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도, 의심도 많아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깐깐한 뷰티 에디터의 좌충우돌 면 생리대 체험기.
‘솔까말’.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이 편리한 걸 대체 왜 안 쓰나. 조기 폐경이라도 왔다면 또 모를까. 대안 따위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일회용 대신 면 생리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0대를 훌쩍 넘기면서부터다. 끊임없이 ‘순수’ 혹은 ‘순함’을 강조하는 일회용 생리대 광고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그 반대의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여겨졌으니, 뭐로 보나 세상 의심 많은 성격 탓이다. 결정적으로 ‘한번 해봐?’라고 결심하게 된 건 가수 이효리의 포스팅을 통해서다. 어느 날, 실시간 검색어에 ‘이효리 면 생리대’가 올랐고, 그 생뚱맞은 조합에 끌려 자연스레 클릭했다. 그러고는 그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죽고도 500년 동안 썩지 않는 내 생리대가 지구에 쌓여 있다…’ 헉! 내 몸에서 나온 무언가가 (심지어 내가 죽은 뒤에도) 그 모양 그 대로 어딘가에서 남아 있다니. 흔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꺼려 SNS에 제 사진 한 장 올리지 않는 내게 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바로 그때다. 면 생리대라는 물건이 안중에 들어온 건.
인터넷상에는 의외로 면 생리대를 쓰는 사람도, 판매처도 다양했다. 문제는 서울 시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오프라인 매장. 편의점부터 동네 구멍가게, 백화점까지 어디에서든 쉽게 살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와는 시작부터가 비교 불가다. 어렵게 면 생리대를 손에 넣고는 비교적 가벼운 팬티라이너부터 도전했다. 사용한 걸 고이고이 집으로 다시 가져와야 하는 과정이 (몹시) 불편했지만, 그 외에는 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제아무리 고운 제품도 일회용은 닿는 면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데, 면 소재다 보니 매번 깨끗한 속옷을 입은 듯 편안하고 개운했다. 빨래도 망에 넣어 세탁기에 돌리기만 하면 OK. 하지만 팬티라이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막상 생리대를 쓰기까지는 몇 번의 고비가 존재했다. 구입은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던 것. 두려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 르겠다. 새어 나올까 걱정되었고, 손빨래는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까. 큰맘 먹고 처음 시도한 건 오버나이트다. 여느 일회용 생리대보다 넓고 긴 넉넉한 사이즈가 내심 믿음직스러웠다. 다행히 무사히,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편안한 밤을 보낸 뒤 나는 점차 사용량을 늘려갔고, 현재는 집에 있는 동안에는 줄곧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 ‘경지’에 있다.
그럼에도 면 생리대는 여전히 나에게 숙제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애벌빨래를 할 때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집에서는 사용하지만 밖에서는 엄두도 못 낸다. 기사 작성을 위해 외출 시 사용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그날은 종일 주변 사람들 눈치를 살피느라 진땀을 뺐다. 시중에는 방수 효과 짱짱한 파우치도 많을뿐더러 염려하는 만큼의 악취는 전혀 없음에도, 현실은 쉽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단점이 수두룩한데도 면 생리대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아니요, 환경보호 같은 대단한 사명감 때문도 아니다. 고작 석 달 (그것도 집에서만) 썼으니 분비물이 줄었으며 생리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식의 어메이징한 경험을 말하기에도 분명 자격 미달. 다만 한 가지, ‘무해하다’고 주야장천 외치는 일회용 생리대를 보면서는 정작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정말 자연스럽고 건강하다는 인상을 매 순간 받는다. 이 안에는 표백제도 흡수제도, 그로 인한 발암 물질이나 환경 호르몬 같은 부산물도 전혀 없다. 오직 면(Cotton)만으로 만든 면 생리대.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그날에도 나는 소중하니까.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김희진
- 포토그래퍼
-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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