때 친구들과 블라인드니스를 시작했고, 1달 뒤에 한 명, 1년 반 뒤에는 나머지 한 명이 나가면서 혼자 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 콘셉트는 무엇인가?
영화 <데니쉬걸>의 주인공 에이나르 베게너에게서 영감 받아 만들었다. 남성복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엘레강스한 남성복을 선보이는 것이 콘셉트다.
옷을 만들 때 무엇을 중시하는 편인가?
옷을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번 시즌 쇼의 만족도는?
이번 시즌은 지금 한국 트렌드와 거리가 있는 거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고, 좋은 말들도 많이 들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인 디자이너들은 금전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한다. 이번 서울패션위크 참가 브랜드 중 착장 수가 가장 적었을 것이다. 만들 때에는 50착장을 내놓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룩을 미련 없이 탈락시키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사실은 더 쳐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블라인드니스는 젠더리스적인 성향이 지배적이다.
시작할 때부터 화려한 프린팅으로 시작했고, 룩 자체가 완벽히 남성적인 적은 없었다. 젠더리스라는 성향은 브랜드 자체에 들어 있다. 지난 시즌부터 유독 부각된 이유는 전략적으로 쇼적인 요소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부터 합류한 박지선의 영향도 크지 않을까?
그렇다. 박지선이 투입되면서 남성복이지만 여성적인 면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 솔직히 좀 센게 아닌가 했던 것들도, 박지선의 밀어붙이는 성향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블라인드니스의 시그너처 아이템은 무엇인가?
민들레 자수 후드. 캐주얼하고 대중적인 것이 많이 팔리긴 한다.
가장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즌 콘셉트에 맞는 참신한 디자인의 옷 만들기.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이 고정된 특별한 시점이 있었나?
아직도 정리 중인 것 같다. 늘 새로움을 찾고 실험한다. J.W. 앤더슨이 인터뷰에서 자기가 만든 옷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더라. “이거 당신 입으라고 만든 옷 아니다.” 그런 거 같다. 패션 디자이너니까 디자이너로서 이런 옷도 있다고 알려주는 거다. 우리도 그런 아티스트적 측면으로 더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미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은 비슷한가?
지향점은 같지만, 눈높이는 박지선이 더 높은 것 같다. 브랜드에서 크리틱을 맡고 있고, 별명은 칼 라거펠트다. 박지선이 자주 하는 말은 “패턴 고쳐”와 “그거 빼!”, 이런 것들이다. (웃음)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진 브랜 드로 키우고 싶나?
지금은 컬렉션을 통해 성장하고, 정착해가는 과도기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아티스틱한 브랜드로 모양새를 잡아 가지 않을까.
대중성과 트렌드의 비율은 어떻게 나누는 편인가?
컬렉션을 할 때는 대중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판매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시즌엔 특히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콘셉트에 충실한 것을 맘껏 해보자는 생각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바잉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신선한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것이 바이어들의 눈에는 새롭게 비친 것 같다.
요즘 감성을 찾으려고 뭘 주로 하는 편인가?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그들이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떻게 작업해왔는지. 트렌드에 맞는 옷을 찾으려 하진 않는다. 타깃을 어떻게 잡고, 어떤 뜻을 품고, 어떤 자료를 보느냐가 중요하다. 영화 안의 트렌드, 복식사, 미술적인 요소도 자주 참고하는 편이다.
힘들지만, 옷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연히 옷이 좋아 시작했을 때랑 지금의 마음가짐은 좀 다르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었던 게 예전이라면, 지금은 아티스트적 느낌을 더하고 싶다. 이왕 시작한 거 이름이라도 남겨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오기도 생긴 것 같다.
블라인드니스의 옷을 누가 입었으면 좋겠나?
진짜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어느 누가 됐든 많이 입어줬으면 좋겠다. 쇼 반응만 좋고 안 입고, 끝나면 많이 아쉽다.
앞으로의 신념 같은 게 있다면?
사실 우리가 옷을 만든 기간은 기껏해야 3년이다. ‘이 옷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옷이다’라는 말보다 우리 옷을 보고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옷, 너무 선생님 같지 않은 옷을 만들고 싶다.
한국 매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 매체에는 크리틱을 할 수 있는 패션 비평가가 부족한 것 같다. 서로가 발전하려면 서로에 대한 수준 높은 비평이 있어야 한다. 뻔한 비평 말고, 아주 날카로운. 우리는 나쁜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은 브랜드 인지도에 영향을 너무 받는 것 같다. 신인으로서 조금 아쉽다.
대인배다. 진짜 날카롭게 비평해도 상처받지 않을 자신 있나?
사실 우리 둘 다 좀 소심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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