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 랑방이 올해로 125살이 되었다. 이 유서 깊은 하우스를 지난 13년간 이끌어온 알버 엘바즈가 말하는 랑방, 그리고 그의 삶.
우아한 드레스를 랑방 하우스의 상징으로 만든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 그는 랑방에 부임하기 전 제프리 빈, 기라로시, 이브 생 로랑, 크리지아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격랑의 시간을 보낸 그가 큰 변곡점을 맞이한 건 2001년의 어느 날. 타이완 출판업계 거물 쇼-란 왕이 랑방을 사들였다는 기사를 읽은 뒤다. 당시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아는 저널리스트들을 수소문해 그녀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그런 다음은? 동화 속 고유 멘트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와 같은 훌륭한 결합 스토리. 지난 13년간 랑방 하우스라는 거대한 배를 비약적 성장과 함께 큰 동요 없이 순항시켜온 그에게, 지난 시간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어떤 생각을 품고 랑방의 디자인을 시작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랑방의 아카이브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상상했고, 그게 디자인의 시작점이 됐다.
언제 랑방이 상승세를 탔다고 느꼈나?
패션 저널리스트들이 랑방을 입기 시작 한 순간! 패션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있는 이가 입는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다.
엘바즈의 랑방을 논할 때 프리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프리 컬렉션을 처음으로 프레젠테이션한 디자이너다. 시작은 단순했다. 10명가량의 저널리스트와 바이어를 불러 맛있는 차를 마시 며 새 옷을 보여주고,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이게 알려지자 더 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 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심해 졌다. 결국 ‘시즌’이 되었다. 이젠 매장 의 모든 아이템이 프리 컬렉션과 관계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프리 컬렉션에 나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고심하는 부분이 가장 잘 반영되기 때문인 것 같다.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익숙하다고 했다. 그게 당신의 원동력인가?
불안할 때면 이브 생 로랑에서 RTW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쿠튀르 쇼를 하루 앞둔 어느 날 밤을 떠올린다. 이브 생 로랑에게 기분을 물었더니 “아주 나빠!” 라고 외쳤다. 오랜 시간 쇼를 해오고도 왜 기분이 나쁘냐고 묻자 그는 “바로 그 시간들 때문에!”라고 답했다. 나는 이제 그 대답이 얼마나 솔직했는지 안다.
조프리 빈과 이브 생 로랑에서의 트레이닝이 여전히 일에 영향을 끼치나?
물론. 나는 운이 좋게 정말 대단한 두 명의 멘토를 만났다. 요즘 학생들은 졸업 하자마자 후원자를 찾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간을 갖고 배워. 최고 밑에서 배워. 그래야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알게 된다”고.
공식석상에서 때론 굉장히 뻣뻣해 보인다.
맞다. 난 직감에 의존해 일하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고 모든 걸 이성적으로 판단하다간 오히려 일을 그르칠 때도 많다. 나는 직감이야말로 예민한 사람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함께한 디자이너 엘리 탑이 내년에 자신의 주얼리 라인을 선보인다.
엘리는 이브 생 로랑 시절엔 백을 디자인했고, 그다음 주얼리를 시작했다. 내게 그는 가족과 같다. 엘리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라고 부추긴 사람도 사실 나다.
액세서리보다 옷이 강한 하우스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걱정이다. 예전엔 해외에 브랜드 라이선스를 판매하거나 향수를 만드는 것이 돈벌이가 됐다면, 지금은 백이니까. 하지만 백 을 띄우기 위해 셀레브리티, 언론의 관심, 백화점의 좋은 자리,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을 필요로 하는게 랑방과 어울릴까? 우린 우리 방식대로 할 것이다.
칵테일 드레스가 상징적인 아이템이다. 여전히 가장 디자인하기 즐겁나?
그렇다. 그리고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요즘엔 나의 장기를 데이웨어로 풀어내기 위해 고심 중이다. 볼륨 드레스를 데이웨어로 선보이려면 면 소재를 선택하게 되겠지?
패션 디자이너로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매일이 다르고 매 시즌이 늘 다르다는 것. 지루할 틈이 없다. 나는 여성이 나의 옷을 입고 거울을 봤을 때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가 되고 싶다. 그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말, 최고로, 행복하게!
- 에디터
- 이경은
- 글
- Miles Socha
- PHOTO
- STEPHANE FEUGERE, DELPHINE ACHARD, GIOVANNI GIANNONI, DOMINIQUE MAI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