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이미 가까이 와 있다. 단지 도킹할 만한 컬렉터를 만나지 못했을 뿐. 제 15회 아시아호텔아트페어 서울이 그 무대를 확장하고서 방문객을 기다린다.
미술 작품이 엄숙한 갤러리를 탈출하는 사건은 갈 수록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며 그곳에서 숙박까지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고, 자생의 길을 모색하는 젊은 미술가들은 새로운 공간과 시각을 바탕으로 미술이 있는 풍경을 전과 다르게 조형하는 중이다. 불황의 그림자는 미술 시장도 덮쳤지만, 그림 한 점을 쇼핑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전보다 많아졌다. 최근 몇 년 새에는 국내 호텔에서 열리는 아트페어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저 사이즈의 작품을 침대맡에 걸어두면 조화로울지’ 감을 잡는데 용이한 곳이 있다면 어딜까? 작품이라는 품위를 지키되 미술관이나 갤러리보다 캐주얼한 방식으로 관람객을 끌어당긴다는 점에서도 호텔은 미술과 조우하기 근사한 공간이다.
‘아시아호텔아트페어(이하 AHAF)’ 는 아시아 최초로 호텔 아트페어의 시작을 알린 대규모 행사다. 서울에서는 올해로 벌써 15회째. 매년 홍콩과 서울에서 2회씩 개최되지만, 올해는 홍콩을 건너뛰고 서울에 바로 상륙한다. 8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2016년의 무대는 반포에 위치한 JW 메리어트다. 예의 스펙터클한 규모대로 아시아 60여 개 갤러리에 소속된 300여 작가의 작품 2000여 점이 무대 곳곳에 자리할 예정이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을 감상할 때와 달리 호텔에서 관람객의 시선은 아래로, 혹은 구석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침대 위에 편안히 몸을 누인 캔버스나 소파와 욕실에 자리 잡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호사스러운 플리마켓에 온 기분이 들 것 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부터 AHAF 서울은 호텔 한 층 전체에 대대적으로 흰 벽을 장치하여, 객실에서와는 다른 관람 형태를 제안하면서 더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는 안을 마련했다. 그렇게 지난해의 여의도 콘래드 호텔 한 층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과 한국 단색화가 있는 전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올해 JW 메리어트 7층에서는 인터랙티브 아트를 필두로 한 디지털 아트가 펼쳐진다. ‘The A Space’라는 별도의 타이틀을 단 이 공간은 마침 야외 정원까지 딸린 층으로, 미디어 아티스트 김창겸의 설치 작업과 라운지 등이 있는 호텔 속 색다른 공간이 될 것이다.
아트페어는 4일간 열리지만, 8월 11일부터 31일까지 인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이 일종의 서브 무대 역할을 한 다. AHAF 홍콩이 하버시티의 쇼핑몰과 연계해 아트페어 무대를 확장하기도 했던 것처럼, 아트페어를 앞두고 백화점 특별전을 통해 서서히 예열해가는 셈이다. 한여름 밤의 백화점 옥상정원에선 김택기, 김경민, 정국택, 오동훈, 유은석 작가 등의 작품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아트 페어가 열리는 호텔 공간이 캔버스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뻥 뚫린 옥상정원은 조형물과 조각상이 자리하기 좋은 곳.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해 거대한 로봇을 만드는 김택기의 태권브이 뮤지션 시리즈는 차가운 로봇과 따뜻한 음악이 만나 위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인상을 풍긴다. 그런 한편 현대인의 한 모습을 과장된 포즈로 표현한 정국택의 작품은 그 희화화 된 해석의 효과로 오히려 비애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신세계 백화점 특별전에선 당황스럽도록 귀여운 배트맨과 스파이더맨도 만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가 서로 뿅망치 게임을 한다거나, 원더우먼이 치아교정기를 하고서 춤추는 식으로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에 유쾌한 터치를 더하고 비트는 유은석의 작품이다.
AHAF 서울에 소개되는 작품 규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아트페어는 여러 특별전과 이벤트 등의 카테고리를 품고 있다. 최근 카스텔바작과 협업하여 ‘百BAG’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진가 조선희의 결과물도 주요 특별전의 하나다. 한국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100인과 백 100개가 함께한 사진에 관람객의 흥미로 운 시선이 향할 것은 분명하다. 이 객실과 저 객실을 거닐며 만찬과 같이 다양한 미술품에 둘러싸일 수 있는 곳. 미술과 좀 더 가까워지는 ‘접선 장소’로 손색없다.
-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